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산차와 수입차 “못 알아보겠네!”
  • 심정택 (자동차산업 전문가) ()
  • 승인 2008.03.17 1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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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격·성능 차이 줄어 브랜드로 승부수 국산차, 쌍용 등 고가 정책으로 안간힘

 
내 수 경기 중 초호황을 누리는 업종은 수입차와 도너츠밖에 없다. 두 업종 나란히 지난해 30% 이상의 성장세를 보였다. 수입차 시장은 성장과 동시에 분화하고 있다. 고가의 프리미엄 브랜드 위주로 성장해오던 수입차 시장에서 대중차 브랜드인 일본의 혼다, 유럽의 폭스바겐·푸조의 본격적인 시장 참여에 따라 대중차 시장이 커지고 있다. 이에 따라 과거 잣대로 각 브랜드별 월별 판매 통계치를 취합해 단순 비교하는 것은 수입차 시장에서는 별 의미가 없다는 주장도 있다.
국산차와 수입차 간 경계를 허문 대중 수입차 브랜드는 단연 혼다이다. 그동안 수입차는 브랜드와 상관없이 전체적으로 국산차에 비해 프리미엄 제품이라는 이미지를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혼다가 CR-V와 시빅 등 국산차와 비슷한 가격의 모델을 잇달아 내놓으면서 이러한 경계 구분이 무너졌다. 그동안 국내 메이커들은 승용차에 비해 마진이 높은 SUV를 전략적으로 개발했다. 그러나 국산 SUV와 비슷한 가격대의 CR-V는 역으로 수입차도 살 만하다는 소비 심리를 불러일으킨 계기를 제공했다.
국산차와 수입차를 구분 짓는 첫째는 브랜드 파워, 둘째는 성능, 셋째는 가격대, 넷째는 차량 개발의 독자성이다. 현대차는 1970년대 포니, 1980년대 엑셀을 수출하면서 세계 시장에서 저가 메이커로 통하게 되었고 이를 탈피하는 데 십수 년이 걸렸다. 요즘 현대차는 2천㏄ 승용차급이나 SUV 분야에서는 최소한 저가 차 이미지를 벗어났다고 국제 사회가 공인하고 있다. 2004년 미국의 자동차 품질 평가 조사 기관인 제이디파워(J.D.POWER)는 뉴EF 소나타가 신차 품질 조사에서 동급차 중 1위를 했다고 발표했다. 이를 계기로 미국 시장에서 현대차는 베라크루즈, 싼타페, 그랜저(아제라) 등 고수익 차종의 판매를 늘렸다. 품질이 올라가면 브랜드 경쟁력은 향상되기 마련이다. 향상된 브랜드 경쟁력은 자동차 사업의 세계화를 가능하게 한다.
브랜드력이 앞서면 다른 소소한 문제는 덮어진다. 세계적인 스포츠카 브랜드인 포르쉐의 대중 스포츠카인 박스터와 카이만(Cayman)이 그런 예이다. 박스터는 핀란드에서 생산된다. 유럽 내 유수의 OEM 전문 생산업체인 밸멧(Valmet Automotive)에서 생산된다. 밸멧은 과거에도 사브 컨버터블을 생산했었다. 밸멧은 지리적으로 러시아와 인접해 있다. 밸멧은 러시아 업체들로부터도 부품을 공급받는다. 러시아산 부품을 쓰는 포르쉐가 명성에 타격을 입은 적은 없다. 브랜드가 강하면 어느 나라 부품을 쓰든 어느 나라에서 제조가 되든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1990년대 중반 유럽 시장에 진출한 기아자동차는 열악한 브랜드력을 보완하기 위해 스포티지를 CKD(Complete Knock Down) 형태로 독일 현지로 가지고 가 독일 북부 지역의 칼만이라는 회사에서 위탁 생산했다. 생산 제조 기술이 뛰어난 OEM 업체인 칼만의 브랜드를 차용한 것이다.


엔진 성능·디자인·마무리 공정도 수입차와 막상막하

하지만 요즘은 국산차가 유럽의 프리미엄차 업체에 비해 브랜드에서 밀릴 뿐 품질은 별 차이가 없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프리미엄 브랜드를 수입하는 B사의 한 관계자는 “국산차든 해외 유명 메이커 차든 양산차는 로고를 떼고 각각 앞뒤 위장막을 가린 채 주행 테스트를 한다면 성능에서는 별 차이가 없을 것이다”라고 말한다. 자동차 업계의 한 관계자는 “1991년 현대차가 자동차 산업 주권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독자 엔진을 자체 개발한 후 한국의 자동차 산업 기술 수준은 선진국과 대등한 수준에 이르는 등 객관적으로 상위 차들과 동등한 수준이다”라고 말했다.
특히 선진국에 비해 많이 뒤떨어진 자동차 디자인 분야에서도 외국 전문 인력의 적극적인 영입, 전문가 양성 등의 과정을 거쳤기 때문에 상당 수준으로 상승되었다고 주장한다. 국산차의 단점으로 평가받았던 제조 공정상의 끝마무리, 설계상의 오류 결과로 나타나는 단차 등도 많이 해소(쏘나타의 끝마무리는 캠리, 어코드와 충분히 맞설 수 있다, 2006년 <모터트랜드>)되었다고 평가받는다.
가격 면에서 수입차 시장은 소수의 고객층들을 상대로 벤츠, BMW 등 독일 프리미엄 브랜드들이 고가격 체계를 유지하면서 선도했다. 그러나 이들 브랜드는 이제 향후 폭발적인 시장 확장 국면을 고려해 단기간의 점유율 경쟁에 가장 효율적인 가격 인하 정책을 쓰고 있다. 이는 프리미엄 브랜드 시장으로 접근하려는 국산차 업체의 움직임과 맞물려 국산차와 수입차의 경계를 허무는 효과를 내고 있다.
수입차 업계의 저가형 양산차 공세에 대해 BMW 인천 딜러인 바바리안모터스 김종민 부사장은 “BMW 등 독일계 프리미엄 브랜드와 렉서스를 포함한 일본계 브랜드들은 자동차의 철학부터 차량 평균 판매 가격, 딜러의 수익률 등에서 엄청난 차이를 보인다. BMW나 벤츠 등 독일계 프리미엄 브랜드와 일본계 브랜드들은 구분되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프리미엄 브랜드와 중저가 브랜드는 단독 전시장, 직영 A/S 공장 등 초기 투자 비용은 비슷하지만 차 1대당 딜러 마진에서는 3~4배의 차이가 난다는 것이다. 하지만 많은 수입차 업체들이 국산차와 비슷한 가격의 수입차 시장에서 성공을 꿈꾸고 있다.


제네시스·체어맨W, 프리미엄 수입차와 경쟁

배기량별 비교에 있어서도 국산차와 수입차의 구분이 무의미해졌다. 이는 브랜드 파워에서 국산차의 경쟁력이 앞선 것이라기보다는 국산차의 전략상 어쩔 수 없는 선택일 수 있다는 분석도 있다.
쌍용차의 신제품인 체어맨W가 그런 경우이다. 체어맨W는 5천cc급을 플래그십카로 전면에 내세우고 있고, 국산차 가격으로는 파격적인 1억원대의 판매가를 붙였다. 물론 쌍용차가 주력으로 팔려는 모델은 3천6백cc급이다. 5천cc급 엔진은 벤츠에서 공급받는다.
쌍용차는 체어맨W를 내놓으면서 “국산차와는 비교하지 말아달라”라는 주문을 했다. 수입 프리미엄 브랜드와 맞붙어도 자신 있다는 뜻이다. 하지만 쌍용차의 브랜드 경쟁력이 쌍용차 경영진의 장담처럼 강력할지는 의문이다. 업계에서는 중국 기업으로 경영권이 넘어간 뒤 쌍용차의 내수 판매 부진이 심화되고 있는 것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 쌍용차의 최근 내부 조사에 따르면 기존 체어맨 차종 브랜드 밸류가 쌍용차 컴퍼니 브랜드 밸류를 앞서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어쨌든 그동안 영업 부진에 시달렸던 2백50개의 쌍용차 딜러들은 체어맨W 판촉에 사활을 걸고 있다. 대당 판촉 수당은 최대 1천만원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웬만한 중형 수입차보다도 딜러 마진이 높다 보니 과도한 판촉 경쟁이 벌어지고 있다.
현대차 제네시스는 4천만~6천만원대(기본 사양 기준)의 가격대를 제시하며 프리미엄 수입차들을 타깃으로 하고 있다. 벤츠, BMW, 아우디, 렉서스와의 국내 경쟁에서 이겨야 세계 시장에서 프리미엄급으로 성장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에 현대차가 제네시스에 거는 기대는 대단하다.
반면에 수입차들은 브랜드 밸류와 상관없이 저가 차에 드라이브를 걸고 있다. 국산 중형차 가격 수준인 3천만원 안팎에 살 수 있는 수입차는 20여 종에 이르고 있다. 대중 브랜드뿐만 아니고 벤츠, BMW, 아우디 등 프리미엄 브랜드도 3천만원대 차종을 선보이고 있다. 수입 대중차 시장은 하반기 닛산과 미쓰비시의 상륙으로 본격화될 전망이다. 미쓰비시는 국내 전국 영업망인 대우자판을 통해 공급되기 때문에 제품력, 브랜드력과 상관없이 그 파급 효과가 주목된다. 이탈리아의 대중차인 피아트나 알파로메오, 도요타가 상륙하는 2009년에는 국산차·수입차 구분의 의미는 사라질 것으로 보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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