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리우드의 벽을 뚫고 뚫어…
  • 반도헌 기자 bani001@sisapress.com ()
  • 승인 2008.01.21 1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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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연기자들, 세계 영화 시장에 속속 진출…블록버스터급에 주연 따내기도

 
한국 배우들의 할리우드 진출이 줄을 잇고 있다. 비(정지훈)가 <매트릭스>를 연출한 스타 감독 워쇼스키 형제의 차기작 <스피드레이서(Speed Racer)>촬영을 지난해 마쳤으며, 장동건은 <런드리 워리어(Laundry Warrior)>를 촬영 중이다. 전지현은 <블러드 더 라스트 뱀파이어(Blood: The Last Vampire)>로 할리우드의 문을 두드린다. 최근에는 이병헌의 캐스팅 소식도 들린다.
비가 출연한 <스피드레이서>는 일본의 TV 애니메이션 <마하 GO GO GO>를 리메이크하는 작품이다. 할리우드 수퍼스타가 출연하지는 않지만 <매트릭스> 시리즈로 전세계를 흥분시킨 워쇼스키 형제의 차기작이라는 면에서 <스피드레이서>는 세계적으로 주목받고 있는 대형 블록버스터이다. 장동건이 주연을 맡은 <런드리 워리어>는 서부 시대를 배경으로 동양에서 건너온 신비스러운 무사가 펼치는 활약을 그린 SF무협극이다. <수퍼맨 리턴즈> <블루 크러쉬>의 케이트 보스워스가 여주인공으로 캐스팅되었으며 이 외에도 <샤인>의 제프리 러시, <영웅본색>의 적룡 등이 출연할 예정이다. 전지현은 <블러드 더 라스트 뱀파이어>의 주연을 맡았다. 전지현의 소속사 관계자는 “전지현이 원톱으로 영화를 이끌어간다. <블레이드>의 웨슬리 스나입스를 연상하면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 작품에는 <와호장룡> <색, 계>의 명프로듀서 빌 콩이 제작에 참여한다.
이병헌의 미국 진출 소식도 들린다. 그가 출연할 작품은 <미이라> 시리즈로 유명한 스티븐 소머즈 감독의 새 작품인 <지아이 조(G. I. Joe)>이다. 미군 특수부대의 활약을 그린 작품으로 이병헌은 악역인 일본 닌자 ‘스톰 쉐도우’ 역을 맡는다.
이들 외에도 많은 한국 연기자들이 해외 시장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 장혁이 <댄스 오브 드래곤>에, 송혜교가 <페티쉬>에 출연했으며 비가 출연한 <스피드 레이서>에서 출연해 화제가 되었던 박준형은 주성치가 할리우드에서 제작하는 <드래곤 볼>에서 ‘야무치’ 역에 캐스팅되었다.

아시아 시장 공략 차원이라는 의견도

미국에 지사를 두고 있는 IHQ의 관계자는 “현지 지사를 통해 톱스타 정우성을 비롯한 소속 연기자들의 미국 진출을 도모하고 있다. 우리 소속 연기자 외에도 많은 배우들이 미국 시장을 두드리고 있는 것으로 안다”라고 말했다.
한국 배우들의 할리우드 진출에는 여러 가지 형태가 있다. 우선은 할리우드 대형 블록버스터에 조연급으로 참여하는 것이다. <스피드 레이서>에 출연한 비와 <지아이 조>에 캐스팅된 이병헌의 경우가 대표적이다. <스피드 레이서>는 <매트릭스> 워쇼스키 형제의 명성에 걸맞는 제작 규모를 자랑하고 있고, <지아이 조>는 오랫동안 미국인들의 사랑을 받아온 프라모델 캐릭터이자 애니메이션 작품을 영화화한 것이다. 두 편 모두 제작 전부터 전세계적으로 관심을 받고 있는 작품으로 흥행이 보장된 영화라고 할 수 있다. 이들 작품에 출연하는 것만으로 두 배우의 해외 인지도는 급상승할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미국의 영화사이트 IMDB에 있는 캐스팅 순위에서 이들이 하위권에 있는 것으로 보아 이들의 역할이 크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에 대해 비의 소속사인 제이튠엔터테인먼트 관계자는 “비가 맡은 태조토고칸 역은 일반 조연보다는 비중이 있는 역할로 주연과 조연 사이쯤으로 보면 된다”라고 말했다. 작품의 흥행이 할리우드에서 두 배우의 입지를 보장한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아시아권에서 인기를 확보하고 있는 이들이 미미한 역할을 맡는다는 것에 대한 반발도 있다. 이들의 진출이 할리우드가 아시아 시장을 공략하기 위한 프로모션 차원에서 이루어진 것이라는 의견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지금은 <러시아워> <상하이 나이츠> 등으로 할리우드에 안착한 성룡의 경우도 1980년대 <캐논볼>이라는 영화에 조연으로 출연하며 할리우드 진출을 노렸지만 실패한 경험이 있다. 이연걸처럼 악역 이미지가 맞지 않는다는 비판에도 <리썰웨폰 4>에 조연으로 출연하며 할리우드 액션 영화의 주연급으로 자리 잡은 경우도 있다.

미국 흥행 성공해야 세계적 배우로 통해

블록버스터는 아니지만 일정 규모 이상의 작품에 주연으로 진출하는 사례도 찾아볼 수 있다. 장동건의 <런드리 워리어>, 전지현의 <블러드 더 라스트 뱀파이어>가 이런 경우에 속한다. 두 작품은 미국 전역에서 관심을 받고 있는 블록버스터가 아니어서 흥행하리라는 보장이 없다. 하지만 미국 개봉이 보장된 만큼 예상을 넘어서는 흥행을 기록할 경우 주연을 맡은 장동건, 전지현의 위상이 급격히 상승할 수도 있다.
마지막으로 독립영화를 통한 진출이다. 지난해에 영화 첫 주연작인 <황진이>에서 고배를 마신 송혜교는 미국에서 제작 중인 독립영화 <페티쉬>에 출연하고 있다. 이런 방식은 흥행에 대한 부담 없이 미국 영화 관계자들에게 얼굴을 알릴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한국 배우의 할리우드 입성이 동아시아 시장을 노리는 그들의 프로모션 전략에 의한 것이라는 지적도 있다. 해외 시장에서 벌어들이는 수입이 북미 시장에서 벌어들이는 것을 넘어선 상황이고, 한국·일본·중국 등 동아시아의 영화 시장이 무시할 수 없을 만큼 커졌기 때문이다. 한국 배우의 역할이 기존의 영화에서 홍콩 등 아시아권 배우가 만들어놓은 이미지에 편승했다는 지적도 피해갈 수는 없다. 장동건과 전지현의 주연작은 이들이 무술 액션 배우가 아님에도 아시아계를 주연으로 할리우드에서 제작되는 대부분의 영화처럼 무협 액션이라는 점은 아쉬운 점이다.
할리우드에서 아시아계 배우의 역할은 한정적이다. 극을 이끌어가기보다는 양념이나 끼워 맞추기에 불과한 경우가 많다. 차인표가 거부한 <007 어나더데이>의 문대령 역할처럼 왜곡된 이미지를 보여주는 사례도 있다. 비의 역할도 처음에는 일본인이었으며, 이병헌은 일본 무사인 닌자 역을 맡는다. 비의 소속사 관계자는 “한류 스타인 비가 일본인으로 출연할 수는 없어 협상을 통해 한국 이름인 태조를 사용하게 되었다”라고 말했다.
앞서 보았듯이 한국 배우들의 할리우드 진출은 여러 면에서 홍콩 배우들의 그것과 닮아 있다. 홍콩 영화계의 침체와 홍콩의 중국 반환을 맞아 많은 홍콩 배우들이 할리우드 진출을 시도했다. 아시아권에서 톱스타의 위치에 있던 이들이지만 할리우드 진출이 쉽지만은 않았다. 성룡, 주윤발, 이연걸, 양자경 등 일부만이 성공적으로 할리우드에 안착했다.
할리우드에 진출하기 위해서 할리우드 작품에 출연하는 것만이 정답은 아니다. 빌 콩이 제작하고 이안이 감독한 <와호장룡>은 아시아권에서 제작한 비영어권 영화임에도 북미 시장에서 큰 성공을 거두었고, 영화의 주연을 맡은 주윤발, 장쯔이, 양자경의 미국 진출에 큰 힘이 되었다. 홍콩 배우들의 헐리우드 러시에서 비켜서서 홍콩 영화계를 지키던 주성치는 자신이 직접 감독한 <쿵푸허슬>을 전세계적으로 흥행시키며 다음 작품인 <드래곤볼>을 할리우드에서 직접 제작할 수 있었다. 이런 예는 한국 영화가 영화 시장의 본거지인 미국 시장에서 성공할 경우 한국 배우들의 할리우드 입성도 자연스레 이루어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미국 ABC 방송의 히트 드라마 <로스트(Lost)>로 미국에서 성공한 김윤진은 한국 배우들에게 많은 시사점을 던져준다. 김윤진은 한국에서의 활동을 과감하게 접고 미국으로 날아가 새로 시작하는 자세로 오디션에 참가하며 2003년 윌리엄 모리스 에이전시와 3년 계약을 했다. 결국 <로스트>의 성공으로 할리우드에 이름을 알리게 되었다. 이는 김윤진의 과감한 시도와 노력, 그리고 유창한 영어 실력이 어우러진 결과라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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