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오 흐트러진 여권 축배의 뒷맛은 쓰다
  • 소종섭 기자 kumkang@sisapress.com ()
  • 승인 2008.03.31 14:2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총선 후 정국 전망 / 지도력 발휘할 컨트롤 타워 취약 이상득·정몽준 행보 ‘주목’…소장파는 새 세력군 형성할 듯

지금보다도 총선 이후가 더 걱정이다. 굉장히 복잡해질 것 같다.”  3월25일 오후 서울 시내에서 만난 한나라당 한 핵심 인사는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날이 갈수록 깊어만 가는 여권 내 갈등의 골이 좀처럼 풀릴 것 같지가 않다는 것이다. 이 인사는 “이런 상태라면 총선 이후 여권은 한동안 대혼돈에 휩싸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라고 내다보았다. 한마디로 ‘중심 세력’이 없는 가운데 백가쟁명식 논쟁이 일어나면서 정국 주도력을 상실하는 상황을 맞을 수 있다는 걱정이었다.
아닌 게 아니라 ‘총선 이후’를 바라보는 여권 관계자들의 얼굴은 밝지 않다. 청와대 관계자들 사이에서도 “위험하다”라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출범 30일을 갓 지난 정권이라고는 믿기 어려운 모습이다. 여권은 왜 이런 상황에 직면했을까. 또 총선 이후 정국은 어떻게 흘러갈 것인가.
여권 인사들은 대놓고 말하지는 않지만 상황이 이처럼 악화한 근본 원인이 이명박 대통령에게 있다는 것을 부인하지 않는다. 이대통령의 리더십에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누군가 쓴소리를 했다는 이야기는 나오지 않고 있다. 이대통령을 둘러싼 청와대 구성원 면면이 구조적으로 문제가 있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끊이지 않는 배경이다. ‘일하는 사람’ 위주로 구성하다 보니 대통령의 지시를 받아 일을 충실히 수행하는 데 그칠 뿐, 큰 틀에서 정국을 바라보면서 창조적으로 구상하고 직언하는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또 이른바 ‘CEO형 리더’로서 대통령이 세세한 부분까지 지시하는 모습이 잦다거나 ‘실용’ ‘능력’을 강조하며 국민의 도덕적인 눈높이에 맞지 않는 인사들을 중용한 것도 근본적으로 대통령의 인식 수준을 의심하게 하는 결과를 낳았다.
대선 당시 이대통령에게 조언했던 한 인사는 현 국면을 이렇게 진단했다. “이대통령은 국민 통합과 경제 살리기라는 양대 축을 가지고 대선에서 승리했다. 그러나 취임 이후 경제 상황이 악화하는 가운데 통합의 리더십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새로운 가치를 내걸어 국민의 역량과 관심을 모아야 하는데 새 리더십을 창출하지 못했다. 건강한 보수 세력은 ‘강·부·자 내각’으로 상징되는 부패와 부도덕에 실망하고 있고, 골수 보수 세력은 이대통령이 박근혜 전 대표와 갈등하는 것을 보면서 그가 과연 보수 세력의 대표인가에 의구심을 품기 시작했다. 지지 기반이 급격히 줄어들면서 사면초가에 몰렸다.”
여러 차례 지적되었지만 여권의 정무 기능이 제 역할을 못하는 것은 사태를 더 꼬이게 만들었다. 여권 내에서 최근에 불거진 일련의 사태는 정무 기능이 원활히 작동되었으면 상당 부분 파장을 줄일 수 있었다는 것이 여권 관계자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한나라당 한 관계자는 김영삼 전 대통령의 경우를 예로 들었다.
김 전 대통령이 연일 한나라당의 공천을 비난하며 “버르장머리를 고쳐줘야 한다”라고 일갈했는데, 사전에 여권에서 김 전 대통령에게 공천 상황에 대해 설명하는 자리라도 있었다면 이렇게 되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얘기였다. 대통령의 형인 이상득 국회부의장의 총선 출마를 둘러싸고 여권 내부에서 한바탕 내홍이 있었던 것이나 박근혜 전 대표의 반발 등도 정무 기능이 작동되지 않는 것과 관련이 깊다.
노무현 정권 때와 달리 청와대 정무수석직이 부활되었음에도 정무 기능이 제자리를 못 찾는 이유는 무엇일까. 한마디로 사람 때문이다. 제 역할을 할 수 있는 사람들로 청와대 정무팀을 짠 것이 아니라 편의대로 사람을 앉히다 보니 ‘사람은 있되 정무는 없는’ 상황이 된 것이다. 이 때문에 인적 변화가 있기 전까지 여권의 정무 기능이 제자리를 찾기는 힘들어 보인다. 총선이 끝나면 여권 정무 기능의 열쇠는 이상득 국회부의장이 쥐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 지금 펼쳐지는 흐름을 보면 이대통령은 ‘정치’ 부분에 관한 한 이부의장이 여야를 아우르는 조정 역할을 해주기를 바라는 것처럼 보인다.
청와대의 한 관계자는 지금의 상황을 위기라고 규정했다. “여권 핵심부가 균열했다. 반면 국정을 이끌어갈 핵심 어젠더는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 이런 가운데 총선을 통해 강력한 야당이 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노동계와 시민 사회도 한반도 대운하 반대 등을 매개로 도전을 본격화하고 있다. 그러나 여권에는 국정 전반을 살피며 지도력을 행사할 컨트롤 타워가 없다. 현재로서는 솔직히 말해 역량 자체가 부족해 보인다. 이것이 위기가 아니고 무엇인가.”
여권의 균열상은 최근 만천하에 드러났다. 경선 과정에서부터 불거진 이명박-박근혜 갈등은 갈 데까지 갔다. 평소 신중한 어법을 사용해온 박 전 대표가 계보원들의 잇단 낙천 이후 “(공천에 대해) 나도 속고 국민도 속았다. 대운하를 반대한다”라고 천명한 것은 이대통령에게 ‘이제부터는 내 길을 가겠다’라고 분명하게 선언한 것에 다름 아니다. 이로써 여권의 두 기둥이었던 두 사람 간의 신뢰는 깨졌다. 회복하기가 어려워 보인다.

당권 도전 나설 박근혜에 대항할 범 이명박계 인물 없어

 

박 전 대표는 총선 기간에 지역구인 대구 달성으로 내려가 칩거함으로써 자신의 지지 기반인 대구·경북 민심에 바탕을 두고 여권 핵심부를 향한 보이지 않는 대공세를 시작했다. “잘 되기를 바란다”라는 말에서 보여지듯 내용상 그녀는 자신을 따르던 무소속·친박연대 후보들의 선거운동을 돕고 있다.
이정현 공보특보는 박 전 대표의 현재 심경을 “참담하다”라는 말로 요약하며 이렇게 말했다.
“신뢰와 원칙이 무너졌다. 박 전 대표는 경선에 승복했다. 패자의 승복과 함께 승자가 정치 보복을 하지 않는 것도 중요하다.
승자가 독식하고 패자를 쫓아내는 선례를 그냥 놔두고 넘어간다면 앞으로 누가 경선에 승복하겠는가. 박 전 대표는 승복하는 정치 문화, 당권과 대권의 분리, 상향식 공천, 집단 지도체제 도입 등 당내 민주화에 획기적인 업적을 남겼다. 이런 것이 한꺼번에 무너지면 어떻게 정치 발전이 있나. 자기 사람을 심고 안 심고의 문제가 아니다. 원칙이 없는 공천을 통해 나타난 실태가 정치 보복이 아니고 무엇인가. 이런 것을 방치해두고 선거에서 이길 수 있나. 설사 이긴다고 해도 한나라당에 미래가 있는가.”
범 이명박계 내부에서도 분화가 이루어졌다. 이상득 부의장-이재오 의원-소장파들의 삼각축이 헝클어졌다. 이부의장은 평소 한나라당 소장파 인사들의 모임인 미래연대 고문을 맡으며 친밀한 관계를 유지해왔다. 그러나 미래연대 회장을 지낸 남경필 의원이 이부의장의 총선 불출마를 공개적으로 요구하고 정두언 의원, 권택기·김해수 등 수도권에 출마한 이대통령 직계 인사들까지 가세하면서 틈이 벌어졌다. ‘이상득 불출마’에 뜻을 같이했으나 이재오 의원이 출마를 결정하는 회군을 함으로써 이의원과 소장파들 사이에도 간극이 커졌다. 이부의장과 이의원 사이에는 애초부터 현안을 보는 시각차가 컸다.
이런 가운데 정두언 의원과 가까운 이태규 청와대 연설기록비서관이 느닷없이 사표를 내 그 배경이 주목되었다. 이비서관은 여권의 대표적인 전략가 가운데 한 명이다. 여의도 정가에서는 “소장파와 원로 간 갈등 와중에 이비서관이 미운 털이 박혀 사표를 낸 데 이른 것이 아니냐”라는 분석이 나왔다. 그러나 확인 결과 적성에 맞지 않는 업무를 맡은 이비서관이 새로운 길을 찾고자 사표를 낸 것으로 밝혀졌다. 그는 “일단 쉬면서 새로운 일을 찾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사실과 관계없이 이런 일들 하나 하나가 권력 투쟁과 연결지어 해석되는 것이 현재 여권의 상황이다.
그렇다면 이런 여권의 분열상은 총선 이후 어떻게 될까. 지금 분위기로 보면 박근혜 전 대표는 7월 전당대회에 출마하기로 결심한 것으로 보인다. 자신이 이룬 당내 민주화가 무너지는 것을 더 두고 볼 수 없다거나 (사무총장이) 종신직이 아니라는 언급 등에서 이런 흐름을 엿볼 수 있다. 박 전 대표가 당권을 잡으면 청와대와 사안에 따라 협력하고 견제하는 식으로 자신을 위치 지울 가능성이 크다.
이렇게 되면 대운하 사업 등 이대통령이 추진하는 핵심 정책들은 가시밭길을 걸을 수밖에 없다. 총선에서 한나라당이 과반에 못 미치거나 한나라당을 탈당한 무소속·친박연대 인사들이 대거 당선할 경우, 박 전 대표는 ‘책임론’으로 당 지도부를 강력하게 압박하며 7월로 예정되어 있는 전당대회 개최 시기를 앞당기라고 요구할 것으로 보인다.
여권 핵심부의 고민은 박 전 대표가 ‘도전’할 경우 이에 맞설 인물이 없다는 데 있다. 가장 강력한 경쟁자였던 이재오 의원은 이번에 상처를 입었다. 지금으로서는 원내 진입 여부조차 불투명하다. 밀월 관계를 유지해왔던 강재섭 대표는 이번에 불출마를 선택하며 살신성인하는 모습을 연출했으나 효과를 보지 못했다. 박 전 대표와 겨루기에는 파괴력이 약하고, 범 이명박계가 ‘강재섭 대표’라는 목표에 힘이 하나로 모아지지 않는 것도 약점이다.

 
무소속·친박연대 인사들 입당 여부 놓고 또 한 번 마찰 일 듯

이런 맥락에서 최근 주목된 것이 정몽준 의원이다. 서울 동작 을에 출마한 정의원은 틈날 때마다 수도권 출마자들을 지원하는 데 적극 나서고 있다. 활동 반경을 넓혀가는 것이다. 계파 색이 옅은 그가 여권 내 갈등을 완충하는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도 그의 가치를 높인다. 그러나 한나라당의 한 관계자는 “이재오계가 차기를 노리는 정의원을 밀 가능성은 크지 않다. 소장파들도 단일 대오를 형성하기가 힘들 것이다”라고 전망했다.
이대통령이 박 전 대표와 맞서는 전면전으로 갈 것인가, 아니면 타협을 모색하며 당을 박 전 대표에게 맡기는 쪽으로 갈 것인가는 총선 이후 이상득 부의장의 역할에 상당 부분 좌우될 것이다.
총선 이후 여권 내 갈등 전선은 1차적으로 무소속·친박연대 인사들의 한나라당 입당 여부를 놓고 형성될 것으로 전망된다. 현재 박 전 대표는 입당을 시켜야 한다는 입장이고 당 지도부는 이에 극력 반대하고 있다. 한나라당 관계자들은 특히 ‘친박연대’ 소속 서청원 전 대표의 당선 여부에 주목하고 있다.
그는 친박연대 비례대표 2번이다. 당 대표를 지냈고 남다른 추진력과 친화력·조직력을 갖고 있는 그가 배지를 달면 한나라당을 흔드는 일에 적극 나설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한나라당의 한 핵심 인사는 “현재 조직적으로 박 전 대표를 뒷받침하는 중추는 서 전 대표의 조직이다. 다선·고령 의원들이 대거 낙천하면서 산전수전 다 겪은 그를 상대할 만한 사람이 한나라당에 거의 없다”라고 말했다.
향후 여권의 권력 지형이 어떻게 변화할 것인가를 가르는 핵심 변수는 총선 결과다. 총선 결과에 따라 일어날 수 있는 경우의 수가 달라진다. 특히 박근혜 세력과 소장파들이 얼마나 배지를 다느냐에 따라 여권 내 힘의 역학 관계가 판가름날 것으로 예상된다. 소장파들은 이번 ‘이상득 불출마’ 서명에서 보여주었듯 총선 이후 새로운 세력군으로 등장하면서 계파를 초월해 독자적인 길을 걸을 것으로 보인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