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 잔치는 시작됐다
  • 조철 기자 2001jch@sisapress.com ()
  • 승인 2008.03.03 1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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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대한민국 30대를 위한 맞춤 심리 치유 카페

 
서 른, 잔치는 끝났다” 라고 최영미 시인이 말한 때가 언제인가. 1994년 봄 나온 최시인의 시집 <서른, 잔치는 끝났다>는 서른 즈음의 많은 젊은이들과 공감했다. 시인은 이제 서른 살이 되었으니 20대의 방황과 좌절과 축제를 끝내고 몰래 키워온 고독과 욕망과 죄가 세상 속에 섞이는 것처럼 살아가게 될 것이라고 한탄한다. 당시에는 그랬다. 20대가 문제였다. 스무 살 즈음은 고민과 방황에 휩싸여 갈 길을 잃고 헤매는 구름이었다. 그러다 서른 살 즈음이면 자식 한 둘 낳은 부모로 먹고 살기 바빴다.
그러나 정신 분석 전문의가 펴낸 <서른 살이 심리학에게 묻다>에서 현대를 살아가는 서른 살 즈음은 옛날 같지 않다. 예전에는 한 직장에서 열심히 일하면 어느 정도 승진이 보장되었고, 지금처럼 40대에 은퇴하라는 압박을 받지도 않았다. 그래서 30대 직장인들은 정신없이 바쁘지만 밝은 미래가 기다리고있기에 힘껏 달리기만 하면 되었다. 하지만 현대 사회에서 서른 살은 고달프고 우울하다. 외환위기 이전의 사회 초년생들은 지금보다 물질적으로는 덜 풍요롭게 자란 세대이지만, 적어도 지금과 같은 취업난을 경험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지금의 서른 살은 어린 시절 경제 호황기의 수혜자로 풍족한 환경에서 자랐지만 대학 입학을 전후해 외환위기를 겪고 그 여파로 인해 심각한 취업난과 고용 불안에 시달려야만 했다. 그 어느 세대보다 경제적·정신적으로 안정되지 못한 20대를 보내고 서른 살을 맞이한 것이다. 이들은 취업 준비로 젊음을 다 소진해버리고 아무런 준비 없이 숨 가쁘게 차가운 현실로 내동댕이쳐졌다. 그래서 인생의 한 전환기로서, 미래의 방향을 결정짓는 중요한 선택의 시기로서, 홀로 서야 하는 독립의 시기로서, 꿈에서 현실로 내려오는 좌절의 시기로서 서른 살의 삶은 고되기만 하다.
 
<서른 살이 심리학에게 묻다>는 서른 살의 삶을 35개의 심리학적 테마로 나누어 그들이 왜 외롭고 우울한지에 대해 분석한다. 이를테면 ‘쿨함’이 각광받는 세태에 대해서 “삶이 쿨함을 허락하지 않더라도 쿨함이라는 갑옷으로 무장하려는 젊은이들은 그래서 슬프다. 쿨함에 목숨 거는 젊은이들은 말 그대로 멋지고 자유롭게 보이기 위해 애쓰지만, 알고 보면 한 치 앞도 모르는 시대에서 살아남고자 악다구니를 쓰는 것이고, 외로우면서도 상처 입기 두려워 외로움을 참아내고 있는 것이다”라고 설명한다.
어른이 되는 연습을 해야 할 20대 중·후반을 심각한 취업난 때문에 책상 앞에서 보낸 그들은 서른이 되어 갑작스레 어른들의 사회로 내던져진다. 떠밀려 들어간 어른의 삶은 낯설고 불안하기만 하다.
게다가 “서른 살은 성공에의 야망이 그 어느 때보다 강한 시기이다. 남을 짓밟고라도 위로 올라가고 싶은 야망, 성공하고 있는 동료를 끌어내리고 싶은 시기심, 돈을 벌기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않는 마음 등 하루에도 열두 번씩 악마가 고개를 치켜든다. 그래서 서른 살은 위험하다”라며 ‘악마의 유혹에 빠지기 쉬운’ 나이라고 말한다.

“폭넓게 인생을 수용하기 시작하는 축복받은 나이”

그런 우려와 함께 저자는 서른 살이 마음먹은 만큼 성공할 수 있는 나이이기도 하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서른 살은 이상에만 치우치지 않고 좀더 현실적인 꿈을 꾸며, 포괄적이고 장기적인 안목으로 일을 추진하기 때문이다. 인생이 그리 길지 않다는 것을 피부로 느끼면서 진정 자신이 하는 일을 찾아 몰두한다. 그래서 서른 살이 넘어 시작하는 새로운 일은 오히려 성공할 확률이 높다. 그리고 서른 살은 더 뜨겁고 간절하게 사랑할 수 있는 나이이다. 자신의 욕망에 좀더 솔직해지고 충실해지며 과감해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전 사랑의 경험을 바탕으로 사랑의 한계를 알기에 상대에게 너무 많은 것을 요구하지 않으며, 뒤늦게 만난 상대의 소중함을 알기에 상대를 더욱 배려하게 된다.
이 책은 ‘미지의 시기’라는 서른 살을 현대에 맞게 알게 해주는 점에서 값지다. 서른 살, 경험이 없어 인생을 이상적으로만 보던 20대를 뒤로하고 인간과 세상의 여러 측면을 인정하기 시작하는 나이, 사물을 조각조각으로 보지 않고 통합적으로 볼 수 있는 나이. 그러나 그러면서도 20대의 활기와 정열이 여전히 넘쳐 흐른다. 그래서 서른 살은 인생을 호기심과 열정으로 대할 수 있으면서도 좀더 폭넓게 인생을 수용하기 시작하는 축복받은 나이이다.
지구 온난화가 세계 지도를 다시 그리듯 서른 살과 스무 살에 대한 정의를 새롭게 내리는 시대이다. 시대의 잘못 때문에 예전 20대의 특성과 예전 30대의 특성이 서로 섞인 오늘날의 서른 살. 고되면서 외로운 서른 살에게 오히려 지금이 더 좋지 아니한가라고 반문하고 싶다. 젊음과 나이 듦의 장점이 서로 만나고 섞이기 시작하는 나이인 서른 살이니 미래를 얼마든지 창조적으로 만들어갈 수 있다. 무엇에서든 실수와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그것으로부터 배울 준비가 되어 있다면…. 서른, 잔치는 이제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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