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신주류, 강재섭과 손잡고 박근혜계 쳤다
  • 소종섭 기자 kumkang@sisapress.com ()
  • 승인 2008.03.17 1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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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 대학살’에 정치적 의도 작용한 듯 / ‘친박’ 인사들, 신당 창당·무소속 연대 모색
지난 3월14일 오전, 김무성 의원은 한나라당 최고위원회의 회의장을 박차고 나와 기자실로 향했다. ‘역사는 선거 결과에 대해 청와대, 공심위, 당 지도부에 반드시 책임을 물을 것입니다’라는 제목의 보도 자료를 뿌렸다. ‘부적격 공천 사례’ ‘여론조사 절대 열세자 공천 지역’이라는 자료도 돌렸다. 최고위원회의에 보고되었던 내용을 바탕으로 김의원이 새벽 5시까지 만든 것이다. 전날 공천에서 떨어진 그는 이날 한나라당을 강하게 비난하며 탈당했다.
김의원의 낙천과 탈당은 한나라당 박근혜계의 와해를 뜻한다. 박근혜계의 좌장 역할을 하던 그의 탈락은 단순히 한 의원의 낙천을 넘어 계보 의원들의 결속력을 급속히 무너뜨리고 있기 때문이다. 이날까지 진행된 한나라당 공천에서 탈락한 현역 의원은 34명인데, 경선 당시 분류를 기준으로 보았을 때 이 가운데 ‘친 박근혜’ 의원은 16명이다. 박근혜계 의원의 50%에 달한다. ‘친 이명박계’ 의원 18명이 탈락해 단순 계산하면 더 많지만 비율로 따지면 박근혜계가 더 타격을 받았다. 이로써 박 전 대표는 한나라당에 남느냐, 탈당하느냐의 기로에 섰다.
친 박근혜측 인사들은 일단 신당을 창당하거나 무소속 연대를 추진하고 있다. 서청원 전 대표는 MBC 라디오에 출연해 “신당을 만들어 5년 후 박 전 대표를 대통령으로 만들기 위해 같이 밭을 갈자고 얘기가 모아졌다”라고 말했다. 서 전 대표는 지난 대선 당시 ‘참주인연합’에서 3월13일 당명을 ‘미래한국당’으로 바꾼 정당에 관심이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미 수십명의 공천 탈락자들을 만나면서 상당한 기반을 갖추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반면 김무성 의원이나 유기준 의원 등은 정당보다는 ‘무소속 연대’를 통해 총선을 치르고 그 이후 창당하는 것을 선호한다.
“박 전 대표 탈당은 쉽지 않을 것”
주목되는 것은 박근혜 전 대표의 태도다. 그녀가 합류하느냐에 따라 ‘미래한국당’이나 ‘무소속 연대’의 파괴력이 결정되기 때문이다. ‘대학살’로 불리는 영남권 자파 현역 의원들의 대거 낙천 소식을 접한 박 전 대표의 반응은 “사심을 갖고 한 표적 공천이다. 잘못된 공천이다”라고 이정현 공보특보에게 밝힌 것이 전부다. 자파 의원들이 서울 여의도의 한 음식점에 모여 울분을 토하며 향후 진로를 논의할 때 박 전 대표는 삼성동 자택에 머무르며 고심을 거듭했다. 이특보는 “어떤 선택을 할지 예측할 수 없다”라고 말했다.
당 주변에서는 박 전 대표가 당을 떠날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박 전 대표는 영남권 공천자 발표가 있기 하루 전인 3월 12일 긴급 기자간담회를 갖고 “이렇게 잘못된 공천이 있을 수 있느냐. 핵심 지역인 영남권과 강남권의 공천 결정을 보고 거취를 결정하겠다”라고 밝혔다. 이처럼 강력한 문제 제기를 했지만, 다음날 공개된 공천 결과는 박 전 대표의 주장이 무시당하는 것으로 나왔기 때문이다. 박근혜계 의원들이 대거 낙천해 당에서 앞날을 도모하기가 어렵게 된 것도 박 전 대표의 선택을 재촉하는 요인이다.
그러나 문제는 ‘명분’이다. 자파 의원들이 탈락했다고 딴 살림을 차리겠다는 것은 명분이 약하다. 현역 의원들이 탈락한 것이 국민의 공분을 일으키는 것도 아니다. 평소 명분과 원칙을 강조해온 박 전 대표 입장에서 ‘탈당’을 선택하기는 쉽지 않다. 실리적인 측면에서도 얻을 것이 별로 없다.
한나라당의 한 대표적인 전략가는 “박 전 대표의 선택지가 넓지 않다. 그동안 계파 수장의 모습이 너무 짙어졌다. 이 때문에 이러기도 저러기도 힘든 상황이다. 그러나 탈당은 명분이 없다”라고 내다보았다. 또 다른 당 관계자도 “탈당 가능성은 크지 않다. 일단 당에 남아 배지를 달고 투쟁하는 길을 택할 것이다. 총선 이후의 여권 지형이 굉장히 복잡해졌다”라고 말했다. 정치컨설팅 업체 폴컴의 윤경주 사장도 “박 전 대표는 당에 남아 총선 이후에 승부수를 던질 것이다”라고 전망했다.
7월 전당대회에서도 ‘강재섭 체제’ 유지할 가능성 커
정치권 분석가들은 이번 공천을 통해 한나라당이 ‘이명박 당’으로 거듭났다고 평가한다. 경선 당시 2.5 대 1 정도로 분류되던 세력 구도가 지금은 4 대 1 이상 벌어졌다. 박근혜계는 줄어들고 범 이명박계는 늘었다. 3월14일 현재 공천이 완료된 2백24개 선거구 가운데 ‘친 박근혜’ 인사는 40명 정도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한나라당의 공천에는 정치 공천 성격이 있는 것 같다. 뚜렷한 원칙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왜 이 사람이 낙천했는지 그림이 분명하지 않다. ‘이상득 부의장은 공천을 받고, 박희태 의원은 왜 낙천되었나’라는 물음에 답하기가 어렵다. 일부 지역에서 ‘반 개혁 공천’이라는 말까지 나올 정도다. ‘전략 공천’이라는 이름으로 하루아침에 지역구를 옮기는 일도 일어났다. 이 때문에 ‘음모설’이 횡행한다. 상당수 현역 의원들을 낙천했으나 감동이 없는 것은 공천이 내부의 세력 싸움으로 변질되었기 때문이다. 낙천한 김무성 의원은 아예 청와대를 공천 사령탑으로 지목했다. “공천 기준은 오로지 청와대 마음대로였다. 감동 공천이 아닌 감정 공천을 했다”라는 것이다.
이대통령이 정두언·박형준 의원을 만나고 강재섭 대표와 안강민 공천심사위원장 등을 만났다는 소문이 무성한 것 등에서 유추해보면 공천 과정에 청와대 의중이 상당히 작용한 것은 사실로 보인다. 이와 관련해 한나라당 주변에서는 “이명박 신주류가 박 전 대표 대신 강재섭 대표를 파트너로 삼은 것 같다”라는 분석이 나온다. 인수위 시절부터 이대통령의 일부 참모들이 그린 그림이다. 이대통령과 강고한 대척점에 서 있는 ‘박근혜’라는 큰 나무의 뿌리를 잘라내고 대신 강대표를 통해 일을 풀어나간다는 전략이다. 한나라당 한 핵심 인사는 “이번 공천 과정에서 강대표가 단단히 실리를 챙겼다”라고 말했다. ‘친 이명박’-‘친 박근혜’가 싸우는 와중에 그가 자기 세력을 넓히는 데 성공했다는 것이다.
이런 맥락이라면 7월 전당대회에서도 이명박 신주류는 ‘강재섭 체제’를 유지하는 선택을 할 가능성이 커 보인다. 이재오 의원의 당권 도전설이 널리 퍼져 있지만 이의원에 대해서는 거부감을 가진 사람들도 많다. 당내에 분란을 불러올 소지가 있는 것이다. 일단 당을 안정시키는 방향이라면 현 강재섭 체제를 유지하는 쪽으로 그림을 그릴 것으로 보인다.
한나라당의 총선 전망은 더 어두워지고 있다. 여론조사 전문기관인 리얼미터의 조사에 따르면 2월 중순에는 한나라당이 총선에서 과반 의석을 확보할 것이라고 보는 사람이 80.6%였으나 3월 초순에는 11.2%가 줄어든 69.4%로 나타났다. 리서치앤리서치의 3월12일 조사에서도 한나라당 지지도가 2월27일 조사와 비교해 10.7% 하락했다. ‘안정적인 국정 운영을 위해서 집권 여당 후보를 찍겠다’라는 안정론도 옅어지고 있다. 반면 민주당은 ‘박재승 혁명’으로 불리는 공천 개혁을 이루고 손학규 대표와 정동영 전 통일부장관 등이 수도권에 출마하면서 지지도가 살아나고 있다. 리서치앤리서치 조사에서 민주당 지지도는 17.2%로 2월27일 조사 때보다 3% 상승했다.
여권은 ‘현역 의원 물갈이’를 통해 총선 승부수를 띄웠다. 이 프로젝트가 하락하는 지지도를 상승세로 돌려놓을지, 아니면 여권 내부를 더 혼돈으로 빠뜨릴지는 총선 결과가 어떠한가에 따라 좌우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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