우리가 남이가? 당선자 둘러싼 ‘삼성맨’의 그늘
  • 감명국 기자 kham@sisapress.com ()
  • 승인 2007.12.24 1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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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자금 추적 대상자’ 황영기 전 행장 향후 행보에 관심 집중 일부에서는 ‘새 정권과 삼성의 새로운 유착’ 의심

12월19일 오후 6시 정각. 방송 3사에서 일제히 17대 대선의 출구조사 결과를 발표하는 순간 청계천에 모여든 이명박 한나라당 후보 지지자들은 일제히 환호했다. 이 환호 소리는 바로 인접한 태평로 삼성그룹 본사에도 전해졌다. 삼성 역시 내색은 않고 있지만 내심 이후보의 당선을 한나라당 못지않게 바랐으리라는 것이 정계와 재계 및 법조계 주변의 대체적인 분석이다. 이후보의 당선이 향후 이어질 ‘삼성 특검’에 미치는 영향은 남다를 것이라는 전망 때문이다.
국회의 ‘삼성 특검’법 통과에는 한나라당도 동참했지만, 이는 다분히 대선을 의식한 정치적 선택의 성격이 강했다. 대통합민주신당과 민주노동당, 창조한국당 등 범여권이 삼성 특검을 먼저 들고 나오자 한나라당 내부는 고민에 휩싸였다. 대놓고 반대를 했다가는 자칫 재벌 비리를 비호하는 ‘차떼기’의 망령이 되살아날 판이었다. 고심 끝에 범여권과 합의에 이르렀지만 마지 못해 끌려오는 인상이 역력했다. 
당시 ‘이명박 캠프’에는 선대위 경제살리기특위 부위원장으로 황영기 전 우리은행장이 있었다. 경제살리기특위는 이당선자 자신이 위원장을 직접 맡을 만큼 선대위에서 핵심적인 위치였다. 따라서 사실상 황 전 행장이 이당선자를 대신해 캠프의 경제 정책을 주도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황영기 전 우리은행장, 이재용 전무 가정교사 역할도

그러나 삼성 문제가 불거지면서 그의 전력이 도마 위에 올랐다. 그는 삼성물산 출신으로 삼성전자 자금팀장과 삼성생명 전략기획팀장, 삼성투신운용 사장을 거쳐 삼성증권 사장 등 핵심 요직을 두루 거친 ‘삼성맨’이었다. 이건희 회장의 해외 통역을 도맡았고, 이재용 전무의 가정교사 역할까지 맡을 정도로 ‘로열패밀리’와도 밀착된 것으로 알려졌다. 그가 우리은행금융지주의 회장으로 자리를 옮긴 것 역시 삼성의 우리은행 인수 전략의 일환이라는 의심 어린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나왔다. 재계와 금융계에서는 우리은행을 삼성은행이라고 부를 정도이다. 이번에 김용철 변호사가 폭로한 차명계좌 역시 대부분 우리은행에서 이루어진 것으로 드러났다.

ⓒ연합뉴스

황 전 행장은 대선 유세가 한창이던 2007년 11월29일 미국으로 돌연 출국했다가, 이당선자가 범여권에게 공격당하자 그 다음 주에 다시 귀국했다. 그는 현재 검찰에 의해 출국 금지된 상태이다. 검찰은 황 전 행장 명의의 차명계좌도 포착하고 추적 작업을 벌여온 것으로 알려졌다.
황 전 행장이 이처럼 주목을 받고 있는 이유는 그에 대한 이당선자의 절대적인 신뢰감 때문이다. 두 사람은 이당선자가 서울시장 시절 우리은행이 서울시의 금고은행을 맡은 인연으로 급속도로 가까워진 것으로 알려졌다. 무엇보다 두 사람의 경제관이 서로 잘 맞는다는 것이 주변의 평가이다. 실제 이당선자의 경제 공약 가운데 상당 부분이 황 전 행장에 의해 나온 것으로 알려졌다. 따라서 그가 차기 정권에서 경제 부문의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할 것이라는 전망은 유력하다. 현재로서는 이명박 정권의 차기 금감위원장 후보로 유력하게 부상하고 있다.
문제는 김용철 변호사나 민노당측이 황 전 행장과 이당선자 간의 밀착을 새 정권과 삼성의 새로운 유착 관계로 의심하고 있다는 점이다. 김변호사는 “황 전 행장은 삼성의 차명계좌를 이용해 비자금을 관리한 임원 중 한 명이다”라고 공개적으로 지목했다. 11월 국정감사에서도 이목희 대통합민주신당 의원은 “실명제법을 위반하면서까지 우리은행이 계좌를 만들 수 있었던 것은 해당 지점장 선에서 결정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라 당시 행장이었던 황영기씨가 개입되었을 것이라는 게 정설이다”라고 의혹을 부추겼다.
삼성 특검에 대해서 분명한 입장을 표명하지 않고 어물쩍 넘어가는 자세를 보인 이당선자의 성향에 비추어볼 때, 이번 대선 결과가 향후 특검 수사에도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이당선자와 한나라당이 과반에 육박한 높은 대선 지지도를 ‘국민의 경제살리기 여망’이 반영된 결과로 몰아가면서 삼성 특검 수사의 온도 조절 명분으로 삼을 수도 있는 까닭이다. 상대적으로 삼성 특검에 대해 목소리를 높였던 통합신당을 비롯한 민노당, 창조한국당 등이 대선에서 참패한 것 역시 삼성으로서는 지극히 만족스런 결과로 다가올 것이라는 분석이 가능하다.
노회찬 민노당 의원이 “삼성이 이제는 정권에 돈을 보내는 대신에 인물을 보내는 전략을 쓰고 있다”라고 비난한 것처럼 황 전 행장 외에도 이당선자 주변에는 상당수의 삼성맨들과 삼성에 우호적인 재계 인사들이 포진하고 있다.

친인척·고려대 인맥 상당수, 이당선자와 삼성에 얽혀

 
당장 이당선자의 큰사위인 이상주 변호사가 현재 삼성화재 법무담당 상무보로 있다. 그는 부산지검 검사 출신이다. 배정충 삼성생명 부회장은 이당선자의 고려대 상대 후배이면서 절친한 사이인 것으로 알려졌다. 배부회장은 이학수 삼성그룹 부회장과 고려대 동기 동창이기도 하다.
민노당에서는 지승림 알티캐스트 사장을 비중 있게 지목한다.  삼성의 심장부라 할 수 있는 구조조정본부의 부사장 출신인 그가 대선 전에 전격적으로 이명박 캠프에 뛰어들었기 때문이다. 특히 지사장은 캠프에서 미디어홍보분과 간사 직책을 맡으면서 이당선자의 CF 등 홍보 전략 수립에 큰 공을 세웠다. 민노당측은 “지사장은 구조본의 핵심 인사로 삼성 비자금 조성 관여 의혹도 받고 있지만 무엇보다 삼성과 새 정권과의 메시지 가교 역할을 할 것이라는 의혹이 있다”라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지사장은 “근거 없는 명예훼손으로 법적 대응도 고려할 만하다”라고 강력히 반발하고 나섰다.
노무현 정부에서 정통부장관을 지낸 진대제 전 장관은 당초 이명박 캠프의 경제살리기대책위 고문으로 영입되었다고 발표했다가 곧바로 취소하는 해프닝을 연출하기도 했다. 하지만 사실상 그도 이당선자측에 무게 중심을 옮긴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전자 사장 출신인 진 전 장관은 노무현 정권 때 삼성과 참여정부의 가교 역할을 한 대표적인 인물이었다. 역시 노무현 정부에서 법무부 차관을 지낸 김상희 전 차관은 이당선자의 법조계 인맥으로 일익을 담당했다. 그는 이당선자가 BBK 사건에 대한 검찰 수사로 위기에 몰릴 당시 막후 역할을 상당히 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지난 2005년 이른바 안기부 도청 X파일 사건 때 삼성으로부터 떡값을 받은 검사로 지목되면서 불명예 퇴진을 한 바 있다. 이런 인연으로 민노당 등 일각에서는 그를 여전히 삼성과 관계 있는 인물로 의심하고 있다.
고려대 동문으로 이당선자와 절친한 관계인 천신일 세중나모여행사 회장의 역할에 대해 주목하는 인사들도 많다. 천회장은 오래전부터 이건희 회장의 최측근으로 활약한 인물이다. 또 이회장의 뒤를 이어 레슬링협회 회장을 맡기도 했다. 그는 고려대 교우회장을 맡으며 고려대 동문의 전폭적인 이명박 지지 분위기를 주도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용철 변호사는 대선 직전 한 인터넷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이명박 후보는 금산분리 철폐를 내세웠다. 이는 삼성이 간절히 원하는 것이다. 당선자에 대해 우호적이기 마련인 정권 초기의 분위기가 삼성 문제에 대한 여론에 영향을 미칠까 두렵다”라는 우려를 표명했다. 대선 이후 김변호사의 이런 우려가 점차 현실로 나타나는 모양새를 보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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