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체 그 ‘떡값’은 누가 받아서 먹었을까
  • 김지영 기자 young@sisapress.com` ()
  • 승인 2008.03.10 1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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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그룹의 금품 로비 대상자를 모아놓았다는 이른바 ‘삼성 떡값 명단’은 과연 존재하는 것일까.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은 지난 3월5일 오후 4시 서울 수락산 성당에서 삼성으로부터 금품을 받은 의혹을 받고 있는 사람들의 명단을 일부 공개했다. 이종찬 청와대 민정수석과 김성호 국정원장 내정자가 바로 그들이다. 여기에 차기 금융위원장으로 거론되었던 황영기 전 우리은행장은 삼성 비자금 차명계좌 개설과 관리를 주도한 인물로 지목되었다. 예상했던 대로 당사자들은 즉각 “사실무근”이라고 강하게 부인하며 반발했다. 이를 기다렸다는 듯 야권은 ‘고·소·영 정부’ ‘강·부·자 정부’에 이어 ‘떡값 정부’라며 정부와 여당을 몰아붙이고 있다.
이날 기자회견에서 사제단은 “새 정부 고위직 가운데 세 명뿐이냐”라는 취재진의 질문에 “오늘 공개한 명단은 최소화한 것이다”라고 밝혔다. 떡값을 받은 이들이 더 있음을 강하게 시사하는 대목이다. 덧붙여 “추가로 인물을 공개할 예정이 있느냐”라는 물음에는 “삼성 비리의 맨 마지막에서 공개하거나, 가능하면 명단이 공개될 필요가 없도록 본인들의 회개가 필요하다”라고 밝혔다.

야권 “이명박 정부는 떡값 정부” 몰아붙여

사제단은 이보다 앞선 지난해 11월에도 임채진 검찰총장과 이종백 국가청렴위원장, 이귀남 대검 중수부장 등 3명을 ‘떡값 검사’라고 공개한 바 있다. 그런데 이날 회견을 통해 이종찬 수석과 김성호 원장 내정자를 추가함으로써 금품 수수 의혹 검사는 모두 5명으로 늘어난 셈이다.
그렇다면 김용철 변호사와 사제단측이 손에 쥐고 있다는 삼성 떡값 리스트에는 몇 명이나 올라가 있는 것일까. 이에 대해 김변호사와 사제단은 “명단에는 수십명이 있다”라고 주장하고 있다. 검사를 비롯해 법관, 국세청 등의 전·현직 고위 간부들이 망라되어 있다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떡값 리스트에 40여 명이 올라 있다는 관측도 나돌고 있다.
그동안의 정황으로 보았을 때 김변호사와 사제단측이 떡값 명단을 갖고 있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사제단도 “사제단이 신념을 다해서 하는 증언과 삼성의 발뺌 가운데 어느 쪽이 진실한지는 상식적으로 판단할 일”이라고 언급했다. 이에 따라 사제단이 아무런 근거도 없이 기자회견을 열어 명단을 공개하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다만 ‘떡값 파일’이 얼마나 구체적이냐가 관건일 것이다. 누가, 언제, 어디서, 누구에게, 얼마를 받았는지 구체적으로 명시되어 있는지 아니면 두루뭉술하게 ‘누가 누구한테 얼마를 받았다고 하더라’ 식으로 제보받거나, 누군가에게 전해들은 명단이 상당수인지 의문으로 남는다.
이에 대해 김변호사는 로비 대상의 이름과 직책뿐 아니라 로비를 담당했던 삼성 임원의 이름까지 기재되어 있다고 언급한 바 있다. 떡값 규모도 기본이 5백만원이었으며, 김인주 사장이 별도로 로비 대상에 따라 1천만원, 2천만원을 정했다고도 주장했다. 그렇다면 김변호사나 사제단측이 얼마나 구체적인 떡값 파일을 가지고 있다는 것일까. 이에 대해 김용철 변호사의 변호인인 김영희 변호사는 “거기에 대해서는 말할 수 없다”라고 신중한 자세를 보였다.
그런데 지난해 11월 1차로 떡값 명단을 공개했을 때와 지난 3월5일 기자회견에서 공개된 내용에는 차이가 있다. 그동안 김변호사는 “간접적인 경로를 통해 알게 되었다” “자주 돈을 전달했다더라” 식의 ‘카더라’ 수준이었던 데 반해 이번에는 “(내가) 김성호에게 직접 금품을 전달한 사실도 있다”라고 밝혔기 때문이다. 따라서 사제단이 쥐고 있는 명단은 김변호사가 직접 관여한 경우와 누군가에게 전해들은 것이 섞여 있을 공산이 커 보인다.
일각에서는 사제단이 삼성의 떡값 리스트 전부를 한 방송사에 전달했다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사제단이 먼저 보도될 것을 기대하며 자료를 건넸지만, 해당 방송사는 자료가 구체적이지 않아 보도를 해야 할지를 놓고 고심하고 있다는 것이다.
사정 기관의 한 소식통은 “해당 방송사가 구체적인 증거가 없는 상황에서 보도했다가 명단에 오른 사람들로부터 자칫 집단 명예훼손 소송을 당할 수 있다는 점 때문에 고심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리고 공공의 이익을 위해 보도하는 것이 타당한지도 법률적으로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라고 말했다.

떡값 리스트 제보 받은 방송사, 보도 놓고 고심 중

김변호사는 그동안 검찰과 삼성특검 조사에서 이른바 ‘떡값 명단’에 대해 진술했을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검찰이나 특검은 그에 따른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김변호사나 사제단이 검찰이나 특검 수사에 대해 강한 불신을 표출하고 있다. 사제단 김인국 신부는 특검의 초동 수사 결과에 대해 “아주 부진했다”라며 강한 불만을 토로했다.

 
지난해 12월 김변호사가 검찰 조사를 받을 당시 대검의 한 관계자는 “김변호사가 주장하는 삼성 떡값 명단이라는 것이 구체적이지 못한 것 같다. 금품이 오갔던 시기와 장소, 액수 등이 좀더 자세히 기재되어 있어야 증거 가치가 높다. 그런데 김변호사가 검찰에서 진술한 내용은 상당 부분이 삼성 내부의 누군가로부터 전해들은 증언인 것으로 알고 있다”라고 말한 바 있다. 그러나 보니 삼성그룹 금품 로비 의혹에 대한 검찰의 수사도 제자리걸음을 할 수밖에 없었다는 설명이었다.
특검에서도 삼성의 비자금 조성 의혹과 경영권 불법 승계 의혹 등에 초점을 맞추어 수사를 진행했다. 그러나 사제단과 김변호사측에서는 특검의 수사가 지지부진하다고 판단했다. 이에 지난 2월27일 사제단은 “이렇게 지지부진한 특검이라면 차라리 그간의 수사 결과를 정리해 검찰에 남은 수사를 맡겨라”라며 특검을 맹비난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제2차’ 떡값 명단을 공개한 3월5일이라는 시점도 절묘했다. 삼성특검과 검찰 그리고 이명박 정부에 강한 경고 내지 압박을 가한 것이다. 우선 3월9일까지로 되어 있는 특검의 1차 수사 기한을 앞두고 지지부진한 특검 수사에 ‘옐로카드’를 들었다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그래서인지 사제단의 발표가 있은 다음날(3월6일) 윤정석 특검보는 “사제단에 협조를 요청해 철저히 조사할 방침이다. 김변호사가 갖고 있는 증거 자료들을 제출해주면 수사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라고 밝혀 사제단을 뒤쫓는 모양새를 보였다.
동시에 이명박 정부의 첫 인사에도 문제가 있음을 지적했다. 특히 김변호사가 직접 금품을 전했다고 폭로했던 김성호 국정원장 후보자에 대한 국회 인사청문회를 이틀 앞둔 시점이어서 청문회의 핵심 쟁점으로 떠올랐다. 지난해 11월12일 사제단이 ‘1차’ 떡값 명단을 발표한 시점도 로비 대상으로 지목했던 임채진 검찰총장 후보자의 인사청문회가 열리기 전날이었다. 1, 2차 폭로가 로비 대상자로 지목된 이들의 인사청문회 시점에 맞추어 이슈를 극대화하려 했던 것으로 분석된다. 김성호 내정자는 사제단 발표 후 성명을 통해 “지금까지 가만히 있다가 청문회 시점에 맞추어 아무런 근거 없이 무분별하게 폭로한 것은 불순한 의도가 있다”라며 법적 대응 방침을 밝혔다.
또 코앞에 닥친 검찰 인사도 감안했던 것으로 보인다. 사제단은 “곧 있을 검찰 간부 인사에서도 중수부장, 서울중앙지검장 등 핵심 보직에 삼성으로부터 자유로운 훌륭한 분들을 임명해야 한다”라고 밝혀 검찰 인사에 대한 경고성 압박임을 숨기지 않았다. 이에 대해 검찰 내부에서는 “사제단이 인사 문제까지 관여하는 것은 지나친 월권”이라며 강한 불쾌감을 드러냈다.

돈 주었다는 사람은 있는데 받은 사람이 없다?

사제단과 김변호사의 주장에 따르면, 삼성의 불법 의혹들을 파헤치는 사정 기관에는 이른바 ‘삼성 떡값 수령자’들이 포진해 있는 셈이다. 임채진 검찰총장, 이귀남 대검 중수부장, 이종찬 청와대 민정수석, 김성호 국정원장 내정자 등이 올라가 있다. 당연히 사제단의 입장에서는 불만과 불신이 가득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지난 3월5일 기자회견장 중앙에는 ‘지금이 불법과 부정의 고리를 끊어버릴 때, 삼성과 삼성특검의 현 국면에 대한 사제단의 입장’이라는 제목의 현수막이 걸렸다. 여기에는 우리 경제의 부정부패를 지금 청산하지 않으면 사회적 난맥을 타개할 길이 없다는 절박함도 표출되어 있다.
문제는 김변호사와 사제단이 확보하고 있는 ‘떡값 파일’이 증거 능력을 갖추고 있느냐는 점이다.
돈을 주었다고 하는 사람은 있는데, 당사자가 안 받았다고 발뺌하면 증거로서의 효력이 약하다는 것이 법조계의 대체적인 시각이다. 그렇다고 해서 계좌 입금 등으로 흔적이 남아 있다면 모르지만 그것조차 없다면 수사는 미궁으로 빠질 공산이 크다. 또한, 로비 과정에 관여했던 또 다른 삼성 관계자가 특검이나 검찰 수사에서 이를 시인했을 리도 만무하다.
그동안의 정황으로 볼 때 삼성의 금품 로비 의혹은 사실로 인정되는 분위기이다. 다만 이를 뒷받침할 만한 증거나 구체적인 증언이 나오지 않으면 삼성의 떡값 로비 의혹도 영원한 미스터리로 남을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삼성 비리 의혹에 대한 사제단의 공세는 계속 이어질 전망이다. 특히 김변호사가 김성호 국정원장 내정자에게 직접 금품을 전달했고, 이종찬 민정수석이 삼성 본관 이학수 부회장 사무실을 방문해 여름 휴가비를 받아갔다는 제법 구체적인 증언이 나온 만큼 3월9일 1차 수사 기간을 마치고 30일 더 수사기한을 연장한 특검팀의 향후 행보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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