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부짓는 티베트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 김회권 기자 judge003@sisapress.com ()
  • 승인 2008.03.24 10:39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중국 정부 “달라이 라마 집단과 생사 건 투쟁” 강경책 고수…대규모 병력 투입, 유혈 사태 치달아
 

“티베트의 안전은 중국 전국의 안전과 관계가 깊다.” 중국의 후진타오 국가주석은 지난 3월6일 제11기 전국인민대표대회에서 티베트 문제에 관해 이렇게 발언했다. 하지만 4일 후인 3월10일 티베트의 수도 라싸에서는 1959년의 항쟁일을 기념하는 시위가 일어났다. 그리고 3월14일에는 같은 장소에서 유혈사태까지 벌어지는 참사가 빚어졌다. 국영 신화통신은 중국 당국의 말을 빌어 “10명이 사망했다”라고 보도했지만 그 말을 믿는 사람은 드물다. 락파 쵸고 티베트 망명정부 동아시아 대표부 대표는 <시사저널>과의 인터뷰에서 “80~100명 정도가 사망했다고 들었다”라고 말했고 외신들도 자체 소식통을 근거로 100명에 가까운 사망자 수를 보도하고 있다.
8월에 열리는 베이징올림픽은 이제 5개월도 채 남지 않았다. 후 주석은 자신의 발언이 묵사발이 된 창피함을 뒤로 미루고 국제 사회의 비판이 확산되기 전에 티베트 문제의 해결을 서둘러야 했다. 여러 가지 대응 방법 중 중국 정부가 택한 것은 강경책이었다.
3월14일의 시위 이후 라싸 시내에는 “계엄령이 내릴지도 모른다”라는 소문이 돌았다. 홍콩의 TVB 방송국은 그날 밤 시내의 한 호텔 종업원의 말을 빌어 “주요한 사원은 폐쇄되었고 상점도 휴업 중이다”라고 보도했다. 중국 정부는 시위가 발생한 직후 2천여 명의 공안을 라싸에 급파했다. 시위의 확산을 억누르기 위해서였다. 동시에 티베트만큼 독립 운동의 움직임이 강한 신장-위구르 자치구로 군대를 움직여 이들의 활동을 봉쇄하고 있다고 RFA(자유아시아방송)는 보도했다.
홍콩의 <명보>는 당시의 상황을 좀더 자세히 전하고 있다. 시위대와 중국 공안 사이의 충돌을 목격한 한 시민은 “전차와 장갑차가 두세 대 있었고 공안들이 달려가 시위대에게 최루탄과 총을 사용했다”라고 말했다. 신화통신도 “경찰이 최루탄 발사나 위협 사격을 할 수밖에 없었다”라고 보도하면서 최소한 총격에 의한 사상자가 나왔음을 증명해주었다. 하지만 아직까지 중국 정부는 총탄을 사용했느냐는 질문에 대해 공식적인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다.
라싸에서의 시위는 강경하게 눌렀지만 다른 곳에서는 산발적인 시위가 일어나고 있다. 3월18일 쓰촨 성 간쯔의 티베트족 자치주에서는 경찰이 시위대를 향해 발포해 3명이 숨지고 15명이 다쳤다고 티베트인권민주화센터가 주장했다. 티베트 망명정부 역시 같은 날인 18일 오전에 “간쑤 성 마취 현에서 시위대 19명이 사망했다”라고 발표했다.
중국 정부는 강경한 자세를 풀지 않고 있다. 신화통신에 따르면 장칭리(張慶黎) 중국 시짱자치구 당서기는 3월19일에 열린 화상회의에서 “우리는 현재 달라이 라마 집단과 생사를 걸고 피비린내 나는 투쟁을 벌이고 있다”라고 말한 것으로 보도되었다. 무장한 중국 공안은 이미 수색령에 따라 라싸 인근의 시위대 검거를 위해 검문·검색을 강화하고 있으며 쓰촨 성 청두, 간쑤 성 마취, 칭하이 성 안둬 등 티베트인들이 많이 사는 지역에는 여진을 우려해 대규모 병력을 이동시켰다는 목격자들의 증언도 나오고 있다.

인권 문제 맞물려 독립에 대한 열망 ‘폭발’
티베트 자치구에서 최근 2주 동안 터진 독립을 향한 열망은 결국 중국의 인권 문제와 맞닿아 있다. 국제사면위원회와 티베트 망명정부의 조사에 따르면 1950년 중국이 티베트를 침략했던 시기부터 1979년까지 약 1백20만명의 티베트인이 사망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영국의 <가디언>은 ‘세계적으로 유례 없는 제노사이드(대학살)’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티베트가 가진 천연자원, 수자원, 그리고 지정학적 위치(<시사저널> 제961호 참조) 때문에 중국은 가혹한 침략자가 되었다.
사망은 단지 사람이 죽는 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그 과정에서 고문과 강간이 자행되었고, 티베트인을 하나로 묶는 구심점인 티베트 불교의 고리를 끊기 위해 자행된 사원 파괴를 막는 과정에서 많은 티베트인이 죽어갔다. 한때 4천여 곳에 달하던 사원은 문화대혁명 때 완전히 파괴되고 13곳만 남은 적도 있었다. 물론 지금도 명맥만 간신히 유지하고 있을 뿐이다.
1980년대 들어서 중국의 ‘죽의 장막’이 걷히고 티베트 내의 사정이 외부로 조금씩 알려지면서 서구 국가들은 중국에 티베트 인권 문제 개선을 촉구하기 시작했다. 달라이 라마는 이때를 이용해 세계 각국을 돌며 티베트의 독립을 위해 세계가 나서줄 것을 요청했다.
하지만 국제 사회의 티베트 문제 및 인권 결의에 대한 중국 정부의 태도는 단호했다. 중국은 다른 국가가 티베트 문제를 언급하는 것은 내정 간섭이라고 주장해왔다. 그럴수록 오히려 티베트인에 대한 단속 정책을 강화했다. 1989년 라싸에서 일어났던 티베트인들의 대규모 봉기를 진압하기 위해 중국 정부는 계엄령을 선포했고 유혈 사태가 벌어졌다. 당시 철저한 정보 통제로 정확한 사망자 수는 알려지지 않고 있지만 수백명 이상의 사망자가 난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60년 가까운 기간 동안 티베트인은 철저히 자기네 땅에서 밟혔고, 중국은 그들을 올라타고 베이징으로부터 4천km가 넘는 땅으로 한족을 이주시켜 자기네만의 또 다른 중국을 건설하고 있었다. 그런 중국 정부의 방침과 충돌하며 오랫동안 잠재해 있던 티베트인의 분노가 이번 사건의 주요 원인으로 지적되고 있다.
세계 각국의 언론들이 티베트 사건을 두고 중국 정부의 과잉대응과 인명 피해를 우려하면서 여러 각도에서 조명하고 있지만 각국 정부의 대응은 생각보다 느린 편이다. 지난해 버마 민주화 시위 때는 군부의 유혈 진압에 즉각 경제 제재안을 마련하고 유엔 특사를 파견하는 등 잇따른 강경 조치를 취했던 것과 달리 이번 티베트 사태에 대해서는 유독 신중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베이징올림픽 앞둬 국제 사회 여론 외면하기 어려울 듯
그동안 인권 문제를 놓고 중국과 줄곧 대립각을 세워온 미국의 경우를 보면 더욱 그렇다.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은 지난해 10월17일 달라이 라마를 백악관에서 접견했다. 이 자리에서 그는 “중국의 종교 상황이 걱정스럽다”라고 우려를 표명하면서 중국을 압박했다. 중국은 공산당 전국대표대회가 열리는 중에 이루어진 부시 대통령과 달라이 라마의 접견에 크게 반발했다. 일부러 미국이 중국의 약점을 건드려 공격하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양제쯔 외교부장은 주중 미국대사를 외교부로 불러 항의했고, 류젠차오 외교부 대변인은 “이번 사태는 중·미 관계에 심각한 손상을 초래할 것이다”라며 으름장을 놓기도 했다.
그랬던 미국이 이번에는 조용하다. 부시 대통령은 “중국 정부가 달라이 라마와 만나 대화를 할 필요가 있다”라고 말했을 뿐이다. 지난해에 달라이 라마를 접견한 또 다른 인물인 메르켈 독일 총리도 “달라이 라마와 중국 정부 간의 평화적인 해결을 원한다”라고 형식적인 언급을 했다.
중국이 이처럼 국제 사회의 눈치를 보지 않고 강경한 진압을 펼칠 수 있는 이유는 경제력에 대한 자신감이 커졌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3월19일 로이터 통신은 “티베트의 역사는 많은 서방 국가로부터 동정심을 끌어내고 있지만 티베트의 지리적 위치와 경제적 이해관계 때문에 이번 유혈 진압이 외면을 받고 있다”라고 보도했다. 로이터는 “미국이 신용 위기나 달러화 하락에 직면한 시기이기 때문에 1억5천만 달러의 외화를 보유하고 그 대부분을 미국채로 운용하고 있는 중국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라고 전했다. 티베트 정세에 관해서 과거에도 서방 국가의 관심이 컸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지금의 상황을 놓고 보았을 때 지나친 ‘불간섭’ 자세가 부각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하지만 중국이 세계의 시선을 마냥 외면할 수는 없다. 베이징올림픽을 앞두고 있기 때문에 적어도 세계 각국의 의문점에 대답을 내어놓아야 한다. 3월18일 원자바오 총리는 전인대를 마치는 자리에서 기자들과 일문일답을 가졌다. 한 외신 기자가 “올림픽을 무사히 개최할 수 있을까라는 의문이 나오고 있다”라고 질문하자 원총리는 “그런 우려는 결코 없다”라고 답변했다. 그는 “중국은 올림픽이 세계적인 이벤트라는 것을 알고 있고 결코 정치화할 생각이 없다. 오히려 티베트에서 발생한 사건이 베이징올림픽을 정치화할 의도를 가지고 벌어진 일이다”라고 말했다. 중국 정부는 종종 “올림픽 개최는 중국 5천년 역사에서 가장 오래된 꿈이었다”라고 밝혀왔다. 하지만 점점 베이징올림픽에 대한 서방 세계의 생각이 부정적으로 변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이미 중국이 수단 다르푸르 학살에 직·간접적으로 개입했다는 이유에서 스티븐 스필버그는 베이징올림픽 예술 고문직에서 사퇴했다. IOC의 자크 로게 위원장은 “무슨 일이 있어도 베이징올림픽을 거부하는 것에는 반대한다”라고 말했지만 영국의 데일리 텔레그래프는 “베이징올림픽을 목전에 둔 상황에서 세계 각국이 중국에 이번 티베트 사건에 대한 책임을 지도록 압력을 가하고 있다”라고 보도했다. 독일의 일간지 프랑크푸르트 알게마이너 존탁 차이퉁(FAZ) 역시 “이번 사건이 베이징올림픽 보이코트의 큰 구실이 될 수 있으며 올림픽에 영향을 미칠지도 모른다”라고 우려 섞인 목소리를 내놓고 있다. 티베트의 독립을 위해 그동안 열심히 발언해온 배우 리처드 기어는 BBC와의 인터뷰에서 “만약 중국이 이번 사건에서 부당한 대응을 취해왔다면 세계 각국이 올림픽 참가를 거부할 수 있을 것이다”라고 말하며 티베트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중국은 달라이 라마를 비판하며 티베트에 지속적으로 “올림픽을 정치적으로 이용하지 말라”라고 이번 사건의 책임을 떠넘기고 있다. 하지만 강경 진압만 고수해서는 해결이 어려울 지 모른다는 지적도 있다. 특히 과거에는 달라이 라마만 상대하면 되었지만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중국이 티베트인에 대해 강경 일변도로 나갈 경우 또 다른 인명피해가 날 가능성이 높고 국제 사회의 비난 여론은 더욱 커질 것이다. 민간에서 일어나는 세계적인 올림픽 거부 운동에 대해서는 각국 정부가 손 쓸 도리가 없다. 반면 티베트 시위에 약한 모습을 보이거나 타협하게 된다면 위구르족 등 독립을 원하고 있는 소수 민족들이 티베트의 뒤를 따를 가능성이 크다. 그럴 경우 넓은 국토의 통치를 위해 반드시 필요했던 56개 민족의 연합체인 ‘중화민족’이라는 개념이 무너지고 중국의 소수 민족 정책은 위기를 맞게 된다. 개혁·개방 30주년과 올림픽 개최의 해인 2008년을 의욕적으로 출발한 제2기 후진타오 정부는 이제 어떤 해결책을 내어놓을까.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