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안 갯벌의 ‘눈물’ 이 ‘피눈물’ 되나
  • 최예용 (환경운동연합 바다위원회 부위원장) ()
  • 승인 2008.01.28 1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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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 애매한 수사 발표로 삼성에 면죄부 태안 주민들, 삼성 광고에 “이게 사과냐?” “침묵하는 차기 정부가 더 큰 걸림돌” 주장도

 
“삼성중공업 사장이 나와 허리 굽혀 사죄하는 것이 최소한의 도리였는데, 이제 이건희 회장이 무릎 꿇고 사과해도 안 된다”라는 것이 현재 태안 주민들의 정서이다.
삼성크레인과 허베이 스피리트호 충돌로 사상 최악의 기름 유출 사고를 일으킨 삼성중공업이 사고 발생 이후 오랜 침묵을 깨고 1월22일 아침 주요 일간지에 ‘머리 숙여 사과드립니다’라는 제목의 사과 광고를 게재했다. 사고 발생 47일 만의 일이다. 검찰이 현대의 유조선측과 쌍방 과실로 수사 결과를 발표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사과 성명을 냈다. 혼자서 뒤집어쓸 수 없다며 버틴 결과이다. 사장은 보이지 않고 상무 직함의 삼성중공업 임원이 TV에 나와 ‘법의 범위 내에서의 책임’을 말했다.
삼성의 사과에 대해 지역 사회와 환경단체의 반응은 한마디로 ‘이게 사과냐?’라는 것이다. 진태구 태안군수는 ‘상처에 소금 뿌렸다’라며 내용 없고 성의 없는 사과를 못 받겠다고 했다. 환경연합은 ‘진정성을 느낄 수 없어 유감’이라고 했다. 사고 원인을 기상 악화로 돌리고, 어떻게 책임지겠다는 이야기가 전혀 없는 삼성의 사과문은 불난 집에 부채질한 꼴이 되었다. 환경연합의 성명서는 ‘사고가 발생한 지 한 달 반 이상 침묵하고 있다가 이제야 말문을 열어 사과를 한 것이 뻔뻔한 자기 변명만 늘어놓은 셈이다. 삼성이 진정으로 책임을 느끼고 있고 국민과 피해 지역 주민에게 사과하겠다면 말뿐인 사과가 아니라 사건에 대한 진상이 좀더 명백하게 드러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노력하는 한편, 이에 합당한 법적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라고 지적하고 있다.
내용 없고 성의 없는 삼성의 사과에 분노한 태안 주민들이 서울에 올라왔다. 1월23일 서울역에는 4천여 명의 주민이 모였다. ‘삼성 타도’ ‘삼성 불매’라는 구호가 등장했다. 대학생들이 들고 있던 ‘엉터리 사과로 어민들의 검은 눈물 기만하지 마라’라는 문구도 눈에 들어왔다. ‘썩어버린 갯벌은 누가 책임지나’라는 피켓도 호소력을 느끼게 했다. 이들은 벌써 여러 차례 태안에 방제 자원봉사를 다녀온 학생들로 주민들의 심정을 누구보다 잘 헤아리고 있었다. ‘검은 악마 삼성, 태안 주민 살려내라’라는 신진도 어촌계 명의의 거친 글씨는 섬뜩했지만 주민들의 분노를 여과없이 표현하고 있었다.
해경과 검찰이 발표한 수사 결과의 문제점을 살펴보자. 핵심은 “삼성중공업이 풍랑주의보 속에서 ‘무리하게’ 또는 ‘의도적으로’ 운항을 해서 사고를 냈는가?”를 밝히는 것이다. 삼성중공업의 중과실이 확인된다면, 사고 피해, 복구, 환경 복원 등에 필요한 비용을 삼성에 청구할 수 있지만, 그렇지 못할 경우에는 국가가 대신 배상하거나, 주민들이 피해 배상을 포기하거나, 환경 복원을 방치해야 하는 상황이다. 하지만 검찰은 삼성에 대한 수사를 포기했고, 일선 선원 몇 명에 대해 기소하는 것으로 수사를 마쳤다. 삼성중공업을 압수수색하거나, 삼성이 범죄를 은폐하기 위해 현장에서 진행했던 대책회의 등에 대해서도 점검하지 않았다. 검찰은 태안해양경찰서가 검찰에 송치하기 전 일상적으로 진행되는 조사 결과 발표도 막은 적이 있는데, 이러한 조치는 결과적으로 삼성에게 여론의 화살을 피할 시간을 벌어주는 결과를 낳고 말았다.
“검찰이 삼성의 범죄를 파헤치지 않고 피해를 공적 영역으로 떠넘김으로써, 스스로의 역할을 내려놓은 정도가 아니라 범죄자와 한편인 것처럼 행동했다”라는 거친 지적도 나왔다. 그 결과 갯벌을 파서 먹고살던 죄 없는 주민들은 배상 받을 곳을 잃어버렸고, 정부는 부도덕한 재벌을 대신해 국민의 세금을 탕진해야 하며, 태안해안국립공원은 훼손된 생태계 복원을 위한 비용을 확보할 수 없게 되었다는 설명이다. 무엇보다 안전 불감증에 중독된 삼성을 바로잡을 기회를 놓쳤고, 증거 조작까지 일삼는 대기업의 도덕 불감증을 용납함으로써 법과 상식을 전복하고 말았다는 지적이 이어진다.
 

사고 낸 크레인 소속은 삼성물산

사고의 직접적인 원인을 제공한 것은 명백하게 한국의 초일류 기업 ‘삼성’이라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삼성중공업 소속 초대형 크레인을 운반한 선박은 삼성물산 소속으로 인천대교 건설에 동원된 후 회항 길에 사고를 냈다. 사고를 일으킨 초대형 크레인은 원래 삼성물산 소속이다. 삼성중공업은 삼성물산으로부터 12년간 임대 계약을 맺어 사용하고 있다. 삼성물산은 자사가 진행하는 인천대교 프로젝트를 위해 삼성중공업에 빌려준 크레인을 사용하고 돌려주다 사고를 냈다.
현대오일뱅크는 어떠한가. 사고의 위험성을 항상 안고 있는 낡은 단일 선체 유조선으로 원유를 운반하다 사고를 만났다. 이번 참사는 국내 굴지의 1, 2위 재벌 그룹의 소속 회사들이 직접적인 사고를 일으켰고 해상 당국에게도 일말의 책임이 있다. 방제 실패로 오염이 확산된 문제도 크다. 12년 전 씨프린스 사고를 일으킨 GS그룹(당시 LG그룹)도 피해 주민과 환경단체가 추운 겨울 사과를 요구하는 시위를 벌인 끝에야 사과 광고를 신문에 실은 적이 있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란 의도하지 않은 사고라고 할지라도 물의를 일으킨 경우에는 즉각 실수나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하면서 책임을 지려는 자세를 보이는 것이 기본이다. 전국에서 모인 연인원 100만명이 넘는 자원봉사자들과 주민들의 노고와 염려 그리고 상심을 모른 채 하는 삼성과 현대는 안전 불감증을 넘어 도덕 불감증마저 보이고 있다. 유조선의 이중 선체 문제는 대형 환경 참사를 막기 위한 기본적인 하드웨어에 해당한다. 정부의 강력한 지도와 단속을 바탕으로 각 정유사들이 안전 노력을 기울이고 국민이 이들을 열심히 감시하는 것만이 앞으로 유사 사고 재발을 막을 수 있는 길이다.
환경단체들은 삼성의 중과실에 대한 수사를 촉구하기 위해 고발인을 대대적으로 모집해 범국민적인 고발 운동을 펼칠 계획임을 밝혔다. 그러나 ‘기업 정부’로 표현되는 이명박 당선인과 인수위는 태안 문제를 언급하지 않는다. 태안 문제 해결의 가장 큰 걸림돌이 친기업 성향의 차기 정부일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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