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작과 함께 빛난 ‘노블레스 오블리주’
  • 김세원 편집위원 ()
  • 승인 2008.01.14 1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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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로 등 유명 화가 후원한 프랑스 마그 재단의 ‘미술 사랑’

"앙리 마티스, 마르크 샤갈, 후안 미로, 조르주 브라크, 알베르토 자코메티 같은 작가들이 모두 우리 집에 드나들면서 할아버지와 친분을 쌓았죠. 그중에서도 자코메티와 미로는 화상과 작가의 관계를 넘어서 끈끈한 우정으로 맺어진 사이였어요. 어렸을 때 미로와 자코메티 할아버지 무릎 위에 앉아 놀던 기억이 아직도 새롭습니다.”
유럽 최대의 사립 미술재단이자 미로, 마티스, 자코메티의 후원자였던 프랑스 마그 재단의 요요 마그 이사장(49)이 한국을 방문했다. 성남아트센터에서 열리고 있는 ‘유럽 현대미술의 위대한 유산’전의 개막식에 참석하기 위해서이다.
유럽 현대미술 100년의 발자취를 조망해보는 이번 전시에 마그 재단은 세계 4대 화상의 하나로 손꼽히는 다니엘 말랑규 화랑과 함께 소장하고 있는 작품들을 내놓았다. 파블로 피카소, 피에르 보나르, 장 드뷔페, 마르크 샤갈 등 현대미술 거장의 원화 작품 22점과 샤갈 탄생 1백20주년을 기념해 제작한 판화 80여 점, 마티스, 조르주 브라크 등의 판화 23점 등 총 1백25점이다. 원화 22점 중 조르주 루오의 <예수>(1956년)를 제외한 모든 작품이 국내 최초 공개작이다. 이 중 루오의 <예수>와 피에르 보나르의 <식사>(1916년), 페르낭 레제의 <활기찬 풍경>(1921년), 후안 미로의 <여자와 새>(1969년)가 국내 미술 교과서에 수록되어 있다.

 

유럽 최대 사립 미술재단으로 우뚝

마그 재단은 1964년 그의 할아버지인 에메 마그(1906~1981년)에 의해 설립되어 현재는 미로, 샤갈, 마티스, 브라크, 칸딘스키 등 20세기 현대미술 거장들의 작품 7천여 점을 보유하고 있다. 에메 마그의 손녀인 요요 마그 이사장은 마그 재단과 재단 부설 미술관 운영을 책임지면서 보유 중인 작품들을 판화와 포스터로 제작해 인쇄·출판하는 작업을 해왔다.  
마그 이사장의 재킷에 달려 있는 나무 모양의 커다란 브로치가 인상적이었다. 내력을 물어보니 앙리 마티스의 작품 <생명의 나무>에서 영감을 얻어 이탈리아 공예가가 만든 작품이라고 한다.
“마티스의 <생명의 나무>는 오랫동안 우리 집 거실에 걸려 있었다. 그런데 직원의 실수로 전시 대상 작품과 뒤바뀌어 미술관에 전시되었다. 하지만 홍수가 발생해 미술관 일부가 물에 잠기는 등 좋지 않을 일이 계속 생겨 다시 집으로 옮겨 왔다.”
2차 대전 이후 현대미술의 주도권이 미국으로 넘어간 상황에서 유럽의 사립 미술재단으로는 보기 드물게 많은 현대미술 작품을 보유할 수 있었던 배경은 무엇일까. 재단 설립자인 에메 마그는 예술성과 예술에 대한 열정만을 보고 당시 무명이었던 작가들에게 아틀리에를 제공하고 전시회를 열어주는 등 작가와 끈끈한 인간 관계를 쌓아 작가 중심으로 작품을 수집했다. 현재도 마그 재단은 전세계에서 선발한 작가들에게 작업 공간을 지원하고 있다.
“한국 작가 중에서는 오수환씨가 자코메티가 썼던 작업실에서 1년에 2~3개월 동안 묵으면서 작품을 제작하고 있다. 우리 미술관에서 전시도 여러 차례 했다.”
광산업으로 많은 돈을 번 에메 마그는 화가 피에르 보나르를 알게 되면서 미술계에 발을 들여놓았다. 1936년 남프랑스의 칸에 갤러리를 개관해 보나르의 개인전을 열어주었고 보나르의 소개로 알게 된 마티스와 친분을 쌓아 2차 대전 종전 직후인 1945년 10월 파리에 화랑을 개관하고 그의 전시회를 개최했다. 1946년에는 보나르, 피카소, 브라크, 레제, 루오 등 미래의 전설이 될 예술가들이 합동으로 참여한 대규모 전시회 ‘네 벽 위에서’와 ‘검정은 색채다’를 잇달아 열기도 했다. 초현실파 작가 마르셀 뒤샹과 앙드레 브레통과 교류하면서 1947년에는 제2회 초현실주의 국제 전시전을 개최했다.  
에메 마그는 예술 작품으로서의 판화의 중요성을 깨닫고 처음으로 판화 작품을 본격 제작했다. 에메 마그는 1961년 판화 전문 공방을 열어 브라크, 미로, 샤갈, 자코메티 등이 판화작품을 제작하도록 독려했으며 그의 아들 아드리앙은 1964년 파리에 아르테라는 판화 전문 출판사를 설립해 석판화·동판화 등 1936년 이후 다양한 작가들에 의해 제작된 1만2천여 종의 판화 작품을 모두 60만점 제작하기도 했다.

 

마그 미술관은 연간 20만명 찾는 관광 명소

막내 아들 베르나르의 사망으로 상심한 에메 마그는 슬픔을 극복하기 위해 자신이 수집한 작품들을 한데 모을 장소를 물색하다가 자생적 예술인 마을인 남프랑스의 생 폴 드 방스에 마그 재단을 설립했다. 파주 헤이리 예술인 마을의 본보기가 된 생 폴 드 방스는 프랑스 남부 휴양지 니스에서 자동차를 타고 남서쪽으로 30여 분 달리면 언덕 위에 16세기 성벽으로 둘러싸인 모습을 드러내는 도시이다. 투명한 햇빛과 지중해의 푸른 바다, 싼 물가 덕분에 1920년대부터 예술가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1964년 7월28일 개관식 때는 당시 문화부장관이자 소설가인 앙드레 말로를 비롯해 샤갈, 마티스, 미로 등 근처에 살던 유명 예술가와 작가들이 찾아와 축하해주었다.
미술관으로 일반에 공개하고 있는 재단 건물은 르 코르뷔지에의 뒤를 잇는 스페인의 건축가 호세 루이스 세르트가 설계했고 미로와 샤갈이 건축 작업에 같이 참여했다. 소나무숲이 있는 정원 한쪽으로는 미로가 만든 ‘미로의 미궁’이 있고 미술관 벽면에는 샤갈의 환상적인 벽화가 장식되어 있다. 알렉산더 칼더의 움직이는 조각과 브라크의 스테인드 글라스도 눈길을 끈다. 전시실은 보나르, 칸딘스키, 레제, 로베르트 마타의 작품으로 채워져 있고 전시실 사이의 야외 공간도 <걸어가는 사람>을 비롯해 비쩍 마른 자코메티의 조각 작품들로 가득하다. 마그 미술관은 지금도 연간 20만명의 관람객이 찾는 관광 명소이다.
“그러나 단순한 미술관은 아니다. 할아버지가 살아계실 때 여름밤에 열리는 콘서트에는 스톡하우젠, 존 케이지 등이 행위 예술을 보여주었고 현대 무용가 머서 커닝험은 프랭크 스텔라와 라우센버그가 만든 무대에서 그들이 만든 의상을 입고 공연했다. 할아버지는 다양한 장르의 예술가들이 어울려 빚어내는 예술이라는 교향악단의 지휘자가 되고 싶어하셨다.” 그런 전통을 이어받아 마그 재단은 요즘도 여름 콘서트, 미술 영화 상영, 예술 강좌와 문화 세미나 등을 개최한다.
미술 시장의 핵심 주체는 작가(작품), 화랑(화상), 수요자(콜렉터)이다. 이들의 관계가 삼각형처럼 조화를 이루어야 미술 시장이 발전한다. 19세기 말 인상주의 이후, 미술이 자본주의 시장으로 편입하는 과정에서 현대 미술사에 남은 굵직한 미술 사조 뒤에는 유능한 화상이 존재했다. 입체주의 야수파 뒤에는 볼라르, 추상표현주의에는 페기 구겐하임, 팝아트에는 레오 카스텔리, 미로와 자코메티, 마티스의 뒤에는 마그가 있었다. 
예술 투자 말고 다른 사업에도 손을 댈 생각을 해본 적이 없느냐는 질문에 마그 이사장은 단호하게 고개를 가로저었다.  
“할아버지와 할머니, 아버지와 어머니가 모으고 소중하게 지켜온 예술품들을 잘 관리해  더 많은 사람들과 인류의 위대한 유산을 공유하는 것이 나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마그 재단은 작가가 작품에만 몰두할 수 있도록 재정적으로 지원하고 전시, 출판, 작품 대여 등을 통해 대중에게 널리 알려왔다. 그동안 세계적으로 100여 차례가 넘는 전시회에 참여했다.”
그의 이야기를 듣고 있노라니 전설적인 예술가들과의 내밀한 추억을 간직할 수 있게 해준 마그 가문의 부(富)가 부러운 것도 잠시, 우리가 모르는 사이 20세기 현대미술을 든든하게 떠받쳐왔던 그들의 ‘노블레스 오블리주’에 새삼 고개가 끄덕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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