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 가는 파벌 싸움에 선수 등 터지네
  • 기영노 (스포츠 평론가) ()
  • 승인 2008.03.10 1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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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구·쇼트트랙·스피드 스케이팅·유도 ‘극심’ 훈련·작전 지시 따로따로…국제 대회 성적에도 악영향

스포츠계가 학연·지연 등의 파벌 싸움으로 날새는 줄 모르고 있다. 탁구는 회장파와 비회장파의 싸움으로

 
한때 중국과 세계 정상을 다투었던 여자 탁구가 세계 10위권 밖으로 밀려났고, 쇼트트랙·스피드 스케이팅은 한국체육대학과 비(非) 한국체육대학 간 파벌 갈등으로 인해 국가대표 선발전이 벌어질 때마다 외국에서 심판을 초청하는 실정이다. 그밖에 박태환을 배출한 수영을 비롯해서 유도, 복싱 등의 개인 종목들도 파벌 싸움에서 자유롭지 않은 상태이다.
탁구계가 ‘안에서 새는 바가지 밖에서도 샌다’는 옛말이 하나도 틀리지 않다는 것을 증명해주고 있다. 회장(천영석)파와 천회장을 몰아내려는 반대파가 극렬하게 대립한 결과 여자탁구가 국제 대회에서 사상 처음 10위권 밖으로 떨어지는 수모를 당한 것이다.
탁구협회는 지난 1월31일 오후 송파구 방이동 올림픽파크텔 3층 회의실에서 정기 대의원 총회를 소집했지만 천영석 회장이 직권으로 선임한 중앙대의원 5명의 자격을 둘러싼 논란으로 총회가 불발되었다. 반대파 대의원들이 중앙대의원 자격 문제를 거론하면서 회장파와 반대파 대의원들 사이에 격론이 벌어졌고, 총회는 3시간30분여 마라톤 회의 끝에 무산되었다. 대한체육회는 지난 2월 초 탁구협회에 대한 특별감사 결과 9개 사항에서 문제점이 발견되었다며 기관 경고와 개선 조치를 내리기도 했다.
이같은 탁구계의 내분으로 인한 갈등 때문에 결국 남녀 국가대표 팀의 유남규·현정화 감독이 전격 사퇴하기에 이르렀고, 두 감독이 지도하던 국가대표 선수들은 해외 전지 훈련을 보이코트해서 회장파 소속 선수들만 다녀오기도 했다.
탁구계 내분은 결국 국제 대회 최악의 성적으로 나타났다. 지난 2월24일부터 3월2일까지 중국 광저우에서 벌어진 세계탁구선수권대회(홀수 해는 개인전, 짝수 해는 단체전만 벌어진다) 단체전에서 남자는 2006년 독일 브레멘 대회에 이어 준우승을 차지했지만, 여자는 세계 대회 사상 최악의 성적인 11위에 머무르고 말았다. 여자탁구는 일본과의 예선에서 2 대 3으로 역전패를 당했고, 예선에서 3 대 0으로 이겼던 네델란드와의 16강전에서도 2 대 3으로 패했다. 여자탁구는 9~12위 결정전에서 크로아티아에 0 대 3으로 힘없이 무너졌다.
여자 탁구는 엔트리가 5명이어서, 선발전으로 3명을 추리고, 올림픽 티켓을 확보한 국내 랭킹 1, 2위 김경아·박미영 선수를 출전시켰으면 무난히 4강에 들었을 것이다. 특히 김경아·박미영 선수는 수비 전형으로 유럽 선수들에게 강하다. 그러나 대한탁구협회는 회장파와 반대파의 싸움에 지친 나머지 기계적으로 1위부터 5위까지 5명의 선수를 선발했고, 이들은 경험 부족 등으로 우리보다 한 수 아래인 일본은 물론 유럽에게도 밀렸던 것이다.
파벌 싸움이라면 동계 종목 가운데 최고 효자 종목인 쇼트트랙·스피드 스케이팅이 탁구계 파벌보다 더하면 더했지 못하지 않다. 쇼트트랙·스피드 스케이팅은 2006 토리노 동계 올림픽을 앞두고 한국체대와 비 한국체대 출신이 정면으로 맞붙었다. 파벌 싸움은 결국 선수촌 입촌 거부와 코칭스태프 거부 사태로 번졌고, 결국 ‘파벌 훈련’이라는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일도 빚어냈다.
남녀 선수가 따로 훈련을 받은 것이 아니라 말 그대로 파벌로 나뉘어 자기가 따르는 코치 밑에서 뒤섞여 훈련을 받았고, 토리노에 도착해서도 말로는 통합 훈련을 한다고 했지만 계주 종목을 뺀 나머지 종목에서는 여전히 따로 작전 지시를 받는 어이없는 상황을 연출했다.
특히 동계 올림픽 개막을 세 달여 앞두고 치러진 쇼트트랙 월드컵에서는 승부 조작 파문까지 일었고, 일부 코치의 특정 선수 편애에 대한 불만도 터져나왔다. 결국 파벌의 문제는 올림픽 개막 이후 선수 엔트리를 작성하는 데도 영향을 미쳐 마치 파벌끼리 반반씩 선수를 기용하는 것이 아니냐는 의혹까지 불거지게 했다.
쇼트트랙이 금메달 유망 종목이 되면서 자기 출신 선수들이 대표 팀에 많이 선발되게 하기 위한 치열한 경쟁과 대표 팀을 장악하려는 어른들의 ‘파벌 다툼’이 어린 선수들을 볼모로 선수촌 입촌 거부를 부추기고 상대 파벌에 대한 ‘투서전’까지 벌어지는 불미스런 사태에까지 이르도록 만들었다.
 

‘파벌’ 고질 극복한 핸드볼은 승승장구

유도계에서 특정 대학과 팀의 파벌도 오래된 얘기이다. 이는 재일동포 4세 격투기 선수 추성훈 선수가 방송에 출연해서 언급을 해서 더욱 화제가 되고 있다. 추성훈은 지난 2월28일 MBC <황금어장>의 ‘무릎팍 도사’ 코너에 출연해 “국내에서 유도 선수로 뛸 때 피해를 본 적이 있느냐”라는 질문을 받고 “파벌로 인한 피해를 본 적이 있었다”라고 답했다.
추성훈 선수의 발언이 있은 직후 각종 포털 사이트에는 그를 격려하는 네티즌들의 글이 쏟아졌다. 추성훈은 1998년 4월 아버지 추계이씨(57)의 뜻에 따라 한국 국가대표가 되기 위해 부산시청에 입단했고, 3년7개월 만인 2001년 10월 일본으로 돌아갔다. 당시 81㎏급 선수로 활약했던 추성훈은 유도의 속성상 판정으로 승부가 날 때마다 자신이 재일동포였기 때문에 차별을 받는다고 믿고 있었고, 더구나 특정 대학 출신 선수에게 패할 때는 더욱 안타까워하기도 했다.
한판 또는 절반이나 유효 등 눈에 띄는 기술로 승부가 가려지면 상관이 없는데, 5분 내내 기술이 걸리지 않고 팽팽하게 맞서다가 판정으로 승부가 가려질 경우 심판의 재량이 작용하게 마련이다.
추성훈의 이번 발언이 있기 전에 이미 김재엽 동서울대 경호안전학과 교수가 파벌의 폐해를 실토한 바 있다. 계명대학 출신인 김재엽 교수는 1986년 서울 아시안게임에서 60kg급 금메달을, 1987년 세계유도선수권대회에서 60kg급 금메달을, 그리고 1988년 서울올림픽에서 60kg급 금메달을 각각 따 유도계에서는 경량급 사상 최고 선수로 불리고 있다.
그러나 김교수는 1998년에 유도계를 떠났다. 당시 김교수는 “유도계는 특정 대학을 나오지 않으면 국가대표 되기가 하늘의 별 따기만큼 어렵다. 앞으로 한국 유도는 특정 대학이 욕심을 버리지 않는 한 내리막길을 걸을 것이다. 결과가 빤한데 새로운 팀이 창단될 리도 없고, 따라서 발전이 될 수도 없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실제로 여자유도는 이미 세계유도의 변방으로 밀려난 지 오래고, 남자유도도 쇠락의 길을 걷고 있다.
김교수의 아들은 프로축구 인천 유나이티드 팀(U-16)에서 축구 선수로 활약하고 있다. ‘기타 대학’ 유도 선수로서의 아픔을 대물림해주고 싶지 않아 아예 축구 선수를 시킨 것이다.
파벌을 극복한 성공적인 종목으로 핸드볼을 들 수 있다. 핸드볼은 1990년대까지만 해도 경희대와 한국체육대학을 중심으로 한 파벌 다툼이 매우 심했다. 그러나 두 파벌로부터 자유로운 김한길 의원(당시 열린우리당)을 회장으로 영입한 뒤 달라졌다. 김회장은 어느 한쪽으로 치우지지 않은 불편부당(不偏不黨)한 정책으로 파벌을 잠재워나갔고, 김회장을 이은 조일현 현 회장 역시 별다른 잡음 없이 핸드볼계를 잘 이끌어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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