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아’ 된 미국 경제에 걱정 반 꾸중 반
  • 김세원 편집위원 ()
  • 승인 2008.01.28 1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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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보스 포럼‘경기 침체 가능성’ 집중 토론 아시아 국가들 “우리는 괜찮아”

 
스위스 취리히에서 동남쪽으로 1백40㎞ 떨어져 있는 알프스 산자락의 휴양 도시 다보스. 취리히 공항에서 내려 기차를 두 번 갈아타고 3시간을 가야 도착하는 해발 1천7백m의 산간 마을이다. 좁은 진입로를 제외하고는 사방이 울창한 삼림과 눈 덮인 산으로 둘러싸인 닫힌 공간으로 인구는 1만3천명에 불과하다. 1970년대 초만 해도 스키 휴양지로 알려졌던 다보스에 매년 1월 말이면 수천명의 뉴스메이커(news maker)들과 뉴스체이서(news chaser)들이 전세계에서 모여든다.
다보스 포럼으로 더 유명한 세계경제포럼(WEF) 연차 총회가 이때 여기에서 열리기 때문이다. 매년 시장 경제와 자유 무역을 신봉하는 전세계의 파워 엘리트들이 한자리에 모여 지구촌 공통의 문제를 놓고 해결책을 모색하는 다보스 포럼이 1월23일(현지시간)부터 27일까지 닷새간의 일정으로 열렸다.
미국 금융 시장을 강타한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부실로 세계 증시가 동반 폭락하는 등 연초부터 터져나온 미국발 경기 침체의 우려는 다보스 포럼이 열리는 콩그레스센터에도 깊은 그늘을 드리웠다. 올해 주제는 ‘협력적 혁신의 힘(Power of Collaborative Innovation)’이었으나  포럼에 참석한  27개국 정상, 1백13명의 각료 등 세계 88개국의 정·재계, 문화계 인사 2천5백여 명은 위기에 처한 세계 경제를 어떻게 회생시킬 것인가를 놓고 머리를 맞댔다. △미국발 서브프라임 모기지론 부실 사태 △점점 증대하는 식량안보 위협 △급등하는 에너지 가격 등 세계경제포럼이 펴낸 ‘글로벌 리스트 2008’ 보고서도 세계화라는 장밋빛 전망에 깃든 불확실성의 불길한 그림자를 드러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가 기준 금리를 0.75%나 인하하는 극약 처방을 내린 직후라서 그런지 2008년 세계 경제 전망 토론회에서는 예상을 뛰어넘은 미국 FRB의 긴급 금리 인하 조치와 미국의 경기 침체, 신흥 경제권의 디커플링(탈동조화) 여부가 도마에 올랐다.

조지 소로스 “달러화의 시대는 끝났다”

세계적인 헤지펀드 투자가인 조지 소로스와 미국 클린턴 행정부 당시 미국 재무장관을 지냈던 로렌스 서머스 전 하버드 대학 총장, 조지프 스티글리츠 전 세계은행(IBRD) 부총재는 “미국 FRB의 긴급 금리 인하 조치가 세계 중앙 은행들의 통제력 상실을 보여주었다”라며 중앙 은행들의 미숙한 초기 대응을 지적했다.
  소로스 퀀텀펀드 회장은 “현 위기는 주택 시장 버블의 붕괴일 뿐만 아니라 2차대전 이후 지난 60년 동안 달러화에 기반을 두고 신용 팽창을 해온 시대가 종말을 고했음을 의미한다”라고 비관적 분석을 내놓았다. 블룸버그 통신에 따르면 서브프라임 사태로 지난 3분기 전세계 외환보유고에서 달러화가 차지하는 비중은 3개월 전 65%에서 63.8%로 낮아졌다. 스티븐 로치 모건스탠리 아시아 담당 회장은 “FRB가 미국 경제에 엄청난 유동성을 주입하고 있지만, 과도한 통화량은 또 다른 버블 경제를 낳을 것이다”라고 우려했다.
이른바 브릭스(BRICs)로 일컬어지는 중국, 인도, 브라질 등 신흥 경제권이 미국 경제와는 무관하게 성장을 지속하는 디커플링(국가 간 경기가 독자적인 흐름을 보이는 현상)이 가능할 것인지, 그럴 경우 미국 경제 침체의 파장이 상쇄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해서도 열띤 토론이 벌어졌다. 
스티븐 로치 모건스탠리 아시아 담당 회장은 “미국 소비자들이 어려움에 처하면 복원력이 강하지 않은 나머지 세계는 큰 영향을 받을 것이다”라고 주장했다. 뉴욕 소재 루비니 글로벌 이코노믹스의 창립자 겸 회장인 누리엘 루비니 뉴욕 대학 경제학과 교수는 “미국이 재채기를 하면 전세계 경제는 감기에 걸린다’는 속설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동유럽 국가들은 대부분 자국 통화가 아니라 유로화로 주택담보 대출을 받고 있어 이들 국가의 통화 가치가 하락하기 시작할 경우 많은 모기지 대출자들이 파산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루비니 교수는 1년 전 미국 주택시장 부진과 이에 따른 신용 시장 경색을 정확히 예측한 바 있다.

 

“미국 경기 침체는 Yes, 글로벌 경기 침체는 No” 분석이 우세

그러나 중국과 인도를 비롯한 아시아는 미국발 경제 침체에 어느 정도 영향은 받겠지만 그 타격은 일정한 수준에 국한될 것이라는 분석이 우세했다. 로치 회장은 소비 시장이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중국(1조 달러)과 인도(5천억 달러)에 대해서는 낙관적인 견해를 보였다.
유용딩 중국 사회과학원 세계경제정치연구소 소장은 중국의 급성장과 미국 이외 다른 나라들과의 교역량 규모를 들어 “중국은 어떤 침체에도 대응할 수 있을 것”이라는 낙관론을 폈다. 유 소장은 그러나 “중국 경제는 매년 2천4백만명의 고용 창출이 필요한데 지난해의 경우 가파른 성장세를 지속해왔음에도 1천만명분의 일자리를 창출하는 데 그쳤다”라고 설명했다. 카말 나스 인도 통상장관도 “동아시아는 미국 경제에 대한 의존도가 이전보다 낮아졌으며 인도 경제 역시 해외 투자자들보다 국내 수요에 의한 성장세가 가속화하고 있다”라고 밝혔다.
한편 ‘아시아의 새로운 행위자들’이라는 토론회에 참석한 한·중·일·싱가포르 패널들은 서구의 경제 침체에도 아시아 국가들의 경제성장률이 지속적으로 호조를 보임에 따라 미국의 금융 위기가 아시아를 뒤흔들 것으로 보지 않는다는 데 의견을 같이했다. 특히 아시아의 국부 펀드(state wealth fund)들이 미국과 유럽의 거대 금융 회사들에 대한 구제에 나선 것은 아시아에 새로운 자신감을 부여하고 있으며 젊은 세대들 사이에서는 아시아 국가들이 선진국의 지위에 오를 것이라는 믿음이 확산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다보스 포럼이 열리기 직전 전세계 최고 경영자 1천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향후 1년 동안 자국 경제 상황이 좋아질 것이라고 답변한 서구 CEO들은 미국 36%, 캐나다 33%, 프랑스 28%에 불과했다. 반면 아시아의 CEO들은 인도 90%, 중국 73%, 한국 57% 등의 순으로 자국의 경제상황에 낙관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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