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품 빼낼까, 물거품 될까
  • 심정택 (자동차산업 전문가) ()
  • 승인 2008.01.02 1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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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행 수입차 사업에 뛰어든 SK네트웍스, 가격 담합 조사 받는 수입차 업계와 대립 격화

 
품을 뺀 수입차’를 내세우며 병행 수입차 시장에 뛰어든 SK네트웍스가 한국수입차협회(KAIDA)와 ‘병행 수입차’를 놓고 날카롭게 대립하고 있다. 최근에는 공정거래위원회가 수입차 업계의 가격 담합에 대한 대대적인 조사에 착수하면서 양 진영의 대립이 더욱 격해지는 양상으로 번지고 있다.
지난 12월12일 공정위 공무원들이 KAIDA 및 벤츠코리아·BMW코리아·한국도요타·아우디코리아 등 4개 프리미엄 차 한국 지사를 전격적으로 방문해, 관련 자료들을 압수했다. 문제는 이들 단체와 압수 수색을 받은 4개 사가 SK네트웍스와 시장에서 갈등 및 경쟁 관계에 놓여 있다는 점이다. 공정위 조사 수일 전 KAIDA가 주최한 행사에서 관련 업체 최고 경영자들이 한결같이 SK네트웍스의 병행 수입차 사업 추진을 비판했었다. 때문에 일부 수입차 업계에서는 SK가 공정위를 움직인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 하지만 공정거래위에 정통한 재계의 한 인사는 “경쟁사가 구체적인 자료를 공정위에 건네지 않는 한 공정위는 움직이지 않는 경향이 있다. SK가 공정위와 밀착되었다는 것은 난센스이다”라고 설명했다.

자본력과 영업 네트워크 갖춘  SK, 업계 ‘공룡’으로 뜰 수도

병행 수입차 시장에 뛰어든 SK네트웍스의 경우 자동차 매매업을 벌이는 것이 이번에 처음은 아니다. 이미 15년여 전부터 국내 최대의 주유소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경정비, 중고차 판매 등 자동차 애프터 마켓 사업에서 경쟁력을 키워왔다. 몇몇 수입차 브랜드의 공식적인 딜러권도 보유하고 있는 SK네트웍스는 병행 수입에 참여함으로써 수입 신차 판매 시장을 다양한 유통 채널로 장악하게 되어 관련 사업인 정비, 자동차 튜닝, 중고차 판매업 등에서 수익을 거둘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는 한국 시장에 소규모 자본으로 직접 진출한 해외 자동차 브랜드들에게 경계의식을 심어줄 만하다. 국내 시장에서는 SK가 국산차에 버금가는 막강한 자본력 및 영업 네트워크를 갖고 있기에 국내 수입차 업계의 공룡으로 변신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사실은 최근 들어 커지고 있는 국내 수입차 시장에 맞추어 직판 체제로 변신한 수입차 업체 입장에서는 불리한 변수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해외 자동차 메이커들은 SK네트웍스의 병행 수입에 대해 각자 이해에 따라 다르게 반응하고 있다. 한국수입차협회(KAIDA) 회장사인 한불모터스(푸조)는 SK의 병행 수입 참여 선언 이후 SK와 딜러 계약을 해지했다. 같은 협회 회원사인 닛산코리아의 경우는 인피니티 딜러와 닛산 딜러를 통합한다는 닛산의 글로벌 전략에 따라 닛산 딜러 계약을 추가로 체결했다.  KAIDA 회원사별 이해 관계에 따라 각자 달리 대응하고 있는 것이다.

 

SK의 병행 수입차 사업과 관련해 벤츠코리아 관계자는 “벤츠 코리아는 독일 본사에 공문을 보내 미국 등에서 한국 시장으로 비공식적인 차 공급을 금지해줄 것을 요청했다. AS를 받기 위해 정비 공장에 입고된 샤시(차대) 번호를 확인하면 어느 나라에서 유입된 차인지 알 수 있고, 확인이 된 경우 차를 판매한 현지 딜러에게 판매 마진을 요구할 수 있다”라고 언급했다. 하지만 그 역시 유통 통제의 어려움을 실토했다. 그는 “실제로는 한국, 독일, 해당 국가로 연결되는 정교한 관리 시스템이 작동되어야 하기 때문에 통제가 힘들다”라고 털어놓았다.
하지만 그는 “SK네트웍스의 병행 수입 사업은 국내에 딜러별로 갖추게 되어 있는 해당 브랜드의 대규모 직영 AS 센터 구축을 위한 투자를 회피하고 판매 이익만 챙기겠다는 것인데, SK의 비공식 직영 정비 공장은 독일 본사로부터 수시로 개선된 정비 서비스 코드 CD를 공급받지 못한다. 공식 직영 AS 공장의 숙련된 전문 인력들도 이러한 CD 자료를 통해 계속 교육을 받아 차량 AS 환경에 적응하기 바쁜데 SK는 차를 팔기만 하고 후에 어떻게 감당하겠다는 것인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SK는 계열사는 경정비 체인인 ‘스피드 메이트’를 계열사로 두고 있어 정비 지원이 가능하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이에 대해 벤츠코리아쪽에서는 “스피드 메이트는 직영 네트워크가 아니고 대부분 프랜차이즈 사업자들인데 한 대에 수천만원씩 하는 수입차 정비 진단기 등을 갖출 수 있겠느냐”라고 반문했다.

시장 활성화 기대에 수입차 업계 “서비스 등 취약하다” 주장

수입차 업계에서는 SK네트웍스의 인력 관리에 대해서도 비판하고 있다. 볼보·재규어·랜드로버를 통합한 PAG코리아의 국내 딜러인 SK네트웍스는 PAG 부문 직원들을 정규직으로 채용한 반면, 병행 수입차 부문의 인력들은 비정규직으로 채용했다. 병행 수입차 부문 직원들의 조직에 대한 충성도가 떨어질 것이 뻔한 데 이들로부터 제대로 된 서비스를 받을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하지만 SK네트웍스 관계자는 “지난해 11월 판매를 시작한 뒤 한 달 동안 1백30여 대를 판매해 궤도에 안착했다”라고 주장했다. SK네트웍스는 2008년도에는 2천5백 대를 팔겠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
수입차 업계의 한 관계자는 국내에 직접 진출한 수입차 업체도 견제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그는 최근 수입차 업체인 ㅂ사가 경기도 한 지역의 두 번째 딜러로 다른 ㅂ사를 선정하고 딜러권을 주었지만 그 지역에 전시장 설치와 더불어 지역 내 직영 AS 공장 설치를 요구 조건으로 내걸었던 사례를 예로 들었다. 사실상 이른 시간 내에 들어줄 수 없는 요구 조건을 내건 뒤 지정 조건 미이행으로 딜러권을 취소시켰다는 것이다. 그는 “국내 딜러들에 대한 임포터들의 횡포가 극에 달한다. 이런 점에서는 병행 수입차 사업이 좀더 활성화될 필요가 있다”라며 대형 병행 수입차 업체의 등장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중국 시장 겨냥” 해석에 “유통 테크닉만으로는 무리”

 SK네트웍스의 병행 수입차 사업이 국내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는 해석도 있다. SK는 독일이나 미국의 현지 딜러들과 계약해, 차를 직접 공급받고 있으나 세계 최대 프리미엄 수입차 시장 중 하나인 일본과는 직접 계약 관계가 없다. 일본 내 벤츠 최대 딜러인 ‘야나세’와는 공식 공급 계약을 맺지 못하고 국내 중간 딜러를 통해 차를 공급받고 있다. 야나세는 사업 부문 중 일부로 벤츠의 병행 수입 사업을 수년 전부터 하고 있다. 그중 벤츠 S500 AMG는 야나세(YANASE) 로고 스티커를 차 뒷유리에 부착한 채 국내에서 운행하고 있다.
한 병행 수입차 업체의 임원은 “SK의 병행 수입차 사업의 타깃 시장은 국내보다는 중국이다”라고 해석했다. 최근 SK네트웍스는 중국 프리미엄 수입차 시장의 성장을 주목하고, 일본 시장에 할당된 벤츠 차 등을 보세 창고비 및 하역비가 일본 내 항구보다 저렴한 부산항을 전진 기지로 삼아 중개 무역 사업에 뛰어들었다는 것이다. 중국 고급차 시장을 겨냥한 중개 무역 사업에는 일본의 물류 전문 기업도 파트너로 참여했으며, 국내 중간 딜러는 부산항에서의 증가하는 차량 물류 업무를 고려해 본사를 서울에서 부산으로 이전할 채비를 하고 있다. SK그룹의 중국 내 수입차 시장 참여 여부는 ‘SK에너지’의 경정비 사업 체인인 ‘스피드 메이트’ 및 중고차 유통 업체인 ‘SK엔카’의 중국 시장 진출과도 관련이 있다. 이미 이들 업체는 중국 시장에 진출한 상태이다.
SK네트웍스의 중국내 자동차 유통 사업 참여는 SK네트웍스가 종합상사라는 점을 감안하면 충분히 설득력을 가지고 있다. 자동차 업계 관계자들은 “1990년대 이후 일본의 종합상사들이 신수익 발굴을 위해 서유럽 및 동유럽에서 수입차 및 자동차 유통 사업에 적극적으로 투자했다”라고 설명하고 있다. 자동차 메이커들의 현지 생산 라인이나 AS 네트워크 구축과 종합상사의 자동차 유통 사업은 완전히 다른 사업이라는 얘기이다.
하지만 부정적인 의견도 많다. 또 다른 자동차 업체 관계자는 “중국 시장은 이미 완전 경쟁 상태로 접어들었고, 공급이 수요를 초과해 브랜드별 가격 경쟁이 심하다. 자동차 제조 기반 없이 무역 및 유통의 테크닉만으로는 안정되고 지속적인 사업 촉진이 가능할지 두고 볼 일이다”라면서 부정적인 의견들을 표출했다. 수입 자동차 업계의 한 관계자는 “중국의 프리미엄 차 시장은 화교 자본이 장악하고 있다. 한국의 벤츠 공식 딜러인 한성자동차 역시 화교 자본이다”라면서 SK의 중국 내 자동차 유통 사업 진출 전망이 결코 만만치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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