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는 나의 것, 건드리지 마라?
  • 변희룡 (부경대학교 환경대기과학과 교수 ()
  • 승인 2008.01.21 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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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상법이 기상청장에게 예보 독점권 부여…전문가 간 경쟁 없어 예보 능력 낙후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기상청이 구설에 올랐다. 눈과 비가 언제 오는지 정확한 예보를 하지 못해 국민들은 큰 혼란을 겪었다. 기상청에 비난이 쏟아진 것은 물론이다. 2007년 한 해 동안 기상청의 예보를 살펴보면 한심스럽다. 단기(오늘과 내일) 예보의 정확도가 84.5%, 중기 예보(2~7일 전)는 64.8%, 장기 예보는 43.8%였다고 한다. 1982년을 보면 오늘 예보의 적중률은 87%, 내일 예보는 77%였다. 지난 30년간 나아진 흔적이 거의 없다. 그동안 막대한 장비와 인력을 투입했는데도 말이다. 더욱이 이 수치는 기상청이 자체 평가한 것이다. 평가 과정과 조사 과정에서 그 기준이 얼마나 객관적이고 투명했는지 알 수 없다.
과연 기상청의 예보 능력이 더 나아질 수는 없는 것인가. 선진국과 우리나라의 기상과 관련한 여러 가지 제도를 살펴보자. 배울 것은 배우고 버릴 것은 버려야 한다. 대한민국의 기상예보가 선진국화하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기상청의 예보 독점이다. 현행 기상법 제17조는 ‘기상청장 외의 자는 예보 및 특보를 할 수 없다. 다만, 대통령령이 정하는 특수한 목적을 위한 경우와 기상 사업자가 등록한 사항에 대하여 예보를 하는 경우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기상청장에게 독점적 권한을 부여한다고 명시한 것이다. 또 기상법 2조에는 ‘예보라 함은 기상 현상에 관하여 관측된 결과를 기초로 한 예상을 발표하는 것’을 말한다. ‘특보라 함은 기상 현상으로 중대한 재해 발생이 예상될 때 이에 대하여 주의를 환기하거나 경고를 하는 예보를 말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다행히 ‘발표’가 무엇을 말하는지는 규정하지 않았다. 바늘구멍 같은 숨통이 트여 있는 것이다.

대통령령이 정하는 특수한 경우에만 예보 허용해

왜 이런 법 조항을 만들었는지 구체적인 설명이 없다. 국민의 권리를 제한하는 입법은 그 취지가 명확하게 설명되어야 한다. 그런데도 기상법 제17조는 그러한 기본적 법철학도 외면한 상태이다. 이 법만으로 보면 기상청이 국민을 위해 존재하는 것인지, 국민이 기상청을 위해 존재하는 것인지 모를 일이다. 과연 이 법이 헌법의 범위 안에서 입법된 법안인지도 의심스럽다. 선진국·후진국 구별 없이 지구상 어느 나라에 이런 법이 또 있을 지도 의문이다.
이 법을 곧이곧대로 해석하면 기상청장은 국민이 가져오는 기상 예측 지식을 아무렇게나 처리하고 외면해도 그만인 것이다. 실제로 최근에 이런 현상이 없지 않았다. 사안이 다급하면 어찌 해야 하는가? 그에 대한 대안도 보이지 않는다.
우리나라 민간에서는 신경통 환자가 통증을 느낀다거나, 갓난아기가 입술을 부르르 떠는 것은 비가 올 징조라는 등의 속설이 많았다. 이상한 판·검사가 나타나 입술을 부르르 떠는 갓난아기가 기상법을 위반했다고 입건하는 일이 발생할 수도 있다. 바지 한 벌에 수천만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한 판사가 미국에 나타난 것이 바로 지난해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내기 골프가 도박이 아니라는 판결이 나왔었다. 더 심한 예로, 높은 파도에 밀려오는 쓰나미나 홍수를 보고 대피하라고 방송하면 기상법 위반이 되는 것은 아닐까.
기상예보 기술은 특정한 몇몇 전문가에게만 의지해도 될 만큼 발달한 기술이 아니다. 끊임없는 노력으로 계속 개발하고 발달시켜야 하는 기술이다. 그것도 국가가 나서서 해야 하는 일이다. 이는 대한민국뿐만 아니라 선진국도 마찬가지이다. 국가가 보유한 전체 과학자와 전문가들이 서로의 경험과 지식을 총동원해야 한다. 그것을 절충하고 발전시켜나가야 하는 기술이다. 절충 과정에서 새로운 예보 기술이 탄생하고 새 기술은 검증을 거쳐 하나의 예보 방법으로 자리 잡게 되는 것이 순서이다.
예를 들어 호우가 나서 큰 재해가 발생했다고 가정하자. 기상예보에 착오가 생겨 큰 피해가 난 경우, 관심 있는 많은 전문가들은 왜 틀렸는지, 어찌하면 틀리지 않을 수 있는지를 연구·조사할 것이다. 재해 발생을 예측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집중 탐구와 토론이 따를 것이다. 기상예보 기술은 그렇게 발전하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의 대한민국은 기상청이 예측하지 못한 현상을 국민이 예측하면 안 된다. 재해가 지나가고 난 다음에도 이렇게 하면 예측할 수 있다고 발표하지 않는다. 실제로 발표했다가 기상청의 심한 반발에 부딪힌 경우가 없지 않다. 기상청의 관료주의는 국민의 능력을 수렴하는 것보다 그 위에 군림하기를 더 좋아하는 것 같다. 법도 그것을 방조하고 있다.
외국의 경우는 어떠한가. 미국은 기상예보 권한을 법적으로 제한하지 않고 있다. 반면 예보 전문가들은 치열한 경쟁을 한다. 신문, 방송 등 주요 언론사나 연봉이 높은 회사에 기용되기 위해서 새로운 연구도 하고 실적도 쌓아간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 경쟁한다. 실적과 능력을 보고 채용하기 때문이다. 그 위에 국가의 지원이 뒤따르고 효과가 커진다. 우리나라의 기상청은 공무원 신분과 의무감이 앞선다. 이런 정신으로 국민의 안전과 편의를 위해 예보 기술을 연마하는 노력과 봉사를 한다. 대단히 고마운 일이나 미국과 비교할 때 어느 쪽이 더 열심히 일할 것인가는 불문가지이다.

 

일본, 예보자 자격증 가진 사람만 5천명

독일은 처음에는 지금의 한국과 같이 기상청장에게 기상예보 독점권을 주는 법을 보유하고 있었다. 이 법이 나치의 독소적 부산물이라며 완전 철폐된 것이 약 20년 전이다. 그래서 현재는 미국과 같다. 예보하는 권리에 제한을 두는 나라로는 일본이 발견된다. 예보자 자격증을 가진 사람만이 예보를 할 수 있다고 규정한다. 그러나 2007년 현재 약 5천명의 자격자가 있으며 이들은 훌륭한 예보 능력 보유자로 인정받기 위해 상호 경쟁한다. 이에 비해 한국은 전문가 간의 경쟁이 없다. 예보 생산도, 평가도, 사후 분석에서도 경쟁자가 없다.
이 점에 대해 기상청의 해명은 대단히 특이하다. 국정브리핑 2007년 2월9일자를 보면 ‘한국도 기상 사업자로 등록하여 기상예보를 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놓았다. 단지 현재의 기상 사업자들이 영세하여 그 업무를 수행하지 못하는 것일 뿐이다’라는 대목의 글이 나온다. 지금 우리나라에는 기상청과 경쟁할 상대가 없다. 경쟁할 만한 상대가 나타나도 기상청에 등록해 허가를 받아야 한다. 즉 경쟁자가 생겨나지 못하게 봉쇄하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기상청과 비슷한 조직을 갖춘 공군 제73기상전대가 있다. 하지만 그 업무 범위가 국방부 내에 귀속되어 있다. 
기상법 제17조에 명시되어 있는 ‘국민의 혼란을 막기 위해서’라는 논리에 대해 여러 가지 질문을 던질 수 있다. 그중에 세 가지 질문을 던져보면 이렇다. 첫째로 기상 예보의 자유 경쟁에 대해 선진국 국민들은 혼란을 염려하지 않는다. 그런데 유독 우리 국민들만 혼란을 염려해야 하는가이다. 둘째는 기상청이 예보 독점을 고집하는 이유가 혹시 독점적 권리 위에서 안주하기 위한 것은 아닌가. 셋째는 우수한 장비를 도입하고 인력을 채용해서 쓰고 있는데도, 예보 정확도가 높지 않은 것을 무엇으로 해결할 것인가. 새 정부가 혁신 계획을 수립한다면 기상산업의 발전을 위해 ‘기상 예보 독점권’을 다양화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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