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 시장 ‘판갈이’ 시작되나
  • 노진섭 기자 no@sisapress.com ()
  • 승인 2008.01.02 1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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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정부, 자율 경쟁 논리 중시 MBC 등 공영방송 민영화, 신문·방송 겸영이 최대 화두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는 취재 선진화 방안을 포함한 노무현 정부의 미디어 정책을 총체적으로 비판해왔다. 새 정부의 미디어 정책은 그런 점에서 지각 변동에 가까운 대변화를 가져올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그동안 언론계에서 부각되었던 쟁점들을 살펴보면 차기 정부가 대대적으로 메스를 들이댈 부분은 크게 셋으로 나눌 수 있다. 방송사 민영화를 비롯한 방송 구조 개편, 신문·방송 겸영, 언론 관련 기구 개혁 등이다. 아직 구체적인 정책이 수립되지 않았고 이당선자가 대선 공약으로 구체적인 안을 제시하지도 않았다. 미디어 정책은 차기 정부 출범과 함께 설립될 21세기미디어위원회(가칭)에서 심도 있게 논의·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여러 채널을 통해 흘러나오고 있는 이당선자의 의중을 접하면 이미 한나라당 주변에서 논의된 개혁 방안들이 정책으로 채택되고 실현될 가능성이 클 것으로 예견되고 있다. 대통령 선거 기간 중 이후보측 홍보위원장을 맡았던 정병국 의원(국회 문화관광위원회)은 “미디어 산업을 건강하게 발전시키는 데 제도가 걸림돌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 이당선자의 생각이다.
인수위의 관련 분과가 KBS·MBC 등 공영방송의 기능·위상·소유 구조 등을 전면 검토해 국가가 육성해야 할 공영방송과 민영화할 방송으로 구분하는 작업을 진행하겠다”라고 말한 바 있다. 이당선자도 공약집을 통해 “정권 내지 대통령 홍보에만 초점을 두는 국정홍보처와 한국정책방송(KTV)은 폐지하고 국정 홍보 체제의 근본적인 혁신을 추구하겠다. 언론의 자유를 심각하게 저해하고 있는 취재지원시스템 선진화 방안과 신문법은 폐지하겠다”라고 밝혔다.
기업인 출신답게 이당선자는 미디어 정책에 자율 경쟁 논리를 적용시킬 가능성이 크다. 미디어 간 경쟁력을 높여 보도의 질을 향상시키고 미디어 산업의 효율성을 높여나가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시각에 대해 벌써 말들이 많다. 언론을 단순히 시장논리로 보는 것은 일차원적 구상이라는 것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한나라당측이 주장해온 방안들에 대해 방송 종사자를 비롯한 언론계 일각에서 반감과 우려를 드러내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만일 이런 방안들을 충분한 공감대 없이 밀어붙이려 할 경우 정책 실행 과정에서 상당한 진통이 예상된다. 새 정부의 주요 미디어 정책을 살펴보고, 이에 대한 현장의 목소리를 들어보자. 

■ 방송 부문 - ‘1공영 다민영 시대’ 열릴까

가장 큰 변화가 예상되는 부문은 방송이다. 특히 공영방송의 민영화가 핵심이다. 한나라당은 그동안 ‘다(多)공영 1민영’이라는 현재의 방송 체제보다 ‘1공영 다(多)민영 체제’가 바람직하다는 입장을 밝혀왔기 때문이다. 사실 공영방송의 민영화 문제는 정권 교체 때마다 거론된 해묵은 논쟁거리이다. 1990년 민영방송 허용 방침이 화두가 되면서 두 공영방송사의 민영화론은 꾸준히 제기되어왔다. 노태우·김영삼·김대중 정부도 이 문제를 거론했지만 뚜렷한 정책을 제시하지는 못했다.
한나라당 역시 조심스럽게 접근하고 있다. 한나라당 정책국 서미경 정책전문위원은 “민영화를 하겠다고 말한 것은 아니다. 다만 방송사는 광고가 줄어들고 있다고 하고, 신문은 올드 미디어(낡은 매체)로 전락하고 있다 해서 미디어 시장 전체가 아우성이다. 뉴미디어 시대에 맞추어 기존 미디어 시장을 개선하고 경쟁력을 갖추도록 하자는 것이 한나라당 미디어 정책의 기본 취지이다”라고 설명했다. 
방송사의 경영을 혁신해 자립과 경쟁 능력을 갖추기 위한 여러 가지 방안 중 가장 손쉬운 것이 민영화일 수 있다. 과거 공기업을 민영화해서 경영 실적이 호전된 사례도 있다. 더구나 공영방송이 그동안 정권이 바뀔 때마다 전리품처럼 다루어지면서 새 정권의 나팔수로 처신해와 어떤 형태로든 변신을 하도록 해야 한다는 데 공감을 표시하는 사람들이 많다. 한 언론학자는 “한국의 KBS나 MBC가 영국의 BBC처럼 공평 무사한 방송을 해왔느냐를 물었을 때 떳떳하게 대답하지 못할 것이다.
매번 대선 과정에서 야당측이 공영방송의 혁신론을 주장했지만 정권을 잡으면 자신들을 위한 방송을 하게끔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바람에 공영방송들이 제구실을 하지 못했다. 이명박 당선자가 과연 민영화를 비롯해 자신의 평소 소신을 실천할 수 있을지는 지켜보아야 할 일이다”라고 말했다.     
이런 논리로 방송가에 민영화 바람이 불 경우 MBC와 KBS2가 도마에 오를 것이 분명하다. 특히 방송문화진흥회(이하 방문진)가 대주주인 MBC는 민영화 1순위로 꼽힌다. 방문진 지분 70% 중 일부를 매각하면 손쉽게 민영화를 추진할 수 있다.
차기 정부가 MBC의 민영화를 강행한다면 시간을 두고 추진할 가능성도 있다. 충격을 흡수하는 효과도 있지만 MBC 민영화의 걸림돌인 정수장학회 지분 문제를 풀 시간도 필요하기 때문이다. MBC 지분의 30%를 보유하고 있는 정수장학회는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가 지난 1995년부터 2005년까지 이사장으로 있었다. 그러나 사실상 박 전 대표의 소유나 다름없는 정수장학회의 지분을 민영화에 강압적으로 끌어들일 수는 없는 만큼,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이 한나라당 관계자의 설명이다. 한나라당 관계자들은 “정수장학회 등이 있어 당장 민영화는 어렵고 단계적인 수순이 필요할 것이다. MBC 민영화로 정수장학회가 반사 이익을 볼 수 있을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그러나 문제는 정수장학회가 지분을 양보할지가 관건이다. 주변 여건이 형성되면 정수장학회가 스스로 판단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따라서 한나라당은 MBC의 민영화를 기정사실화하는 것에 대해서는 상당히 말을 아끼고 있다. 이명박 당선자의 미디어 정책 자문을 맡았던 숙명여대 언론정보학부 박천일 교수는 “앞으로 마련될 21세기미디어위원회에서 미디어 정책을 심도 있게 논의할 것이다. 이당선자는 어떠한 선입견도 없는 백지 상태에서 민영화를 논의하라고 지시한 바 있다”라고 말했다.
KBS2도 일단 민영화 대상에 올라 있다. 박교수는 “공영방송과 민영방송의 차별성이 없는데, 이를 분명히 하겠다는 것이 방송 구조 개편 작업의 취지이다. 공영방송의 차별성을 높이기 위한 재원과 콘텐츠 개발 지원 정책이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KBS1은 공영방송으로 적극 육성해 민영방송과 차별성을 두겠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KBS2의 민영화 또는 통·폐합이 불가피할 것이라는 것이 언론계의 일반적인 시각이다.
일부 방송의 민영화가 가져올 득과 실에 대해서는 말들이 많다. 물론 방송계 현업 관계자들 사이에는 반대 기류가 우세하다. 한국방송협회 윤성옥 연구위원은 “민영화의 이득이 무엇인가 따져보면, 무의미하다는 대답에 도달한다. 민영화를 통한 효율성 제고를 주장하지만 환상에 그칠 수 있다. 영국의 경우 민영방송을 공영방송으로 끌어들이는 등 공영성을 높이려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섣부른 민영화로 방송의 근간인 공영성이 정치 논리에 휘둘릴 수 있다. 민영화 논의 자체가 소모적이다”라고 비판했다.
MBC측의 반발 기류는 더욱 세다.  MBC 정호식 정책기획팀장은 “시청률로 방송사를 판단한다면 MBC는 다른 방송사에 비해 높다. 경영 효율성을 높이는 것이 민영화의 이유라면, MBC는 경영 효율성이 높다. 이런 이유들이라면 MBC 직원들은 민영화를 받아들이기 힘들다”라고 말했다.
전국언론노동조합 MBC본부 유해진 홍보국장은 “민영화하면 누가 MBC를 소유하겠는가. 재벌 기업의 지배에 놓일 가능성이 크다. 언론의 중립성과 객관성이 붕괴될 수밖에 없다”라고 말했다.
KBS의 한 간부는 “KBS2 민영화는 안 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차기 정부가 무리수를 두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민영화를 추진한다면 우려되는 부분이 적지 않다. 공영방송을 자본 논리로 풀면 공영성이 약화되는 폐해가 생긴다. KBS1과 KBS2는 재난 방송과 보조 방송이라는 상호 보완적인 관계에 있다. KBS2를 떼어내어 민영화한다는 것은 공영성을 포기한다는 의미이다”라고 말했다. 언론노동조합 KBS본부 윤형혁 정책팀장도 “민영화의 장점으로 효율성을 꼽는다. 그렇다고 모든 부문에서 효율성을 따질 수는 없다. 효율성은 기업 논리이다. 이를 공영방송에까지 적용하는 것은 무리이다”라고 주장했다.
현장에서의 이런 반론들 때문에 또 다른 변수도 거론되고 있다. KBS2에 광고를 허용하지 않는 대신 문화·다큐멘터리 전문방송으로 만든다는 발상이다. 이른바 ‘청정 공영방송’을 지향하는 것이다. 이에 대해 국회 과학기술정보통신위원회 류근찬 위원은 “광고를 없애는 것은 궁극적으로 바람직하다. 그러나 현재 1조원이 넘는 운영비를 시청료로 감당하기 쉽지 않다. 무엇보다 민영화의 맹점은 콘텐츠가 부실해진다는 점이다. 시청률과 광고주를 무시할 수 없는 방송으로 전락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한국정책방송(KTV)은 폐지될 것이 확실시된다. 지난해 방송위원회에 따르면 국고나 방송발전기금 등 공적 재원을 근간으로 국가 기관이 운영하는 국·공영 채널이 무려 11개에 이른다. 한나라당은 “채널간 기능이 중복되어 혈세 낭비도 크다”라고 그 폐해를 여러 차례 지적해왔다.
문제는 KBS의 24시간 해외 채널인 KBS월드와 영어방송 채널인 아리랑TV를 통·폐합하는 방안이다. 해외 방송을 하는 유사한 성격의 두 채널을 한데 묶는다는 구상이다.
이에 대해 아리랑TV 최성배 혁신기획팀장은 ”통·폐합하는 것을 무조건 반대하지는 않는다. 중복되어 있다면 교통 정리가 필요하다. 다만 방송 성격이 유사하다고 통합하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 통·폐합의 목적을 따져보아야 한다. 국정을 감시하고 비판해야 할 KBS가 국가 홍보 방송을 할 수 있겠는가. 또 국내 콘텐츠를 제공하는 KBS가 해외 시청자에 맞는 정보를 제공할 수 있는지도 의문이다”라고 말했다. 전국언론노조 신삼수 전국언론노동조합 정책실장도 “KTV와 국회방송은 국민의 세금을 들여 정권을 선전해왔기 때문에 폐지가 마땅하다. 다만 KBS월드와 아리랑TV의 통·폐합에 대해서는 아리랑TV 직원들이 현명한 선택을 할 것이다. 전국언론노조는 아리랑TV의 입장을 존중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 신문 부문 - 신문법 폐지 확실시…독과점 막을 제도적 장치 따라야

 
이당선자는 1980년 신군부가 언론을 통제하기 위해 만든 신문·방송 겸영 금지 규정을 폐지할 것으로 보인다. 미디어 산업의 진입 장벽을 허물겠다는 것이 그의 평소 소신으로 알려져 있다. 이 경우 신문사가 방송사를, 방송사가 신문사를 설립·소유할 수 있다. 한나라당은 “신문·방송 겸영 허용은 시대적 조류이기 때문에 허용해야 한다. 조건 없는 신문·방송의 겸영 허용이 아니라 신문 시장의 독과점 구조를 막는 정책도 병행하는 방식이 될 것이다”라고 강조해왔다.
다만 신문사의 공중파 방송은 제한한다는 조건이 붙어 있다. 지상파 방송사의 반발 등을 고려한 조건이다. 또 신문사가 뉴미디어 영역으로 진입하도록 유도한다는 복안도 깔려 있다. 한나라당 정책국 서미경 정책전문위원은 “신문법은 반드시 폐지한다. 이를 통해 IPTV와 케이블TV 등 방송가의 서로 물고 물리는 복잡한 경쟁 구도를 풀어보자는 논의도 있다. 신문과 방송을 구분하는 것은 무의미하다는 것이 이당선자의 생각이다. 지상파는 시기상조이며 뉴미디어 영역을 넓히는 것이 바람직하다”라고 말했다.
문제는 독과점이다. 언론 시장에도 빈익빈 부익부 양극화가 심화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전국언론노조 신정책실장은 “이른바 족벌 신문의 지배력은 더욱 커질 것이 뻔하다. 이는 언론의 다양성을 침해하고 양극화를 부추길 것이다. 신문과 방송 모두 이 문제에 대응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한나라당 정책국 서전문위원은 “지상파는 이미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 KBS의 경우 위성방송, DMB 등 다양한 수단으로 어떤 변화에도 훌륭히 대처할 수 있다. 방송사에 대해서는 경영 다각화를 통해 더욱 경쟁력을 강화할 수 있도록 지원할 방침이다. 다만 다른 매체들의 방송 시장 진입을 막을 필요는 없다”라고 설명했다.
신문발전위원회 김서중 부위원장은 “이른바 미디어의 시너지 효과로 경쟁력을 높일 수 있다는 것인데, 신문·방송 겸영은 사실 두 가지 의도를 안고 있다. 여론 시장 선점 의도와 수익 확보 의도이다. 유럽의 경우 신문사들의 언론 시장 점유율을 제한하고 있다. 영국의 경우 30% 이상 점유한 신문은 방송을 겸영할 수 없다. 1980년대 언론 통·폐합은 분명 잘못된 것이지만 시장 독과점을 없앤 순기능을 버려서는 안 된다”라고 말했다.
당사자인 방송사와 신문사는 언론 시장 독과점에 대해 우려하면서도 공식적인 입장을 표명하지 않고 있다. 신문협회는 “공식적인 정책이 나올 때까지 입장을 밝히기 쉽지 않다”라고 말했다. MBC와 KBS도 “구체적인 정책이 나오기 전까지 신문·방송 겸영에 대해 말하기에는 시기상조이다”라고 말했다.

■ 기구 및 정책 - 미디어 정책 통합할 기구 신설 모색…중립성 논란 예상

우선 취재 선진화 방안은 전면 폐지되고 국정홍보처는 해산될 가능성이 크다. 한나라당 정책국 서전문위원은 “이는 두말할 필요도 없다. 기자협회의 제안 등을 충분히 고려해 취재 선진화 방안은 사문화시킬 것이다. 또 국정홍보처의 폐지도 확고하다”라고 말했다.
언론계는 이를 반기는 분위기이다. 그러나 정부가 미디어 정책에 관여하려는 의도에 대해서는 경계하고 있다. 실제 한나라당측에서는 미디어 정책을 결정할 기구를 신설하는 방안을 제기한 바 있다. 정보통신부, 문화관광부 등 여러 부서에 산재되어 있는 미디어 정책을 통합할 기구를 염두에 두고 있는 것이다. 또는 기존 부서를 통·폐합해 한 부서로 미디어 정책을 일원화할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그러나 정부가 미디어 정책을 관장하는 것은 언론의 중립성과 독립성을 침해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 언론계의 공통적인 시각이다. 신문발전위원회 김부위원장은 “미디어 정책에는 진흥·일반·규제 정책이 있는데, 진흥 부문은 정부가 관여하더라도 규제와 일반 부문에 정부가 관여하는 것은 반대이다. 이는 정부의 언론 간섭에 해당된다. 언론은 사적인 영역에 있어도 안 되지만 정부의 울타리 안에 있어서도 안 된다”라고 주장했다. 한국방송협회 윤연구위원은 “미국 FCC(연방통신위원회)처럼 일원화된 기구는 필요하다.
다만 합의제가 아닌 독임제는 바람직하지 않다”라고 말했다. 국민중심당 류근찬 의원은 “문광부, 정통부, 산자부 등에 산재해 있는 미디어 업무를 모아 일원화된 조직이 관리한다는 것인데, 정책과 규제는 정부가 관여할 부분이 아니다. 다만 진흥은 독임제 기구를 두어 적극적인 지원을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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