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신용 위기 ‘연쇄 폭발’ 맞나
  • 정은호 (제로인투자자문 대표) ()
  • 승인 2008.02.25 1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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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브프라임 이어 ‘모노라인’ 시한폭탄 째깍째깍 잇단 신용등급 하락에 금융권 바짝 긴장

 
지난 2월19일 블룸버그는 미국 최대 채권보증 업체(monoline·모노라인)인 MBIA의 최고경영자 교체를 보도했다. 같은 날 월스트리트 저널은 미국 2위 채권 보증 업체인 앰벅(Ambac) 파이낸셜 그룹이 현재의 신용등급을 유지하기 위해 최소 20억 달러의 자금을 수혈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미국에서 가장 큰 채권보증 업체들이 이렇듯 줄줄이 폭격을 맞고 있다. 미국발 신용 위기가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에서 모노라인으로 전이되고 있는 것이다. 이달 말쯤으로 예정된 모노라인의 신용등급 조정이 미국 주식시장의 최대 변수로 떠오르고 있다.
모노라인은 미국의 채권보증 회사를 지칭하는 용어이다. 우리나라 은행들이 기업에서 발행하는 채권의 원리금 상환에 대해 지급 보증을 하는 것과 동일한 업무를 하는 회사를 말한다. 그중에서 채권에 대해서만 보증을 해주는 회사를 모노라인이라 하고, 채권뿐 아니라 부동산이나 다른 자산들에 대한 위험까지 보증해주는 회사를 멀티플라인(multiple lines)이라고 부른다. 미국의 4대 채권보증 업체는 MBIA, Ambac, FSA, FGIC이다. 이 중 4위 업체인 FGIC에 대해 신용평가사인 피치는 지난 1월31일 신용등급을 기존의 트리플A(AAA)에서 더블A(AA)로 두 단계 낮췄다. 또 FGIC가 보증한 채권들에 대한 신용등급을 더블A로 낮출 것이라고 발표했다.
스탠더드 앤드 푸어스(S&P)도 지난 1월31일 채권보증 업체인 MBIA의 신용등급을 트리플A에서 더 낮출 수 있다고 밝혔다. 무디스도 모든 채권보증 회사들에 대해 신용등급을 조정할 가능성이 있다는 경고를 보내고 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이들 4대 채권보증 업체들이 보증한 채권 잔액은 약 1.9조 달러에 달한다.
채권보증 회사들이 발행한 채권을 보유한 투자자(주로 은행)들은 상대적으로 위험이 적다. 채권 발행자가 원리금 지급을 하지 못하면 보증 회사에서 대신 지급해주기 때문이다. 따라서 보증 채권이 얼마나 건전한가는 보증을 해준 기관의 신용도에 달려 있다. 보증 기관의 자금이 충분하다면 채권 발행자가 원리금을 지급하든 하지 않든 신경 쓸 이유가 없다. 보증 기관이 대지급을 해주기 때문이다. 문제는 보증을 선 채권보증 회사들의 등급이 하향 조정됨으로써 이들이 보증한 채권의 등급도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결국 이들이 보증한 채권들의 가격은 폭락하게 되고 이 채권을 보유한 기관들의 손실이 커진다. 이들 채권을 주로 보유한 금융기관의 처지에서는 서브프라임 사태로 코너에 몰린 상태에서 치명상을 입을 수 밖에 없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보증 기관의 등급 하락으로 채권 발행기관들은 보증을 받아도 높은 등급을 받을 수 없기 때문에 더 높은 금리를 물어야 하고, 보증 기관의 보증 여력이 소진됨에 따라 자금 조달이 불가능해질 수도 있다. 실제로 미국 지방 정부들은 최근 경매채권 발행에서 투자자 모집에 실패해 자금을 조달하지 못하는 상황을 맞고 있다.
모노라인 사태를 더 복잡하게 만드는 상황 중 하나는 은행이 직접적인 피해를 입고 있다는 점이다. 모노라인 보증채를 보유하고 있는 은행들 처지에서는 보증 업체들의 등급 하향을 막아야 하는 상황인 것이다. 무디스는 투자자들에게 모노라인 신용등급을 내릴 수 있으므로 이에 대비하라는 경보를 내보낸 바 있다. 이에 대해 씨티그룹이나 바클레이즈, UBS 등 대형 은행들은 컨소시엄을 구성해서 앰벅과 MBIA에 대한 구제 금융을 논의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모노라인 사태에 의한 은행권의 손실 규모는 바클레이즈의 경우 최대 1천4백30억 달러로 추산하고 있다. 반면 모건스탠리의 경우에는 이러한 추정은 과대 평가된 것이고 금융 기관들의 손실은 50~70억 달러에 불과할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서브프라임 사태 때와 마찬가지로 파생 상품에 대한 보증 업체들의 보증 규모가 정확히 파악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한국 증시에도 악영향 우려…“당분간 본격적인 랠리 힘들 것”

가장 낙관적인 시나리오는 금융 기관의 지원을 통해 보증 업체들이 신용등급을 그대로 유지하는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컨소시엄에 참여한 금융 기관들의 이해관계가 달라 만족할 만한 지원이 나오기는 어려워 보인다. 보증 업체들은 신용등급이 우수한 발행자인 지방채 보증 부분과 모기지를 포함한 위험채 보증 부분을 분리하는 방안을 도입하고 있다. 그러자 일부 은행들이 반발하고 있다. 우량한 지방채 발행자와 이를 보유한 투자자들은 회사 분할을 통해 높은 등급을 회복함으로써 수혜를 입을 수 있지만 위험이 큰 채권을 보유한 은행들은 더 낮아질 신용등급으로 손실이 커질 수 있기 때문이다.
금융계는 인플레이션보다는 경기 회복을 최우선시하는 워싱턴의 분위기로 보아 이번 모노라인 사태에 대해서도 회사 분할을 통해 최악의 상황을 피할 것으로 본다. 그러나 투자 은행들의 피해는 고스란히 남게 된다. 이런 점 때문에 전문가들은 월가 금융 기관들이 1분기 실적을 발표하는 오는 4월까지 뉴욕 증시는 랠리를 펼치지 못할 것이라고 예상한다.
우리나라 증시는 1700선을 오르내리며 각종 악재에 대한 내성을 키우고 있다. 그러나 뚜렷한 매수 주체가 없는 상황에서 기술적인 반등으로 바닥을 다지는 이외에 의미 있는 움직임은 나타나지 않고 지루한 장세가 지속되고 있다. 다행스러운 점은 펀드 투자를 통한 손실이 시장의 등락 과정에서 조금씩 만회되고 있다는 점이다. 주식형 펀드로의 자금 유입이나 시장의 방향성이 확인되면 들어오겠다는 MMF 대기 자금도 안정적이다. 하지만 미국 경제가 회복되지 않으면 본격적인 랠리는 기대하기 어렵다는 것이 시장의 시각이다.
이와 관련해 이달 말쯤으로 예상되는 ‘모노라인 신용등급 하락’이라는 시한폭탄을 제거하지 못한다면 미국 경제는 더 깊은 수렁에 빠질 것이다. 이 경우 우리나라 주식시장도 투자자들의 인내심을 다시 한 번 확인해야 하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
미국발 서브프라임 사태의 실물 부문 파장뿐 아니라 금융 부문의 파장도 아직 진행형이다. 춘래불사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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