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새의 땅 파고드는 개발의 쇳소리
  • 부산·김회권 기자 judge003@sisapress.c ()
  • 승인 2008.01.14 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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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하 건설 예정지 현지 르포 / 부산·경남, 지자체들 중심으로 발빠른 행보…TF팀 등 꾸리며 운하에 코드 맞추기 ‘허겁지겁’

 
"강서 지역 개발은 부산의 숙원 사업이다. 이명박 후보의 당선은 부산시에게 강서 개발을 앞당길 수 있는 호기로 작용할 수 있다” 부산일보의 한 기자는 대운하와 연계된 부산시의 개발 계획을 묻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기자가 찾은 낙동강 인근의 명지지구는 부산에서 버려진 땅이었다. 개발과는 거리가 먼 평야 지대로 이제 막 드문드문 아파트 단지가 조성되고 있었다. 개발이 전혀 이루어지지 않은 명지지구를 부산시는 오히려 기회의 땅으로 여기고 있다.
부산시는 과거에도 명지지구를 몇 차례 개발하려고 시도했지만 실패했다. 그동안 강서 지역을 쉽게 건드릴 수 없었던 데에는 환경적인 이유가 컸다. 특히 강서 지역은 을숙도가 상징하듯 대표적인 철새 도래 지역이며 환경의 보고이다. 부산환경운동연합의 관계자는 “낙동강 하구는 동아시아의 중요한 철새 통로이다. 조류 종의 다양성 등에서 국내에서 수위를 자랑하는 곳이다”라고 설명했다. 강서지역의 1억8천만여 ㎡ 중 그린벨트가 56%를 차지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명박 당선인의 경부 운하 사업과 맞물려 명지지구가 운하의 기착지로 주목받으면서 부산시는 이곳에 ‘운하시티’를 만들려고 준비 중이다. 허허벌판인 이 땅이 곧 금싸라기로 변할 조짐을 보이자 대로변에는 부동산 중개업소가 하나 둘 늘어나고 있었다.
부산시의 계획에 따르면 명지지구의 3백63만㎡는 운하시티의 개발지로 예정되어 있다. 강서구 미음 지방 산업단지의 약 7백92만㎡는 복합 물류단지로 조성된다. 강서구 봉림지구와 죽동 인근 2천1백45만㎡는 첨단 산업단지로 조성할 생각이다. 여의도 면적의 4배에 달하는 규모이다. 이를 위해 강서구 일대 3천3백만㎡의 그린벨트 해제를 인수위원회에서 논의할 예정이다.
원래 부산시는 강서지구를 첨단 산업 도시로 개발하려고 했다. 인근의 녹산국가 산업단지, 부산과학 산업단지 등과 연계할 수 있는 첨단기술 산업단지와 대학, 연구 기관, 문화시설 등을 갖춘 종합 도시를 건설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대운하 건설로 강서지구가 혜택을 받을 것으로 예상되자 ‘물류’라는 개념을 포함시켰다. 첨단 산업 도시가 순식간에 첨단 물류 산업 도시로 이름을 바꿔 탄생했다. 이를 두고 한국 해양대의 한 교수는 “물류에 대한 구체적인 수요 예측 없이 권력에 기대 개발을 앞당기려는 행동이다”라고 말했다.
부산시는 이명박 당선인과 코드를 맞추기 위해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지난 1월8일 운하와 관련된 계획을 전담하는 ‘전략비전개발본부’를 꾸렸다. 22명으로 구성된 이 조직은 물류도시팀 외에 과학기술 도시팀, 북항 개발팀, 남해안 개발기획팀 등 네 개 팀으로 꾸려져 있다. 하지만 구체적인 업무 계획은 아직 세워지지 않은 상태이다. 전략비전개발본부의 관계자는 “이제 막 꾸려진 탓에 뭐라 말하기 힘들다. 물류 도시 건설이 주요 업무가 될 것이다”라고 밝혔다.
지난 1월8일 허남식 부산시장은 직접 헬기를 타고 명지지구를 살펴보는 등 강한 의욕을 보였다. 하지만 허시장의 행보를 보는 시선이 곱지만은 않다. 시민단체들은 강서지역을 개발해야 한다는 점은 인정하지만 그린벨트와 문화재 보호구역 문제를 먼저 해결하지 않은 채 개발만을 주장하는 것은 일의  우선 순위가 잘못되었다고 말한다. ‘경부 운하 저지 국민행동’의 이성근 공동집행위원장은 “강서지역의 개발 이익을 확대·재생산하는 것이 문제이다. 여태까지 어떤 마스터플랜도 없었다. 만약 한반도 대운하라는 공약이 안 나왔다면 이렇게까지 추진할 수 있겠나”라며 부산시의 행정을 강하게 비판했다. 
 

“주민들은 혜택없이 외부 투기 자본만 배 불릴라”

지난해 부산시는 낙동강 상수원 인근에 조성될 김해 매리공단 문제를 놓고 수자원 보호를 이유로 지역 환경단체와 공동으로 대책위원회를 구성해 김해시와 법적인 다툼을 해왔다. 낙동강 수자원의 보호가 주된 이유였다. 하지만 이번 대운하 사업에서는 수자원 문제에 대한 어떤 검토도 없이 안면을 바꾸어버렸다. 게다가 낙동강 운하의 중심에 놓이게 될 철새들은 낙동강 하구와 수변 환경의 변화 때문에 더 이상 머무를 곳을 잃을지도 모르는 상황이지만 개발 논리의 뒷전으로 밀려나 있다.
경상남도의 상황도 부산과 크게 다르지 않다. 경상남도는 김태호 지사의 지시로 경부 운하 TF(태스크 포스)팀을 꾸릴 예정이다. 도의 한 관계자는 “15명 내외로 이명박 당선인의 경남 관련 공약을 검토하고 경부 대운하 사업과 연계한 계획을 수립할 자문단을 준비 중이다”라고 밝혔다.
운하가 지나갈 지역의 소도시들도 TF팀을 구성하느라 분주하다. 화물터미널 설치가 유력하게 점쳐지는 밀양시 하남읍 수산리도 그중 하나이다. 수산리에서 잡화점을 운영하는 구영운씨(55)는 “수산교가 생기기 전에는 배도 많이 다니고 번성했다는데 이제는 인구도 줄고 상권도 무너졌다”라며 경부 운하에 상당한 기대감을 드러냈다.
밀양시의 경우 이미 TF팀이 꾸려진 상태이다. 다만 아직 명칭과 업무는 결정되지 않았다. 밀양시의 한 관계자는 “일단 뭔가 계획을 만들어내야 하는데 무엇을 해야 할지 막막한 상황이다”라고 토로했다.
경남도의 개발 계획은 관광 개발 계획의 중심에 있다는 점에서 부산과 차이점을 보인다. 특히 경남도 내에 건설될 8개의 터미널(물금·원동·밀양·본포·남지·박진·유어·합천) 주변에 해양 마리나 시설과 연계한 내륙 수상레포츠 산업과 크루즈 산업을 활성화하고 나아가 요트 산업까지 이어갈 계획이다. 동시에 경남 내륙이 품고 있는 가야 문화를 뱃길로 이어 지역 경제를 살리겠다는 목표를 가지고 있다. 
문제는 내륙 개발을 추진하려는 경상남도의 시도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라는 데 있다. 지난 1990년부터 40여 차례나 추진되었지만 아직 큰 성과는 내지 못하고 있다. 주된 이유는 자본 때문이다. 국비 개발이 줄어들면서 민자 유치를 시도했지만 관광 자원으로서의 매력이 떨어지면서 실패를 거듭해왔다. 행정 관청이 부지 등 기반 시설을 조성했지만 들어올 민간 시설이 없어서 황량한 채로 남겨진 것이 지금까지 경상남도의 내륙 개발이었다. 하지만 경부 운하가 차기 정부 차원에서 강하게 추진될 것으로 전망되면서 ‘자본 문제가 해결될지도 모른다’라는 기대감에 지금까지 미루어졌던 도내 계획을 갖다 붙이고 있다.
마산·창원 환경운동연합의 임희자 국장은 “경상남도에서 내어놓은 개발 계획 사업들의 문제는 과거 개발 독재처럼 행정 주도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과 정작 지역 주민들은 개발의 혜택을 보지 못하고 외부에서 유입되는 특정 자본들에게 이익을 가져다준다는 점이다”라고 지적했다.
대표적인 경우가 경상남도 함양군에 조성된 다곡리조트이다. 지난 2005년 10월28일 함양군은 역점사업으로 추진하던 다곡리조트 개발 사업 민자유치 설명회를 열 계획이었으나 나서는 사업자가 없어 무산되었다. 지역 경제 개발과 세수 증대라는 명목으로 시행되었지만 엄청난 면적이 개발촉진지구로 지정되면서 주민들은 강제적으로 토지를 수용당했다. 그리고 떠난 주민들의 빈 공간에는 지리산 일대를 깎아 만든 골프장만 남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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