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하산’ 뚫을전파의 독립이 우선이다
  • 최영재 (한림대 교수·언론정보학부) ()
  • 승인 2008.02.25 1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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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영방송 사장이 ‘정무직’ 되어서는 곤란 이사회 자율 보장 등 원칙적 처방 필요

 
정연주 KBS 사장이 사면초가에 몰려 있다. 정권 교체기를 맞아 정사장을 사실상 임명했던 노무현 정부가 물러가는 입장으로 이렇다하게 정사장의 보호막 역할을 할 처지가 아닌 상황에서 KBS 내외에서 퇴진 압력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외부의 압력으로는 KBS의 편파 방송과 방만 경영을 이유로 정연주 사장 체제를 공격해온 한나라당이 집권한 사실 자체가 가장 큰 압박이 되고 있고, 여기에 공발연(공영방송 발전을 위한 시민연대)과 같은 보수적 시민단체들이 정사장의 퇴진을 공개적으로 요구하고 있다.
내부적으로는 KBS 부장급 이상 간부직으로 구성된 공정방송 노조가 보수적인 온라인 매체 등에 ‘정연주 5년을 고발한다’라는 글을 실으면서 정사장의 퇴진을 강하게 요구하고 있다. KBS 노조 또한 정사장의 경영 성적표와 여러 주변 여건을 감안할 때 정사장 체제의 KBS는 미래가 밝지 못하니 스스로 물러나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정권 따라 추풍낙엽이 된 역대 사장들

정연주 사장의 임기는 내년 11월까지이다. 원칙을 얘기하면 정권 교체와 무관하게 공영방송의 사장은 임기가 보장되어야 한다. 당연하게도 공영방송의 정치적 독립을 보장하기 위해서이다. 검찰의 정치적 독립을 위해 검찰총장의 임기를 보장해야 한다는 논리와 동일하다. 때문에 이 시점에서 정사장의 퇴진을 요구하는 주장은 형식 논리로 볼 때 반민주적이라는 비난을 받을 수 있다. 특히 KBS 노조의 경우는 스스로 KBS의 정치적 독립을 훼손하는 주장을 하고 있기 때문에 자가당착처럼 들릴 수 있다.
하지만, 지난 세월 KBS 사장의 진퇴를 둘러싼 후진적인 연원들은 당사자 모두를 마치 원죄의 악순환 고리에 빠져들게 하는 듯하다. 당장 정연주 사장부터가 전임 박권상 사장의 남은 임기를 생략하고 노무현 정권의 등장과 함께 취임했다. 이처럼 정권과 함께 하는 KBS 사장 임기는 이전의 홍두표·서기원 사장 등에서도 그랬다.
이처럼 잘못된 관행은 엄연한 사장 후보 선출 기관인 KBS 이사회를 고무 도장으로 전락시킨 채 사실상 청와대에서 KBS 사장을 인선하게 했다. 공개된 비밀이 된 청와대의 개입은 혼란한 정권 인수 시기와 KBS를 비롯한 이해 기관들의 자사 이기주의에 묻혀 이렇다 할 문제제기 없이 묵인된 관행이 되었다.
사기업 CEO 공모와 같이, 공영방송인 KBS 사장도 이사회에서 독립적이고 공정한 절차에 따라 가장 적당한 인물을 뽑으면 그만이다. 그러나 그 간단한 절차는 KBS에 실리는 정치적 압력의 무게와 KBS 사장 인사와 관련한 KBS 내외부의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히면서 지금까지 해오던 대로 청와대 권력으로 넘기고 말았다.
문제는 누가 어느 시점에서 KBS 사장 인선을 정상화시킬 수 있을 것인가이다. 우리는 지금 이 시점에서 정권 교체에 따른 관행이나 정사장 개인 문제를 이유로 들어 정사장을 간단히 교체할 수 있다. 잡음과 소동이 따르겠지만 결국은 과거 사장들이 그랬던 것처럼 사표를 낼 것이다. 그리고는 이명박 정부의 청와대가 새 사장을 내정할 것이고 KBS는 이후 다시 편파 방송 시비에 휘말리게 될 것이다. 십중팔구 그럴 것이다. 지난 10년간 한나라당이 그랬던 것처럼 야당이 되는 통합민주당은 잠자코 있지 않을 것이다.
그 경우, 공영방송 KBS를 둘러싼 현안인 수신료 인상, 2TV 광고 폐지 또는 민영화, 국가기간방송법안, 국·공영 채널 통·폐합 방안 등은 지리한 답보 상태에 머무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무엇보다 정권의 코드에 맞춘 ‘낙하산 사장’이 지휘하는 KBS의 편파 방송 시비는 KBS나 시청자로서는 불행이 아닐 수 없다.

이번 기회에 선진적 사장 선임 절차 세워야

결국 정연주 사장의 거취는 정사장 개인의 퇴진 문제가 아니라 KBS의 정치적 독립성 확보 차원에서 풀어내야 한다. 열쇠는 이명박 정부가 쥐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의 청와대는 정사장을 퇴진시킬 수 있는 권력을 가지고 있고, 임기를 보장할 수 있는 민주적 배려를 행사할 수도 있다.
여러 정황상 새 정치 권력이 정연주 사장의 임기를 보장하는 전례 없는 민주적 관용(tolerance)를 행사하리라고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이명박 정부는 우선, 정연주 사장 체제에서는 수신료 인상 등 KBS의 숙원 사업이 전혀 성사될 수 없을 것임을 시사해 KBS 노조 등 내부의 반발과 분열로 정사장 퇴진을 유도하려 할 것이다. 국회에 계류 중인 국가기간방송법안을 통과시켜 KBS 체제를 다시 구성함으로써 사장의 교체를 합법적으로 이루는 방안도 모색되고 있다고 한다.
이런 상황에서 정사장의 자진 사퇴가 정사장 개인 차원에서나 사회 차원에서 현명한 선택일 것이다. 정사장 자신이 청와대 낙하산 인사 출신임을 부인할 수 없고, 노조 등의 지적대로 재임 기간 동안 경영 성적이 좋지 못했던 점에 비추어 볼 때 임기 보장을 고집하는 것이 정당하거나 합리적으로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다만 정사장의 퇴진을 주장하는 노조 등 KBS 내부 조직이나 외부 시민단체는 퇴진 주장의 목표가 이참에 KBS의 정치적 독립성 확보에 있음을 새삼 상기할 필요가 있다.
이명박 정부의 국정 목표가 산업화와 민주화를 넘어 선진화라고 하지 않았던가. 이제 KBS도 선진적인 사장 선임 절차를 가질 때가 되었다.
첫째, 이명박 정부는 눈감고 정연주 사장의 임기를 보장하도록 노력해보자. 둘째, 그것이 안 되면 정연주 사장의 임기를 중단하고 퇴임시켜라. 왜냐하면 정사장은 전임 권력의 낙하산 인사였으므로. 따라서 이명박 정부는 낙하산 인사가 아니라 원칙대로 정치적 독립성이 확보되는 수준에서 이사회가 사장을 자율적으로 추천하도록 하자. 그래서 공정하고 자유롭게 선출된 새 사장은 자연스럽게 임기가 보장되도록 하자.
공영방송 KBS 사장 자리는 청와대 수석이나 장관과 같은 정무직이 되어서는 안 된다. KBS 사장의 선출 문제가 이명박 정부 언론 정책의 시험대가 되고 있다. 노무현 정부가 그러했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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