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운대의 용트림, 부산의 희망인가 무모한 ‘삽질’인가
  • 부산·김회권 기자 judge003@sisapress.c ()
  • 승인 2008.01.28 1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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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급 주상복합단지 들어서며 ‘환골탈태’ 제2 강남화·환경 파괴 등 우려도 적지 않아

 
“앞으로 집값 오를 곳은 부산에서 여기밖에 없습니더. 교통도 편하고 주거 환경도 좋고. 게다가 학군도 여기만한 데가 없다니까예. 학원도 많고, 해운대고나 국제외고가 요즘 잘 나간다 아입니까.”
해운대 센텀시티 인근에 있는 ㄱ공인중개업소를 찾아 “신혼집을 구하고 있다”라는 말을 꺼내자 공인중개사는 해운대에 새로 조성되는 센텀시티와 마린시티 예찬론을 늘어놓으며 매물이 잘 없으니 있을 때 빨리 계약하라고 재촉했다. ‘매물이 잘 안 나온다’라는 말은 대다수 공인중개사가 쓰는 상술이겠지만 최근 해운대에 지어지는 주상복합단지와 그에 몰리는 관심을 생각해 볼 때 그의 말이 빈말로만 들리지는 않았다.
기자라고 신분을 밝히고 자리를 고쳐 앉아 다시 물어보았다. “해운대가 너무 변하는데 그리 좋아보이지는 않는다”라고 말을 꺼내자 그는 “아마 부산시 입장에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일 것이다”라고 대답했다. 지역 경기가 가라앉은 지 오래되었고 성장 동력도 찾기 힘든 데다 인구마저 외부로 빠져나가고 있는 현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서 ‘건설’을 선택하지 않았겠느냐는 이야기였다. 그는 “해운대 정도만이 부산에서 몇 안 되는 매력을 가진 곳이다”라고 덧붙였다.
해운대에 새로 들어서는 건물들은 모두 부산이 아닌 대한민국의 부유층을 대상으로 광고를 하고 있다. 강남은 해운대가 벤치마킹해야 할 모범이다. 그래서 해운대에는 고밀도 주상복합 건물이 빽빽이 들어서고 있다. 바다가 보이는 최상의 조망권을 미끼로 전국의 부유층들에게 해수욕장이 아닌 고급 주거지로 손짓하고 있는 중이다.
1990년대 초반까지만 하더라도 해운대는 ‘잘 사는’ 동네가 아니었다. 해운대는 수영만에서 진입하는 길을 기준으로 왼쪽은 좌동, 가운데는 중동, 오른쪽은 우동으로 나뉜다. 해운대 해수욕장은 우동에 속하는데 해안가 주변의 호텔과 달맞이 고개 인근의 고급 빌라만 눈에 띌 뿐, 전체적으로 가난한 동네였다.
해운대가 변화의 조짐을 보이기 시작한 때는 1992년 중동을 중심으로 좌동, 우동을 포함한 약 3백만여㎡(약 100만평 정도)의 토지에 신시가지를 조성하면서부터이다. 대부분 20층 이상의 아파트가 건설되었고 상대적으로 저렴한 분양가 때문에 인기를 끌었다. 신시가지 조성은 인근에 위치한 광안리 해수욕장 근처의 부유층이 신시가지로 옮기는 기회가 되었다. ‘해운대=가난한 동네’라는 인식은 이때부터 조금씩 희석되었다.

센텀시티·마린시티 중심으로 비약적 발전

센텀시티와 마린시티는 해운대가 본격적인 부자 동네로 탈바꿈하는 계기가 되고 있다. 새로운 고밀도 주상복합 주거 단지가 형성되면서 부산 사람들에게 ‘해운대=부촌’이라는 인식이 자리 잡기 시작했다.
해운대로 진입하기 직전, 수영만을 건너면 높게 솟은 주상복합 빌딩들을 마주할 수 있다. 지상에는 커피체인점과 베이커리 등이 늘어서 있고 PB(Private Banking) 서비스를 강조하는 금융 지점들이 즐비하다. 마치 서울 강남 일대의 주상복합단지를 바라보고 있는 듯한데 이곳이 바로 센텀시티이다.
마린시티는 센텀시티에서 해운대 해수욕장 쪽으로 들어가면 나온다. 해운대 해수욕장에 진입하기 직전에 오른편 해안가 쪽으로 늘어선 고층빌딩을 만날 수 있는데 이곳이 마린시티이다. 최근 3.3㎡당 4천5백만원의 전국 최고 분양가를 책정한 펜트하우스 때문에 논란이 일었던 72층 높이의 현대산업개발 ‘아이파크’와 80층 높이의 두산 ‘위브더제니스’가 들어서는 장소이기도 하다.
주민들은 수도권과 비교해도 전혀 손색이 없는 주거 공간이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 센텀시티 내 주상복합 건물에 살고 있는 김진석씨(32)는 “장보기, 애들 학교 보내기, 산책 가기, 영화 보기 등 모든 것들이 지근거리에서 이루어질 수 있고 바다가 보이는 전망도 좋아서 만족하며 살고 있다”라고 말했다.
마린시티에 대한 기대감도 높아 보였다. 부산 마린시티 내에 위치한 해운대 아이파크 모델하우스를 둘러보던 장무순씨(53)는 “해운대 신시가지에 살고 있는데 이번 기회에 갈아탈까 생각 중이다. 분양가가 높다고는 하지만 미래를 생각하면 손해 볼 것 같지는 않다”라고 말했다.
해운대가 이처럼 부산에서 특별한 부촌으로 각광을 받는 현상을 두고 부산 지역 사회에서는 많은 말이 오고 갔다. 센텀시티는 초기에 ‘첨단 정보 단지’를 조성해 동부산 개발을 선도할 목적으로 조성되었지만 결국 초고층 주상복합아파트만 자리했기 때문이다. 마린시티 역시 수년간 사업이 표류했지만 부산시가 지난해 지구 단위 계획을 바꿔 5백 가구 미만으로 제한된 공동주택 요건을 3천7백 가구로 완화해주면서 사업이 급속도로 진행되었다. 해운대 개발 계획 초기부터 집중적으로 문제를 제기했던 경성대 김민수 교수(도시공학과)는 “원래 1986년 아시안게임 때부터 공공 계획이 잘못되었는데 지금 단계에서 뭐라 할 수 없게 되었다”라고 말했다. 그는 “해운대의 건물들이 고층으로 올라간다고 난개발이라고 할 수는 없는 만큼 이제는 기반 시설을 잘 정비하는 쪽으로 전개되어야 한다”라고 언급했다.
해운대가 고급 주거지로 부각되면서 새로운 사회적 문제에 초점을 맞추는 의견도 있다. 부산 경실련의 오태석 부장은 “그동안 부산은 서울처럼 지역에 따른 주거 비용이 크게 차이가 나지 않았다. 하지만 이제는 동서 양극화가 심화되고 있다”라고 말했다. 그는 “오죽하면 ‘해운대시를 그냥 따로 만들었으면 좋겠다’라는 이야기도 나오겠느냐”라고 말하면서도 “결국 그 차익의 대부분은 외지인들이 가져가지 않겠는가”라고 전망했다.
주상복합 빌딩 건설로 인한 환경적인 문제도 무시할 수 없다. 특히 해운대 입구에 건설될 아이파크 등 마린시티의 건물은 해운대 백사장을 황폐하게 만들지도 모른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한국요트협회 류제동 감사는 “백사장은 바람과 연관이 깊다. 남서풍이 오륙도 쪽에서 불 때 새로 생길 건물에 바람이 말려나가면서 백사장 모래도 휘감아 나갈 가능성이 크다”라고 걱정했다.
반면에 영산대 부동산연구소장 심현섭 교수는 “해운대 신도시는 1996년부터 입주가 시작되어서 이미 기반 시설이 어느 정도 갖춰진 상태이다. 학군이나 마트 등은 이미 잘 마련되어 있고 최근에 롯데백화점이 개점하는 등 쇼핑 기반도 갖춰지고 있기 때문에 센텀시티나 마린시티도 혜택을 볼 것이다”라고 말하며 ‘주거 특구’로서의 해운대에 주목했다.

 

높은 분양가에도 청약 신청 ‘밀물’…“두산 위브 포세이돈Ⅱ 사태 또 날라”

해운대의 성공에 발맞춰 유통 업계도 빠르게 진출 중이다. 센텀시티 사거리의 한쪽에는 롯데백화점이 지난해 12월7일 센텀시티점을 열었고, 맞은편에는 신세계백화점이 올해 개점을 목표로 동양 최대 규모의 백화점을 건설 중이다. 부산 국제신문의 한 기자는 “거대 백화점이 들어서면 비단 해운대 지역 상권뿐만 아니라 주위의 2차, 3차 상권까지도 흡수할 것이라고 전망하는 전문가가 많다”라고 말했다.
더불어 고급 문화를 향유하는 기회도 늘어나고 있다. 특히 해운대 달맞이 언덕을 중심으로 화랑촌들이 몰려들면서 새로운 명소들이 생기고 있다. 전시와 경매를 하는 조현화랑, 코리아아트센터 등 국내 대형 화랑들이 문을 열면서 기존의 부산에서는 볼 수 없었던 새로운 문화를 체험할 수 있게 되었다.
앞으로도 해운대의 개발은 계속될 예정이다. 해운대구청측에 따르면 센텀시티 내에 두레라움(영상센터) 건설, KNN방송국 이전, 센텀지방산업단지 건설 등이 이루어질 예정이며 신시가지에도 해운대 백병원 신축과 달맞이 고개의 해운대 AID주공 아파트 재건축 등이 남아 있다. 이렇게 된다면 해운대는 명실공히 주거, 의료, 문화 등 복합 주거 단지로서의 기능을 하게 된다. 평균 1천6백55만원의 높은 일반 분양가에도 불구하고 지난 1월21~22일에 있었던 현대산업개발의 해운대 아이파크 1~2순위 청약 신청률이 1백63%를 기록한 것만 보아도 청약자들이 가지는 해운대에 대한 기대치를 알 수 있다.
하지만 청약이 실제 계약으로 얼마나 연결될지는 좀더 지켜보아야 한다는 전망도 있다. 특히 1~2순위 청약자의 경우 외지인보다 부산 지역 사람들이 대부분이기 때문에 전매 차익을 노리고 청약에 뛰어든 경우도 많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하지만 이런 움직임에 주의를 요구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대기업의 주상복합 건물이 반드시 황금알을 낳는 거위인 것만은 아니기 때문이다. 경실련 오태석 부장은 “높은 분양가는 시장을 왜곡시킬 수 있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잘못하면 ‘두산 위브 포세이돈Ⅱ’ 분양 때와 같은 결과가 날 수 있다”라고 경고했다.
두산 위브 포세이돈Ⅱ는 두산건설이 부산 범일동에 분양한 주상복합 건물로 당시 분양 대행사 직원들은 “계약금만 내고 3개월만 기다리면 최저 1천만원 이상의 웃돈을 받고 되팔 수 있다”라고 말하며 고객들에게 계약을 권했다. 하지만 미분양 사태가 일어나면서 대행사 직원의 말만 믿은 채 시세 차익을 노리고 뛰어든 계약자들은 중도금 대출 이자까지 내야 하는 형편에 몰렸다. 결국 계약자들은 2006년 10월 서울지방법원에 두산건설을 상대로 계약 무효 소송을 내기에 이르렀고 요즘은 마린시티에 지어진 두산 위브더제니스 모델하우스 앞에서 연일 항의 시위를 벌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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