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면초가’ 한국 경제, 앞날이 심상치 않다
  • 최용식 (21세기경제학연구소 소장) ()
  • 승인 2008.02.25 1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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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경제 여건 ‘답답’…목표 성장률에 연연하다 물가 불안·국제 수지 악화 불러…대운하 토목사업 강행하면 경제 파국

 
이명박 정권은 경제를 살리겠다고 공약해 탄생했지만, 그 앞날이 밝다고 말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세계 경제 여건부터 심상치가 않다. 석유 가격은 물론이고 곡물과 금속 등 주요 원자재 가격까지 천정부지 오르는 것도 문제이지만, 그동안
장기 경제 번영을 누리면서 세계적인 호황을 이끌었던 미국 경제가 심각한 국면으로 치닫고 있는 것이 더 심각한 문제이다.
지난 2월14일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위원회(이하 연준위) 버냉키 의장은 “미국의 경제 전망은 최근 몇 개월 사이에 악화되어 왔고 경기 하강 위험은 높아져왔다”라고 말했을 정도이다. 한마디로,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채권) 사태가 본격적으로 실물 경기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셈이다. 그는 “하반기부터는 금리 인하와 긴급 경기 부양책 등에 힘입어 다시 성장세를 회복할 것”이라고 밝혔지만, 이것은 희망사항으로 그칠 가능성이 크다. 오히려 미국 경기는 최소한 1년 이상에걸쳐 악화할 것 같다. 실제로 1990년대 초반에 지금과 거의 똑같은 상황이 다음과 같이 벌어진 바가 있다.

미국 경제, 갈수록 심각한 국면

미국 경제는 1980년대 중반 이래 지금까지 대체적으로 초장기 경제 번영을 누려왔는데, 1990년과 1991년 사이에는 성장률이 각각 0.8%와 -0.5%를 기록하는 등 심각한 경기 침체를 겪었었다. 이때의 상황을 당시 연준위 의장이던 그린스펀은 그의 자서전 <격동의 시대>에 다음과 같이 적어두었다. “저축 기관(저축대부조합)들은 어마어마한 규모로 성장해 1987년에는 3천6백개 정도로 시설을 확충하고 자산 규모도 1조5천억 달러에 이르렀다. 그러나 인플레이션은 이 순조로운 상황에 파멸을 초래했다. 인플레이션에 기인한 장·단기 금리의 가파른 상승으로 저축대부조합은 진퇴양난에 빠졌다. (중략) 그 후 많은 저축대부조합들이 적자에 허덕이게 되었고 1989년에는 대다수가 법적으로 파산하고 말았다.”
“시중은행 또한 심각한 곤경에 처했다. 저축대부조합보다 더 큰 골칫거리였다. 은행은 규모도 훨씬 크고 경제와 관련해서 좀더 중요한 부분이었기 때문이다. 1980년대 말에는 대공황 이후 최악의 시기였다. 중소 규모의 은행들이 파산하고 시티뱅크나 체이스맨해튼 같은 거대 은행들도 위험한 지경에 처해 있었다. 저축대부조합과 마찬가지로 그들이 안고 있는 문제는 너무나 많은 투기성 대출이었다. (중략) 부동산 호황이 붕괴되면서 은행들도 큰 혼란을 겪었다. 대출금을 확보하려고 담보로 내놓은 부동산 가격이 확실치 않아, 은행들은 얼마나 많은 자금을 가지고 있는지조차 확신할 수 없었다. 그래서 많은 은행들이 제 구실을 하지 못한 채 겁을 집어먹고 급기야 대출까지 꺼리는 지경에 이르렀다. (중략) 중소제조업체들과 상인들은 공인된 일반 기업 대출조차 받기 어려운 실정이었다. 다시 말해, 그것은 불황에서의 회복을 몹시 어렵게 만들었다.”
최근에도 그때와 거의 똑같은 상황이, 아니 더 심각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최근 몇 년 사이에 부동산 투기 열풍이 불었으며, 그것이 꺼지자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가 터졌고, 이것이 프라임 모기지(우량주택담보채권)까지 전염시킴으로써 전체 금융 기관에 심각한 타격을 주었다. 대표적으로, 시티그룹은 지난해 하반기에만 2백18억 달러의손실을 입었으며, 메릴린치는 2백51억 달러의 손실을 입었다. 보증보험 회사들의 피해는 더 심해서, 1위 업체인 MBIA는 주가가 지난해 10월 67달러에서 1월에 6.8달러까지, 2위 업체인 AMBAC은 70달러에서 4.5달러까지 폭락한 바 있다. 사정이 이렇다면, 그 결과도 당시와 거의 같거나 더 나빠질 가능성을 배제하기가 어렵다.
그린스펀은 당시 상황을 그의 자서전에 다음과 같이 표현했다. “우리 연준위가 실시했던 그 어떤 조치도 효과적으로 보이지 않았다. 불황에 이르기 훨씬 전부터 금리를 완화하기 시작했지만 경제는 꿈쩍도하지 않았다. 심지어 우리가 1989년 7월과 1992년 7월 사이 3년 동안 23차례나 연방 기금 금리를 낮추었지만 기록상으로 보면, 회복만큼 더디게 나타나는 현상도 없었다.” 지금도 미국 정부는 세금을 1천6백억 달러나 환급해주기로 결정했고, 연준위는 지난해 9월부터 최근까지 다섯 차례에 걸쳐서 금리를 5.25%에서 3.0%로 2.25%포인트나 대폭 인하하는 등 경기 침체를 막기 위해 온 힘을 기울이고 있다. 그렇지만 큰 성과를 거두기는 어려울 것 같다. 경기 침체는 아니더라도 경기 후퇴가 최소한 1~2년은 이어질 가능성이 매우 크다.

 

경기 부양책 쓰면 제2 외환위기 부를 것

우리 경제의 외부 환경은 이처럼 점점 더 나쁜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그뿐만이 아니라, 내부 상황도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 우선, 물가 불안이 이미 심상치 않은 수준에 이르렀다. 2005년도에 2%대로 진입한 뒤 꾸준히 안정세를 유지해왔던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2007년 10월에는 다시 3%대에 진입했고, 올해 1월에는 3.9%까지 상승했다. 생산자물가 상승률은 1월에 5.9%나 상승해 더 심각했다. 국제 수지 동향도 심각하기는 마찬가지이다. 무역 수지(상품 수지)는 2004년 이후 매년 3백억 달러를 넘거나 육박했고, 2007년 11월까지도 이 추세는 지속되었는데, 2007년 12월부터 갑자기 이 추세가 역전되었다. 57개월 만에 처음으로 8.7억 달러 적자를 기록했던 것이다. 이 추세는 2008년에 들어선 뒤 더 강해져서 1월에만 무려 40억 달러의 적자를 기록했다. 이렇게 국제 수지가 악화되면, 장차 환율은 점점 더 오를 수 밖에 없고, 이에 따라 석유와 같은 수입 원자재는 물론이고 다른 수입품의 가격도 상승할 것이 빤하다. 국내 물가가 더욱 불안해질 가능성이 점점 더 커지고 있는 셈이다.
이명박 정권은 이런 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어떻게든지 국내 경기를 살려내려는 모습이다. 임기 중 연평균 성장률 목표인 7%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올해 성장률이 6%는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 장차 우리 경제에는 어떤 일이 벌어질까? 이해하기 쉽게 비유를 해보자. 뛰어난 마라톤 선수도 가파른 오르막에서는 속도를 높일 수 없다. 오르막에서 무리하면 곧 탈진하고, 장차 내리막이 나타나더라도 더 이상 달리지 못하고 만다. 경제도 마찬가지로서, 지금처럼 경제 여건이 어려
운 때에는 성장률을 낮춰서 물가 불안과 국제 수지 악화가 더 이상 진행되지 않도록 차단해야 한다. 만약 기어이 경기 부양 정책을 강행한다면, 10년 전에 겪었던 외환위기와 같은 경제 파국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다. 특히 경부 운하 건설을 무리하게 강행한다면 더 심각한 경제 파국을 맞아야 할 것이다. 이 점은 역사가 충분하게 증명했다.
대표적으로, 일본은 1990년대에 초장기 경기 부진을 겪었는데, 이것을 탈피하기 위해 토목 사업을 중심으로 열두 차례에 걸쳐 대대적인 경기 부양 정책을 펼쳤다. 그 금액이 총 1백29조 엔, 우리 돈으로 무려 1천조원 이상의 천문학적인 재정을 쏟아부었던 것이다. 그러나 끝내 경기를 살려내지 못했고, 오히려 이런 토목 사업을 중단한 뒤에야 경기가 살아나기 시작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가격은 한계효용이 결정하듯이, 소득은 한계생산력이 결정하기 때문이다. 즉, 토목 사업의 한계생산력은 다른 분야의 한계생산력보다 훨씬 낮으므로 소득을 오히려 뒷걸음치게 했고, 이것이 경기 회복의 발목을 잡았던 것이다. 다른 사례도 하나 더 살펴보자. 프랑스는 17세기 말에 스페인과 인접한 남서부 지역에 대서양과 지중해를 연결하는 뒤메흐 운하를 건설했다. 화물도 충분했고 운송 시간도 크게 단축할 수 있어서 경제 활성화에 크게 기여할 것으로 기대했다. 그러나 건설 비용과 유지·보수 비용이 천문학적으로 커짐으로써 재정이 감당하기 어려운 지경에 이르렀고, 그 바람에 수십년 동안 경제난을 겪어야 했다. 이런 장기간의 경제난은 결국 프랑스 대혁명이라는 민란을 부르고 말았다. 이런 비극적인 일이 우리나라에서는 제발 벌어지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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