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 담 넘는 ‘투명 인간’들이 날뛴다
  • 정락인 기자 freedom@sisapress.com ()
  • 승인 2008.02.01 1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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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7월 초 인천국제공항. 정체불명의 한국인 7명이 출국장에 나타났다. 이들은 한참 동안 출국장 앞을 서성거리다가 인솔자로 보이는 사람 곁으로 모여들었다. 그는 무언가를 열심히 설명하고, 몇 번씩 당부하는 듯이 보였다. 인솔자의 말이 끝나자 한 사람씩 서둘러 출국장을 빠져나갔다. 모두 캐나다행 비행기를 탔다.
며칠 후 이들이 모습을 나타낸 곳은 캐나다와 미국 국경 지역의 한 야산. 어깨에는 보따리 하나씩을 둘러맨 채 어둠이 짙게 드리운 산을 조심스럽게 기어오르고 있었다. 산 중턱을 넘어 미국 국경에 다다르자 맨 앞에 있던 사람이 갑자기 뛰기 시작했다. 그러자 뒤따르던 사람들도 한꺼번에 내달렸다. 이들은 캐나다에서 미국으로 ‘점프’하는 밀입국자들이다. 국경을 넘은 것도 잠시, 뒤쫓아온 미국 이민국 수사관들에게 모조리 체포되었다. 결국 수용소를 거쳐 한국으로 추방되는 신세가 되었다.
국가정보원 국제범죄정보센터 소속 수사관들은 인천공항에서부터 이들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고 있었다. 미국 이민국과 캐나다 연방 경찰 등과도 이미 공조 체제를 갖추었다. 국정원은 이들의 미국 밀입국을 도운 최대 밀입국 총책을 캐나다에서 체포했다. 이름은 알렉스(한국명 손진규). 그는 한국계 캐나다인으로 지난 10년 동안 한국인 1천명을 밀입국시킨 ‘미국 밀입국 대부’이다. 알렉스는 캐나다 밀입국 3대 조직 중 최대 조직을 운영하고 있었다.

캐나다 경유 미국 밀입국 알선비는 1만 달러

캐나다와 미국 접경 지역인 밴쿠버와 토론토는 한국인들이 미국 밀입국을 위해 주로 이용하는 경로이다. 한때는 멕시코 국경을 이용했으나 경계가 강화되자 캐나다 쪽으로 옮겼다. 캐나다와 멕시코는 미국과 무비자 협정을 맺고 있어 입국이 상대적으로 쉬운 편이다.
지난해 12월에는 캐나다 국경을 넘어 미국으로 밀입국하려던 한국인 8명이 미국 국경경비대에 체포되었다. 여기에는 두 명의 어린이가 포함되어 있었다. 이들은 몰래 국경을 넘어 한적한 농장 지역을 걸어가다 주민들의 신고로 붙잡혔다.
밀입국자들이 브로커들에게 지불하는 알선비는 1인당 1만 달러 정도. 밀입국 브로커들은 캐나다의 공항에서 한국인들을 접선한 후 걸어서 국경을 넘게 한다. 국경을 넘으면 미국 쪽에 미리 대기하고 있던 차에 실어 목적지로 데려다준다.
최근에는 미국인 백인 남성을 밀입국자 남편으로 가장시키는 신종 방법이 생겨났다. 한국인 부인을 둔 미국인 백인 남성이 운반책을 맡는다. 이들은 자신의 부인 여권 사진의 외모와 밀입국 여성의 외모를 비슷하게 꾸민 후 국경 심사대를 통과한다. 미국 이민국이 백인 남성에 대해서는 단속을 소홀히 한다는 점에 착안했다. 캐나다 국경 지역에서는 수십 명의 백인 남성이 운반책으로 활동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사례비도 1인당 5천~7천 달러 선으로 비교적 저렴한 편이다.
밀입국에 성공한 한국인들은 대부분 한인타운으로 흘러들어간다. 룸싸롱, 안마시술소, 마사지 업소 등 유흥업소에 취업한 후 성매매를 일삼는다. 현재 미국에는 약 21만명의 한국인 불법 체류자가 숨어 있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한국인들의 원정 성매매는 한국 사회나 미국 사회에 심각한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 종종 미국 입국을 거부당한 기러기 엄마나 불법 체류하다가 추방당한 사람들도 밀입국자들 속에 끼어 있다.
김성태씨(27·가명)는 미국 밀입국을 엿보고 있다. 그는 미국에서 5년 정도 생활하다가 한국으로 추방되었다. 김씨의 가족과 친지들은 대부분 미국에 거주하고 있고, 한국에서는 김씨 혼자 생활하고 있다. 그가 선택한 것은 캐나다를 경유한 미국으로의 점프이다. 밀입국하다 국경경비대나 이민국에 체포되어도 벌금을 내거나 변호사를 고용해서 그린카드(영주권)를 받을 생각이다. 다행히 붙잡히지 않으면 다른 사람 명의로 그린카드를 받겠다는 치밀한 계획까지 세워놓았다. 김씨는 인터넷을 통해 밀입국 브로커와 접촉 중이다.
오는 7월부터는 미국도 무비자 입국이 가능해진다. 현지 한인 언론 매체들에 따르면 무비자 시행을 앞두고 한인타운에는 기대와 우려가 교차하고 있다. 관광 활성화를 기대하는 한편 불법 체류자가 늘어날 것을 염려하고 있는 것이다. 미국은 한국에 비자면제프로그램(VWP)을 시행하기 전에 불법 체류자 단속을 강화하고 있다.
미국 밀입국과 달리 일본 밀입국은 주로 해상을 통해 이루어진다. 밀입국 목적은 역시 취업이다. 일본 경제의 호황에 따라 유흥업소 접대부, 마사지 업소 종사자의 수요가 급증하고 있다. 한국과 일본이 연계한 브로커 조직도 덩달아 늘어났다.
일본 밀입국을 희망하는 사람들은 한국인과 국내에 체류하고 있는 외국인들이다. 특히 여성이 다수를 차지한다. 미국 밀입국과 마찬가지로 모집책과 운반책이 역할을 분담한다.
밀입국에 성공하면 일본 내 유흥업소에 취업하고 성매매에 나선다. 일본의 술집과 마사지 업소 등에서 일하는 한국인 접대부들 대다수가 불법체류자들이다. 식당 종업원과 건설현장 노무자로 일하는 불법 체류자들도 상당수이다.
해양경찰청은 지난해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밀입국을 알선한 브로커 조직을 붙잡았다. 이들은 같은 해 7월31일 경남 거제시 둔덕면 어구리 포구에서 한국인 5명을 고속 잠수기 어선에 태우고 일본 후쿠오카로 출항했다. 후쿠오카에 도착해 5명을 하선시킨 후 또 다른 한국인 5명을 태우고 데려오다가 해경의 포위망에 걸려들었다. 이들은 지금까지 총 4회에 걸쳐 49명을 국내외에 밀입국시킨 것으로 드러났다. 현재 일본에는 약 5만여 명의 한국인이 불법 체류자 신분으로 숨어 지내고 있다.
지난 2000~2007년까지 바다를 통한 해외 밀입국 시도는 총 29건(1백73명). 국적은 한국인 94명(54%)과 외국인 79명(46%)이다. 밀입국을 알선한 선박 유형으로는 화물선(17건)이 가장 많았으며, 다음으로 어선(9건), 여객선(2건), 육상(1건) 순이다.
전세계적으로 해외 출국자에 대해서는 검문 검색이 까다롭지 않다. 우선 국익에 해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이유로 들고 있다. 또 각국이 자국 내 입국자에 대한 검문 검색을 강화함으로써 밀입국이 여의치 않다고 본다.
때문에 한국인의 해외 밀입국에 대한 통계는 국내 밀입국에 비해 상대적으로 빈약하다. 미국과 일본이 한국인 밀입국자들로 인해 골머리를 앓고 있는 반면, 우리나라에서는 중국과 동남 아시아인들의 국내 밀입국이 심각한 사회 문제를 야기하고 있다.
법무부에 따르면 지난해 말 현재 국내에 체류하고 있는 외국인은 총 1백6만6천2백91명. 이 중 불법체류자는 22만3천4백64명으로 2006년보다 1만1천4백76명(5.4%)이 증가했다. 불법 체류자 다수가 밀입국자들임을 감안하면 전체 외국인 체류자 10명 중 2명은 밀입국자인 셈이다. 여기에 외국인 밀입국 유학생까지 합치면 그 숫자는 30만여 명에 이른다.

 

한국 밀입국 광고 넘쳐나는 중국

중국은 어느 지역을 가도 한국 밀입국을 알선하는 광고들이 넘쳐난다. ‘한국 결혼’ ‘남녀 위장결혼’ ‘한국 유학’ ‘한국 입국’ 등의 광고로 도배하다시피 한다. 한국은 중국, 동남아시아 국가들에 비해 약 5~10배 임금이 높다. 때문에 알선 브로커들은 한국에 가면 떼돈을 벌 수 있다고 선전한다. 이러다 보니 중국인과 조선족 동포들은 누구나 한번쯤 한국행을 꿈꾸고 있다.
국정원에 따르면 중국 내 밀입국의 근원지는 동북 3성과 산동성, 절강성, 복건성 등이다. 이들 지역은 중국 교포와 탈북자들이 많이 거주하는 지역이다. 밀입국자들 90% 이상이 이곳에서 출발해 국내로 들어왔다. 국내 침투는 그동안 서·남해안이 주요 루트로 이용되었다. 리아스식 해안으로 크고 작은 섬이 많아 침투가 비교적 쉬웠기 때문이다. 요즘은 동해안도 밀입국자들의 타깃이 되고 있다. 국내 전지역이 밀입국자들의 침투 지역이나 다름없다.
중국에서 한국으로 넘어오는 경로도 진화를 거듭하고 있다. 초창기에는 해상을 통한 밀입국이 주류를 이루었다. 선원 수첩을 위조하거나 선박에 몰래 숨어드는 방법으로 밀입국을 시도했다. 해상 밀입국은 점차 감소하는 추세이지만 안심하기는 이르다. 지난해 6월 중국인 밀입국자 88명이 국정원과 해경의 합동 작전으로 적발되었다. 이들은 중국발 일본행 선박을 이용해 공해상에서 한국 어선으로 환승했다. 해상 밀입국에 대한 밀입국 수요가 상당하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준 사례이다.
기존에는 중국 알선책과 국내 알선책이 연계해 30t 미만의 소형 어선을 많이 이용했다. 위의 사례처럼 중국 선박에 승선한 후 공해상에서 우리 어선에 환승하는 수법으로 밀입국을 시도하거나, 중국 국적 유조선이나 소형 보트 등을 이용해 직접 밀입국을 시도했다.
그러나 최근에는 단속망을 피하기 위해 국내 항로가 아닌 중국↔일본 간 화물선, 컨테이너 운반선 선원들과 공모해 밀입국하고 있다. 송일종 해양경찰청 국제범죄수사단장은 “그동안 밀입국 첩보를 입수해 대부분 검거했다. 국내 알선책의 경우 최근 7년간 4백14명을 입건했고, 현장에서 도주한 24명을 제외하고는 95% 알선책을 붙잡았다”라고 말했다.
해상과 공항에 대한 단속이 강화되자 합법을 가장한 불법 입국이 성행하고 있다. 여기에는 허위 초청, 산업 시찰, 위장 결혼 등의 방법이 동원된다. 불법 입국은 주로 공항을 통해 들어온다. 법무부 출입국 외국인정책본부는 지난해 1백85건의 밀입국 사범을 적발했다. 전년에 비해 89건(92.7%)이 증가한 수치이다.
지난해에는 ‘창원 월드컵 사격 대회’에 참가한 키르기스스탄의 선수단장을 비롯한 19명이 시합용 총조차 휴대하지 않은 채 입국한 후 잠적했다. 또 청주에서 개최된 ‘직지컵 국제 장애인 사격 대회’에 선수로 참가하는 것처럼 위장해 입국하려던 우즈베키스탄과 몽골인 등 11명이 인천공항에서 강제 퇴거되었다. 춘천 마임 축제에 참가한 몽골 공연팀 8명 중 6명이 잠적한 일도 있었다.
국정원 국제범죄정보센터 관계자는 “밀입국자는 국내 노동력 시장 잠식, 집단 거주지의 우범 지대화, 성매매 종사 등 사회적 해악이 커서 입국을 원천적으로 차단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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