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 위한 투자인가 ‘눈 가리고 아웅’인가
  • 노진섭 기자 no@sisapress.com ()
  • 승인 2008.01.02 1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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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들의 사회 환원이 늘어나고 있다. 이를 두고 기업 및 총수의 위기 돌파를 위한 꼼수라는 등 비판론도 적지 않은데….

 
최근 대한상공회의소가 일반인·경제 교수·기업 CEO 등 5백 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시선을 끄는 결과가 나왔다. 영면한 지 36년이 지난 고(故) 유일한 유한양행 창업주가 사회 환원과 윤리 경영에 가장 힘쓴 기업인 1위로 꼽힌 것이다. 윤리 경영은 물론 사회 환원도 기업의 의무라는 분위기가 사회 전반에 확산되고 있음을 나타내는 방증이다. 그러나 우리 기업들의 사회 환원은 기형적이라는 평가도 있다. 순수한 목적이라기보다는 비리 무마용이나 경제·정치·사회적 혜택을 노린 꼼수용으로 포장되어 있다는 시각이 그것이다.
지난 한 해 동안 여러 재계 총수들이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행했다. ‘기업=이윤 추구’에서 ‘기업=사회 환원’이라는 새로운 이미지의 모델을 제시하고자 한 것이다. 사회 공헌에 가장 적극적이었던 기업 총수는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이다. 이회장의 주도 아래 삼성그룹은 2007년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2백억원을 기부했다. 이회장은 개인적으로도 매년 사재로 소년소녀 가장과 고아원 등을 지원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현대기아차그룹 정몽구 회장도 사회 환원에 적극적이다. 정회장의 뜻에 따라 현대기아차그룹은 최근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100억원을 전달했다. LG 구본무 회장과 SK 최태원 회장도 그룹 명의로 각각 100억원씩 내놓았다. 대기업에 이어 중견 기업들도 동참하고 있다. 세중그룹 천신일 회장은 대학과 연구소 8곳에 장학금 63억원을 전달하기도 했다.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들어오는 기부금 중 기업의 몫이 70%를 차지할 정도이다.
 

기업이 사회 환원에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는 이유는 무엇보다 이미지 제고를 위해서이다. 2006년 5월 KDI(한국개발연구원)가 조사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경제 부처 공무원과 중·고교 사회 담당 교사 10명 중 5명은 기업의 최대 목표를 ‘이윤 추구’가 아니라 ‘이윤의 사회 환원’이라고 답했다. 국민 다수가 기업 이윤의 사회 환원을 높게 평가하고 있는 만큼 그 자체가 대기업들의 이미지를 올리는 데는 매우 유용한 수단이라고 할 수 있다.

2007년 국내 사회 환원 금액 1조8천억원

국내 기업들이 사회 환원에 투자한 금액의 규모는 선진국에 비해 전혀 손색이 없다. 삼성경제연구소·전국경제인연합회·대한상공회의소의 자료를 종합해보면, 기업이 2007년 사회에 내놓은 돈은 약 1조8천억원이다. 1991년 19억원이던 한 기업당 기부금도 2005년에는 56억원으로 약 3배 증가했다. 단일 기업의 기부금은 이미 미국 기업과 맞먹는 수준이다. 2004년 삼성전자의 기부금(1천7백억원)은 월마트(1천8백억원)에 육박했고, 포스코(1천5백억원)는 존슨앤존슨(1천1백억원)과 포드자동차(1천억원)를 뛰어넘었다. 그러나 이에 대한 일반인들의 호감지수는 그리 높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대한상공회의소에 따르면 국민들은 기업의 사회 환원에 대해 100점 만점에 37점을 주었다. 이는 사회 환원 자체가 지역 사회나 소외된 사람들을 위해서라기보다는 기업이나 총수에 대한 비판적인 여론을 모면하거나 세제 혜택을 비롯한 실리 추구를 위한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다는 부정적 인식이 작용한  때문으로 보인다.
현대기아차그룹과 삼성그룹의 경우가 대표적이다. 거액의 비자금 조성과 계열사에 손해를 끼친 혐의를 받은 현대기아차그룹 정회장은 2006년 5월 기금 출연 계획을 발표했다. 8월에는 사회공헌위원회를 발족시키겠다는 약속까지 했다. 이는 2006년 3월 현대기아차 계열사 3곳(글로비스·엠코·현대오토넷)에 대한 국세청의 세무조사 이후에 나온 것이다. 2006년 4월 1조원을 사회에 환원하겠다고 한 약속도 같은 해 3월 검찰이 현대기아차그룹과 계열사인 글로비스에 대한 압수 수색 이후에 나왔다. 삼성그룹의 이건희 회장도 2006년 8천억원을 사회에 환원했다. 그러나 당시 에버랜드 사건 등에 대한 비판 여론을 무마하기 위한 것이라는 시각이 많았다.
이와 관련해 경제개혁연대가 전문여론조사기관인 리서치앤리서치(R&R)에 의뢰해 현대기아차그룹 정회장의 항소심 판결에 대한 일반 국민의 여론을 조사한 결과, 우리 국민의 상당수가 이번 판결이 ‘재벌 총수에 대해 특혜를 준 문제 있는 판결’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조사대상자의 71.7%는 ‘피고인이 일반인이었다면 정회장보다 더 엄중한 처벌이 나왔을 것’이라고 응답했다.
이런 부정적인 시각에도 불구하고 기업의 사회 환원이 세계적인 대세임에는 틀림없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CRS)이 기업 경영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높아지고 있는 데다, 이를 평가·판단할 수 있는 국제표준까지 제정될 것으로 보인다. 국제표준화기구(ISO)는 2009년부터 기업의 CRS를 지수화한 ISO 26000을 도입할 예정이다. 이는 기업 경영 평가에서 중요한 잣대가 될 전망이다.
이런 추세 속에 기업들의 사회 환원에도 가속도가 붙고 있다. 현대그룹은 지난해 10월 ‘해비치 사회공헌위원회’를 발족시켰다. 현판식에는 정회장도 직접 참석해 사회 환원에 대한 의지를 보였다. 삼성그룹도 1994년부터 삼성사회봉사단을 운영하고 있다. 그룹 대외협력 관련 임원 10명으로 구성되어 있는 사회협력위원회의 실무 조직이다. 삼성사회봉사단의 황정은 부장은 “계열사를 포함한 삼성그룹의 사회 환원 관련 업무를 총괄하는 조직으로 11명이 근무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LG그룹은 5개의 전문화된 공익 재단을 통해 사회 환원 활동을 펴고 있다. LG복지재단, LG연암문화재단, LG연암학원, LG상록재단, LG상남언론재단 등이다.

-기업들의 올바른 사회 환원 활동을 위한  전문가 제언-

전문가들은 기업의 사회 환원 활동에 개선할 부분이 많다고 지적한다. 숙명여대 경영학과 김주헌 교수는 “우리나라 기업의 사회 환원은 정상적인 모습이 아니다. 특히 전 재산을 환원한다는 식은 이해하기 어렵다. 당시 어려운 상황을 벗어나기 위해  즉흥적이나 과도하게 사회 환원에 참여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라고 말했다. <시사저널>은 전문가들이 지적하는 사회 환원의 문제점을 다각도로 조명했다.
기업의 이미지 제고를 위해 행한 사회 환원이 부메랑이 되어 기업의 부담으로 돌아올 수 있다는 견해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적정 수준을 넘으면 기업의 경쟁력에 해가 된다는 것이다. 대한상공회의소 손경식 회장은 2006년 9월 중국 방문 중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기업의 사회 공헌은 순이익의 1~2%가 적당한데 우리는 이 수준을 넘어섰으며 더 이상 하면 기업의 경쟁력에 부담이 된다”라고 경고하기도 했다.
또 기업이 감당할 수 있는 능력을 벗어나는 활동을 요구하는 사회적 분위기에도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사실 기업의 존립 근거와 역할은 이윤 창출이다. 많은 이익을 내야 기업이 성장할 수 있고 세금도 내고 고용도 늘릴 수 있다. 기업이 돈을 사회에 환원하는 것보다 납세와 고용 창출에 힘쓰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는 이유이다.

 

사회 환원을 기업의 전략으로 연결하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있다. 법무법인 한승의 송창현 변호사는 “우리 기업의 사회 환원 활동은 형식적이고 소모적인 경우가 많다. 전략적 접근이 필요하다. 미국 기업들의 예를 들면, 새로운 시장을 창출하려는 전략 차원에서 접근한다. 즉, 사회 환원을 통해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는 일거양득의 기회를 노린다”라고 말했다.
기업이 사회 환원을 악용할 소지도 있다. 송변호사는 “적대적 M&A(인수·합병)가 들어올 경우 기업 사주는 여러 가지 방법을 동원해 고의로 기업 가치를 떨어뜨린다. 이는 물론  M&A를 피하고 기업을 계속 소유하려는 것이다. 기업 가치를 떨어뜨리기 위한 방법으로 소비자를 위한 보상 판매 프로그램 등과 같은 사회 환원 활동을 이용할 수 있다. 겉으로는 소비자를 위한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소유 구조를 더욱 공고히 하려는 의도가 숨어 있다”라고 말했다.
기업 차원에서보다는 총수 등 기업인을 중심으로 사회 환원이 확대되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현대기아차그룹 정회장과 LG 구회장 등 기업 총수들은 지난 한 해 동안 개인적인 사회 환원 활동을 하지 않았다. 현대그룹 황관식 홍보과장은 “지난 1년 동안 법원 추징금 외에 따로 회장 개인 차원의 사회 환원은 없었다”라고 말했다. 이들 말고도 많은 총수들이 기업 차원의 사회 환원에 자신의 이름을 내세우는 경우가 잦다. 최근 30억원을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기부한 한진그룹은 “희망과 사랑을 담은 성금이 우리 사회를 훈훈하게 하는데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기를 바란다”라는 조회장의 발언을 전면에 내세워 홍보하기도 했다. 한 대학 교수는 “기업 총수의 사회 환원 참여는 매우 적은 편이다. 물론 총수가 기업의 출연 규모를 최종 결정하겠지만 개인적인 사회 환원은 거의 없는 편이다”라고 지적했다.

기업 총수의 재산 불리기로 전락

사회 환원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것은 지양해야 한다. 국세청의 세무조사나 검찰의 기업 비리 조사 등이 이루어지면 기업 총수들은 마치 공식처럼 거액의 사회 환원을 약속한다. 대신 정치적인 압박으로부터 벗어날 기회를 얻기도 한다. 최근 세상을 들끓게 했던 삼성 비자금 사건이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이를 폭로했던 김용철 전 삼성그룹 법무팀장은 “보통 기업이 잘못하면 기업측의 사회 환원 약속으로 무마되곤 한다. 사회가 그런 식을 요구하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기업에 사회 환원을 요구하면 안 된다. 원칙에 맞게 세금을 내고 제대로 투자해야 한다. 삼성그룹은 8천억원을 내놓으면서 세금 없는 상속을 무마했다”라고 여러 차례 밝혀왔다.
기업 비리 무마용 사회 환원은 당장의 정치적·사회적 시련에서 벗어나는 데 효과적일 수 있다. 그러나 장기적으로 볼 때 기업 이미지 제고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시각이다. 한 대학 교수는 “기업의 사회 환원은 미래 기업의 가치를 높일 수 있을 때 타당한 것이다. 그러나 준조세 개념의 사회 환원은 기업 가치를 높이는 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또 돈의 출처도 밝혀야 한다. 자발적 사회 환원이라면 개인 돈이든 기업 돈이든 문제가 되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어쩔 수 없이 내놓는 무마용 돈이라면 기업 총수의 개인 호주머니에서 나와야 옳다”라고 말했다.
사회 환원이 기업의 반사회적 활동을 감추는 도구로 사용되어서는 안 된다는 지적도 설득력을 얻고 있다. 자발적으로 우러나온 것이 아니라 기업의 비도덕적 실리 추구 행위를 덮는 방편으로 악용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이다. 문화평론가 김원씨(37·여)는 “기업의 사회 환원은 제품이나 서비스를 구입해준 소비자에 대한 책무 성격이 있기 때문에 필요한 기업 활동이다. 그러나 일부 기업의 경우는 그런 의미를 망각해 안타깝다. 신정아 사건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사회 환원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미술관을 통해 탈세나 돈세탁을 하고 비자금을 마련하지 않았는가. 한 손으로는 기업의 이미지를 높이기 위해 사회 환원을 내세우고, 다른 한 손으로는 반사회적인 활동을 한 것이다”라고 말했다.
기업들은 사회 환원을 위해 다양한 성격의 재단을 설립하기도 한다. 그러나 재단의 실질적인 기능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김원씨는 “기업의 재단은 사회 환원을 적극적으로 하겠다는 의지의 상징물로 해석할 수 있다. 그러나 실제로는 기업 총수의 재산 불리기 수단으로 사용되는 경우가 있다. 이런 재단은 어차피 기업 소유이므로 총수의 입김에 의해 움직이는 조직일 뿐이다. 제대로 된 재단이라면 기업과 분리된 독립적인 조직이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반면 법무법인 한승의 송변호사는 “외국의 경우를 보더라도 기업이 여러 재단을 설립해 사회 환원에 공을 들이고 있다. 우리나라도 대기업을 중심으로 재단 설립이 늘어날 전망이다. 다만 재단의 소유 주체가 누구이든 간에 소유자의 입김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운영되는 것이 바람직하다”라고 조언했다.

<도움 말씀을 주신 분>
김원 문화평론가·법무법인 한승 송창현 변호사·삼성경제연구소 조희재 수석연구원·숙명여대 경영학과 김주헌 교수·그 외 기업 관계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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