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산 주먹’ 흑사회 한국 조폭 손잡고 지하 세계 장악 노린다
  • 정락인 기자 freedom@sisapress.com ()
  • 승인 2008.03.31 1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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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리봉동 잔혹사’ 끝없는 차이나타운 일대 암약 현장 밀착 취재

서울 구로구 가리봉동 차이나타운 거리. 저녁 7시가 조금 넘자 한산하던 거리가 갑자기 북적거린다. 차이나타운 거리에 있는 오락 게임장에도 삼삼오오 손님들이 모여들기 시작한다. 대부분 수도권 일대에서 일하는 조선족들이다. 주변 상인들에 따르면 요즘에는 중국 한족들의 수도 부쩍 늘었다고 한다. 게임장 입구에는 건장한 남자 서너 명이 경계를 서며 출입자를 통제하고 있다.
최근 가리봉동 차이나타운에는 사행성 게임장이 많이 생겨났다. 100m 정도의 거리에 ○○벅스 게임랜드, ○○스타 게임장, ○○날다, ○○피싱 등 10여 개가 들어서 있다. 경찰은 이들 업소 중 상당수는 국내 조직폭력 단체와 연관되어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흑사회 조직과의 연결 고리도 찾고 있다. 지상에서 게임장이 성업 중이라면 지하에서는 마작판이 열린다. 마작판은 건물 지하에서 은밀하게 벌어지고 있다. 마작방의 주인은 흑사회다. 흑사회는 중국에서 불법 마작 게임기를 들여와 조직 운영 자금을 끌어모으고 있다.
차이나타운의 밤거리는 중국 폭력 조직인 흑사회가 지배한 지 이미 오래다. 그동안 국내에 거점을 마련한 흑사회 분파는 10개가 넘는다. 국가정보원은 지난 2006년 중국계 폭력 조직 7개가 국내에 들어와 있다고 밝혔으나, 그 사이 5개가 더 늘어났다. 흑룡강파, 연변 흑사파, 뱀파, 호박파, 왕건이파 등이다.
흑사회 분파들은 흑룡강 출신 ‘흑룡강파’와 연변 출신 ‘연변 흑사파’로 나뉘어 양대 패밀리를 형성하고 있다. 우리나라로 따지면 호남파와 영남파로 갈라져 있다. 흑룡강파와 연변 흑사파 그리고 군소 분파들은 차이나타운의 패권을 놓고 끊임없이 세력 다툼을 벌였다. 2002년 5월7일에는 남구로역에서 흑사회 분파끼리 패싸움을 벌이다 상대 조직원이 살해되는 일이 벌어졌다.
초창기에 차이나타운을 접수한 것은 흑룡강파다. 그러나 연변 흑사파가 세력을 키우면서 상황이 바뀌었다. 연변 흑사파는 2005년 7월께부터 차이나타운 일대에서 세력을 확장하기 시작했다.
경찰이 내민 가리봉동 거리 동영상에는 끔찍한 장면들이 보였다. 흑사회 분파들이 흉기를 들고 패싸움을 하는 장면이다. 싸움이 벌어지자 순식간에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그리고 식칼로 보이는 흉기가 튀어나오고 한 남자가 땅에 떨어진 흉기를 다시 주워들더니 싸움판으로 뛰어든다. 중국 무협영화에서나 볼 수 있는 장면들이 실제로 차이나타운 거리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마작판 운영·청부업 등으로 돈 벌며 세력 넓혀

연변 흑사파는 흑룡강파를 비롯한 군소 조직들을 하나 둘 깨뜨리면서 가리봉동 차이나타운의 맹주로 떠올랐다. 세력 다툼에서 밀린 흑룡강파와 군소 조직들은 인근 지역으로 피신하거나 지방으로 근거지를 옮겨갔다. 일부는 안산 원곡동이나 원선동을 새로운 근거지로 확보하기도 했다. 가리봉동에 남아 조직 재건을 노리는 흑룡강파 조직원들도 있다. 독립 조직으로 자생할 수 없다고 판단한 군소 조직들은 연변 흑사파에 충성을 맹세하고 병합되었다. 이 과정에서 일부 조직원들은 관계 당국에 구속되거나 추방당했다.
연변 흑사파에 가리봉동을 내준 흑룡강파는 호시탐탐 복수할 기회를 노렸다. 2006년 12월17일 흑룡강파 조직원이 가리봉동 호프집에서 연변 흑사파 두목의 복부를 칼로 찌르는 일이 발생했다. 다행히 미수에 그쳐 살인 사건으로 연결되지는 않았다. 연변 흑사파도 즉각 보복에 나섰다. 8일 뒤인 12월25일 차이나타운 포장마차 앞 노상에서 흑룡강파의 행동대장을 납치한 뒤 사시미칼로 찌르고 발목뼈를 골절시켰다. 보복의 악순환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서울 구로구 가리봉동과 경기도 안산시 원곡동 일대를 장악한 연변 흑사파는 영등포구 대림동·신길동 지역에까지 세력을 확장하면서 서서히 서울 중심부로 파고들고 있다. 서울 강남 지역 유흥업소에도 연변 흑사파 조직원들이 대거 진출하고 있다. 이들은 상하 지휘 통솔 체계를 갖추고 행동 수칙에 따라 움직였다. ‘두목-부두목-고문-행동대장-행동대원-자금책’ 등으로 역할을 분담했다. 그들 나름의 철칙이 있었던 것이다.
조선족 흑사회의 주 수입원은 크게 유흥업소 관리, 공사 현장 이권 개입, 노래방·PC방·마작판 운영, 청부 폭력 등이다. 조선족 동포들의 체불 임금을 받아주는 청부업에도 나서고 있다. 점차 기업형으로 확장하며 조직의 영향력을 키우는 것을 알 수 있다.
국가정보원 국제범죄정보센터에 따르면 이들은 중국 현지인들의 국내 불법 입국을 알선하고 강·절도 및 신용카드 위·변조, 마약 밀매, 은행권 위조, 사기 도박 등에 나서고 있다. 최근에는 보이스피싱, 금융 사기 등 신종 범죄로 영역을 확대하고 있다고 한다.
국제범죄정보센터 담당관은 “국내 폭력 조직과 연계해 유흥업소를 운영하고 중국으로부터 필로폰 등을 밀반입해서 서울 지역 유흥가에 공급할 것을 기도하고 있다. 또 가짜 비아그라 대량 밀반입을 추진하는 등 점차 지능 범죄로 옮겨가는 양상이다”라고 말했다. 국정원은 지난 3월 중국 흑사회와 연계해 5억원대 중국산 가짜 비아그라 등 2만8천여 정을 밀반입·밀매한 내국인 박 아무개씨(31)를 검거했다. 지난해 7월에는 심양 흑사회로부터 필로폰을 밀반입한 부산 지역 조직폭력배 조직원을 적발하기도 했다.
연변 흑사파는 점조직 형태로 움직이고 있어 실체 파악이 어렵다. 차이나타운에 있는 업주들과 주민들도 실체를 모를 정도다. 조직원들은 낮에는 유흥업소 종업원이나 공사장 인부로 활동하면서 위장하고 있다. 유사시 조직 간 전쟁을 벌일 때는 일시에 모여든다. 강남 지역의 룸싸롱, 주점 등에서 웨이터로 활동하고 있는 조선족 상당수는 흑사파 조직원들이다.

폭력 수법 잔인…“한 번 붙으면 피투성이 될 때까지 싸운다”

흑사파는 유흥주점·PC방 등지에 둥지를 틀고 각종 이권 사업에 개입하거나 유흥업소 업주들과 조선족 종업원들의 약점을 잡고 금품을 갈취하고 있다. 공짜 술을 마시는 것도 다반사다. 유흥업소들에서 정기적인 상납을 받으면서 밤의 지배자로 나섰다. 이들은 평상시에도 칼이나 도끼 등을 등과 다리춤에 휴대하고 다니면서 시도 때도 없이 폭행을 행사했다. 자신들의 말을 거역하거나 반항하면 무자비한 폭행 세례를 가했다.
차이나타운의 밤은 무법천지가 된 지 오래다. 상인들은 방검복을 구입해 영업장에 나갈 정도다. 언제 어디서 조선족 폭력배들의 칼이 날아올지 모르기 때문이다.

 
유흥업소 업주인 김 아무개씨는 “지난해 초까지만 해도 하룻밤에 서너 명씩은 피투성이가 되었다. 피해자들은 보복이 두려워 신고도 하지 못한다. 한 번은 노래방 업주가 폭력배들의 칼에 찔려 창자가 밖으로 나왔는데도 신고하지 않고 그냥 넘어갔다”라고 말했다. 김씨는 갑자기 머리를 헤치며 4cm 정도의 상처를 보여주었다. 자신의 업소에서 일어난 싸움을 말리다 병으로 찍힌 상처라며 몸서리를 쳤다.
구로경찰서 가리봉지구대 김장욱 주임은 “구로경찰서 관내 중 가리봉동에서 사건이 가장 많이 발생한다. 한 달에 20건 정도인 것 같다. 조선족들은 한 번 싸움을 시작하면 피투성이가 될 때까지 싸운다”라고 말했다. 국내에 들어온 흑사회 조직원들 중 상당수는 중국에서 살인 등의 범죄를 저지른 범죄 전력자들로 알려졌다. 중국 공안의 수배를 피해 호적을 세탁한 후 한국에 들어온다. 한국에 들어오면 차이나타운에 들어가 조직원으로 활동한다. 한국으로 피신한 상대 조직원에게 보복하기 위해 또 다른 폭력배들을 보내기도 한다. 지난해 서울경찰청 광역수사대에 체포된 연변 흑사파 두목 양 아무개씨도 중국에서 살인 사건에 연루된 것으로 알려졌다.
 

문제는 이들의 실체가 드러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밀입국하거나 호적 세탁 등으로 들어오면 범행을 저질러도 신원 파악이 안 된다. 지문 감식도 안 되어 범행 현장에서 지문을 채취해도 추적할 수 없다. 살인을 하더라도 중국으로 피신하면 그만이다. ‘흑사회 범죄=완전 범죄’라는 등식이 성립될 수 있다.
허성수 서울경찰청 광역수사대 강력반 형사는 “흑사파는 사람 죽이는 것을 아주 쉽게 생각한다. 가리봉동에 가서 1천만~2천만원을 내놓고 살인을 청부하면 지원자는 얼마든지 있다. 사람을 죽이고 중국으로 도망치면 잡을 방법이 없다”라고 말했다.

 범행 저지르고 중국으로 도망갔다 호적 세탁해 다시 잠입

한국에서 추방된 조직원들 중 열에 아홉은 호적 세탁이나 위조 여권을 통해 다시 들어온다. 재입국이 어려운 것도 아니다. 돈만 주면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위장하고 입국할 수 있다. 그러다보니 차이나타운 유흥 업주들은 피해를 당해도 적극적으로 대응 하지 못하고 있다. 재입국하면 보복이 두렵기 때문이다. 지난 2004년 5월에 추방된 왕건이파 조직원 안 아무개씨는 출국한 지 2년이 채 안 되어 다시 입국했다. 안씨는 중국에서 호적을 세탁한 뒤 2006년 11월에 재입국해서 연변 흑사파의 행동대장을 맡았다.
흑사파와 국내 조직폭력 단체와의 연계는 오래전부터 추진되어 왔다. 경찰은 국내 폭력 단체인 3대 패밀리 중의 하나와도 연결된 것을 확인하고 내사를 진행 중이다.
장영권 서울경찰청 광역수사대 강력반장은 “흑사파는 조선족 뿐 아니라 내국인들을 상대로도 폭력을 행사하며 가리봉동 차이나타운 일대를 장악했다. 강남 지역 폭력 조직과도 연계하고 있다. 흑사파의 세력이 커질수록 늘어나는 걱정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싹이 더 커지기 전에 잘라야 한다”라고 말했다.
경찰은 지난 2004년 5월과 지난해 4월 조선족 흑사회 분파에 대한 대대적인 검거 작전을 벌였다. 2004년에는 서울 남부경찰서에서 왕건이파를 와해시켰고, 지난해에는 서울경찰청 광역수사대에서 연변 흑사파의 두목 및 조직원들을 검거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그러나 흑사회는 가지치기를 계속하며 뿌리가 더욱 깊어지고 있다.
경찰 관계자들은 중국 흑사회와 국내 폭력 단체들 간의 전면전이 멀지 않았다고 보고 있다. 이른바 영토 전쟁이 임박했다는 뜻이다. 지금은 양국 조직이 서로 대립을 피하거나 협력 관계를 맺고 있지만 ‘침묵의 카르텔’은 곧 깨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조직폭력단체의 속성상 ‘공존’은 한시적이라는 것이 수사 관계자들의 말이다. 조직력과 자금력이 어느 정도 확보되면 그 다음에는 한국 폭력 단체와의 필연적인 싸움이 시작된다는 것이다.

국정원에 따르면 중국 본토 흑사회는 상하이를 무대로 하는 청홍방 등 4천여 개 조직에 조직원 수만 해도 약 80만명에 이른다. 조선족 흑사회는 1980년대 후반부터 중국의 자본주의 물결을 타고, 지린·헤이룽장·랴오닝성 등 동북 3성 지역에서 베이징으로 몰려든 조선족 노동자들을 중심으로 결성되었다고 알려져 있다. 이들은 매춘, 마약, 밀수 등의 범죄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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