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 묶어놓고 사재 출연 약속?
  • 이석 기자 ls@sisapress.com ()
  • 승인 2008.01.21 1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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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태원 SK그룹 회장이 SK글로벌 분식 회계 사건에 대한 책임을 지고 사재 출연을 하기 직전 자신이 소유한 상당 규모의 부동산을 측근 인사에게 근저당 잡히는 형식으로 빼돌려 은닉한 의혹을 사고 있다. 최회장은 검찰이 지난 2003년 3월11일 SK글로벌의 분식 회계 규모가 1조5천5백87억원에 달한다고 발표하고 그에 대한 구속 기소 결정을 내리자 그룹 명의로 즉시 대국민 사과문을 내고 자신의 대대적인 사재 출연을 약속했다.
SK측은 이후 그룹 정상화를 위해 최회장의 상장 주식 1천1백억원어치, 비상장사인 SK C&C 주식 44.5%를 주 채권은행인 하나은행에 담보로 내놓고, 그 가치가 5천억원에 이른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주식 외에 부동산 매각과 주유소 처분 등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자구 계획도 하나은행측에 제출했다.
그러나 최회장이 사재 출연을 발표하기 바로 전날인 3월10일 그가 보유한 경기도 수원, 이천, 광주 일대 부지가 은밀하게 근저당 설정된 사실이 <시사저널> 취재 결과 밝혀졌다.
현재 실체가 확인된 부지만 전국적으로 70만㎡ 이상이다. ㎡당 가격을 10만원 정도만 잡아도 전체 평가액은 7백억원을 넘는다. 이 가운데 광주 초월읍 대쌍령리 부지의 경우 당시 주변 지역이 개발되면서 ㎡당 거래 가격이 10~20만원을 호가해 전체 평가액은 수천억원에 달할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당시 최회장의 부동산을 근저당 잡은 사람은 그의 유학 동기이자 그룹의 막후 실력자로 알려진 이동근 전 에이픽(APIC) 사장이다. 이 전 사장은 당시 공동 담보 형식으로 최태원 회장의 소유 부동산을 모두 근저당 설정했다. 설정 근거는 최회장에게 제공했다는 채권 60억원이었다. 이 정도의 채권으로 평가액이 적게는 7백억원에서 많게는 수천억원에 이르는 부동산을 근저당 설정한 데 대해 주변 중개업소 관계자들은 의아해 하고 있다.

최회장과 가까운 유학 시절 동기생이 근저당 설정

지난 1월15일 경기도 이천시 설성면 송계리 인근의 333번 지방도로에 가보니 한쪽에 ‘쪺쪺율림’이라는 간판이 눈에 띄었다. 간판을 따라 안으로 들어가자 거대한 밤나무 숲이 펼쳐졌다. 외곽에는 철조망이 쳐져 있고 정문에는 사유지임을 알리는 경고문까지 붙어 있었다.
관리인의 허가를 받고 안으로 들어가자 진풍경이 나타났다. 밤나무 숲은 인위적으로 꾸민 듯 4천여 그루의 밤나무가 촘촘히 심어져 있었다. 부지 한가운데에는 거대한 양어장이 S자 형태로 조성되어 있다. 이 양어장을 바라보는 위치에 별장으로 보이는 건물이 눈에 들어왔다.
이곳은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여름 별장으로 사용하는 곳이다. 관리인에 따르면 이 부지는 지난 1997년 선대 회장으로부터 물려받은 땅이라고 한다. 최회장은 여름마다 이곳을 찾는다고 한다. 총 부지는 40만여㎡(12만평)로 부지가 워낙 넓다 보니 이천시 설성면 상봉리와 송계리, 장천리 등 3개 리에 걸쳐져 있다.
이해하기 어려운 점은 지난 2003년 3월10일 이후 이 부지가 일제히 근저당 설정되어 있다는 점이다. 토지대장을 보니 근저당을 설정한 주인공은 이동근 전 에이픽 사장이다.
SK그룹 관계자들에 따르면 이 전 사장은 최회장과 상당히 막역한 사이이다. 미국 시카고 대학에서 최회장과 동문 수학했으며 그룹 지배구조 개선이나 구조 조정 사업을 막후 조율하는 실력자로 알려져 있다. 그룹 구조 개선 작업이 한창이던 지난 2000년 초 박용호 당시 투자회사 관리실 부사장(현 SK 사장)과 박우규 경영경제연구소장(현 SK경제연구소장)이 이동근 전 사장에게 별도로 추진 상황을 보고했을 정도이다. 그만큼 최회장의 신뢰가 각별하다는 뜻이다. 그런 그가 선대로부터 물려받은 최회장의 땅에 근저당을 설정한 이유는 무엇일까.
“개인적인 친분은 친분이고 받을 돈은 별도이다”라는 것이 SK그룹측의 설명이다. SK그룹 관계자는 “최회장이 이 전 사장에게 개인적으로 빌린 돈이 꽤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SK글로벌 사태가 터지면서 위기감이 확산되자 채권 회수를 위해 최회장 부지에 근저당 설정을 해놓은 것이다”라고 해명했다.

 

60억원 안 갚는다고 6백억원 규모의 부지에 공동 담보?

그러나 이런 주장은 채권 최고액이 60억원에 불과한데도 최회장의 부동산을 공동 담보 형식으로 모두 붙잡아놓았다는 점에서 설득력이 떨어진다.
한 부동산 전문가는 “등기부 등본에 표시된 채권 최고액은 60억원이 전부이다. 당시 공동 담보 형식으로 설정한 부지가 평당 10만원 안팎임을 감안할 때 이해가 되지 않은 조치이다”라고 지적했다.
 이 과정에서 최회장의 위장 전입 의혹까지 제기되고 있다. <시사저널>이 확보한 최회장의 수원 권선구와 광주 대쌍령리 부지의 토지대장을 보면 농지가 대부분이다. 광주군 대쌍령리 3xx번지(2407㎡), 3xx(387㎡), 3xx-3(2040㎡), 4xx(1045㎡), 4xx(618㎡)번지와 이천시 설성면 상봉리 1x-38(543㎡), 장천리 3xx-10(1706㎡), 3xx-1(2955㎡), 3xx-1(2139㎡), 3xx-2(15088㎡), 3xx(530㎡), 3xx-1(11999㎡), 3xx-1(853㎡), 3xx-1(2132㎡), 3xx(390㎡), 3xx-1(2879㎡), 6xx-3(3167㎡)번지 등 약 5만여㎡의 땅이 ‘전(田)’으로 표시되어 있다.
 현지인이 아닌 최회장은 이 농지를 구입조차 할 수 없었다. 그러나 최회장은 지난 1978년 주소를 광주군 초월면 대쌍령리 97번지로 이전했다. 최회장이 당시 신일고 3학년에 재학 중이었기 때문에 위장 전입했을 가능성이 크다.
더군다나 그가 경기도 광주와 수원 일대 부지를 집중적으로 사들인 1978년에는 미성년자 신분이었다. 그러나 최회장은 선대 회장으로부터 물려받은 이천시 일대 부지를 제외한 대부분을 이때 집중적으로 사들였다.
최회장의 부동산과 관련해 또 한 가지 쉽게 이해되지 않는 사실은 지난 2003년 근저당을 설정했던 이동근 전 사장이 1년4개월여 뒤인 2004년 8월부터 10월까지 일부 부지에 대해 권리를 포기했다는 점이다. SK그룹측의 주장대로 이 전 사장이 최회장에게 돌려받을 돈이 있었고 그 돈을 돌려받았다면 당연히 ‘포기’가 아닌 ‘말소’로 표시되어 있어야 정상이다. 그러나 이 전 사장은 광주리 초월읍 대쌍령리 산9x-1(80331㎡), 산9x-2(36000㎡), 산9x-3(17058㎡), 산9x(245952㎡), 산9x-1(113157㎡), 산9x-3(2182㎡), 산1xx(7041㎡), 산1xx(25073㎡)번지 등 57만8천여 평의 임야와 3xx(2407㎡), 3xx(387㎡), 3xx-3(2040㎡), 4xx(1045㎡), 4xx(618㎡)번지 등의 농지에 대해 근저당을 포기했다. 이 전 사장 스스로 돈을 받을 수 있는 권리를 포기한 것이다.
우연의 일치인가. 최회장은 이 전 사장이 근저당을 포기하자 곧바로 부동산을 매각했다. 당시 최회장은 광주시 초월읍 대쌍령리 산xx번지를 포함한 3필지를 86억원에 지역 부동산 개발 업체인 ㄱ사에 팔았다. ㎡당 매각 가격은 21만원선이다. 당시 이곳의 시세가 30만원 이상임을 감안할 때 상당히 저가로 판 셈이다. 3xx번지를 포함한 농지 대부분도 비슷한 가격에 김 아무개씨에게 매각했다.
이와 관련해 SK그룹 관계자는 “당시 (주)SK는 소버린과의 경영권 다툼으로 적지 않은 어려움을 겪었다. 이에 대비한 지분을 추가로 매집하는 데 이 돈을 사용한 것으로 알고 있다”라고 말했다.

 
SK측 “근저당 설정은 사적인 부채 때문이었다”

그러나 나머지 부지는 아직까지 근저당이 설정된 상태에서 최회장 소유로 남아 있어 궁금증을 낳고 있다. 최회장이 마음만 먹는다면 나머지 부지를 팔아서라도 이 전 사장에게 진 빛을 갚고 근저당을 해지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회장은 이같은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최회장이 사재 출연을 앞두고 자신이 소유한 부동산을 보호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근저당 설정을 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나오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이다. 지난 2004년 부동산 일부를 판 것은 SK 사태가 어느 정도 진정되었기 때문이라고 보는 사람들도 있다.
이와 관련해 SK그룹측은 다른 논리를 내세운다. 그룹 관계자는 “당시 최회장이 보유한 부동산 전체의 공시지가는 50억원에 불과했다. 실거래가 몇 배 높다고 해도 SK건설로부터 잡혀 있는 85억원을 제외하면 이 전 사장에게 남는 것이 없어 공동 담보를 잡은 것이다. 최회장의 재산을 보호하기 위함이 절대로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그는 이어 “최회장을 포함한 직원들은 현재 그룹 이미지 개선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 덕분에 과거에 좋지 않았던 이미지도 상당히 개선되었다. 이같은 상황에서 과거의 잔재가 발목을 잡는 것 같아 안타깝다”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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