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 창업’ 꿈꾸는 CEO들
  • 이석 기자 ls@sisapress.com ()
  • 승인 2008.02.01 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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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선을 앞두고 경제계 인사들의 출사표가 잇따르고 있다. ‘경제 대통령’의 시대가 오면서 총선 시장에서 경제계 인사들도 두각을 나타낼 것 같다. 이들 중에는 그룹 오너 수준의 거물급이 다수 있어 눈길을 끈다.
김호연 빙그레 회장이 대표적인 예이다. 재계 안팎에서 김회장은 ‘은둔의 경영자’라고 불린다. 모든 일을 조용하게 처리해 생긴 별명이다. 그러나 그는 지난 1월22일 총선 출마를 선언하면서 한나라당에 입당했다. 지역구는 그의 고향인 천안이다.
김회장의 한 측근은 “천안 지역은 선대 회장부터 연고가 있는 지역이다. 백부인 고 김종철 전 국민당 총재가 이곳에서 6선을 기록했다. 숙부인 김종식 전 의원이 천안에서 13대 국회 때 활동했다. 이런 연고가 출마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알고 있다”라고 말했다.
그는 그러나 김회장의 이번 출마가 갑작스러운 결정은 아니라고 말했다. 기자는 지난 1월30일 김회장과의 서면 인터뷰를 통해 정치 입문 계기를 자세히 들을 수 있었다. 그는 “오래전부터 정치에 참여할 뜻을 키워왔다. 꾸준히 준비도 해왔다. 적자투성이의 빙그레를 우량 기업으로 탈바꿈시킨 경영 노하우를 바탕으로 새로운 정치판을 짜는 데 일조하고 싶다”라고 말했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김회장이 재벌 기업 오너였다는 사실에 우려를 내비치고 있다. 그러자 김회장은 “정치에 전념하기 위해 회장직을 내놓을 의사도 있다”라고 말했다. 그는 “잘나가는 기업을 편하게 물려받은 것이 아니다. 부채 비율 4000%, 누적 적자 100억원이었던 기업을 지난 10년간 부채비율 50%, 순이익 4백억원의 기업으로 변신시켰다”라고 설명했다.
주진우 사조그룹 회장도 최근 경북 고령·성주·칠곡에서 출사표를 던졌다. 그는 기업인이면서 15대와 16대 국회의원을 지낸 정치 원로이다. 그러나 17대 선거에는 출마하지 않았다. 자신의 사조그룹 경영에 매진하기 위해 정치를 잠깐 쉬었다. 그는 “지난 4년 동안 사조C&F(구 신동방), 대림수산, 오양수산 등을 인수하면서 적자 기업을 흑자로 돌려놓았다”라고 자랑했다.
그러나 지난 국회의원 생활에 대해서는 줄곧 미련이 남아 있다.나름으로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했지만 유종의 미를 거두었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정치에 다시 도전하게 된 것도 그런 이유에서라고 한다.
그는 “우리나라는 아직도 외국인에게 투자 규제와 위험성이 많은 나라로 인식되고 있다. 기업들이 재생산을 위해 투자할 수 있는 기반 마련이 절실하다.”라고 포부룰 밝혔다.
성완종 경남기업 회장도 현재 고향인 충남 서산·태안 선거구 출마를 적극 검토 중이다. 성회장은 그동안 서산장학재단 이사장, 대한건설협회 부회장, 한국자유총연맹 이사, 충청포럼 회장 등으로 활발한 대외 활동을 벌여왔다. 경남기업도 현재 연매출 2조원의 대형 건설 업체로 성장시켰다. 그러나 유독 정치와는 인연이 없었다. 16대 총선에서 자민련 비례대표 2번에 배정되었지만 비례 득표율 미달로 꿈이 무산되었다.

 

기업 일원들도 “가자, 여의도로”

이후 그는 언론 등을 통해 “정치에 대한 미련은 버렸다”라고 말해왔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명예 회복을 위한 출마 준비를 꾸준히 해온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특히 올해는 친동생인 성일종 앤바이오컨스 대표도 같은 지역구에서 거론되고 있어 눈길을 끌고 있다.
기업 오너가 아닌 전·현직 CEO나 기업 임원들 사이에서도 총선 출마 선언이 잇따르고 있다.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의 비서 출신인 백기승씨가 우선 눈길을 끈다. 대우그룹 안팎에서 그는 ‘김우중 회장의 입’으로 통한다. 30대에 그룹 임원으로 발탁되어 그룹이 공중분해될 때까지 홍보총괄이사를 지냈다. 지난 대통령 선거의 한나라당 경선 때는 박근혜 캠프의 홍보기획단을 맡아 정계에 입문했다. 백씨는 최근 이같은 경험을 바탕으로 하남 지역에 예비 후보자 등록 신청서를 냈다. 그는 “첫 직장이자 정신적으로 마지막 직장인 대우그룹 시절 청년기를 보낸 인연이 있는 하남에서 새로 출발하게 되어 감회가 깊다”라고 말했다.

 

통합신당·민주당, 상대적 인물난에 ‘허탈’

이밖에 박상은 전 대한제당 대표도 인천에서 출마할 예정이고, 황영기 전 우리금융지주 회장 역시 총선 출마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이당선인의 외곽 조직인 ‘선진국민연대’의 대표 이학봉 화신폴리텍 사장과 김진재 전 의원의 아들인 김세연 동일벨트 대표는 각각 인천과 서울 중구에 출마할 예정이다.
한나라당과 비교할 때 수적으로 열세이기는 하지만 대통합민주신당이나 민주당에서도 경제계 인사들이 나설 것 같다. 통합신당의 경우 이동룡 전 기아차 부사장과 한승두 한경프루베 대표가 각각 광명 을과 경북 상주에 예비 후보 등록을 했다. 민주당에서는 이강봉 전 금호아시아나그룹 부사장이 전북 고창·부안에 출마할 예정이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4·9 총선을 통해 여의도 진출을 노리는 경제계 인사들은 한나라당이 대부분이다. 당 지지율이 50%에 육박하면서 ‘한나라당 공천=당선’이라고 여기는 경향 때문으로 풀이되고 있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기업인들의 잇따른 정치 참여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도 엿보인다. 이들이 경제 전문가로서보다는 시류에 편성해 외도를 하는 게 아니냐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김호연 빙그레 회장은 “시대착오적인 생각이다”라고 잘라 말한다. 그는 “합리성·효율성·실용성뿐 아니라 추진력을 겸비한 기업가 마인드가 정치에서도 반드시 필요하다. 이번 대통령 선거에서 CEO 출신인 이명박 당선인이 선택된 것이 이같은 시대적 흐름을 반영하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백기승 전 대우그룹 이사도 “다양한 산업 분야 경험과 지식을 갖춘 경제 전문가는 정치 현장에서 보기 힘들다. 우리 정치에서도 이제는 경제인 출신 국회의원이 많이 배출되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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