푼돈 주고 ‘아웅' 애들도 웃는다?
  • 정락인 기자 freedom@sisapress.com ()
  • 승인 2008.01.07 1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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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산장려책, 현실성 없어 ‘둥둥’…지자체마다 지원금도 각각

 
세계 최저 수준의 출산율과 급속한 노령화. 오늘날 대한민국 사회가 안고 있는 현실이다. 이대로 가면 머지 않아 세계 최고의 ‘늙은 나라’가 될 판이다. 정부와 각 지방자치단체는 인구를 늘리기 위해 여러 가지 묘안을 짜내고 있다. 각종 출산장려책을 앞다투어 쏟아놓고 있다.
하지만 젊은 부부들은 ‘출산장려책’에 콧방귀를 뀐다. 현실성이 없는 ‘생색내기’에 불과하다고 본다. 보통 여성의 취업 증가는 출산율과 반비례한다. 젊은 부부들은 맞벌이를 선호하고, 직장 여성 상당수는 ‘일’과 ‘육아’ 중에서 일을 선택한다. 일을 위해서 아이 낳는 것을 포기하는 기혼 여성이 많다는 얘기이다. 그런데도 정부나 지자체의 출산장려책은 여전히 제자리를 맴돌고 있다.
서울시 성동구 성수동에 사는 회사원 정민환씨(38)와 부인 함성희씨(32)는 맞벌이 부부이다. 30대 후반에 결혼해서 이제 갓 돌이 지난 아들을 하나 두고 있다. 정씨는 둘째를 낳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기왕이면 “예쁜 딸을 낳았으면” 하고 바란다. 하지만 부인 함씨의 생각은 다르다. 출산에서 육아까지 비용도 만만치 않지만 아이의 육아를 생각하면 엄두가 나지 않기 때문이다. 둘째아이를 낳으려면 직장을 포기해야 하는데 그러기에는 살림이 빠듯하다.
부인 함씨는 정부나 지자체가 주는 ‘출산장려금’을 한마디로 생색내기라며 평가절하했다. 출산 장려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100만원을 준다고 둘째아이를 낳을 사람이 몇 명이나 되겠느냐. 5만~10만원 때문에 아이를 더 낳겠다고 하는 사람은 더더욱 없다. 5만원이면 쓸 만한 일회용 기저귀 한 세트 값이다. 유모차 1대 값도 되지 않는다. 차라리 아이를 낳은 후의 지원책을 내놓는 것이 더 현실적이다”라고 말했다.
서울의 경우 자치구 25곳 중 9곳이 출산장려금을 주고 있다. 둘째·셋째 아이를 낳을 경우 평균 20만~50만원 정도의 지원금을 준다. 하지만 실제 출산으로 이어지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서울 송파구(무료 교육보험 지원), 경기 고양시(5만원), 부산시(20만원), 대전시(10만원), 울산시(50만원) 등이 셋째아이부터 지원하고 있다. 출산장려책이 셋째아이에게 초점이 맞추어진 것은 현실과는 괴리가 있어 보인다. 한 명도 낳을까 말까 고민하는 젊은 부부들에게 셋째아이부터 지원한다는 것은 말 그대로 ‘생색내기’라는 것이다.
광주시의 경우 쌍둥이(50만원)와 세쌍둥이(100만원)에 한해 지원금을 준다. 우리나라의 경우 쌍둥이가 태어날 확률은 2백50명 중 1쌍, 세쌍둥이가 태어날 확률은 5천명 중 1쌍에 지나지 않는다. 광주시의 시책은 현실과 동떨어진 면이 없지 않다.
반면 경남 거창군은 셋째아이를 출산하면 2천만원을 지원한다. 매달 20만원씩 6년간 모두 1천4백40만원의 영유아 양육비가 지급된다. 또 생후 5년간 건강보험료 2백만원, 고등학교에 입학하면 3년간 교육비 3백만원도 준다. 여기다가 출산장려금 20만원, 출산기념품 10만원, 임신 5개월부터 지원되는 철분영양제 10만원 등을 합친 금액이다.
전남 보성군은 첫째아이를 낳으면 2백40만원, 둘째는 3백60만원, 셋째는 6백만원의 지원금을 준다. 출산지원책으로는 가장 현실적이다. 서울 중구의 경우 열 번째 아이를 출산하면 3천만원을 주지만 현실성과는 거리가 멀다.
출산지원금은 대도시보다는 농어촌 지역에서 상대적으로 금액이 높다. 물론 출산지원금이 많은 지자체에는 남다른 속사정이 있다. 급격한 인구 감소와 고령화로 인해 생산 기능 축소, 경제 성장 둔화 등으로 지역 살림이 위기에 직면해 있기 때문이다. 지역 인구의 감소로 국회의원 선거구 조정, 중앙 정부의 교부금 감소, 자치단체의 기구 축소 및 정원 감소 등과 같은 불이익을 감수해야 한다. 일부 지자체는 서류상으로만 거주하는 ‘위장 전입’을 유도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이런 사정 때문에 출산장려금이 지역마다 기형적인 모습을 하고 있다.

 
출산 지원금보다 보육 시설 확대를

그나마 기저귀 값 정도라도 출산장려금이 있는 지역은 나은 편이다. 출산장려책이 전혀 없는 지자체의 주민들에게는 이웃집 이야기에 불과하다. 그렇다면 출산장려금의 약발은 어느 정도일까. 전북 부안군은 2005년에 1천7백10만원이 지급되었으나, 다음해인 2006년에는 3천6백90만원으로 늘어났다. 지난해 10월 말까지 7천80만원을 지원함으로써 지원금은 계속 증가하는 추세이다. 하지만 신생아 수는 2005년 3백53명에서 2006년 3백34명으로 줄었다.
강원도의 경우 지난해 출산장려시책에 약 7백억원의 예산을 투입했다. 출산지원비도 국비와 도비, 시·군비를 합쳐 2004년 4억2천5백7만원이었던 것이 2005년에는 9억8천59만원, 2006년에는 36억원으로 대폭 늘어났다. 이처럼 막대한 예산을 투입했지만 신생아는 지속적으로 감소하는 추세이다. 다른 지역도 별반 다르지 않다.
서울 강북구는 올해부터 출산 양육 지원금을 확대했다. 첫째아이에게는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20만원을 지원하고, 둘째아이에게는 10만원 많은 30만원, 셋째아이부터는 50만원씩 지원한다.
강북구청 가정복지과 관계자는 “지난해에는 전년도에 비해 신생아가 소폭 늘어났다. 출산지원금이 출산으로 이어지기에는 부족한 면이 있다. 점차 보육시설 확대 등을 통해 기반을 조성해나가겠다”라고 밝혔다.
각 지자체들은 저조한 출산율을 높이기 위해 지난해부터 임산부 3종(기형아·초음파·중진) 무료검사, 불임부부 시술비 지원, 산모·신생아 도우미 지원 등 장려책을 다양화했다. 올해도 다자녀 출산에 대한 혜택이 늘어난다. 육아 전문가들은 “첫째든 둘째든 자녀를 부담 없이 낳아 기를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이 시급하다”라고 입을 모은다. 아이를 키우는 과정에서 여러 지원들이 필요한데 아이를 낳을 당시 1회성으로 지원해주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다.
일자리 창출과 더불어 교육, 양육, 주거 등 생활 환경의 개선도 필요하다. 인구 유출의 가장 큰 이유가 자녀 교육과 주거 환경 문제이다. 이것이 해결되지 않으면 출산장려책에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이외에도 모자 보건 지원, 보육 서비스 강화, 불임 부부 지원 등 사회·경제적 비용을 경감하는 정책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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