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특검, 결국 시나리오 대로 가는가
  • 감명국 기자 kham@sisapress.com ()
  • 승인 2008.03.31 1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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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희 회장·이재용 전무 불기소…이학수 부회장 기소 / 변죽만 울리다 면죄부 준 ‘실패한 특검’ 비판 일 수도

 
결국은 시나리오대로 가는 것인가” 최근 한남동 삼성특검 사무실 주변에서 부쩍 많이 들려오는 얘기다. 이른바 ‘삼성 특검 시나리오’란 것이 어느 순간부터 회자되기 시작했다. 특검이 출범하고 한창 수사에 속도를 내던 1월 말부터 불거져나왔다. 이후 시나리오는 살을 빼고 덧붙이고 하면서 변형되었지만 사그라지지는 않았다. 시나리오의 공통된 내용은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 불기소 및 대국민 사과, 이재용 삼성전자 전무 불기소, 이학수 삼성그룹 부회장 기소’로 요약된다. 그런데 이 시나리오가 실제 점차 현실화되고 있다.
삼성 특검 수사는 이미 막바지에 접어들었다. 한 차례 더 수사 기한을 연장할 것이 확실시되지만 2차 연장 기한이 15일에 불과한 만큼 4월 한 달 동안에는 수사 상황을 마무리하고 내용을 정리하는 데 대부분의 일정이 소요될 것으로 보인다. 이제 특검은 마지막 수순으로 이건희 회장과 부인 홍라희 삼성미술관 리움 관장의 소환 조사 여부만 남겨두고 있다. 하지만 이 역시 형식적인 절차에 그칠 것이라는 섣부른 전망이 나오고 있다. 사실상 수사는 거의 끝났다는 말이다.
막판을 향해 치달았던 특검의 최대 관심은 이회장의 사법 처리 가능성이었다. 특검측에서도 “특검의 최종 목표는 이회장의 사법 처리에 있다”라는 말을 누차 강조해왔다. 기소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는 뜻으로 해석될 수도 있지만, 또 바꿔 말하면 “이회장에 대한 기소 사유를 찾고자 했지만 혐의가 없다”라는 면죄부로 작용할 수도 있다.

이건희 회장 사법 처리 공염불로 끝나
이회장의 사법 처리 가능성은 계열사를 동원한 비자금 조성과 삼성에버랜드 전환사채 저가 발행 사건, 그리고 정·관계 로비 지시 의혹 등 수사 대상 세 가지 모두에 걸쳐 있었다. 이 가운데 삼성생명의 차명 주식 등 수조원대의 차명계좌가 확인되었고 에버랜드 사건과 삼성SDS 신주인수권부사채 저가 발행 사건 등을 구조조정본부(현 전략기획실)가 주도적으로 개입했다는 이학수 부회장의 진술을 이끌어내기도 했다. 한때 이회장에 대해 배임 및 횡령, 그리고 조세포탈 혐의 적용이 가능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면서 특검 사무실 주변이 술렁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삼성측은 전·현직 임원 11명이 보유한 삼성생명 주식 16.2%에 대해 “문제의 주식은 고 이병철 선대 회장 때부터 물려진 상속 재산에 해당한다”라고 주장했다. 즉 이회장의 개인 돈이라는 것이다. 김용철 변호사와 경제개혁연대측은 “각 계열사에서 조성한 비자금이다”라는 주장을 굽히지 않고 있지만, 결국 특검도 이회장 개인 돈이라고 결론내렸다. 이 경우에는 법률 적용이 어떻게 될까.
특수통 검사 출신의 한 변호사는 “결론적으로 이회장에 대한 기소가 어렵다”라고 단정한다. 그는 “이회장이 선친의 유산을 임원들 명의로 차명 관리했다면 상속세와 증여세 등을 탈루했다는 측면에서 조세포탈죄를 적용할 수 있지만 이미 공소 시효가 지났다”라고 설명했다.
에버랜드 사건에 대해서도 기소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인다. 경제개혁연대는 이 사건의 주도적인 인사로 이회장과 이부회장, 김인주 사장, 최광해 부사장 등을 특검에 고발했다. 특히 에버랜드의 등기이사인 이회장에 대한 사법 처리를 강조했다. 그런데 이부회장이 “유석렬 당시 구조본 재무팀장의 기획안을 내가 최종 승인했다”라고 특검에서 주장했다. 이회장은 아무것도 몰랐다는 뜻이다. “상식적으로 이회장이 이 사실을 전혀 몰랐을 수 있겠는가”라는 여론의 부담에도 불구하고 특검이 삼성측의 주장을 받아들일 가능성이 크다.
아직 기소 가능성이 남아 있다는 주장도 있다. 경제개혁연대의 김상조 소장은 “다른 것은 몰라도 1998년 12월에 거래가 이루어진 삼성생명과 에버랜드 간의 주식 거래는 아직 공소 시효가 남아 있다. 이회장에게 조세포탈 혐의를 적용할 수 있다”라고 주장하고 있다. 특검은 현재 이 부분에 대해서 법리 검토를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미 대세는 정해졌다는 분석이 유력하다.
특검 사무실 주변에서는 “특검측이 이미 이회장의 불기소 방침을 세우고 여론을 살피는 듯하다. 이회장을 구속하면 경제에 상당한 파장을 미치는 데다, 아직 몸이 온전치 않은 고령의 이회장 구속을 국민도 찬성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입장을 강조하고 있다”라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사실상 ‘이미 특검에서는 이부회장이 총대를 메는 것으로 가닥을 잡았다’는 분위기가 3월 들어서부터 감지되어 왔다는 것이다.
특검이 지난 3월13일 이재용 전무에 대한 무혐의 결론을 내린 것도 이런 맥락에서였다. 시나리오에 등장하는 주요 인물 세 명 가운데 가장 먼저 한 명을 털어내버린 셈이다. 향후 삼성을 이끌어갈 이전무에 대해서는 무조건 흠집이 안 나도록 보호해야 한다는 승지원의 강력한 의지가 관철되었다는 얘기도 들려왔다. 그런 차원에서일까. ‘이재용의 이학수’라는 별칭을 얻고 있는 김인주 사장에 대해서도 삼성은 적극적으로 ‘보호하기’에 나선 느낌이다. 삼성 특검에서 또 하나의 민감한 쟁점은 안주인 홍관장에 대한 소환 조사 및 사법 처리 가능성이었다. 특검 수사가 의외로 미술품 구매 쪽에서 빠른 진척을 나타내면서 한때는 홍관장과 관련한 혐의가 이미 특검의 통제선을 벗어났다는 얘기도 흘러나왔다.

처음부터 그림 그려놓고 짜맞추기식 수사 했다?
실제 특검은 삼성생명 차명 주식의 배당금 가운데 수백억원이 국제갤러리 등으로 건너간 정황을 일찍이 확인했다. 차명 주식이 불법 비자금으로 판명날 경우 홍관장에 대한 사법 처리가 불가피하다는 전망이 학계와 법조계에서 나왔다. 실제 조국 서울대 법학과 교수는 한 라디오 인터뷰에서 “홍관장이 삼성의 임원이 아니기 때문에 업무상 횡령 및 배임 혐의를 직접 적용할 수는 없지만, 주범인 삼성 임원과 함께 공범죄 적용은 가능하다”라고 밝혔다. 하지만 이 가능성 역시 특검측이 이미 차명 주식이 이회장 개인 돈이라는 결론을 내린 마당에 물 건너 간 셈이다.
결과적으로 특검은 이회장 부부의 사상 유례가 없는 동반 소환 조사에 그룹의 실세이자 2인자인 이부회장의 기소라는 성과를 내보이며 “성역 없는 철저한 수사를 통해 최대한 혐의를 밝혀내겠다”라는 당초 약속을 지켰다는 점을 강조할 것으로 전망된다. 국민도 이 정도라면 받아들이지 않겠느냐 하는 기대를 하는 듯하다.
하지만 처음부터 이미 그림을 그려놓고 수사를 짜맞추기 식으로 했다는 비난도 만만찮을 것으로 보인다. 핵심 관계자들의 소환조사에서도 특검은 오해를 살만한 소지를 남겼다. 이회장 부부를 둘러싼 의혹을 밝히기 위해 전용배 전략기획실 상무와 한용외 삼성사회봉사단 사장, 그리고 이현숙 국제갤러리 대표 등의 조기 소환조사가 필요했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 전상무는 이런저런 핑계로 소환을 미루다가 3월14일 밤에야 처음 모습을 나타냈다. 이대표 역시 해외에 계속 머물다가 3월18일에야 소환에 응했다. 특검이 출범한 지 두 달이 훨씬 지나서였다. 그나마 이대표와 함께 특검이 출범하자마자 해외로 나가버린 한사장은 아직도 귀국하지 않고 있다. 특검은 “한사장이 돌아오는 대로 즉시 소환조사할 것이다”라는 말만 반복하고 있다.
전상무는 전략기획실에서 이건희 회장 일가의 재산을 관리하는 업무를 맡고 있는 핵심 실세인 것으로 알려졌다. 한사장은 홍관장의 미술품 구매 등 삼성의 미술품 구매에 관여한 인사로 줄곧 지목받아 왔다. 이대표 또한 수백억원의 돈이 국제갤러리로 유입되었을 정도로 삼성가의 미술품 구매에 결정적인 증언을 해줄 핵심 인사였다. 결과적으로 이들은 소환조사를 미룬 채 그동안 특검 조사에 대비해서 상당한 준비를 했을 것이란 짐작이 어렵지 않게 된다.
숱한 화제를 낳았고 최장 수사 기간이라는 기록을 세웠지만 삼성 특검 역시 성공한 특검으로 기억되기는 어려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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