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장 질환에는 아스피린이 최고?
  • 이성희 (인제의대 서울백병원) ()
  • 승인 2008.01.28 1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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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와 의논하고 효과 따져봐야…잘못 먹으면 뇌출혈 위험

 
65세인 김 아무개씨는 2~3주 전부터 시작된 속쓰림 증상 때문에 병원을 찾게 되었다. 그는 2년 전에 고혈압 진단을 받고 항고혈압제를 처방받아 하루에 한 알씩 복용하고 있다. 최근에 친한 친구가 중풍 예방 목적으로 고혈압약과 함께 아스피린을 먹고 있다는 말을 들은 후, 할아버지께서 중풍으로 돌아가신 것이 생각나 한 달 전부터 약국에서 아스피린을 구입해 먹었다고 한다. 2년 전에 종합 검진을 받았는데 고혈압 외에 다른 병은 없었다. 가족력을 조사했을 때 아버지와 할아버지 두 분 다 고혈압이 있었으며, 할아버지께서는 뇌출혈 후 중풍으로 앓으시다가 돌아가셨다고 했다. 김씨의 경우 두 가지 접근이 필요한데, 첫째는 속쓰림의 원인을 찾아 치료하는 것이고, 두 번째는 현 상태에서 중풍 예방 목적으로 아스피린을 먹을 필요가 있는가를 평가하는 것이다.
아스피린은 잘 알려진 진통·소염·해열 작용 외에 혈액 응고를 방지하는 기능을 가지고 있다. 우리 혈액 내의 혈소판은 상처를 입거나 출혈이 있을 때 상처 부위로 이동해 지혈 작용을 하는데, 동맥경화증으로 이미 좁아진 혈관 내에서 혈전을 형성함으로써 뇌경색 또는 심근경색을 유발할 수도 있다. 아스피린은 이러한 혈소판의 작용을 방해하는 항혈소판 작용을 하므로 뇌경색 또는 심근경색을 앓은 후 재발을 방지하기 위해 종종 처방된다. 많은 연구들을 통해 뇌혈관 또는 심혈관 질환의 병력이 있는 환자들이 아스피린을 포함한 항혈소판제를 복용할 경우 심혈관 질환에 의한 사망이나 치명적인 심혈관 질환의 발생률을 현저하게 줄여준다는 사실이 입증되었다.
그러나 김 아무개씨의 경우처럼 중풍이나 심장질환의 병력이 없는 무증상 성인에게 1차 예방을 목적으로 아스피린을 복용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논란이 되고 있다. 서양에서 수행된 대규모 임상 시험 결과들을 종합해보면, 아스피린의 복용이 관상동맥 심질환의 발생 위험은 유의하게 낮추었으나 뇌졸중에 대한 예방 효과는 유의하지 않았으며 전체 사망률을 낮추는 효과도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따라서 2002년 미국 질병예방위원회에서는 관상동맥 심질환의 발생 위험이 높은 성인의 경우 아스피린 예방 요법에 대해 고려하되 아스피린의 복용으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이득과 손해를 반드시 언급하도록 권고했다.

고용량으로 복용하면 청력 손실 원인 되기도

아스피린의 복용으로 인한 손해는 무엇일까? 아스피린이 혈액 응고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혈소판 작용을 억제함으로써 발생할 수 있는 출혈의 위험이다. 연구 결과마다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아스피린의 복용으로 인해 뇌출혈의 발생 위험이 커지며, 특히 복용한 용량이 많을수록 더 커졌다. 또 위염, 위십이지장 궤양 및 위장관 출혈의 발생 위험이 1.5~2배 정도 높아졌고, 이는 100mg 이하의 저용량 아스피린을 복용한 경우에도 마찬가지였다.
따라서 서양에 비해 우리나라처럼 위장관 질환의 유병률이 높고 뇌졸중 중 뇌출혈의 상대적 비중이 높은 경우에는 아스피린의 위험을 더더욱 심각하게 고려해야 할 것이다. 김 아무개씨의 경우에도 위 내시경 검사를 시행한 결과 위점막이 일부 탈락하고 출혈의 흔적이 관찰되어 급성 미란성 위염으로 진단받았으며, 특별한 유발 요인이 없는 것으로 미루어볼 때 아스피린 복용으로 인한 것으로 추정되었다.
출혈 외에도 아스피린은 알레르기 반응을 유발할 수 있어 천식이 있는 경우 주의를 요하며 고용량으로 복용했을 때 이명증이나 청력 손실의 원인이 될 수도 있다. 또 음주를 자주 하는 경우 위장관 질환의 발생 위험이 높아질 뿐만 아니라 아스피린으로 인한 출혈의 위험이 더 커지므로 주의를 요한다.
따라서 심혈관 질환의 병력이 전혀 없는 경우 아스피린 복용을 시작할 때에는 반드시 주치의와 의논해 아스피린 복용으로 인한 이득과 위험을 따져보고 이득이 훨씬 많다고 판단될 때에 한해, 위장관 자극을 최소화한 코팅이 된 저용량 제제로 처방받아 복용해야 한다. 미국질병예방위원회에서는 5년 내에 관상동맥 심질환이 발생할 위험이 3% 이상인 경우에만 아스피린의 이득이 위험보다 크다고 밝혔으며, 최근에 일본에서 수행된 연구 결과에 의하면 50세 이상 중년 남성 중 고혈압과 당뇨병이 동시에 있는 경우에, 또 중년 여성 중 고혈압, 당뇨병 및 고지혈증이나 흡연 등의 다른 위험 요인을 더 가지고 있는 경우에 한해 관상동맥 심질환 예방을 목적으로 아스피린 복용을 고려하라고 권고했다. 김 아무개씨의 경우 심혈관 질환의 과거력이 전혀 없고, 연령이나 고혈압 외에 다른 위험 요인이 없으며, 현재 위장관 합병증이 발생한 점을 고려해볼 때 아스피린 복용으로 인한 이득이 더 크다고 볼 수 없다. 주변에서 좋다고 하니까, 막연하게 뇌졸중 예방에 도움이 된다니까 손쉽게 구입해서 아스피린을 복용하는 것은 혈관의 노화로 인한 출혈 위험이 커지는 노인에서는 특히 위험한 일이다. 반드시 담당 의사와 상의한 뒤 현재 가지고 있는 심혈관 질환의 위험 요소를 평가해보고 이득과 손해를 저울질 한 뒤에 신중하게 결정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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