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동·부녀자 실종자 맡아서 찾아줄 민간 기관도 세워라
  • 표창원 (경찰대학 교수) ()
  • 승인 2008.03.24 11:54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치안 당국 역량·사회적 협력 시스템 빨리 갖춰야…피해자 가족들의 상처, 혼자서 감당하기에는 너무 커

 
지난해 실종된 용산의 초등학생 허 아무개양과 제주의 초등학생 양지승양이 아동 성범죄자에게 납치되어 살해당한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에 안양의 초등학생 우예슬·이혜진 양이 유사한 방법으로 또 희생되었다. 몇 해 전 의문의 출장안마사 실종이 유영철의 잔혹한 연쇄 살인으로 밝혀져 부녀자 대상 범죄에 대한 우려가 증폭되었지만 근본적인 대책이 마련되지 않자 경기 남부 지역 연쇄 실종 사건으로 이어졌고, 서울 마포에서 실종된 네 모녀는 전직 프로야구 선수 이호성에게 무참히 살해당해 암매장된 채로 발견되었다. 무엇이 문제이고 어떤 대책을 마련해야 할까?
우선 ‘실종을 조장하는’ 사회 환경을 바꿔야 한다. 미국·유럽 등 선진국과 달리 우리나라에서는 어린이들이 늘 ‘보호의 연결고리(chain of protection)’ 내에 있지 않고 상당 시간 방치되어 있는 등 위험에 상시 노출되어 있다. 어린이집, 유치원 및 학교를 오갈 때 반드시 사전에 등록된 보호자가 동반해야 하는 외국과 달리 어린이 혼자 오가거나 차량으로 일정 거리만 이동시켜준다. 학교 앞은 각종 학원 차량과 판촉 홍보원들로 가득 차 혼잡하고 시야가 꽉 막혀 있어 누군가 아이에게 접근해 말을 걸어도 전혀 제지당하지 않는다. 생업에 바쁜 부모의 보호와 관심 밖에 있는 아이들은 놀이와 흥밋거리를 찾아 이리저리 방황하고 이웃 어른들은 내 아이가 아니라 상관하지 않는다.
동네마다 ‘안전한 이웃(Safer Neighborhood)’ ‘이웃 지키기(Neighborhood Watch)’ 등 서로의 안전을 지켜주는 자원봉사조직을 결성해서 운영하는 외국과는 너무 다른 상황이다. 경찰이나 경비실, 가게 등의 ‘자연적 감시’ 눈길이 미치지 않는 곳에 CCTV라는 ‘기계적 감시’의 눈을 설치하려 해도 사생활이 노출된다고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아 곳곳에 사각지대가 생겨난다. 부녀자와 아동을 노리는 ‘야수’들에게는 너무도 편안한 사냥터가 되어 있는 것이다.
실종 이후 대처에도 문제가 많다. 1년에 14세 이하 아동 실종만 7천~ 8천 건이 발생하고 성인 여성이나 치매 노인 실종까지 합치면 4만~ 5만명이 실종된다. 이 많은 실종 사건 모두에 수사력을 집중할 수 없다 보니 협박 전화나 납치 목격 등 뚜렷한 범죄 증거가 없으면 일단 24시간을 기다리고 보는 것이 상례화되었다.
문제는 납치된 아동이나 여성의 경우 대다수가 실종된 지 3~4시간 이내에 피살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미국에서 도입된 것이 ‘앰버 경보제도’와 ‘코드 아담’, FBI의 ‘실종수사전담반’이다. 아동이 실종된 직후 전문 경찰관이 범죄 관련 가능성을 판단, 경보를 발령하면 주위에 있는 모든 방송, 전광판 등 매체와 주민 휴대전화로 실종된 어린이의 인상 착의와 용의자 혹은 용의 차량의 특징이 전파된다. 앰버 경보가 발령되면 범인이 이동 중에 공개수배 사실을 알게 되고 주민들과 운전자들이 모두 자신과 실종된 어린이를 찾고 있다는 강한 심리적 압박감을 느껴 아동을 포기하고 도주하거나 시민의 제보로 검거되는 일이 허다하다.

 

동네마다 서로의 안전 지켜주는 외국과 너무 달라
 ‘코드 아담’은 쇼핑몰 등 혼잡한 실내에서 아이가 없어졌을 경우, 자동으로 건물의 모든 출입구를 봉쇄하고 경찰에 신고한 후 안전 요원이 아동을 찾는 시스템이다. 우리나라는 부모만 발을 동동 구르고 목이 터져라 아이 이름을 부르며 찾아나선다. 장기 실종 사건이나 경찰이 수사하지 않는 실종 사건에서 실종자를 찾는 작업 역시 오로지 부모만 생업을 포기한 채 나서 전단지를 돌리고 전국을 헤매야 하는 우리와 달리 외국에서는 정부의 지원과 시민 성금으로 운영되는 민간 기관에서 전직 경찰관 등 전문가와 첨단 장비를 동원해 찾고 수색해준다.
실종자 가족들이 겪는 슬픔과 자책감, 그로 인한 외상(trauma) 역시 심각하다. 외로운 섬처럼 혼자서 참고 이겨내야 하는 우리 실종자 가족들과 달리 정부와 지역 사회가 보듬고 지원해주는 외국의 실종자 가족들은 전문 심리 치료와 각종 지원을 받고 있다. 이웃사촌, 환난상휼, 두레와 향약의 미덕들은 다 어디로 갔으며 국가의 책무는 포기해버린 것인지, 실종자 가족들에게는 ‘각자가 알아서 안전 지키고, 운이 없어 당하면 스스로 피해를 복구하라’라는 것이 우리 사회의 냉혈한 원칙이자 현실인 것처럼 되어버렸다. 이대로 두면 다음 번에는 ‘내 아이’ ‘내 가족’이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자각과 연대의식이 필요하다.
국가는 무엇보다 ‘국민의 안전과 생명 지키기’라는 가장 기본적인 책무부터 제대로 수행해야 한다. 먼저 어린이와 부녀자의 시선에서 어떤 위험과 문제가 있는지를 파악해야 한다. 발견된 위험과 문제 요소에 대해서는 가장 효과적인 대책을 강구해 이행해야 한다. 그 대책이 일과성에 그치지 않도록 제도화하고 그 운영을 감독하는 체계도 구축해야 한다. 가장 우선적인 대상은 교육이다. 국가가 사적 영역에 해당하는 개인 학력이나 진로 문제에 국력을 쏟기에 앞서 어린이와 학생의 안전이라는 ‘공적 책무’에 우선 진력해야 한다. 각급 학교와 교육시설의 ‘안전 설계’로부터 안전 확보를 위한 환경의 개선, 지역사회와의 연계 및 협력 방안을 강구해 시행해야 한다.
세계에서 가장 풍부한 인구와 인적 자원을 가진 우리나라에서 어린이와 부녀자 안전을 지켜줄 인력이 부족한 모순된 현실을 국가의 역할과 자원봉사 정신의 조화를 통해 타개해야 한다. 어린이 안전 교육 역시 종래의 “낯선 사람을 조심해”가 아니라 ‘누구라도 차에 같이 타자고 하거나 인적이 드문 곳으로 동행하자는 등 위험한 행동을 요구할 때 적절히 거절하고 안전을 확보하는 방법’을 역할 연기 등 실습을 통해 익혀주어야 한다. 성인들 역시 아동에게 허용되는 호감 표시와 위험한 금기 행동에 관한 원칙을 새롭게 정립하고 이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이루어야 한다. 그래야 ‘잠재적 범죄자’와 ‘우호적 지인’ 사이의 구분이 가능해진다.
경찰 역시 실종 사건 수사는 초기에 적절한 대응이 무엇보다 중요한 관건임을 잊지 말고 전문 역량과 사회적 협력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경찰이 미처 대응하지 못하는 수많은 실종 사건의 초기 대응과 장기 실종자 찾기를 전문적으로 이행해줄 민간 기관의 설립 역시 시급한 과제다. 보호 관찰 기능의 확충을 통해 청소년이나 성인 범죄자 중에서 아동이나 부녀자를 상대로 도착적인 성욕구를 가진 이상 성격자를 미리 가려내고, 유사 범죄 전과가 있는 재범 우려자에 대한 철저한 감독과 관리를 행하는 것 역시 미해결 과제다.
‘세계 10대 경제 대국’ ‘월드컵 4강 국가’라고 자랑만 하지 말고 이제부터라도 정부와 경찰, 교육 당국, 그리고 언론과 시민사회 등 모든 사회 주체가 합심해 부녀자와 어린이 안전도에서 세계 상위권으로 올라서는 ‘안전하고 행복하게 잘사는 나라’가 될 수 있도록 법과 제도, 정책과 관행을 개선해야 한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