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차원으로 ‘킥킥킥’ 웃음 찾은 <웃찾사>
  • 하재근 (드라마 비평가) ()
  • 승인 2008.03.24 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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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코너 대거 선보이며 ‘재기’ 시동

 

사람 웃기기가 울리기보다 훨씬 힘든 것 같다. 과거에 전통 드라마물과 코미디물이 동시에 전성기를 누렸던 때가 있었다. 그때 그 전통 드라마의 컨셉트는 요즘도 계속 이어지고 있다. 시한부 인생, 시어머니의 구박, 가난, 고아, 허락받지 못하는 결혼, 남편에게 버림받는 조강지처, 성공을 위해 사랑을 배신하는 남자 등의 설정은 요즘도 안방에서 인기몰이를 하고 있다. 설정만 차용하는 것이 아니라 아예 리메이크를 해도 시청률이 나온다.
그런데 코미디는 다르다. 지금은 <웃으면 복이 와요> <유머 1번지>의 설정으로 웃길 수 없다. 얼마 전 <개그야>에서 전통 코미디를 시도했으나 처절한 실패로 끝났다. 시청자가 반응하지 않았다. 한국인은 코미디에 매우 엄격하다. 뻔한 설정에 울어주기는 해도, 뻔한 설정에 웃어주지는 않는다. 절대로! 덕분에 개그맨들은 오늘도 불면의 밤을 지새우며 아이디어를 쥐어짜야 한다.

<개그콘서트>와 어깨 나란히 했지만 힘 빠져
개그맨들의 부침은 여타 대중문화 부문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심하다. 개그 프로그램의 부침도 마찬가지다. 큰 틀에서 보면 세기말에 등장한 <개그콘서트>가 시대를 완전히 갈랐다. 요즘 나타난 <무한도전> ‘혁명’과 비교할 수 있을까? <개그콘서트> 혁명에 비하면 <무한도전>이 일으킨 변화는 ‘온건 개혁’ 정도라고 할 수 있겠다.
<무한도전>은 이른바 ‘리얼 버라이어티’의 대세를 열었다. 덕분에 지난해 말 방송사 연예대상 시상식 때 건국 이래 최대치의 막말이 난무했다. 하지만 리얼 버라이어티가 아닌 예능 프로그램도 여전히 방송되고 있다. 리얼 버라이어티라는 새 시대에 뒤쳐진 것으로 보였던 서경석·남희석 등도 ‘새 시대의 기린아’ 유재석 못지않은 최고의 예능인들로 여전히 자리를 지키고 있다.
<개그콘서트> 혁명은 이런 수준이 아니다. <개그콘서트> 이전 코미디 프로그램의 형식을 아예 ‘전멸’시켜버렸다. 그야말로 ‘역성 혁명’이라 할 만한 사건이었다. 왕씨의 씨를 말린 조선 이씨의 역성 혁명처럼 20세기 코미디 프로그램 형식의 씨를 말렸다. 그리고 공개 방송 개그로 ‘천하 통일’을 달성했다.
2003년까지 <개그콘서트>는 예능 천하를 호령했다. 2003년 8월 31일 기록했다는 35.3%의 시청률은 당시 예능 최고 시청률이었다. 그후 <웃음을 찾는 사람들>(이하 웃찾사)이 떴다. 윤택·김형인·정만호·김신영 등이 <웃찾사>의 전성기를 이끌었다. 한때 <개그콘서트>와 양강 체제를 구축하기도 했다. 뒤늦게 새 시대에 합류한 <개그야>도 김미려와 조원석을 통해 전성기를 구가했다. <웃찾사>는 컬투의 활약으로 명성을 이어나갔다. 최근에는 <개그야>의 약세가 두드러진다. 그리고 <웃찾사>도 힘이 빠졌다.
비극적인 것은 지금에 와서는 이 개그 프로그램 삼국지가 도토리 키재기라는 것이다. <무한도전>으로 상징되는 리얼 버라이어티의 위세에 개그 프로그램 3강은 힘없이 무너지고 있다. 꼭 리얼 버라이어티가 아니라도 예능 쇼프로그램의 위력은 날로 더해가고 있다.
그나마 <개그콘서트>가 10% 중반대의 시청률을 유지하며 개그 프로그램 삼국지에서 독주 체제를 구축하고 있다. 위촉오 삼국지에 비교하기에는 <개그야> <웃찾사>의 존재감이 너무 미약한 상황이다. 이 두 프로그램은 리얼 버라이어티에 치이고, 일반 예능물에도 치이고, <개그콘서트>에도 치이니, 광개토대왕-장수왕 시절의 고구려-백제-신라 삼국지에 비길 수 있겠다. 이것이 지금까지의 상황이었다.

 

젊은 개그맨들의 독특한 캐릭터 ‘주효’
<웃찾사>는 최근 새로운 코너를 대거 선보였다. 제작진이 <웃찾사>의 영광을 되찾기 위해 “앞으로 방송 출연은 아이디어와 능력 외에는 ‘방송사 불문’ ‘나이 불문’ ‘경력 불문’”이라는 각오를 다지고 있다고 한다. ‘웅이 아버지’ ‘영숙아’ ‘안 팔아’ 등 기존 코너와 새로운 코너가 어울리면서 모처럼 활력이 느껴지고 있다. ‘웅이 아버지’와 ‘영숙아’도 그리 오래된 코너는 아니다.
‘고딩어’는 ‘캐안습 지대짱나 샵숄레이션 님아 매너좀요’라는 인터넷 은어를 태연하게 사용한다. ‘매너좀요’라는 대사를 치는 개그맨의 톤이 너무나 천연덕스러워 시청하다가 포복절도했다. 다른 시청자들에게도 깊은 인상을 남겼는지, 한 일간지의 주간 검색순위 5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드라마’는 여주인공의 지나친 열연이 부담스러우면서도 그것 때문에 웃긴다. 통속 드라마에 나올 법한 ‘정통스러운’ 연기와 개그의 가벼움이 충돌하면서 코미디의 묘미가 작렬한다. 설정의 특이함으로 강렬한 자극을 주었는데 앞으로 얼마나 풍부한 변주를 할 수 있을지가 장수의 관건이 될 듯하다.
‘그래서’는 ‘그래서’라고 반복하는 대목이 귀에 거슬리기도 하지만 은근한 중독성이 있다. 등장 인물들이 돌아가면서 우스운 얘기를 한다는 설정 자체는 새로울 것이 없다. 중요한 것이 그 얘기들이 (적어도 아직까지는) 웃긴다는 점이다.
‘디테일캐치!’는 생활 속에서 있을 법한 상황의 ‘디테일’을 콕 집어 표현하는 설정이다. <개그콘서트>에서 강유미·안영미의 ‘고고 예술 속으로’가 이것과 유사한 형식의 절정을 보여준 바 있다. 강유미·안영미는 거의 보고 들은 것의 보고서를 작성해 보여주는 것 아닌가 할 정도로 발군의 통찰력과 표현력을 과시했었다. 이런 류의 설정은 정확히, 생생히 표현하면 웃긴다. 앞으로의 풍성한 ‘캐치’가 기대된다.
‘지독한 사랑’은 이정수에 이어 1인 개그의 계보를 이었던 황영진의 복귀작이다. ‘잭슨황’처럼 이번에도 춤이 가미된 개그다. 거기에 발군의 연기력을 보여주는 여자 파트너가 가세했다. 둘의 앙상블로 첫 회에서 ‘대박’을 쳤다. 첫 회 때 황영진이 빵을 뿜는 장면에서 쓰러지고 말았다. 얼마나 웃기던지.
기존 코너인 ‘영숙아’는 한창 유행하는 리얼 버라이어티의 현장성·의외성을 가미한 설정이었다. 요즘에는 유명 연예인이 영숙이 역할로 나오고 있다. 스킨십의 위력이 빛을 발하는 코너다. 여성과 남성의 은밀한 욕망을 코미디로 승화시켰다.
어느새 <웃찾사>의 간판으로 떠오른 ‘웅이 아버지’는 이른바 ‘4차원 캐릭터’ 코미디다. 이상한 인물들이 확실한 성격을 가지고 나와 ‘확실히’ 웃겨준다. 상황만 변주되면서 각 인물들은 자기 캐릭터의 대사를 매회 반복한다. 캐릭터 버라이어티와 비슷한 설정이다. 이 코너를 만든 <웃찾사>의 젊은 개그맨들은 ‘언행일치’ ‘거침없이 킥킥킥’ 등으로 4차원 캐릭터라는 한 우물만 파고 있다. 이런 ‘이상한’ 코너가 간판이라는 데서도 <웃찾사>의 활력이 느껴진다.
예능의 우연적 즉흥적 웃음도 좋지만, 숱한 밤을 아이디어와 연습으로 지새면서 만들어내는 기획된 웃음에도 관대한 눈길을 줄 필요가 있다. 코미디-개그 프로그램이 융성해야 예능계에도 인력 공급이 된다. TV 코미디를 즐기면 자신감과 긍정적 사고가 증대된다는 연구 결과도 나왔었다. <웃찾사>의 활력이 시청자의 관심이라는 열매를 맺어 모처럼 개그 프로그램 양강 체제가 부활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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