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10년 문화 권력 되찾기 장관은 누가 될까?
  • 노진섭 기자 no@sisapress.com ()
  • 승인 2008.01.14 1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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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유인촌·예총 회장 이성림·박범훈 중대 총장 물망 인사 잡음·금품 수뢰·폴리페서로 흠결 지적도 문화예술계 “누가 되든 정치적 논리에 휘둘리지 말아야” 주문

이명박 정부 출범에 맞춰 문화예술계만큼 권력 이동을 실감하는 곳은 없을 것이다. 지난 10년간 문화계의 주변부에 있던 진보 성향의 인사나 단체들이 중심부로 진출하면서 핵심 요직들을 독차지해 대대적인 물갈이가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이제 그동안 주변부로 밀려나 있던 인사들이 중심부의 빈자리를 채워가며 새로운 문화 권력을 형성하게 될 것이다. 문화예술계가 정치 바람을 타고 갈라져 증오와 대결의 세월을 보냈다는 사실 자체가 안타깝지만 이는 곧 오늘날 우리 문화의 현실이 되고 말았다.

 

유인촌 “이당선인은 문화와 예술 아는 대통령”

문화 권력의 이동 현상은 문화부장관 자리에서 선명하게 나타난다. 새 정부의 문화부장관으로는 방송인 유인촌씨(57)가 유력하게 하마평에 오르내리고 있다. 유씨는 대통령직인수위원회의 사회·교육·문화분과 자문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예술계 관계자들은 “대선 기간 동안 이명박 후보와 동행까지 하며 지지를 보냈던 유씨가 문화부장관으로 내정될 것이라는 말이 많다”라고 말했다. 문화부 관계자도 “아직 내정이 확정된 것은 아니지만 유씨의 문화부장관설이 흘러나오고 있다. 유씨에 대한 국민들의 감정이 좋은 데다 이당선인과 오랜 기간 친분을 쌓아온 사이인 만큼 전혀 근거 없는 말은 아닌 것 같다”라고 말했다.
이당선인과 유씨의 인연은 2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이명박 현대건설 회장을 주인공으로 한 TV 드라마 <야망의 세월>(1987)에 유씨가 극중 모델인 이당선인을 연기하면서 인연을 맺었다. 그는 지난 선거운동 기간 내내 현장을 돌며 ‘이명박 대통령 만들기’에 앞장섰다. 
유씨의 문화부장관 기용설이 흘러나오는 또 다른 배경에는 그가 이당선인의 서울시장 시절 서울문화재단 이사장을 역임한 전력도 자리 잡고 있다. 이당선인도 문화예술계 정책을 현장에서 이끌었던 유씨의 경험을 높게 평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유씨는 최근 “이당선인은 문화와 예술을 아는 문화 대통령이다. 그에 대한 오랜 신뢰 때문에 선거운동에 참여했다”라고 말했다.
 한국문화예술단체총연합회(예총) 이성림 회장(64)도 장관 후보로 눈에 띄는 인물이다. 이회장 역시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사회·교육·문화분과 자문위원이다. 이회장은 2000년부터 연임해 8년째 예총 회장직을 수행해오고 있는 CEO형 단체장으로 꼽힌다. 이회장은 서라벌예대 무용과를 나와 이매방, 한영숙, 박귀희, 김천흥, 성금련 등에게 승무와 가야금병창, 가야금산조, 궁중무 등을 각각 전수한 유명 춤꾼이자 국악인으로 민자당 여성단체 부위원장과 한국문예교류협의회장, 한국국악협회 이사장 등을 역임했다. 이회장은 예총 회장으로 선출된 2000년 초 이후 이당선인과 여러 공개적인 자리에서 교감을 나눠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대선 운동 기간인 지난해 12월6일 이회장은 예총 관계자들과 함께 서울 여의도 한나라당 당사에서 기자회견을 자청해 이명박 후보에 대한 공개적인 지지를 선언할 정도로 적극적으로 움직였다. 
지난 1월3일 대통령 취임준비위원장으로 내정된 중앙대학교 박범훈 총장(60)도 물망에 올라 있다. 경기 양평 출신의 박총장은 한국국악예술학교와 중앙대 예술대 음악과를 나왔으며 서울 국악예고 이사장, 국립국악관현악단 초대 단장, 중앙대 국악대학장을 지냈다. 1995년 국립국악관현악단 초대 단장을 지낸 박총장은 이명박 대선 후보 문화예술정책위원회 위원장을 맡았다. 하지만 이들은 모두 나름의 아킬레스건을 갖고 있다. 유인촌씨는 서울문화재단 이사장을 맡는 과정에서 잡음이 있었다. 이당선인이 이사장직을 공모하겠다던 당시 발표와 달리 응모하지도 않은 유씨를 낙점해 임명한 것이다. 이에 대해 ‘날치기 선정’이라는 비판이 제기되어 두고두고 눈총을 받아야 했다.
예총 이회장은 지난 2005년 금품 수뢰설로 곤욕을 치렀다. 미국 한인 주간지 <선데이저널>에 따르면, 김준배 미주 예총 서부연합회장을 인준해주는 대가로 이회장이 2만 달러를 받았다는 것이다. 5명의 의원들로 구성된 가칭 ‘LA한인 예술인 정화위원회’가 이 사실을 폭로하면서 이회장의 이미지는 적지 않게 구겨졌다.

 

인수위 “국민의 지지와 공감대 받아낼 수 있어야”

박총장은 이명박 후보 선대위에 참가한 뒤 총학생회, 교수평의회, 동문의 선대위 퇴진 압력을 받아왔다. 김희수 중앙대 이사장도 박총장의 선대위 사퇴를 촉구하는 성명서를 냈다. 현직 총장이 대선 후보의 측근으로 선거운동에 뛰어들어 폴리페서(정치 활동을 하는 교수)의 대표 주자라는 닉네임도 얻었다.
인수위 관계자는 “아직 결정된 바 없지만 (문화예술계 정책을 펴나갈 인물로는) 국민의 공감대와 지지를 받아낼 수 있어야 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문화예술 단체들 사이에서는 그동안 정부와의 친소 관계에 따라 부침 현상이 뚜렷하게 나타날 것으로 예상된다. 역사와 규모 면에서 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민예총)을 압도하면서도 지난 10년 동안 큰 소리를 내지 못했던 예총이 새 정부에서는 새로운 세력으로 떠오를 전망이다. 이회장 등 예총 관계자들은 대선 기간 중 “문화예술의 탕평을 강력하게 시행할 지도자는 이명박 후보뿐이다”라며 강력한 지지를 보냈다. 예총 산하 한국문인협회도 대선 당시 이명박 후보를 공개적으로 지지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문인협회 김년균 회장은 “지난 10년 동안 대한민국의 정체성과 탄생에 대한 자긍심을 잃었다. 잃어버린 10년을 만회하기 위해 이명박 후보를 지지한다”라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예총은 과거 오랫동안 관변 단체처럼 처신했던 부정적인 이미지를 씻어내는 일을 선행해야 한다는 자성의 목소리가 안팎에서 흘러나오고 있다. 문화예술위원회 김병익 전 위원장은 “민예총에 비해 예총의 사업 기획력이 떨어진다는 평가는 거의 정설로 받아들여진다. 또 예총은 사업 예산을 지원받아 운영비로 전용하는 등 운영상의 문제도 상당히 노출해왔다. 이런 부정적인 인식을 떨쳐내야 문화예술 단체의 대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  문화예술위원회 한명희 위원은 “자금 지원 사업의 옥석을 가리는 장치가 필요하다. 문화예술인 중에도 사기꾼 같은 사람이 많다. 문화예술을 모르면서 돈만 바라보는 사람들이다. 이들을 가려내 진정한 문화예술인이 선의의 피해를 보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 예총이 제구실을 하려면 거듭나는 자세로 면모를 일신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문화예술계는 무엇보다 정치적 논리에 휘둘리지 않고 소신껏 일할 수 있는 지도자가 나와주기를 기대하고 있다. 문화부 관계자는 “문화예술을 위해 소신을 펼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하다. 더 이상 문화예술이 정권에 끌려가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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