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누구를 인터뷰했을까
  • 이재현 기자 yjh9208@sisapress.com ()
  • 승인 2008.03.17 1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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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류 기자와 B급 여배우가 벌이는 하룻밤 두뇌 싸움

 
그레고리 펙과 오드리 헵번이 주연을 맡았던 영화 <로마의 휴일>에서 신문기자인 그레고리 펙은 우연히 왕실을 뛰쳐나온 공주 오드리 헵번을 만난다. 기자 입장에서는 호박이 덩굴째 굴러들어온 셈이다. 특종인 것이다. 그는 공주와 로마의 이곳저곳을 구경 다니며 사진기자에게 몰래 사진을 찍게 한다. 그러나 기자도 사람이라 공주와 정이 들고 만 그는 왕실로 돌아가 기자회견을 연 그녀 앞에 모르는 척하고 나타나 사진 기자가 찍은 사진을 선물한다. 특종이 날아가는 순간이지만 관객들은 그들의 짧은 사랑에 가슴이 찡해진다.
하는 일은 거의 같은데 경찰을 주인공으로 한 영화는 많아도 기자를 주인공으로 한 영화는 거의 없다. 사건을 쫓는 기자보다 경찰을 소재로 한 영화가 여러모로 할 얘기가 많아서 그렇다. 그런 의미에서 볼 때 <인터뷰>는 상당히 예외적이다. 이 영화는 원래 네덜란드 감독 테오 반 고흐 감독이 2003년 찍었던 영화를 연기자이자 연출자인 스티브 부세미가 코미디로 리메이크한 것이다. 스티브 부세미는 우리에게 <콘에어> <아마겟돈>으로 얼굴이 익은 배우이다.
정치부 기자로 기사를 소설처럼 쓰다가 들통난 피에르(스티브 부세미 분)는, 어느 날 편집장에게서 B급이지만 인기 스타인 카티야(시에나 밀러 분)를 인터뷰하라는 지시를 받는다. 졸지에 연예부 기자로 전락한 피에르는 잔뜩 독이 오른 채 그녀와 약속을 잡고 카페에서 기다린다. 그러나 카티야는 한 시간이나 늦게 나타나고 아무런 사전 준비도 하지 않은 피에르는 카티야에게 조롱만 당한다. 두 사람의 대화는 겉돌기만 하다 급기야 피에르가 취재를 포기하고 만다. 그런데 택시를 탄 피에르는 카티야에게 한눈을 팔던 운전사의 실수로 이마가 깨지고 카티야는 미안하다며 그를 자신의 아파트로 데려간다.

거짓과 진실을 동시에 말하는 두 사람
<인터뷰>는 이 아파트에서 두 사람의 본격적인 인터뷰를 보여준다. 누가 기자이고 취재원인지 헷갈릴 정도로 두 사람의 대화는 공격과 수비를 주고받는다. 카티야를 창녀 취급하는 피에르와 그런 피에르를 유혹하는 카티야를 보면서 관객들은 그들이 언제 침대에 들어갈지 상상하지만 결코 그런 일은 없다. 자신의 비밀을 풀어놓은 카티야는 피에르의 고백을 캠코더로 찍으며 인터뷰한다. <인터뷰>에는 스티브 부세미와 시에나 밀러 두 사람만 나온다. 두 사람의 승강이가 전부인 영화라서 지루한데, 그 지루함을 참고 견딜 만한 반전이 마지막 장면에 나온다. <로마의 휴일>에 나온 그레고리 펙처럼 멋있는 기자가 아니라 처음부터 끝까지 3류 기자를 보아야 하는 것이 좀 고역이어도 이 영화는 우리에게 누구나 거짓과 진실을 동시에 말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수작이다. 3월20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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