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집’도 불리고 ‘돈’도 벌고 인수·합병 시장에 ‘불’ 났네
  • 노진섭 기자 no@sisapress.com ()
  • 승인 2008.01.14 1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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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국내 M&A 거래 규모, 전년 대비 78% 급증…“기업 성장 동력으로 최고” 평가

지난 1월9일 유진그룹이 공식적으로 하이마트의 새 주인이 되었다. 유진그룹은 코리아CE홀딩스로부터 가전제품 유통 브랜드인 하이마트의 주식 100%를 1조9천5백억원에 인수하기로 지난해 말 계약했고, 이날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승인을 받았다. 이로써 유진그룹의 계열사는 36개로 늘어났다. 이번 기업 결합은 지난해 국내 한진에너지가 2조3천9백억원에 에스오일을 인수한 것에 이어 두 번째로 큰 규모이다. 이같은 신기록은 올해 계속 경신될 것이라는 것이 재계의 관측이다.
무자년(戊子年) 재계 최대의 화두는 인수·합병(M&A)이다. 최근 몇년 전부터 국내 M&A 시장이 크게 성장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국내 기업들의 M&A 규모가 역대 최대를 기록했다. 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M&A 거래 규모는  약 67조원으로 전년도 38조원에 비해 78% 급증했다. 전체 거래 건수는 7백57건으로 전년도 7백49건과 비슷한 수준을 유지했다. 국내 기업 사이에 이루어진 M&A 거래 대금 규모도 41조원(5백28건)에 달했다.

 

유진그룹, 하이마트 인수하며 계열사 36개로

이 여세가 이어져 올해에도 M&A 시장 규모가 커질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하다. 특히 2008년에는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이 기업투자 환경 조성에 최대한 노력하겠다는 뜻을 천명한 만큼 M&A를 통한 성장 동력 확충 열기가 뜨겁게 달아오를 것으로 보인다.
 올해에는 매머드급 M&A 매물이 꽤 많이 쏟아졌다. 대한통운, 쌍용건설, 대우조선해양, 현대건설, 하이닉스, 현대오일뱅크, 대우일렉트로닉스 등 10여 개 매물이 새 주인을 기다리고 있다. 국내 기업 간 M&A 거래 규모는 지난해보다 증가할 전망이다. 

 

현재 M&A가 가장 빨리 진행되고 있는 매물은 대한통운. 대한통운 매입에 금호아시아나와 한진그룹, 현대중공업이 삼파전을 벌이고 있다. 2006년 대우건설을 인수하면서 재계 7위로 뛰어오른 금호가 대한통운까지 매입하면 재계 6위 자리를 넘볼 수 있다.
쌍용건설 매각도 급물살을 타고 있다. 자산관리공사가 지난해 12월27일 쌍용건설 매각을 위한 예비 입찰을 실시한 결과 오리온 등 6곳이 참여했다. 자산관리공사 우종철 홍보과장은 “이들 매물 기업들은 1~2월 중 우선협상대상자가 선정되어 늦어도 올 상반기 중에는 매각이 마무리될 전망이다”라고 말했다.
올해 M&A 시장에서는 같은 현대 간판을 달고 힘겨루기를 하는 장면도 연출되고 있다. 현대그룹과 현대중공업이 현대건설을 놓고 한판 승부를 벌일 것으로 보인다. 현대중공업은 ‘기업 사냥꾼’이라는 별명이 붙었을 정도로 M&A에 적극적인 자세를 보이고 있다. 대한통운 인수를 포기하더라도 현대건설은 반드시 인수하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대우조선해양 역시 조선 경기 호황으로 주가가 오르고 있다. 포스코와 두산, GS 등이 주시하고 있다. 대우인터내셔널의 M&A는 올해를 넘길 수도 있다. 미얀마 가스전 계약이 남아 있어 기업 자산 가치를 미리 산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대한통운 인수·합병에 3파전

기업들이 M&A에 경쟁적인 움직임을 보이는 것은 무엇보다 기업의 성장 동력을 확충하기 위해서이다. M&A를 성공적으로 수행한 기업은 그렇지 못한 기업들보다 매출 성장률이 상당히 앞선다. 현재의 자리에 안주하다가는 언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지 모른다. 또 자신의 역량을 벗어나는 M&A를 했다가 성장통을 견디지 못한 채 주저앉는 기업들도 있다. 그러나 M&A를 성공적으로 수행한 세계적인 기업들은 핵심 역량을 기반으로 시너지 효과를 창출한다. 새로운 분야를 개척해 블루오션 시장을 선점할 수 있는 기회도 확보할 수 있다. 이 때문에 기업들은 더욱 공격적인 M&A 전략을 펼친다. 고려대 이필상 교수는 “경제에 활력이 생기면 위기는 스스로 없어진다. 그것이 우리나라 기업이 국내외에서 M&A를 공격적으로 나서야 하는 이유이다”라고 말했다.
특히 기업들의 족쇄였던 출자총액제한제도(출총제)가 폐지될 가능성이 커지면서 M&A에 더욱 적극적인 움직임을 보일 전망이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는 지난 1월5일 공정거래위원회의 업무 보고를 받고 출총제를 폐지하고 지주회사 요건을 대폭 완화하기로 했다. 출총제는 자산 10조원 이상의 재벌 그룹에서 자산 2조원 이상인 계열사는 순자산의 40%를 초과해 다른 회사에 출자하지 못하도록 한 규제 조치이다. 출총제가 폐지되면 삼성·현대차·롯데·GS·금호아시아나·한진·현대중공업 등 7개 그룹의 25개 계열사가 족쇄에서 풀려난다.  우리투자증권 박진 선임연구위원은 “기업들이 M&A를 할 수 있는 여건을 갖추고 있다. 기업의 재무 체질이 강화되었고 사업 확장에 대한 니즈(needs)도 왕성해졌다. 외부적으로는 새 정부 출범과 함께 출총제 폐지 등으로 경제 활성화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다”라고 말했다.
M&A에 대한 인식도 많이 개선되었다. M&A 하면 ‘남의 회사를 빼앗는다’고 생각하는 기업인들이 많았으나 과거에 비해 우량 매물이 많이 나오자 그같은 부정적인 시각은 크게 줄었다. 우호적이든 적대적이든 M&A는 해당 기업 간 필요에 의한 거래라는 인식이 이제 자리를 잡았다.

 

삼성그룹, 특검 이후 해외 기업에 눈 돌려

재계 1위인 삼성그룹도 최근 M&A 시장에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과거 자체적으로 사업을 키워왔던 삼성 스타일이 M&A로 변하고 있다. 지난해 10월 삼성전자는 이스라엘 비메모리 반도체 기업인 ‘트랜스칩’을 인수했다. 삼성은 ‘삼성 특검’이라는 악재가 국내 M&A의 장애물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는 인식 아래  해외로 눈을 돌리고 있다. 윤종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필요하면 언제든지 M&A를 할 수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삼성의 올해 투자 규모는 지난해보다 2조원 이상 늘어난 25조원이 될 전망이다.
현대·기아차그룹은 올해 M&A보다 투자에 무게 중심을 둘 것으로 보인다. 정몽구 회장은 “현대제철소 건설에 5조2천억원, 자동차에 3조5천억원 등 총 11조원을 투자하겠다”라고 최근 밝혔다. 그러면서도 M&A 대상으로는 현대건설·현대증권·만도 등을 찍어둔 상태이다. 
지난해 M&A로 몸집을 불린 SK그룹은  2006년 55개이던 그룹 계열사를 64개로 9개 늘려놓았다. 이 중 직접 키운 계열사는 3개, 나머지 6개는 M&A를 통해 확보했다. SK그룹은 대형 또는 다량 M&A보다는 그때그때 상황에 필요한 M&A를 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지난해 말 SK그룹은 하나로텔레콤의 M&A를 성사시켜 무선통신에서 유선통신으로 사업 영역을 확장했다.
LG그룹 역시 지난해 실적 호조를 통해 마련한 자금으로 올해 M&A를 적극 진행할 것으로 예상된다. 남용 부회장은 지난해 10월 외신과의 인터뷰에서 “기존 사업을 확장하는 유기적 성장에 국한하지 않고 비유기적 성장 방안도 찾고 있다”라고 말했다.
금호아시아나는 그룹 경쟁력을 강화하는 데 2조9천억원을 투입하기로 했다. 금호아시아나는 올해 그룹 매출 25조원, 영업이익 1조9천억원 달성을 목표로 잡았다. 박삼구 금호아시아나 회장은 올해를 앞으로 5백년을 이어갈 기업으로 만드는 초석을 다지는 해로 만들겠다고 천명했다.
한화그룹은 70억 달러 규모의 사우디아라비아 석유화학 합작 사업과 해외 엔지니어링 업체 인수 등의 프로젝트에서 속도를 내고 있다.
유통 업계에서는 롯데가 중국 내수 시장 선점에 나섰다. 지난해 중국에서 할인점 마크로를 인수한 롯데는 올해도 할인점 체인을 추가로 인수해 단기간에 점포망을 확대 구축할 방침이다. 롯데그룹 정영철 과장은 “국내뿐 아니라 중국 등 해외에서의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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