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위원장과 관장에게 무슨 일이 있었기에…
  • 오상길 / 조은정 ()
  • 승인 2008.03.24 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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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위원회, 정부 공공기관 평가 2년 연속 꼴찌 / 국립현대미술관, 뒤샹의 <작품> 소장 경위 두고 논란

 

새 정부 출범과 함께 전 정권의 ‘코드 인사’로 자리를 잡은 문화예술기관장들의 진퇴를 놓고 사회적 논란이 일고 있다. 전 정권이 임명한 문화예술기관장들의 사퇴를 요구하는 정부와 보장된 임기를 내세우며 반발하는 일부 기관장들 그리고 이를 둘러싼 주변의 정치적 입장들이 빚어내는 파열이 논란의 핵심이다.
김정헌 문화예술위원장과 김윤수 국립현대미술관장의 거취가 대표적인 경우다. 하지만 이 논란에는 정작 문화예술계의 입장이 배제되어 있다. 또 코드 인사가 남긴 의미와 파장으로부터 교훈을 얻지 못하고 있고, 뻔히 예견되어왔던 상황에 대한 대처도 다소 거칠어 보인다. 문제의 인사들에게 사퇴를 종용하기 전에 그들이 물러나야 하는 이유를 설득력 있게 제시했더라면 떠나야 할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떠날 수 있었다는 것이 문화예술계의 중론이다.

 

코드 인사가 문화예술계를 다 망쳤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이하 예술위)는 민간과 공공 영역의 동시적 참여 구조를 표방하며 출범했지만, 전임 위원장이 중도하차할 수밖에 없었을 만큼 비상임위원들 간의 합의 도출에도 실패했고, 문화예술계의 지지도 받지 못했다. 문화예술NGO ‘예술과 시민사회’가 2006년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예술위는 매년 3백50억여 원의 문예진흥기금을 축내면서까지 기금을 확대 편성해, 특정 세력의 비공모 사업에 안배하는 등 방만한 운영을 해왔다. 정부의 공공 기관 평가에서 2년 연속 꼴찌를 차지했을 만큼 예술위의 운영에는 문제가 있었고, 대다수 문화예술인들의 생각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예술위가 한해 1천2백억여 원에 달하는 기금을 쓰며 무슨 성과를 얼마나 거두어왔는지, 위원들의 관련 단체들에 수십억원(2006년)을 지원하는 행태가 과연 온당한 처사인지 깊은 의구심을 가져왔던 터이다.
2006년 5월 말까지의 운영 실태를 조사한 이 자료는 예술위의 사업비 중 공모 사업 지출이 37.8%, 공모가 아닌 사업 지출이 62.1%일 만큼 현장 문화예술인들에 대한 직접 지원에 소극적이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 중 정기 공모 사업은 총 예산의 12.44%로 매우 낮았고, 상대적으로 예술위가 주도한 비공모 사업들의 예산 규모는 매우 비대했다. 예컨대, 시각예술 분야의 비공모 사업은 심의 직전에 만들어진 3개의 신생 단체들에 집중되어 있었고, 사업의 주체들과 내용들이 중복되어 있었으며, 경력도 전문성도 없는 유령 단체까지 끼어 있었다. 이 이상한 신생 단체에 5억원의 사업비가 지원되었는데, 확인 결과 이 단체는 전 문예진흥원 직원인 대표 1인과 회계 1인 등 2명의 비전문가로 구성되어 있을 뿐이었다. 정기 공모 사업의 평균 지원금이 1천3백여 만원이었던 점에 비추어 심각한 편파와 불공정이 아닐 수 없는 것이다.
이런 운영에 직접적 책임이 있는 비상임위원을 정권 막바지에 위원장 자리에 앉혀놓은 전 정권이나, 보장된 임기를 내세우며 사퇴를 거부하는 인사를 보면 정말 대단한 사람들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가 없다. 노무현 정권의 문화예술계 코드 인사는 곧 정치 권력에 의한 인위적인 문화 권력 재편을 의미했고, 이런 정치권의 행태가 온 문화예술계를 소모적인 갈등과 대립 속으로 몰아넣었다. 정치적 당파성에 초점이 맞추어진 최근의 논란들이 문화예술인들의 고민을 점점 더 깊게 만들고 있다.

 

<여행용 가방>을 왜 비싸게 샀을까
김윤수 국립현대미술관장의 거취 논란과 관련해 그가 재임 중 사들인 뒤샹의 <여행용 가방>을 국립현대미술관이 소장하게 된 경위가 논란의 핵으로 재등장하고 있다.
1968년 10월2일 사망한 뒤샹은 40년이 지난 올해 세계 유명 현대미술관들이 그를 기리는 전시를 하도 많이 준비해 ‘뒤샹의 해’라고 일컬을 만큼 현대미술의 아버지로 칭송되고 있다. 자신의 인생 자체가 곧 자신의 작품이라 천명한 그는 손수 제작하지 않은 소변기에 자신의 사인을 넣어 전시장에 들여놓았고, 그로부터 발생한 세상의 모든 질문에 대답할 수 있었던 철학적이며 수학적 사고를 지닌 이였다.
여행을 좋아해 호텔방에서조차 작품을 제작하기도 했던 그는 자신이 만든 작품을 축소해 가방 안에 담아 어디서든 꺼내볼 수 있는 작품을 만들었다. 이 작품은 운반이 용이하도록 가방 하나 안에 모두 담기는 동시에 펼쳐질 수 있도록 고안되었다. 쉽게 이해하자면 휴대용 미술관 또는 중국 황제의 박물 상자와 같은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뒤샹은 50개의 가방을 만들기로 했고 이미 그해에 “지금까지 살아가는 데 충분할 만큼”은 팔았다. 그 스스로 원작이 하나씩 들어간 호화판인 20점은 2백 달러, 나머지 복사본으로 채워진 30점은 100달러씩 가격도 책정했다. 단 한 가지 조건은 만약 그것들이 인기가 있어 ‘쉽게 팔 수 있다면’ 그 작품을 아무나가 아닌, 자신이 고른 구매자들에게 팔기를 희망했다.
뒤샹의 가방 작품이 국립현대미술관에 소장된 때는 2005년이다. 미술사상 중요한 작가의 대표작을 우리나라 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다니 아주 자랑스러운 일일 터이다. 하지만 그동안 보도된 내용을 보면 의심쩍은 일들도 있는 듯하다. 우선 가격이 62만3천 달러나 되는 그 작품 구입 과정이다. 작품 구입을 위해 국립현대미술관에서는 구입심의위원 제도를 두고 있는데, 이 심의를 위해 미국에서 사람이 직접 작품을 ‘들고’ 왔다고 한다. 만약 심의위원들이 구입 결정을 거부하면 그는 다시 이 작품을 들고 미국으로 돌아갔을까? 그리고 돌아갈 때 경비는 누가 지급할까. 그는 통상적으로 반입하는 고가의 물건이나 작품을 보험조차 들지 않고 들고 들어왔을까 하는 점이다. 비행기 안에서 가죽 가방을 끌어안고 있었을 소장가의 대리인이라는 사람의 모습을 상상하면 <007> 같은 첩보 영화의 한 장면이 머리를 스친다.
둘째는 소장자가 보험조차 들지 않은 작품을 국립미술관이 구입했다면 ‘정말 그 작품이 고가일 정도로 가치있는 것이었을까’라는 점이다. 물론 소장가에게 몇십만 달러 정도는 ‘껌값’이라면 할 말은 없다. 그가 몇천 달러 정도를 왜 아꼈는지도 의문이다. 게다가 예술품은 비관세인데 통관 절차조차 거치지 않은 작품을 구입했다면 국립미술관이 밀수에 협조한 것은 아닌가 하는 논란도 있다. <여행용 가방> 시리즈는 A급부터 G급까지 천차만별인데 세계적으로 유수 미술관으로 꼽히는 곳에서도 C급이나 F급을 소장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에디션이 많은 작품이니 구색 갖추기로 소장했을 법하며 이럴 경우 뒤샹의 다른 작품도 소장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래서 이는, 하필 국립현대미술관이 구입가 중 최고치를 경신할 만한 액수를 이 작품에 지불해야만 했는지 의문이다.
어쨌든 한국 미술계에서 2008년이 뒤샹의 해임은 확실히 알려질 듯하다. 현대미술이라는 이름으로 예술을 가지고 놀았던 81세 노인의 평안한 죽음이, 예술도 한갓 재미에 불과한 인간의 일이라는 깨달음을 새삼스레 전하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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