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돋이’ 장관 보러 갈까요
  • 조철 기자 2001jch@sisapress.com ()
  • 승인 2008.02.18 1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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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문화사적 해부와 분석으로 밝히는 ‘밤’의 모든 것

 
“우와, 저 별 좀 봐!” 고향 가는 길에서 아이는 차창 밖으로 보이는 밤하늘을 보면서 탄성을 질렀다. ‘별 볼 일’ 없는 서울에서 각자 바쁘게 사는 부모와 아이는 모처럼 밤하늘을 보며 한마음이 되었다. 사실 해가 지고 어둠이 밀려들면서 고향 산천의 풍경을 아이에게 자랑하지 못하게 되자 밀린 귀향길이 야속했다. 그러나 아이의 그 한마디에 풍경은 또 다른 모습으로 다시 밝게 빛났다. 별이 빛나는 하늘 아래 산등성이 미끄럼을 타고, 외딴 농가의 불빛이 깜빡 눈인사를 하고, 까만 강물이 별빛을 반사하며 너울져 흐르고 있었다.

설 전날 ‘밤돋이’ 장관을 보았다고 말하는 것은 밤에 정통한 ‘예리한 유머 감각을 지닌 깊이 있는 사색가’가 쓴 <밤으로의 여행> 덕분이다. 원제는 <Acquainted With The Night>이다. 밤과 친해지지 않고는 못 배기게 만드는 이 책은 밤의 풍경 묘사뿐 아니라 밤에 관한 온갖 주제들에 대해 깊이 있는 지식을 매혹적인 언어로 풀어낸다. 저자는 모든 밤이 다른 색채, 다른 분위기를 지녔음을 아는 사람이다. 밤과 관련해 저자가 다룬 분야는 천문학, 생물학, 생리학, 병리학, 의학, 예술, 풍속, 과학기술, 신화, 어원학 등 미치지 않은 곳이 없을 정도이다. 너무 방대해 백과사전처럼 될 법한 이 책이 호기심 많은 나이에 밤 마실 떠나는 자의 눈빛을 가지게 하는 것은 저자 크리스토퍼 듀드니의 재능 때문이다. 그는 밤을 빛나는 존재로 바라보는 예리한 시선을 가졌다. 그 시선에다 멀리는 고대의 헤로도투스와 중세의 토마스 무어나 셰익스피어를 거쳐 퍼시 셸리, 토마스 하디, 에밀리 디킨슨, 랄프 애머슨,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 애드거 앨런 포우, 파블로 네루다 등 현대의 작가에 이르기까지 밤을 찬미한 사람들의 경구들을 죄다 끌어 모아 밤으로 떠난 여행을 더욱 풍성한 즐거움으로 감싼다.

사전에서는 ‘해가 져서 어두워진 때부터 다음날 해가 떠서 밝아지기 전까지의 동안’ 정도인 밤을 저자는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밤은 우리의 내밀하고 깊숙한 부분을 빚는다. 밤은 우리의 일부이다. 육신의 리듬, 감정의 밀물과 썰물, 마음속의 약동은 하루를 주기로 하는 빛과 어둠에 긴밀히 결합된다. 어떤 사람들에게는 밤이 불안과 고독의 시간일지도 모른다. 또 어떤 사람들에게는 노동에서 해방된 자유의 시간이자 관능적인 쾌락과 여흥의 시간일지도 모른다. 밤은 하루의 걱정을 밀쳐둘 수 있는 시간이기도 하지만, 보이지 않는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미개척지인지도 모른다.”

밤에 대한 상상력의 탐험과 문학적 찬가 아울러

 
저자는 그런 밤을 입체적으로 해부하고 분석한다. 그에게 밤은 낮의 뒤편이 아니라 그 자체로 하나의 완전한 세계이며, 아름다움과 신비함이 깃든 상상력과 창조의 공간이다. 밤을 일몰부터 다음날 일출에 이르는 12시간대로 나눈 저자는 각 장마다 그 시간대에 해당하는 풍경을 시적이고 감각적인 필치로 재현한다. 저자는 마치 언어로 밤의 공기와 냄새와 색깔과 풍경을 완벽하게 그려내려는 야심찬 화가처럼 밤의 12시간을 낱낱이 재창조한다. 그렇게 저자만의 색깔로 드러난 공간에서 저자는 사람들의 기억 속에 묻힌 밤 풍경에 대한 아련한 추억을 다시 불러일으키기도 하고, 시골과 도시 또는 고대와 현대의 밤이 지닌 각각의 매력을 대비시키기도 한다. 그러자 박쥐가 날아다니는 시골의 밤하늘, 교통 체증에 갇힌 도시 자동차들의 불빛 행렬, 공룡이 잠든 숲 속, 나이트클럽의 요란한 조명이 모두 의미 있는 시적 이미지로 새롭게 태어난다. 그렇게 “아름다운 밤이에요”를 연발한다.

찬미 일색이 아니다. 흥미로운 주제 또한 즐비하다. 우주는 왜 깜깜할까, 반딧불이는 어떻게 빛을 낼까, 흡혈 박쥐가 정말 있을까, 나이트클럽은 어떻게 생겨났을까, 불면증의 원인은 무엇일까, 도시의 야광은 암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몽유병은 왜 생길까, 왜 미국의 갱 영화를 필름 누아르라고 부를까, 꿈의 의미는 무엇일까 등등…. 이처럼 <밤으로의 여행>은 밤의 찬가이며 밤에 대한 상상력의 탐험과 문화적인 여행서이다. 어릴 적 평상에 누워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별에 취해본 사람이라면 “달이 환하게 빛날 때면 밖으로 뛰쳐나가고 싶은 충동을 억누를 수 없었다”라고 11살 때의 기억을 들려주는 저자에게 깊이 공감할 것이다.

이미 밤으로 여행을 떠날 줄 아는 사람은 일몰을 ‘밤돋이’로 바꿔 부르며 밤을 제대로 즐기고 있을 것이다. 그렇지 않고 ‘밤을 잊은 그대에게’ 저자는 선택하라는 듯하다. 낮에 입은 생채기로 술에 취해 비틀거리는 주당으로 살 것인가, “이 밤을 노래해요~”라거나 “나도 밤을 사랑한다”라며 노래하는 밤을 보낼 것인가. 나도 밤을 사랑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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