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물’이 될까, ‘애물’이 될까
  • 허재원 (한국일보 기자) ()
  • 승인 2008.03.03 1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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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최장신 센터 하승진 선수 KCC행…각 구단들, 한숨 쉬며 대비책 마련에 바빠

 
하승진 선수 프로필
출생:
1985년 8월4일
체격: 221.6cm, 150㎏(출생시 체중 5.6㎏)
발 사이즈: 350㎜
가족: 전 농구대표 출신 하동기 씨의 1남 1녀 중 막내.
누나는 여자 농구 하은주 선수(신한은행)
학력: 삼일중-삼일상고-연세대 중퇴
주요 경력: NBA 포틀랜드-밀워키
취미: 컴퓨터 게임

2008년 1월28일 밤. 서울교육문화센터에 육척 장신들이 모여들었다. 다음날로 예정된 2008년 프로농구 신인드래프트에 참석하기 위한 프로팀 관계자들이 일찌감치 방을 잡고 행운을 기원하기 위함이었다.
그중 이전 시즌에서 7~10위에 머무르며 상위 1~4순위 지명권을 손에 쥔 동부·KCC·SK·전자랜드 4팀은 긴장된 표정을 좀처럼 감추지 못했다(프로농구는 전년도 성적 7~10위 팀이 신인드래프트에서 상위 1~4순위 지명권을 추첨으로, 5~8위 팀이 역시 5~8순위 지명권을 추첨으로, 2위팀이 9순위, 1위팀이 10순위 지명권을 갖게 된다).
다음날인 1월29일 오후 2시에 시작해 한 시간도 안 되어 끝날 예정이었다. 그러나 전날 밤부터 몰려들어 이렇게 호들갑을 떨어야 했던 것은 오로지 ‘괴물 센터’ 하승진(23) 때문이었다.

‘허재의 만세’ 재현되다

선수들은 코칭스태프와 구단 관계자의 눈에 띄어 일자리를 찾기 위해 자신의 장기를 유감없이 보여주었다. 그러나 프로팀들의 눈길은 오직 한 선수를 향해 있었다.
오후 2시. 그 한 선수의 향방이 결정되는 운명의 시간은 왔다. 구슬을 담은 통이 구르기 시작했다. 모두가 숨을 죽였다. “1순위, 전주 KCC!” 허재 감독과 김광 코치 등 구단 관계자들이 모두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만세를 불렀다. 1년 전 FA 계약을 통해 ‘국보급 센터’ 서장훈(35·207cm)을 영입한 허재 감독이 ‘괴물 센터’ 하승진(23·221.6cm)까지 품에 안는 순간이었다.
국내 최장신 서장훈보다 14.6㎝가 더 큰 하승진이 국내 프로 진출을 선언하자 LG 신선우 감독은 일찌감치 “프로농구의 춘추전국시대는 이번 시즌으로 끝이다”라고 공언했다. 하승진은 최소한 향후 5년의 성적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초특급 ‘쓰나미’로 인식되었다.
하승진이 지난해 11월 한국농구연맹(KBL)에 신인드래프트 신청서를 제출한 뒤 KBL은 긴급 이사회를 열고외국인 선수 신장 제한 규정을 폐지했다. 기존의 ‘외국인 선수 2명 합계 4m, 최고 2m8을 넘지 않는다’라는 이 규정은 국내 장신 선수 보호를 위해 만들어진 규정. 국내 최장신 선수인 서장훈의 신장에 맞춘 규정이었다.
그러나 하승진의 KBL 입성으로 이 규정은 사실상 무용지물이 되었다. 이제 각 팀은 하승진을 마크할 수 있는 초대형 용병을 찾아 전세계를 찾아 헤매야 할 지경이다. 하승진과 1 대 1 매치업을 펼칠 수 있는 210cm 이상의 외국인 선수를, 그것도 월봉 2만5천 달러에 뽑아온다는 것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더구나 하승진이 함께 경기를 펼칠 파트너는 다름 아닌 서장훈. 일부 감독들은 “하승진-서장훈이 골밑에서 버티고 있으면 웬만한 선수들은 골대가 보이지도 않을 것”이라며 한숨을 내쉬고 있다. “KCC와의 경기를 포기하고 나머지 경기에서 승부를 볼 수밖에 없다”라는 자조 섞인 예상까지도 나올 정도이다.하승진의 나이는 이제 갓 23세이다. 날이 갈수록 장족의 발전을 거듭하고 있다. 지난해 일본 도쿠시마에서 열린 아시아남자농구선수권대회에서 하승진은 대표팀에서의 집중 조련을 통해 수비에서의 약점을 많이 보완했다.

 

하승진에 대한 공략법은 정녕 없나

그러나 ‘하승진 쓰나미’론에 고개를 갸웃거리는 사람도 있다. 2~3년 후에는 모르겠지만, 다음 시즌 당장 프로농구판을 휘어잡을 수는 없으리라는 것이 핵심이다. 2004년 NBA 무대에 진출했던 하승진은 장기 레이스에서 풀타임을 소화한 적이 없다. 체력적인 면이 검증되지 않았다는 뜻이다. 2006년 도하아시안게임 사령탑을 맡았던 최부영 경희대 감독은 “하승진의 가장 큰 약점은 체력이다. 30분 이상을 소화하지 못한다”라고 말했다. 당연히 5개월여 동안 54경기를 치러야하는 KBL의 빡빡한 일정이 하승진에게는 부담이다. 체력이 떨어지면 부상의 위험도 그만큼 커진다.
서장훈과의 시너지 효과를 기대하기 힘들다는 의견도 무시하기 어렵다. “서장훈과 하승진이 함께 뛰면 스피드가 현격히 느려져 수많은 딜레마에 봉착할 것이다”라는 의견이 그것이다. 일부 팀에서는 서장훈과 하승진이 동시에 출전만 하면, 쉴 새 없는 ‘런앤건 게임’(멈추지 않고 속공을 펼치는 스피드 게임)을 펼쳐 장신 선수들의 가장 큰 약점인 ‘스피드’를 공략한다는 계획이다. 김주성(29·205cm)과 용병을 축으로 빠른 농구가 가능한 동부와 방성윤(26·194cm)-김민수(26·200cm) 라인을 구축하게 된 SK 등은 KCC와 정면 승부를 펼쳐 볼 수 있다는 평가이다.
마지막으로 하승진의 KBL 적응 문제이다. 한국 프로농구는 협력 수비와 끈적한 수비 등 신경전이 일상화되어 있다. 이런 변수 때문에 미국이나 유럽 무대에서 검증된 용병이 한국 농구에 적응하는 데 실패한 사례가 수두룩하다. 게다가 혈기왕성한 하승진은 코트에서 냉정을 잃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런 변수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의미이다.

KCC의 하승진 대우 특급 작전

역대 최장신 하승진이 합류하면서 KCC 프런트들은 단체로 고민에 빠졌다. 일단 2m70cm짜리 대형 침대를 특수 제작했다. 운송 수단도 골칫거리이다. 구단 버스의 좌석은 하승진이 앉기에 턱없이 좁다. 버스 안에 하승진을 위해 넓은 좌석을 따로 만들고 있다. 슬리퍼, 양말 등 하승진에게 맞는 것을 찾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식당도 문제이다. 바닥에 앉아서 식사해야 하는 식당은 모조리 배제해야 한다. 테이블이 너무 낮기 때문에 몸에 무리가 올 수도 있다. 따라서 의자에 앉아서 먹는 식당만을 예약 할 예정. 그나마 다행인 것이 신발이다. 3백 50mm의 거대한 발을 가진 하승진은 나이키와 스폰서 계약이 되어 있는 상황. 미국에서 특별히 주문 제작한 신발을 신는다.
이 모든 ‘고생’을 하면서도 KCC 구단 직원들은 벌어지는 입을 다물지 못하고 있다. 이 정도 고생쯤 못하겠냐는 그들의 미소 배인 한마디에는 “하승진 한 명 만으로도 우승은 보장되었다”라는 막연한 확신이 담겨 있다.

하승진 “NBA 아직 포기 안했습니다!”

NBA에서 교체 선수로 평균 5분 이상 뛰기 힘들었던 하승진은 2006년 아시안게임에서 대표팀의 핵심 멤버로 활약하면서 출전 시간의 중요성을 절실히 느꼈다. 하승진은 그 당시 “농구가 하루가 다르게 부쩍부쩍 는다는 느낌을 받았다”라고 말했다. N하승진의 국내 무대 복귀 결심은 사실 그때부터 시작되었다.
그러나 하승진은 아직도 NBA에 대한 꿈을 이어가고 있다. 2006년 밀워키에서 방출 통보를 받았을 때 느꼈던 좌절을 딛고 다시 한 번 최고의 무대에 도전해보고 싶은 것이다.
그러기 전에 하승진은 먼저 국내리그에서의 활약을 다짐하고 있다. 하승진은 “센터 농구는 감독이 좋아하고, 가드 농구는 관중이 좋아한다는 말이 있다. 센터로서 한계가 있겠지만, 그래도 관중이 좋아하고 팬이 좋아하는 농구를 하도록 노력하고 연구하겠다”라고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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