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장에서 찾은 내 행복
  • 이재현 기자 yjh9208@sisapress.com ()
  • 승인 2008.01.21 1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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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적 메시지 담은 ‘행복’에 대한 정의…단편소설처럼 깔끔해
 
어떻게 살아야 행복하게 사는 것일까. 답은 의외로 복잡하다. 사람마다 처한 상황에 따라 다 다르기 때문이다. 환자라면 병이 낫는 순간이 가장 행복할 것이고 돈이 궁한 사람에게는 돈이 생기는 것이 행복이다. 이 세상에서 행복을 가장 많이 누리고 사는 사람들이 방글라데시 국민이라는 통계도 있다. 최빈국인 방글라데시 사람들이 행복지수가 가장 높은 것은 가진 것이 없어서이다. 가진 것이 없으니 매 순간 조금이라도 가질 수 있으면 행복하다.
<행복한 엠마 행복한 돼지 그리고 남자>라는 긴 제목을 가진 이 영화의 엠마(조디스 트라이벨 분)는 시골에서 돼지며 닭, 오리를 키우는 농장을 운영하는 농사꾼이다. 하지만 그녀는 행복하지 않다. 요금을 내지 않아 전기도 끊어질 판이고 농장도 경매에 넘어갈 지경이다. 게다가 그녀는 남자가 궁하다. 애인도 없었던 것이다. 동네 경찰인 헤나가 지분거리기는 하지만 마마보이인 그는 엠마의 눈에 차지 않는다. 그러던 어느날, 엠마에게 복이 덩굴째 굴러들어온다. 시한부 인생을 선고받은 막스(위르겐 포겔 분)가 자살을 시도하다가 그녀의 농장으로 떨어진 것이다. 죽어가는 막스를 끄집어내던 엠마의 눈에 돈 상자가 보이고 그녀는 의식을 잃은 막스 몰래 이를 챙긴다.
죽은 줄 알았던 막스는 자신을 구해준 처녀가 뚱뚱한 엠마라는 사실을 알고 일단 눌러 사는데, 도시에 살던 그에게 돼지가 제 맘대로 돌아다니는 농장은 점점 친근하게 다가온다. 돈까지 생긴 엠마는 막스에게 호감을 표시하며 작업을 거는데 막스는 그런 그녀가 날이 갈수록 마음에 든다.
시한부 인생에게 다가온 행복한 처녀
‘행복한 엠마’는 돼지를 잡아 소시지를 만들어 팔며 생계를 유지하지만 그녀는 살아 있는 동안만큼은 돼지를 행복하게 살게 해주겠다며 돼지와 논다. “두려운 건 죽음에 대한 공포이지 죽음 자체가 아니야”라고 말하면서. 시한부 인생의 남자가 새로운 세상에 눈뜨고 행복하지 않았던 여자가 느닷없는 사건으로 행복해지고 사랑까지 얻었다는 내용의 <행복한 엠마…>는 독일 작가 클라우디아 슈라이버의 동명 소설을 영화화한 것이다. 클라우디아가 직접 각색에도 참여했다는 이 소설은 베스트셀러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 영화는 러브스토리를 말하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 행복한 돼지와 죽음이 맞물리면서 제법 철학적인 메시지를 담고 있는 것이다. 독일 영화라서 배우들이 모두 독일어로 대화하고 있어 말투들이 투박하지만 죽이고 부수는 할리우드 영화를 보다가 <행복한 엠마…>를 보면 한편의 단편소설을 읽고 난 기분이 든다. 화면도 비교적 서정적이고 전개도 무난해서 지루하지 않다. 1월31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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