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갈이’냐 ‘물막이’냐, 공천 대전쟁
  • 소종섭 기자 kumkang@sisapress.com ()
  • 승인 2008.01.14 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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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기·방법 등 싸고 이당선인-박근혜 전 대표 기 싸움 팽팽… 민심이 향배 가를 듯

 
한나라당의 ‘공천 전쟁’이 본격화하고 있다. 앞으로 두 달여간 계속될 공천을 둘러싼 샅바 싸움은 한나라당의 향후 세력 지형을 좌우할 대회전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당내에 입지가 넓지 않은 이명박 당선인측은 이번 공천 과정을 통해 우호적인 인사들을 대거 진입시키려 하고 있다. 이른바 ‘이명박 신주류’를 형성하겠다는 복안을 갖고 있다.
반면 당내 최대 세력인 박근혜 전 대표측은 수성에 고심하고 있다. ‘차기’를 노리는 박 전 대표 입장에서 자신의 세력을 유지·강화할 수 있느냐는 차기 대권의 경쟁력과 직결되어 있다. “투명하지 않은 공천이 이루어질 경우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저지하겠다”라는 박 전 대표의 지난 11일 강경 발언은 이런 위기 의식에서 나왔다.
한나라당 전당대회가 올 7월로 예정되어 있는 것은 공천 싸움의 강도를 높이는 요소이다. 당 대표 자리를 누가 차지하느냐 하는 밑그림이 총선 공천 과정을 통해 그려지기 때문이다. 전당대회 결과는 차기 대권과도 긴밀한 연관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차기를 노리는 사람들을 중심으로 사활을 걸고 밀고 당기기가 펼쳐질 가능성이 크다. 야당에서 집권 여당으로 신분이 바뀌는 것도, 집권 초기에 총선이 이루어지는 것도 전과 다르다.
한나라당은 1월10일 총선기획단을 구성했다. 이방호 사무총장이 단장을 맡고 김학송 전략기획본부장, 정병국 홍보기획본부장, 정종복 제1사무부총장, 송광호 제2사무부총장, 박순자 여성위원장, 김정훈 원내부대표, 서병수 여의도연구소장 등 여덟 명이다. 이들은 총선 일정을 만들고 공천 심사에 필요한 여론조사문항, 지역구별 실태조사 등 기초 자료를 준비하는 일을 맡는다. 한마디로 공천 규칙 등 ‘뼈대’를 만드는 것이 주된 임무이다. 본격적인 공천 작업은 이달 말쯤 구성될 공천심사위원회가 진행한다.
일단 강재섭 대표는 공천과 관련해 당선인측과 박 전 대표측을 제어하면서 ‘당 역할론’을 펼치고 있다. “공천을 비롯한 모든 총선 관련 업무를 당 공식 기구에서 확실하게 할 수 있도록 맡기자”라는 것이다. 공천 갈등이 불거질수록 당에 이로울 것이 없다는 판단이자 결정적인 국면에서 당이 심판관 역할을 할 것임을 분명히 했다.
이명박 당선인측은 총선에서 의석을 과반수 이상, 나아가 개헌선까지 얻기를 기대하고 있다. 국가를 개조할 힘을 얻기 위해서는 안정적인 의석을 확보하는 것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과제이기 때문이다. 한나라당의 한 관계자는 이를 위해 세 가지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당선인의 역할, 공천, 총선 과정의 전략적인 이슈 관리이다. 누구를 공천하느냐 하는 것도 중요한 문제이기는 하지만 갈수록 선거가 광역화·광속화하는 만큼 그것만 가지고는 안 된다는 얘기이다. 개별 선거가 아니라 총선을 대선처럼 보고 중앙 차원에서 큰 이슈를 만들어가는 기획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고 보고 있다. 지난 2004년 17대 총선 때와 같은 ‘바람’이 전국에 휘몰아치도록 해야 한다는 전략이다.
이당선인측은 이런 바탕 위에서 시기적으로는 취임 이전에 공천을 할 생각이 전혀 없다. 한 측근은 “확고하다”라고 말했다. 총리와 장관 후보자들에 대한 인사청문회 등을 진행해야 하는데 공천에서 떨어진 국회의원이 협조할 리 만무하다는 것이 이유였다. 이명박 정부에서 일할 내각 인사들이나 주요 국정 과제가 무엇인지 등으로 정국 주도권을 끌고가야 하는데 공천 다툼을 하면 관심이 분산된다는 것도 거론했다. 실무적인 일을 진행하는 것보다는 총선에서 이길 수 있는 바탕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보고 있다.
또 박 전 대표측이 걱정하는 것처럼 이른바 ‘친박근혜 사람들’을 쳐내는 일은 없을 것이라는 게 당선인 주변에서 나오는 공통적인 얘기들이다. “명분과 국민적인 지지가 없으면 공천 개혁은 성공하기 힘들다” “민주적인 과정과 절차를 정확하게 거칠 것이다” “누구에게 줄을 섰느냐는 고려 대상이 아니다” “정치 보복을 하는 것처럼 비쳐지면 국민으로부터 역풍이 불 것이다”라는 것 등이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이당선인측에서는 절차를 순리적으로 밟아가면서 먼저 자기 팔을 잘라 정당성을 확보한 뒤 물갈이를 진행하는 수순으로 나아갈 것으로 보인다. 즉 경선 당시 ‘이명박 라인’에 섰던 인사 중 일부가 먼저 낙천될 가능성이 크다.
 

이당선인측, 자기 팔 먼저 자르고 물갈이 진행 수순

이와 관련해 주목되는 것이 당선인의 친형인 이상득 국회부의장의 거취 문제이다. 최근 이부의장은 “총선 출마는 당연한 것이다”라며 불출마설을 일축했다. 그는 “동생이 대통령에 당선되었으니 나더러 총선에 출마하지 말라는 얘기가 들리는데 5선을 하면서 선거 때마다 나오지 말라는 얘기를 수없이 들어왔다”라고 말했다. 이부의장의 총선 출마는 자신의 의지와 관계없이 한나라당의 물갈이 폭을 제한하는 쪽으로 작용할 것이다. 특히 ‘고인 물’이라고 평가되어온 대구·경북 지역 다선·고령 의원들의 경우 그의 출마를 핑계로 물갈이에 저항할 것이 불 보듯 뻔하다.
이 때문에 정치권에서는 이부의장의 출마가 확정적이라고 보기는 아직 이르다는 분석이 나온다. 공천 진행 상황에 따라 이부의장의 용퇴는 본인의 의사와 관계없이 분위기를 바꾸는 ‘카드’로 여전히 상당한 유효성이 있다는 것이다. 당선인의 한 측근은 “이부의장의 출마를 당 안팎에서 용납할지는 좀더 두고 볼 필요가 있다”라고 말해 이런 가능성을 뒷받침했다.
그러나 당선인측의 이런 구상은 박근혜 전 대표측의 강한 반발에 부닥치고 있다. 박 전 대표측은 공천 시기를 앞당기라고 요구하고 있다. 이당선인측이 써 먹을 대로 써먹은 뒤 취임 이후에 전광석화처럼 자신들을 낙천시키려 한다고 의심하고 있다. 1월11일 정계 은퇴를 선언한 김용갑 의원의 환송연에 모인 박근혜계 의원들은 이런 불안감을 토로하며 대응책을 모색했다.
박 전 대표는 이 자리에서 근래 보기 드문 강경 발언을 쏟아냈다. “만약 앞으로 공천하는데 있어 과거로 돌아간다든지 조금이라도 잘못 간다면 절대 좌시하지 않겠다” “당에서 자꾸 이상한 이야기가 들린다. 나와야 할 이야기는 나오지 않고, 안 나와야 할 이야기만 나온다” “누가 누구를 향해 물갈이를 한다는 이야기냐”…. 이날 분위기는 앞으로 박 전 대표가 지금 보다 훨씬 적극적으로 ‘친박’ 의원들을 챙기는 일에 나설 것임을 예상케 한다. 총선 공천을 고리로 한 당권 투쟁의 막이 이미 오른 것이다.
모임이 있기까지 박 전 대표의 비서실장을 지낸 유정복 의원이 일일이 전화를 하는 등 신경을 쓴 것은 향후 이들이 세력화 할 가능성까지 점치게 한다. 당정 분리 문제, 청와대의 정무 기능 부활까지 겹쳐 갈수록 당의 역할이 약화되는 듯한 모양을 띠는 것도 박 전 대표의 행보를 초조하게 하고 있다. 공천 국면에서 목소리를 낼 수밖에 없는 형국이다. 그러나 이당선인측이 정해진 절차를 밟아가면서 반발할 빌미를 주지 않겠다는 것이어서 박 전 대표로서는 묘수를 찾아야 할 것으로 보인다. ‘박근혜의 입’으로 불리는 김재원 의원은 “국민만 보고 갈 수밖에 없다”라고 말했다.
영남 중심에서 수도권 중심 정당으로, 또 실용적인 정당으로 한나라당을 변화시키려고 하는 이명박 당선인측은 유난히 당과 청와대가 유기적으로 협조 관계를 맺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다른 측면에서 보면 당의 지배 세력을 바꾸겠다는 의지의 표현으로 해석할 수 있다. 한나라당의 한 인사는 “세력으로 보면 한나라당은 박근혜, 이재오, 강재섭 세 그룹으로 나뉘어져 있다”라고 분석했다.
여기에 대선 전 입당한 정몽준 의원이 한 발을 얹고 있다. 공천과 그 이후 총선을 거치며 이 세력 판도는 일정하게 변화할 것이다. 공천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한나라당의 물밑 전쟁은 이런 ‘땅따먹기’ 싸움이다. 특히 당선인측 이재오 의원이 최근 활발한 활동을 보이는 것은 주목할 부분이다. 그는 7월 전당대회에서의 당권 도전 여부에 대해 분명하게 밝히지 않고 있다.
분명한 것은 김재원 의원의 말대로 누가 국민의 마음을 얻느냐일 것이다. 이당선인측이 그리는 그림이 국민의 마음을 움직이면 공천 과정에서의 잡음은 상대적으로 소리가 줄어들 것이다. 반대로 당선인측이 외부 환경 관리에 실패하고 국민으로부터 비판을 받기 시작하면 공천 과정에서 박 전 대표의 힘을 약화시키는 데는 한계가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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