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단 들고서도 소환은 미적미적 특검이 졸고 있나
  • 감명국 기자 kham@sisapress.com ()
  • 승인 2008.03.17 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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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용철 변호사가 3월12일 또 하나의 문건을 삼성 특검팀에 제출했다. 정·관계 로비를 담당했던 삼성의 핵심 임원 30여 명의 명단이 들어 있다고 했다. 이로써 김변호사측이 특검팀에 제시한 수사 대상 명단 문건은 세 번째가 된다.
김변호사는 지난해 12월 삼성 비자금 사건을 수사하기 위해 구성된 검찰의 특별수사 감찰본부(특본)에 68인의 명단이 담긴 첫 문건을 건넸다. 비자금 조성에 관계된 삼성 그룹 28개 계열사의 핵심 임원이라고 했다. 이 문건은 특검팀에도 자연스럽게 전달된 것으로 알려졌다. 두 번째 문건은 1월13일 특검팀이 출범한 직후 건네졌다. 김변호사가 작성한 ‘수사 대상 의견서’였다. 의견서에는 특검이 다루어야 할 수사 대상을 열거하면서 거기에 해당하는 수사 대상자 20여 명의 구체적인 이름이 거론되어 있다. 여기에는 1차 명단에서 빠진 이재용 삼성전자 전무가 포함되었다. 하지만 나머지 삼성 임원은 대부분 기존의 명단과 겹친다. 이번에 다시 제출한 30여 명의 명단 역시 기존의 명단과 상당 부분 겹치는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 특검팀은 1월18일 성영목 호텔신라 사장과 반용음 삼성증권 전무를 첫 소환하는 것을 시작으로 지금껏 60여 명에 가까운 관계자들을 소환 조사했다. 이 가운데 삼성의 주요 임원들은 20명 정도인 것으로 알려졌다. <시사저널>이 확인한 결과, 68인의 명단 가운데 3월14일 오후 6시 현재 특검에 소환된 임원은 11명에 불과한 것으로 밝혀졌다. 이 중 지난 2005년 위암으로 사망한 박재중 전 전무와 현재 일본 지사에서 근무 중인 일본삼성 이창렬 사장 등 4명을 제외하더라도 53명의 핵심 임원이 여전히 소환 조사를 받지 않았다. 물론 여기에는 이건희 회장도 포함된다.


이건희 회장 포함 53명 핵심 임원 소환 안 받아

특검팀은 지난해 12월 삼성 비자금에 대한 수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김변호사로부터 수사 대상 명단을 받았지만 3주간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 관계자들을 모두 소환 조사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했다. 앞으로 이 부분은 특검팀이 해야 하리라고 본다”라고 그 공을 특검팀에 넘긴 바 있다.
김변호사는 제시한 명단 가운데서도 특히 비자금 핵심 라인 5인방에 방점을 찍었다. 그 맨 위에는 역시 ‘그룹의 2인자’로 알려진 이학수 전략기획실 부회장이 있었다. 그 밑으로 김인주 전략기획실 사장, 최광해 전략기획실 부사장, 전용배 전략기획실 상무, 그리고 배호원 삼성증권 사장 등이 포진하고 있다.
이부회장은 2월14일 처음 소환되었다. 이부회장은 삼성의 경영권 불법 승계와 비자금 조성 및 관리 과정에 깊숙이 관여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그는 지난해 참여연대와 민변이 제기한 ‘삼성 비자금 고발’ 사건과 ‘삼성SDS 신주인수권부사채(BW) 저가발행 인수’ 사건의 피고발인이기도 하다. 예상보다 다소 빠른 그의 소환에 삼성은 물론 취재진들도 긴장했다. 하지만 당시 그의 소환이 조사라기보다는 일종의 방문 성격이었던 것으로 알려지면서 오히려 특검 수사에 대한 불신을 가중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비난을 의식해서인지 특검은 2월29일과 3월13일 이부회장을 잇달아 다시 불러들였다.
김인주 전략기획실 사장 역시 지난 2월29일 소환되었다. 그 또한 삼성의 경영권 불법 승계와 비자금 조성 및 관리의 핵심 인물로 지목되고 있다. 특히 김사장은 경영권 불법 승계 의혹의 핵심인 ‘에버랜드 전환사채(CB) 저가 발행’ 배임 사건을 기획하고 주도한 당사자로 지목받고 있다. 두 사람에 대한 조사 여부에 따라서 사실상 이건희 회장에 대한 사법 처리 여부가 결정될 전망이다. 최광해 전략기획실 부사장은 지난 3월5일 특검에 소환되었다. 그는 ‘e삼성 지분 매입’ 사건의 피고발인 신분이기도 하다. 비자금 조성 및 관리는 물론 불법 경영권 승계 등 전반적인 삼성 비리에 깊숙이 개입한 의혹을 받고 있다. 그는 지난 2004년 현 전략기획실의 전신인 삼성구조조정본부 재무팀장으로 근무하며 이건희 회장 일가와 삼성 전·현직 임원들의 재산을 관리해온 인물로 의심받고 있다.
배호원 삼성증권 사장은 지난 2월18일 소환되었다. 그는 그룹의 재무 전문가로 비자금 조성 의혹과 관련해 이부회장 등 전략기획실 핵심 라인에 관여하면서 삼성의 차명 계좌 개설 및 운용에 핵심 역할을 담당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당시 특검은 배사장을 상대로 삼성증권에 1천여 개가 넘는 삼성 계열사 전·현직 임직원 1백50여 명 명의로 차명 의심 계좌가 개설된 경위와 이 과정에서 배사장의 역할 등에 대해 집중 조사를 벌인 것으로 알려졌다.
2월20일에는 최도석 삼성전자 경영총괄 사장과 김순택 삼성SDI 사장이 소환되었다. 삼성그룹의 ‘금고지기’로 알려진 최사장은 연간 10조원에 달하는 삼성전자의 자금을 관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에서는 실제 이부회장에 이은 ‘넘버 3’라는 얘기가 나올 정도로 그룹 내의 실세로 알려졌다. 김변호사는 “삼성전자의 최고 재무 책임자인 최사장이 삼성전자 비자금의 실질적인 관리를 해왔다”라고 주장했다. 김변호사가 이번에 제출한 30여 명의 명단에도 최사장이 첫머리에 오른 것으로 알려졌다. 김변호사는 그가 국세청 로비를 담당했다고 주장한다.


최도석 삼성전자 총괄사장, 이번에도 명단에 올라
김순택 사장은 2001년 ‘e삼성’ 사건 당시 e삼성 주식을 매입한 삼성SDI에서 대표이사로 재직했으며 이 사건과 관련해 참여연대로부터 고발된 임원 중에 한 명이다. 그는 e삼성 주식 매입 경위와 불법적인 경영권 승계 여부에 관한 의혹을 받고 있다. 지난 2월13일에는 이재용 전무가 투자한 e삼성, e삼성인터내셔널, 가치네트, 시큐아이닷컴 설립 과정에 관여한 삼성SDS 김성훈 전무를 참고인으로 소환해 e삼성 주식 매입 사건에 대해 조사했다.
신응환 삼성카드 전무 역시 e삼성 사건과 관련된 핵심 인사로 2월18일 소환되었다. 특검팀은 이들을 상대로 이전무가 주도했다가 실패한 e삼성 사업과 관련해 계열사들이 e삼성 등 IT 기업들의 지분을 사들여 그룹에 손실을 끼친 의혹을 조사했다. 하지만 특검팀은 3월13일 e삼성 고발 사건과 관련해 이전무 등 피고발인 전원을 불기소 처분해 김변호사와 참여연대 등으로부터 반발을 사고 있다.
정기철 삼성물산 부사장은 1월27일 소환 조사를 받았다. 그룹 내 ‘재무통’으로 알려진 정부사장은 차명 의심 계좌와 비자금의 실체에 대해 집중 조사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김변호사는 정부사장을 해외 비자금 조성과 관리의 창구로 지목하고 있다. 정영만 삼성화재 전무는 지난 2월19일 소환되어 차명 의심 계좌 보유 경위 및 비자금 조성 여부 등을 조사받았다. 그는 3월10일 한 차례 더 소환 조사를 받았다. 삼성화재가 렌터카 비용처럼, 고객들이 미처 몰라 받아가지 못한 몇 만원 단위의 돈을 계속 빼돌려 10억원이 넘는 비자금을 조성한 정황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삼성 임원들 중 첫 케이스로 소환된 반용음 삼성증권 전무는 출국 금지되었다. 차명 의심 계좌와 관련해 비자금 대책 문건을 가지고 있는 것이 확인되었기 때문이다. 이처럼 명단에 오른 인사들 가운데 특검팀의 소환 조사를 받은 이는 11명에 불과하다. 나머지 50여 명의 인사들 가운데는 아직 수사 기간이 좀더 남아 있는 만큼 추가 소환이 예상되지만, 특검팀이 이미 반드시 조사했어야 할 임원들이 상당수 포함되어 있다. 김변호사와 천주교 정의구현전국사제단측이 특검팀의 수사 의지에 대해 불신감을 표출한 이유이기도 하다.
이 가운데 비자금 조성의 핵심 라인 ‘5인방’ 중의 한 명으로 지목받고 있는 전용배 전략기획실 상무를 아직 소환 조사하지 못하고 있는 점에 대해서는 검찰에서조차 의아해하고 있을 정도이다. 그는 최광해 부사장과 함께 삼성그룹 계열사의 재정은 물론 이건희 회장 일가의 재산, 그룹전·현직 임직원의 재산까지 관리해왔다는 의혹을 받아왔다. 특검팀이 벌써부터 소환을 통보했으나 응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검팀은 전상무에 대해서는 강제적인 방법으로라도 데려오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전했다.


 
 
특검, 전용배 전략기획실 상무 강제 구인도 검토

최외홍 삼성전자 부사장과 이선종 삼성전자 전무는 최도석 사장과 함께 국세청 로비를 전담했다고 김변호사가 밝히고 있다. 정기철 부사장과 함께 삼성물산 해외 비자금 조성과 관련한 핵심 관계자로 지목된 이상대 삼성물산(건설 부문) 사장, 지성하 (상사 부문) 사장, 이언기·이동휘 상무에 대해서도 아직 소환 조사를 하지 않고 있다.
정연주 삼성엔지니어링 사장은 김변호사에 의해 검찰 수뇌부 인사 로비를 직접 관리한 인물로 지목되었다. 김변호사는 지난해 11월26일 4차 기자회견에서 “가령 전 검찰총장인 ‘송광수’ 하면 바둑 1급에 골프를 좋아하니 골프 좋아하는 정연주 삼성엔지니어링 사장이 맡는 식이었다”라고 폭로한 바 있다.
삼성문화재단에서 전무·부사장·사장 등을 역임한 한용외 삼성사회봉사단 사장은 홍라희 삼성 리움 미술관장의 미술품 구매와 관련해 삼성그룹의 핵심 인사로 지목받고 있다. 또한 경영권 불법 승계 의혹의 수사 대상 가운데 삼성SDS 신주인수권부사채(BW) 사건의 피고발인 신분이어서 그동안 특검의 1차 수사 대상으로 지목받아왔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소환에 응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유는 장기 휴가를 받아 2월 초 미국으로 출국했기 때문이다. 특검팀은 귀국하는 대로 소환 조사하겠다고 밝혔지만 아직 한사장은 돌아올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에버랜드 전환사채 헐값 발행 사건과 관련해 출국 금지당한 박병주 삼성에버랜드 전무와 서울통신 기술전환사채 발행 사건에 관련된 것으로 알려진 박종한 삼성SDS 상무도 반드시 조사해야 할 대상으로 분류되고 있다.
김변호사의 폭로 이후 사실상 삼성을 대표해서 반박 성명을 주도했던 윤순봉 전략기획실 부사장(홍보팀장) 역시 수사 대상 명단에 올라 있다. 이명박 대통령의 포항 동지상고 후배로 알려진 김능수 삼성BP화학 전무도 포함되어 있지만 소환 계획은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밖에도 최규홍 에스원 사장, 정준명 삼성인력개발원 사장, 이해진 삼성BP화학 사장, 이정화 삼성SDI 부사장 등 30여 명의 인사가 수사 대상 명단에 올랐지만 사실상 이들은 소환 조사를 받지 않을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이와 관련해 김상조 경제개혁연대 소장은 “한정된 수사 기한 내에 최대한 수사를 집중해야 할 특검이 마치 일반 검찰과 같은 수사 기법을 택하다 보니 소환 조사에서 얼마만큼의 성과를 거둘 수 있을지 의심스럽다. 핵심 관련자 소환을 미뤄 결과적으로 삼성 임직원들이 증거 인멸에 나서는 등 시간을 벌어주는 결과만 초래했다”라고 비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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