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한 가정의 멀쩡한 가장을 폭력 전선으로 내모는 일쯤은 다반사인 데다, 조직적으로 일어서서 조직적으로 나눠먹고 조직적으로 궐기하다 조직적으로 쇠망하는 데 능숙한 우리나라의 자랑스러운 그 정당 문화가 또다시 새로운 역사를 쓰겠다고 꿈틀거리고 있다. 한나라당 공천에서 탈락한 친 박근혜계 인사들이 당 이름을 ‘친박 연대’라고 짓겠다고 한 것을 두고 하는 말이다. 일부에서 “그러면 이번 선거에서 박씨 성을 가진 사람들은 다 이쪽을 찍어야 하는 거냐”라는 농담도 나오지만, 이것이 그렇게 단순 유치한 웃음거리로 치부될 일만은 아닐 듯하다. 아니, 오히려 크게 박수를 쳐주어야 할 일인지 모른다.
이 얼마나 담대하고 솔직한 ‘커밍아웃’인가. 호부호형을 못했던 홍길동처럼 정작 ‘김대중 당’이면서 평민당 혹은 새천년민주당을, ‘이회창 당’이면서 한나라당을, ‘노무현 당’이면서 열린우리당을 간판으로 내걸었던 경우와는 비할 바도 없이 정직하고 화끈하다. 아예 더 솔직하게 ‘박근혜 대통령 만들기 당’ 즉 ‘박대만 당’이라고 하지 않는 것이 아쉬울 정도다.
타의 추종을 불허할 만큼 유별난 대한민국 정당의 조직 문화는 이제 막 끝나가는 공천 과정에서도 유감없이 실력을 발휘했다. 그들은 조직적으로 자르고 조직적으로 저항하는 그 오래된 솜씨를 다시 한 번 뽐냈다. 이런 상황 탓에 고소영·강부자에 이어 태현실(태반이 현역 실세), 명계남(이‘명’박 계열만 살아‘남’다) 같은 배우들만 애꿎게 이름을 팔리고 있지만, 그보다는 ‘삼자대면(삼십 퍼센트의 현역 자르고 대충 면피하기)’ 공천이라는 표현이 더 정확한 것일지 모르겠다.
그러나 저러나 공천 심사위원들 앞을 시위하듯 오락가락하던 탈락자들의 ‘몸개그’만 남긴 채 미적지근한 ‘맹물 쇼’로 공천이 끝나가는 사이 유권자들만 심심해졌다. 큰 성과도 못 내면서 시간만 끈 탓에 지금쯤이면 나부껴야 할 현수막도 없고 선거 포스터도 없다. 더 중요하게, 지역을 더 열심히 챙기겠다는 정책 경쟁은 아예 가물가물하다.
공천에서 밀려난 사람들이 총선 ‘복수 혈전’을 벼르며 자기들의 복수만 생각하고 유권자의 복수는 헤아리지 못하는 나라, 자기들의 득표율에만 목매달고 유권자의 투표율이 얼마나 추락할지는 눈치채지 못하는 나라.
아무리 둘러보아도 ‘유권자를 위한 나라’는 없다. 총선이 코앞인데.
저작권자 © 시사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