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압수 문화재, 밀매꾼에게 넘어간다”
  • 정락인 기자 freedom@sisapress.com ()
  • 승인 2008.03.17 11:58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도굴·절도 문화재 유통 경로 추적 / 검찰 압수품 10점 중 8점은 ‘장물아비’가 ‘꿀꺽’

 
국보 1호 숭례문이 어이없는 화재로 손실되자 국민은 통곡했다. 우리의 문화재는 화재로 소실되는 것만은 아니다. 수많은 문화재가 밀매단의 손에 들어가면 개인 소유물로 전락해 사라진다. 몇 단계의 세탁 과정을 거쳐 최종 목적지는 재벌 총수나 특정인의 개인 박물관에 들어가기도 한다.
<시사저널>은 검찰에 압수된 문화재의 유통 경로를 통해 문화재가 여러 사람의 손을 거쳐 세탁되는 과정을 추적했다. 도굴꾼에 의해 도굴되거나 절도된 문화재가 다시 문화재 밀매단에게 넘어가는 사실도 확인할 수 있었다. 우리의 문화재 관리가 얼마나 허술한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지난 2001년 4월24일 검찰은 문화재 사범에 대해 대대적인 단속을 벌였다. 이때 전국 사찰에서 국보급이나 보물급 문화재를 훔쳤거나 거래한 중간책 등 문화재 밀매단 36명이 적발되었다. 사상 최대 규모다. 여기에는 전직 고미술협회 회장, 병원 간부, 현직 경찰관 등이 끼어 있었다. 이들은 검찰에 적발되기 전까지 국보·보물급을 포함한 유물을 닥치는 대로 훔쳐 밀거래했다. 당시 언론 보도에는 검찰이 용비어천가 판본(조선 중기 간행본), 해인사 판당고(팔만대장경 보관) 중수발원문, 익안대군(태조의 셋째아들) 영정 등 국보·보물급 유물 1천여 점을 압수했다고 보도했다.
<시사저널>이 입수한 당시 검찰 압수 품목에는 문화재에 속하는 유물은 4백여 점이 채 안 되었다. 외부에 알려진 것과는 상당한 차이가 있는 것이다. 피의자의 진술서와 검찰 압수 품목에도 다른 점이 있었다. 장물아비 구정걸씨(가명·64)의 진술서에는 ‘피의자가 임의로 제출한 용비어천가 8권을 제출받아 압수했다’는 기록이 있다. 법원 판결문에도 ‘8권을 취득한 사실을 수사 기관에 진술했다’라고 나와 있다. 그러나 검찰의 압수표에는 용비어천가가 전체 7권으로 기록되어 있다. 문화재청에 몰수되어 국립 중앙박물관으로 보내진 용비어천가도 7권이다. 진술서와 판결문 그리고 압수표 등을 토대로 보면 1권이 빈다. 그렇다면 나머지 1권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이에 대해 강신태 문화재청 사법단속반장은 “내가 도굴범을 검거해 검찰에 넘겼는데 용비어천가는 분명 7권을 압수했다. 진술서상에서 잘못된 것이지 압수 물품이 틀린 것은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또 하나 이상한 것은 도굴된 문화재의 환부 목록이다. ‘환부’는 행정 기관이 압수한 물건을 본래의 소유자·소지자·보관자에게 돌려주는 것이다. 그런데 검찰이 작성한 압수품 환부목록을 보면 특정인 몇 사람이 독식하듯 환부 받았다. 압수 물품 중 문화재급은 3백35여 점(폐기물품 5점 제외)이며 환부 받은 사람은 14명이다. 이 중 절반에 해당하는 7명이 도굴이나 장물 취득 등 문화재법 위반 혐의로 입건되거나 조사를 받은 사람들이다.
이들이 환부 받은 문화재는 무려 2백75점(78.2%)이나 된다. 특히 이경상(가명·57) 2백2점, 조용환(가명·63) 28점, 김봉선(가명·73) 22점, 김병군(가명·57) 18점 등 4명이 싹쓸이하다시피 했다. 이들은 장물 취득과 장물 알선 혐의로 검찰에 입건되었거나 조사를 받았던 장물아비들이다. 업계에서는 이들이 상선으로 알려졌다. 반면 문화재청에 몰수된 문화재는 16점, 사찰에 환부된 것은 5점에 불과했다. 압수 문화재 10점 중 8점은 다시 밀매꾼에게 돌아가고 있는 것이다.
문화재청 강신태 반장은 “압수한 문화재에 대해서는 최대한 주인을 찾아주려고 노력한다. 주인이 나타나지 않으면 결국 환부를 신청한 사람에게 넘어갈 수밖에 없다. 그러다 보니 명백한 한계가 있다. 이런 현실을 이해해주었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도굴범과 밀매단이 미리 짜고 ‘환부’ 신청하기도

골동품 수집상 조용환씨는 도굴범 서상복(47)씨로부터 금강반야바라밀경 등을 취득한 후 고서점 등에 팔아넘기려고 했다. 김봉선씨도 도굴꾼을 통해 대방광불화엄경 등을 구입했다가 입건되었다. 대구 ㄱ병원 내과과장 김병군씨는 상선 중 거물급이다. 사회 지도층 윗선들을 상당수 확보하고 있다는 소문이 나 있다. 김씨는 훔친 문화재들을 가지고 개인 전시회를 열거나 학자들에게 연구 자료로 제공하기도 했다.
호박(3개), 북한산 민화(2점), 서찰과 서류(1백97점)를 환부 받은 이경상씨는 평상시에는 골동품 매매업자로 행세하고 있으나 문화재 도굴·절도범이다. 2000년 3월 충남 금산 청풍사 내 청풍서원에 침입해 그곳에 있던 야은 길재 선생 영정 4점과 친필 문집 32권을 훔쳤다. 또 같은 해에 대전 유성구 송정동 남 아무개씨 집에 들어가 고문갑 1점과 고문갑 안에 있던 서류 2백30여 점을 훔쳤다.
그림(서화) 1점을 환부 받은 건재상 문주창씨(가명·48)도 전문 도굴꾼이다. 문씨는 서울 봉원사 명부전에서 대왕상의 복장 뚜껑을 열고 그 안에 있던 복장 유물 능엄경언해활자본 7점, 불경 70권, 저고리 1점 등을 훔쳤다. 대전 성불사와 충남 공주의 한 사찰에서도 불상 복장 뚜껑을 열고 금을 훔쳐냈다. 지방 박물관을 털기도 했다. 원주 치악 박물관 전시실에 전시된 백자청자매죽문연적 1점을, 미리 준비해간 같은 모양의 가짜 연적과 바꿔치기 한 것이다. 서예작품액자 4점을 환부 받은 이철성씨(가명·67)는 매장 문화재인 백제 토기 2점을 도굴했다.

 
이들은 단순한 도굴꾼이나 장물아비들이 아니다. 점 조직 형태의 문화재 밀매 조직의 일원이다. 문화재 밀매단은 보통 행동대원(도굴·절도범)-상선(장물아비)-유통업자(판매책)로 구성되어 있다. 밀매단의 두목 격인 몸통은 상선이다. 이들은 평소 고서방을 운영하거나 수집가 등으로 위장하고 있다. 사회 지도층이나 전문직에 있는 사람들이 상선인 경우도 있다.
문화재 도굴은 실질적으로 상선(일명 나까마)에 의해서 기획되고 상선에 의해서 움직여진다. 도굴꾼은 행동대원에 불과하다. 도굴꾼들에게 문화재를 도굴하거나 절도하라고 지시하는 것도 상선이다. 이들은 평소 각종 문화재에 관한 정보를 입수하고, 도굴할 문화재의 위치까지 상세하게 알려준다. 도굴꾼이 도굴하거나 훔쳐오면 감정하는 것도 상선의 몫이다. 감정이 끝나면 감정가를 매겨서 도굴꾼에게 물건 값을 지불한다. 그리고는 시세 차익을 남긴 후 팔아넘긴다. 문화재 밀매단 사이에서 상선에게 물건을 사는 사람을 ‘윗선’이라고 부른다. 윗선은 철저하게 비밀에 붙여지고 상선만 알고 있다. 물건을 사들이는 윗선들은 다양하다. 대기업 임원, 그룹 총수, 박물관장, 대학 교수, 개인 소장가 등이다. 상선과 윗선의 거래 품목은 국보급이나 보물급으로 알려져 있다.
사찰에서 도굴된 문화재는 해당 사찰에서조차 존재를 알지 못하는 것이 태반이다. 부처님 몸속에 들어 있는 복장 유물은 없어져도 알 수가 없다. 상선들은 이것을 철저하게 이용한다

문화재 세탁은 여러 방면에서 은밀하게 진행된다. 전국의 문화재거래허가업소, 고서점, 골동품점 등을 이리저리 돌아다닌다.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에 출처가 모호해진다.
도굴꾼이나 상선이 관계 기관에 잡혀도 문제가 없다. 상선은 “장물인지 몰랐다. 반성한다. 그러니 선처를 바란다”라는 말로 형량을 가볍게 하고 있다. 여의치 않을 경우 보물급 이상 문화재의 출처를 밝히고 형량을 줄인다. 도굴계의 1인자인 서상복씨도 검찰 수사에 협조하고 징역 1년을 선고받았다. 장물아비 구정걸씨는 검찰에 용비어천가를 반납하고 집행유예로 풀려났다. 밀매범들이 법을 잘 이용하고 있다는 것을 반증한다.

 

 
“도난 문화재 공소 시효 없애고 재벌 등의 불법 거래 막아야”

그들은 도굴한 유물을 사법 당국에 압수당하더라도 다시 빼오는 방법을 너무 잘 알고 있다. 검찰이 압수물 공고를 내면 환부 신청을 하고 환부 받으면 그만이다. 문화재 환부는 도굴 문화재를 세탁하는 방법의 하나로 이용되기도 한다. 상선과 도굴꾼은 유물 출처에 대해 미리 입을 맞추었다가 압수물 환부를 신청한다. 도굴꾼이 붙잡힐 경우 상선이 환부를 신청하고, 상선이 붙잡히면 도굴꾼이 환부를 신청하는 방법이다.
이때 미리 찍어놓은 사진을 증거물로 제출하기도 한다. 증거물이 없어도 또 다른 신청자가 나타나지 않으면 유물은 십중팔구 상선의 손에 넘어간다. 사찰에서는 문화재가 도굴·절도되었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있으니 제3의 환부 신청자가나오지 않는 것이 당연하다. 이렇게 밀매단에게 환부된 문화재는 출처가 분명해져 합법적인 거래가 가능하다. 유물이 상선의 손에 넘어가면 도굴범은 훔친 물건 중에 값 나가는 것을 내놓고 유물과 형량을 바꾸는 것이다. 검찰에 압수된 유물중에 출처가 불분명한 것은 문화재청으로 몰수되기도 한다.
국내에서 정상적으로 유통되기 어려운 도굴·절도·문화재는 해외로 유출된다. 전시회 등의 명목으로 해외에 밀반출한 뒤 현지에서 정상적으로 구입한 것처럼 세탁을 거친 후 재반입하는 수법이다.
현재 도난당한 문화재의 공소 시효는 7년이다. 이 기간이 지나면 도굴 문화재라도 찾을 방법이 없다. 그러다 보니 도굴꾼의 입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P&P 법률사무소 김형남 변호사는 “도둑 맞은 문화재가 지하유통망을 거쳐 사회 지도층으로 흘러들어간다. 도굴단을 적발하여도 훔친 장물들이 다시 도굴범들에게 돌아가고 있다. 문화재 사범에 대한 단속을 강화하고 현행범의 공소시효도 손봐야 한다”라고 말했다.
우리나라의 문화재는 소유가 불균형적이다. 정작 중요한 문화재는 해외로 밀반출되었거나 재벌 총수 등 특정인들이 소유하고 있는 것이 많다. 국보급 문화재 중 특정 재벌 총수가 30% 넘게 소유하고 있는 것 자체가 문제이다. 이들이 상선 위에서 물건을 구매하는 ‘윗선’이라는 눈총을 받아온 지 오래다. 최근에는 재벌 소유의 문화재나 미술품이 불법 상속의 수단이 되고 있기도 하다. 문화재 제자리 찾기 운동을 벌이고 있는 경기도 남양주시 봉선사 혜문 스님은 “문화재는 개인의 사유물을 넘어 공공의 재산이다. 재벌 총수들이 불법적인 방법으로 문화재를 구입한 것은 부처님의 뱃속까지 턴 도굴범이나 다를 것이 없다. 국가 재산을 투기 대상으로 삼는 것은 말이 안 된다. 선의 취득을 주장하며 소유하고 있는 문화재를 모두 국가에 반환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