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만의 종말과 겸허의 교훈
  • 김홍신 (소설가) ()
  • 승인 2007.12.31 1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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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대선의 국민적 화두는 ‘대통령은 아무나 해도 그만’이었다. 자천타천으로 거론된 사람만 수백 명이었고 기표 용지에 등재된 후보만도 역대 최대인 12명이었다. 투표 결과는 ‘노무현 효과’와 ‘못 살겠다, 갈아보자’는 분노의 표심으로 나타났다. 오죽하면 기호 13번에 자기 이름을 써넣고 싶다는 소리로 대통령의 권위가 희화되었겠는가.
대선의 최대 패배자는 기이하게도 출마하지 않은 노무현 대통령이라는 데 이견이 없을 정도이다. 국민을 고루 공평하고 가벼우며 편안하게 해주지 않으면 반드시 회초리를 든다는 사실을 이제라도 깨달았는지 묻고 싶다. 국민 앞에 무릎 꿇지 않은 지도자들의 말로가 얼마나 비참했는지를 새겨보아야 할 것이다.
우리가 역사를 배워야 하는 것은, 선한 것은 배워 익혀 본받고 악한 것은 경계하고 교훈 삼기 위함이다.
나라가 멸망할 때는 첫째, 내분으로 나라가 어지럽고 둘째, 지도자가 혼암(昏暗·어리석고 못나서 사리에 어두움)하며 셋째, 지도층이 분별없이 호사를 누리고 넷째, 민심이 이반해 갈등의 골이 깊으며 다섯째, 외침을 받아 국력이 기울어졌을 때이다.
지난 5년 동안 좌우·동서·빈부·고저 갈등이 심화되어 사방에서 내분이 들끓었다. 국민들은 이구동성으로 대통령의 경박함과 혼암함을 소리 높여 나무랐지만 쇠귀에 경 읽기가 되어버렸다. 지도층의 부도덕과 호화 사치로 천심을 잃었으며 중간평가나 다름없는 재·보선과 지방 선거에서 대참패를 당했다. 이렇게 민심이 돌아섰는데도 참회하지 않는 오만을 국민들이 어찌 참을 수 있었으랴.
과거의 외침은 창검궁시(槍劍弓矢)였고, 근세에는 총칼이었으며 현대는 경제 침략일 수밖에 없다. 나라가 어지럽고 국민들의 분노가 들끓는 사이에 중국의 거대한 경제 블랙홀에 우리가 빨려들어가고 있는데도 정부는 눈을 높이 들어 위기를 가늠하는 지혜를 잃어버렸다.

포용력 발휘해 갈등 풀고, 소외 계층도 배려해야

그 바람에 우리의 시대적 도덕불감증의 상징적 인물을 대통령으로 선출하게 되었으니 어찌 참여정부가 역사의 심판을 비켜갈 수 있겠는가. 이런 추세의 국민 감정이라면 다가올 총선에서 ‘호남 고립’이라는 민족적 비극을 초래할지도 모른다.
이명박 당선자는 뜻밖의 포용력을 발휘하여 동서 갈등을 풀기 위해 호남을 중용하고, 좌우 갈등을 딛고 일어서기 위해 진보 세력과 북한을 끌어안고, 빈부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 경제 살리기와 소외 계층에 대한 배려를 게을리해서는 안 된다.
고사를 굳이 인용하지 않더라도 위대한 지도자는 반드시 비판자와 반대파를 중용함으로써 역사의 선역(善役)이 되었음을 잊지 않아야 한다. 도덕적 결함을 털어내는 것은 재산 환원이 아니라 오직 국가와 국민 앞에 겸허히 무릎 꿇는 길밖에 없음을 명심해야 한다. 천하가 어지러워도 대한민국이 당당한 것은 우리 민족의 유전인자 속에 숭엄하고 장대한 혼이 스며 있기 때문이다. 태안 앞바다의 저 뜨거운 한국인들의 열정을 보라. 우리가 딛고 살아야 할 우리 땅과 우리 정신을 당신들은 함부로 더럽히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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