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특검 칼날 법조계 성역 ‘김앤장’도 겨누나
  • 감명국 기자 kham@sisapress.com ()
  • 승인 2008.02.18 1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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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특검’ 수사팀을 이끌고 있는 조준웅 특별검사는 취임 일성으로 “성역 없는 수사를 펼치겠다”라고 밝혔다.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 일가를 지칭하는 말이었다. 하지만 성역은 또 있었다. 국내 최대 로펌으로 평가받는 ‘김앤장’이다. 지난해 12월 대한변호사협회가 특검 후보 인선 작업을 벌일 당시 ‘구인난’으로 상당히 애를 먹었던 데에는 김앤장도 큰 요인으로 작용했다. 김앤장 소속이나 출신 변호사들은 모두 걸러내야 했기 때문이다. 이는 역설적으로 국내 법조계에 미치는 김앤장의 막대한 영향력과 함께 김앤장과 삼성의 긴밀한 관계를 대변해주는 셈이다.

지난 1월 출간된 책 <법률사무소 김앤장>은 김앤장이 갖는 위력을 다음과 같은 표현으로 설명하고 있다. ‘법조계에는 이런 이야기가 있다. 재벌 기업의 법무실이나 회사 중역들 중에는 김앤장 소속이 아닌 변호사들과 친분이 있고 또 그들이 김앤장 변호사보다 실력이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이 많다. 그러나 그들 역시 큰 사건이라면 모두 김앤장을 찾는다. 왜 그럴까? 만약 김앤장이 아닌 곳에 맡겨 패소하면 상부에서는 “왜 김앤장에 맡기지 않았는가, 그러니 진 거지”라고 질책한다. 다른 변호사에게 맡겨도 승소했을 사건을 김앤장에 맡겨 이기게 되면 “그것 봐라, 김앤장이니까 되잖아” 그런단다. 김앤장에 맡겼는데 패소하면 “김앤장도 안 되는데 별수 없는 거지”라고 한단다.’

지난해 김승연 회장 보복 폭행 사건으로 큰 위기를 맞았던 한화그룹 역시 당시 김앤장을 찾았다. 한화의 한 관계자는 당시의 상황에 대해 “우리는 삼성이나 현대 등 여타 대기업에 비해 김앤장과 별 거래가 없는 편이었다. 하지만 당시에는 워낙 다급한 상황이라 김앤장을 찾을 수밖에 없었다”라고 밝혔다.
그러나 한화는 이후 변호인을 교체했다. 이 관계자는 “들이는 비용에 비해 큰 실효를 못 얻고 있다는 내부 지적이 많았다”라고 그 이유를 설명했다. 그는 “단순 비교는 어렵지만 다른 대형 로펌에 비해 김앤장의 경우 비용이 1.5배 정도 더 들어간다고 봐야 한다. 기업으로서는 엄청난 부담일 수밖에 없다”라고 덧붙였다.

김앤장측 “기업과 정상적 거래” 강력 반발

언제부터인가 삼성과 김앤장은 불가분의 관계인 것처럼 인식되기 시작했다. 국내 ‘제일’의 재벌 그룹과 로펌의 결합이라는 점에서 엄청난 위력을 담보로 하는 셈이다. 여기에 역시 국내 제일의 회계법인으로 꼽히는 삼일회계법인까지 묶기도 한다. 삼성 비자금 의혹을 폭로했던 김용철 변호사는 지난해 11월 “김앤장과 삼일회계법인도 삼성의 불법 행위에 동조했다”라고 주장했다. 실제 최근 삼성의 주요 사건에 대한 법률 자문과 소송의 대부분을 김앤장이 담당하고 있다. 삼성전자·삼성물산·삼성중공업 등 삼성의 주요 계열사 대부분이 몇 년째 삼일회계법인에만 감사를 맡기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에 대해 김앤장과 삼일회계법인측은 “기업과의 정상적인 거래일 뿐, 전혀 사실과 다르다”라고 강력하게 반발하고 나섰다.

 

삼성에버랜드와 서울통신기술의 전환사채 발행, 삼성SDS 신주인수권부사채 발행 사건 등 삼성의 불법 경영권 승계 의혹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사건들의 경우, 삼성측 변론은 어김없이 김앤장에서 담당하고 있다. 에버랜드 전환사채 발행 때 실권한 제일모직의 소액주주들이 이건희 회장 등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 역시 김앤장이 맡았다. 그러다 보니 특검팀 주변에서 끊임없이 김앤장이 거론되고 있다.
삼성과 김앤장의 인적 교류도 눈에 띈다. 김앤장 소속 인사들 가운데 서울지방국세청장을 지낸 이주석·황재성 고문은 각각 삼성증권과 삼성전자의 사외이사직을 맡고 있다. 윤동민 전 법무부 기획실장도 삼성전자 사외이사로 있다. 김철민 전 남대문세무서장은 삼성엔지니어링 사외이사이다.
삼성과 김앤장을 연결해주는 인맥의 ‘아이콘’은 이종왕 전 삼성 법무실장이다. 한때 ‘검찰총장 재목’으로 꼽힐 정도로 잘 나갔던 그는 1999년 옷로비 사건에 연루된 당시 박주선 청와대 법무비서관의 사법 처리를 주장하다가 권력층과 마찰을 빚으면서 옷을 벗었다. 그리고 2002년 김앤장에 몸을 담았다. 그는 노무현 대통령의 사시 동기 모임인 이른바 ‘8인회’의 멤버로 현 정권에서 크게 주목받았다. 2004년 노대통령이 탄핵 위기에 처했을 때 대통령 변호인단에 참가하기도 했다. 2002년 대선 때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 쪽에 가까웠던 김앤장의 인적 구성이었기에 노무현 정권 출범에 따른 이 전 실장의 존재는 단연 돋보였다. 이 전 실장은 김용철 변호사 후임으로 2004년 김앤장에서 삼성 법무실장으로 옮겨갔다. 결과적으로 그는 노무현 정부와 삼성 그리고 김앤장의 세 축을 연결하는 가교 역할을 한 셈이었다. 김변호사의 폭로가 있고 난 직후 그는 법무실장직을 전격적으로 사퇴했다.

특검 정국에 즈음해서 김앤장의 독주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김앤장>의 공동 저자인 임종인 무소속 의원은 “김앤장은 형식적으로는 합동법률사무소이지만 국세청에는 개개인의 변호사들이 대표가 되는 ‘공동 사업자’로 신고하고 있다. 이러한 기형적인 조직 형태를 통해 변호사법에서 금지한 쌍방 대리도 가능한 것이다”라고 지적했다. 쌍방 대리란, 소송 당사자인 A와 B의 양측 변론을 모두 동일한 변호인이나 법무법인이 담당하는 것을 말한다. 이는 변호사법으로 금지돼 있다.
이에 대해 김앤장의 한 관계자는 “쌍방 대리라는 표현부터가 잘못된 것이다”라고 반박했다. 그는 “법적인 용어로는 수임 제한 규정인데 우리는 여기에 어긋나게 한 적이 한 번도 없다. ‘조직 형태가 그러니 규정에 반하는 행위도 할 것이다’라는 식의 막연한 의심만으론 곤란하다”고 밝혔다. 기자가 김앤장이 양측 모두 담당한 것으로 문제가 된바 있는 SK-소버린 소송 분쟁과 외환은행-라이나생명 법률 자문 사건을 예로 제시하자 “전자의 경우 이미 대한변협에서 책임이 없는 것으로 판명이 났고, 후자의 경우는 법률 자문으로 자문의 경우는 양측의 동의를 얻으면 가능하다”라고 해명했다. 이 관계자는 “이처럼 책에서 사실 관계와  다른 내용을 많이 담고 있어 현재 그 문제점을 면밀히 검토하고 있다”라고 덧붙였다.

현재 특검은 고민에 빠져 있다. 참여연대 등 시민단체들은 “국세청과 금감원, 그리고 김앤장에 대한 본격적인 수사가 필요하다”라는 입장을 특검팀에 줄기차게 전달하고 있다. 특검 역시 내부적으로는 이에 공감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국세청과 금감원에 대해서는 이미 강한 압박을 하고 있다. 하지만 김앤장에 대해서는 여전히 조심스럽다. 윤정석 특검보는 지난 2월11일 기자 브리핑에서 “김앤장으로부터 삼성 관련 소송내역 등에 대한 자료를 받았다”라고 밝혔다. 하지만 계속되는 취재진의 질문에 “김앤장이 직접적인 수사 대상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라는 입장을 밝혔다.
그런 가운데 한쪽에서는 김앤장을 자극하는 정보도 흘러나오고 있다. 김앤장에 지급된 삼성의 수임료가 이회장의 자녀인 이재용·이부진 남매 계좌에서 나온 수표임이 확인되었다는 것이다. 또 하나의 성역을 눈앞에 두고 특검은 여론을 저울질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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