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볕’에서 놀았던 ‘음지’ “대수술은 선택 아닌 필수”
  • 김지영 기자 young@sisapress.com ()
  • 승인 2008.02.25 1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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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정부의 국정원 개혁 방향, 조직 슬림화하고 기능별로 재편할 듯 ‘정권 시녀’ ‘이명박 뒷조사’ 등 구설에 고위 간부 대대적 ‘물갈이’ 전망

 
국정원이 정권 교체기마다 반복되는 개혁의 수술대 위에 또다시 올랐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안팎에서는 국정원 조직이 어떻게 개편될 것이며, 인원과 기능은 어떻게 조정될 것인지 등에 대해 이런저런 관측이 난무했다. 당연히 국정원의 레이더도 갖가지 개혁설이 나돌고 있는 서울 삼청동 인수위와 여의도 정가를 향해 맞추어졌다.
국정원 개혁에 대한 첫 신호탄은 지난 1월5일 인수위 업무보고 당시 쏘아올려졌다. 비공개로 진행된 업무보고에서 인수위는 김대중-노무현 정부로 이어진 10년 동안 국정원이 정권에 끌려다녔다는 질책을 쏟아냈던 것으로 전해졌다. 진수희 정무분과 간사는 “정권의 일방적인 대북 정책에 끌려다닌 점은 반성해야 한다. 정치적으로 끊임없는 구설에 시달리고, 간첩 수사 실적이 지지부진했다”라고 추궁했다.
김대중-노무현 정부에서 대북 햇볕정책 수행을 위해 ‘음지’에서 활동했던 국정원. 이명박 당선인측과 한나라당은 그런 국정원에 대한 수술은 선택이 아닌 필수라고 지적한다. 어떤 식으로든 국내 최고의 정보기관을 새 정부 코드와 맞추어야 한다는 것이다.
다만 국정원에 대한 개혁 강도가 얼마나 셀지는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특히 김영삼 정부에서 김대중 정부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대대적인 인적 쇄신이 벌어져 국정원 내부에서 큰 진통을 앓았던 일이 이번에도 재현될지 주목된다.
일각에서는 국정원 고위 간부들이 대부분 물갈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기도 하고, 조직 슬림화 차원에서 인원을 대폭 줄일 것이라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이당선인이 차기 국정원장 후보 명단 ‘패스’한 이유

인수위의 핵심 관계자는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국정원의 전반적인 개혁과 관련해 작성했던 보고서를 (이명박) 당선인에게 전달하기는 했다. 그런데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당선인과 차기 국정원장의 협의를 통해 구체적인 개혁 방향이 정해질 것이라는 점이다. 당선인이 차기 원장에게 전달할 미션도 있겠지만, 차기 원장이 갖고 있는 국정원 개혁에 대한 의중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현재 입장에서 국정원의 조직과 인원, 기능이 어떻게 변할 것이라고 단언하기는 힘들다”라고 말했다. 김만복 전 원장의 후임으로 누가 국정원의 수장을 맡게 되느냐에 따라 국정원의 개혁 방향이 정해질 것이라는 얘기이다.
차기 국정원장과 관련해서는 이명박 당선인의 선대위 고문을 지냈던 최시중 전 한국갤럽 회장을 비롯해 김성호 전 법무장관, 김종빈 전 검찰총장 등이 하마평에 오르내렸다.
이에 대해 통합민주당 내부에서는 김 전 장관이나 김 전 총장이 차기 국정원장에 오르는 것에 대해 몹시 껄끄러워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민주당의 한 관계자는 “당의 비공개 회의에서 과거 검찰에서 특수 수사통이었던 김 전 장관이나 김 전 총장이 차기 국정원장이 되면 국정원을 통해 야당 정치 공작을 할 수도 있다는 얘기가 나왔고, 손학규 대표도 이를 수긍하는 분위기였다”라고 전했다.
그런데 차기 국정원장 인선과 관련해 이명박 당선인이 취한 태도가다소 애매해 보인다. 앞서 언급했던 인수위 핵심 관계자는 “각 부처별 내각 후보자들이 복수로 추천되어 당선인에게 보고되었다. 그런데 국정원장 후보자 명단을 보고서 당선인은 그냥 ‘패스’를 했다”라고 말했다. 이관계자가 전한 ‘패스’는 국정원장 후보자들에 대해 유심히 검토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당선인이 국정원장 후보에 대해 그리 관심이 많지 않거나, 이미 마음속으로 낙점한 인사가 있다는 얘기이다.

10년간 이어져온 1·2·3차장제 폐지하고, 현재의 기능도 바꿀 듯

 
그렇다면 다른 부처 장관 후보자들의 면면에 대해서는 꼼꼼히 살펴보면서 유독 국정원장 후보자에 대해서 ‘간과’한 진짜 속내는 무엇일까. 그렇다고 해서 당선인이 차기 국정원장에 대해 무관심할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국정원은 지난 2005년부터 2006년까지 이명박 후보 주변 인물 93명의 개인 정보를 모두 4백6차례 조회했던 것으로 드러난 바 있다.
이에 한나라당은 지난해 말 국정원의 ‘부정부패 척결 태스크포스(TF)’에서 조직적으로 뒷조사를 했다며 김만복 원장과 이상업 2차장 등을 검찰에 고발했다. 그런 상황을 잘 알고 있는 당선인으로서는 국정원의 강도 높은 개혁을 누구보다 절감하고 있을 것이고, 그 개혁을 이끌 적임자를 이미 심중에 점찍어두었을 개연성이 커 보인다.
국정원 조직 개혁과 관련해 인수위 안팎에서는 구구한 관측들이 나돌고 있다. 일부 언론에서 이에 대해 보도하고 있지만, 인수위 쪽에서는 부인하고 있는 형국이다. 아직 정해진 것이 없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갖가지 관측들이 담고 있는 국정원 개혁 방향은 ‘조직의 슬림화’와 ‘기능의 조정’이다. 정부 조직의 슬림화 방침에 국정원도 예외일 수 없고, 현재의 기능 역시 개편이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수사 당국의 한 인사는 “이명박 정부는 국민의 정부 시절부터 10년간 이어져온 1·2·3차장제를 폐지하는 대신 기능별로 다시 헤쳐 모여를 하게 할 것으로 보인다”라고 말했다.
이를 테면, 해외분야 1차장과 국내 2차장, 북한 3차장제를 폐지하고, 국정원 경제단 산하에 각 차장 밑에서경제 분야를 담당했던 직원들을 재배치할 것이라는 관측이다. 그동안 지역별로 분류되어 있던 조직을 경제 분야 등 기능별로 재편한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이는 경제부문을 국정운영의 중심축으로 설정한 이명박 정부의 기조와도 부합되는 것이어서 어느 정도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그런데 국정원 지원 업무를 맡는 기조실장(차관급)은 그대로 둘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그러면서 차기 기조실장으로 현재 국정원 고위 간부를 맡고 있는 ㄱ씨가 하마평에 오르고 있다. ㄱ씨는 이른바 2005년부터 2006년까지 벌어졌던 ‘이명박 뒷조사’에도 깊숙이 연루된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그의 장인이 이당선인의 친형인 이상득 국회부의장과 절친한데다 지난해 대선 과정에서도 이당선인을 ‘음지’에서 도왔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동안 정권이 바뀔 때마다 국정원은 심한 홍역을 앓아왔다. 지난 1997년 김대중 정부가 들어서면서는 안기부에서 국정원으로 개명되었고, 전체 직원의 10% 정도인 5백여 명이나 옷을 벗어야 했다. 당시 국정원을 떠났던 이들의 반발과 후유증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실정이다.
노무현 정부 들어서도 국정원을 정보수집·정보분석·과학수사 파트 등으로 구조 개혁하려 했으나, 국정원의 내부 반대로 실제 실행되지는 못했다는 후문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10년 만에 정권이 바뀌어서 국정원을 수술하려는 메스는 더욱 날카로워질 것으로 예상된된.
국정원 직원들 역시 “분위기가 좋지 않다” “새정부가 호의적이지 않다” 라고 우려하면서 향후 전망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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