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배지 못 달더라도 판은 흔들 수 있다?
  • 소종섭 기자 kumkang@sisapress.com ()
  • 승인 2008.03.24 1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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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천 탈락자들, 대거 무소속으로 각개약진…수도권에서는 복병 될 수도
 
여야가 공천 후유증 때문에 몸살을 앓고 있다. 한나라당 공천 탈락자와 일부 정치권 인사들은 ‘친박 연대’ 간판으로 총선에 출마한다. ‘무소속 연대’ 형식을 꿈꾸며 재기를 모색하는 인사들도 많다.
홀로 무소속 출마를 결행하는 이들도 여럿이다. 민주당에서도 무소속 출마자들이 속출하고 있다. 주목되는 것은 영·호남에서 이런 움직임이 가열되고 있다는 점이다. 상대적으로 현역 의원들이 많이 낙천한 곳이다. 이번 공천이 ‘개혁 공천’이라는 소리는 높았지만 이에 승복하지 않고 출마하는 이들이 많다는 것은 그만큼 공천의 신뢰성과 공정성에 문제가 있었다는 것을 반증한다.
4·9 총선 정국의 새로운 흐름으로 대두된 이런 움직임은 과연 정치권을 재편하는 데까지 나아갈까. 아니면 ‘제2의 민국당’이 되어 총선 이후 사그라질까. 아직 가능성을 점치기는 어렵다. 변수들도 있다. 
대구의 매일신문이 3월19일 대구·포항·안동 MBC와 공동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대구·경북 지역 무소속 후보가 한나라당 후보와 만만치 않은 승부를 벌이는 것으로 나왔다. 안동의 경우 한나라당 허용범 후보(32.8%)와 무소속 김광림 후보(27.6%)가 오차 범위 내에서 접전을 벌이고 있다.
구미 을은 한나라당 이재순 후보(40.2%)가 무소속 김태환 후보(30.2%)를 따돌리기는 했지만 예상했던 것보다 격차가 크지 않았다. 이 지역에서는 이밖에도 박종근(달서 갑)·이해봉(달서 을)·이인기(고령·성주·칠곡) 의원, 신영국 전 의원(문경·예천) 등 나름으로 지역 기반을 갖고 있는 ‘친박’계 공천 탈락 의원들이 대거 무소속으로 출마하겠다고 선언했다.
이들은 공통적으로 ‘박근혜 브랜드’를 내세우고 있다. ‘반드시 살아 돌아가서 박근혜를 대통령으로 만들겠습니다’(박종근 의원) ‘박근혜를 지지한 것이 죄입니까’(이해봉 의원) ‘꼭 살아서 돌아오겠습니다’(김태환 의원)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습니까’(이인기 의원)라는 식이다. 이들은 선거 차량과 홍보물에도 박근혜 전 대표와 함께 찍은 사진 등을 넣는 방법으로 선거운동을 벌인다는 전략을 세워놓고 있다. 박 전 대표가 지역구인 대구 달성에 머무를 것으로 알려져 박 전 대표를 찾아갈 계획도 갖고 있다. 대구·경북 지역 정가에서는 이들의 움직임에 주목하면서 이른바 ‘친박근혜 벨트’의 형성 여부에 귀를 쫑긋 세우고 있다.
부산·경남 쪽 움직임도 심상치 않다. 친 박근혜계 좌장인 김무성 의원(부산 남구 을)과 유기준(서구)·엄호성(사하 갑) 의원은 공천 탈락이 확정되면서 무소속 출마를 선언하고 지역구를 누비고 있다. 또 유재중 전 수영구청장(수영)과 이진복 전 동래구청장(동래), 김세연 동일고무벨트 대표(금정)도 출사표를 던졌다. 경남에서는 강길부(울산 울주)·김명주(경남 통영·고성)·최구식(진주 갑) 의원도 무소속 출마를 선언했다.
성격은 좀 다르지만 유시민 의원(대구 수성 을), 박재호 전 국민체육공단이사장(부산 남구 을), 김두관 전 장관(경남 남해) 등도 무소속으로 출마했다. 열린우리당에 몸담았던 이들은 정당 간판보다는 차라리 무소속으로 싸우는 것이 낫다는 판단 아래 무소속을 택했다.
호남 지역에도 무소속 바람이 불고 있다. 신중식 의원은 채일병·이상열 의원 등과 무소속 연대 조직을 만들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강운태 전 의원(광주 남구), 박지원 전 청와대 비서실장(목포), 김홍업 의원(무안·신안), 이정일 전 의원(해남·진도·완도), 김정범 변호사(담양·곡성·구례), 이무영 전 경찰청장(전주 완산 갑) 등도 무소속으로 출마하겠다고 선언했다.
영·호남에서 일고 있는 이런 흐름이 실제 4·9 총선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갈린다. 어떤 이들은 “오랫동안 지역의 기반을 다져온 이들이기에 파괴력이 클 것이다”라고 말한다. 그러나 부산 지역 한 정치부 기자는 “개인 경쟁력에 따라 다를 것이다. 당선될 수 있는 사람은 손에 꼽을 수 있는 정도에 불과할 것으로 본다”라고 내다보았다. 한나라당 정서가 워낙 강하기 때문에 무소속으로 출마해서 1위를 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당연히 그만큼 파괴력이 떨어진다는 설명이다.
‘친박 연대’ ‘무소속 연대’ 합치면 기호 3번 획득 가능
영남 지역의 무소속 출마 의원들 중에는 부산의 김무성 의원과 경북의 이인기 의원이 경쟁력을 가장 크게 인정받고 있다. 김의원의 경우 김영삼 전 대통령이 3월19일 사무실 개소식에 참석해 “버르장머리를 고쳐줘야 한다”라고 한나라당의 공천을 맹비난하며 무소속 출마를 한껏 격려했다. 전남 목포에서는 박지원 전 청와대 비서실장이 당선될 것인지 주목되고 있다.
그는 3월20일 무소속 출마를 선언하며 “여러 차례에 걸쳐 당 대표께서는 (공천을) 약속했으나, 나에 대한 신의를 지키지 않았다”라고 서운함을 토로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공개적으로 말하지는 않았으나 민주당의 공천에 대해 상당한 불쾌감을 나타냈다는 후문이다.
여야 텃밭인 영·호남의 무소속 출마자들 가운데 경쟁력이 있는 일부 인사들을 제외하고는 판도 변화를 불러올 정도라고 보기는 어렵다는 것이 대체적인 분석이다. 텃밭의 무소속 바람은 3~6석 정도에 그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김형준 명지대 교수(정치학)는 “현재 나타나는 현상은 정책이나 이념에 따른 것이 아니라 사람에 따른 분열이다”라고 분석했다.
문제는 수도권이다. 수천 표 아니 수백 표 차이로 승부가 갈리는 접전 지역이 많은 수도권 선거의 특성상 지역 기반이 있는 인사의 출마는 상당한 영향을 미친다. 이 때문에 수도권 무소속 출마자들이나 ‘친박 연대’의 움직임이 당선으로 이어지기는 어려울지 몰라도 선거 판도 변화에 주요한 변수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홍사덕 ‘친박 연대’ 공동선대위원장은 “하나의 깃발 아래 총선을 치르는 것이 낫다”라며 ‘친박 연대’와 ‘무소속 연대’의 통합을 추진하고 있다. 성사될지는 미지수이나 만약 가시화한다면 현역 의원 20여 명이 포진한 ‘제3당’ 위치를 확보할 수 있다. 총선에서 기호 3번을 받을 수 있는 것이다. 홍위원장은 한나라당 강재섭 대표의 지역구인 대구 서구, 공동위원장을 맡고 있는 서청원 전 대표, 이규택 대표 등은 모두 수도권 선거구에 출마할 계획이어서 한나라당으로서는 예상치 못한 복병을 만난 셈이다. 이들은 당선은 어려울지 몰라도 한나라당 후보의 당선을 가로막는 장애물 역할을 톡톡히 할 것으로 보인다.
무소속과 ‘친박 연대’를 모태로 한 ‘한나라 분열’ 흐름이 강해지자 한나라당도 적극 견제에 나서기 시작했다. 이방호 사무총장은 3월20일 공천자대회에서 “탈당하고 무소속으로 출마하면 중대한 해당 행위를 한 것이다. 어떤 경우든 무소속 당선자들을 한나라당에 입당시키지 않겠다”라고 확언했다. 흐름을 끊어놓지 않으면 곤란을 겪을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한나라당은 이들 외에도 이재선 전 의원 등 공천 탈락자들이 자유선진당에 입당하는 경우가 늘고 있어 총선 전략 전반을 재검토해야 하는 상황에 몰렸다. 4·9 총선을 불과 20여 일 남겨두고 벌어지는 이런 정치권의 이합집산은 인물을 중심으로 움직이는 한국 정치의 특성을 여지없이 보여준다. 선거를 눈앞에 놓고서야 공천을 마치는 행태 또한 다른 나라에서는 찾아보기 힘들다. 이래저래 생각할 새도 없이 투표해야 하는 유권자들만 어지럽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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