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장기 휘날리며 ‘캠리’가 온다
  • 김진령 기자 jy@sisapress.com ()
  • 승인 2008.03.31 1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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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요타, 2천만원대 중형차로 쏘나타와 정면 승부 선언…현대 “준비는 되어 있다”

지난 3월20일 도요타 본사의 조 후지오 회장이 한국으로 날아와 캠리의 한국 진출을 공식 선언했다. 지난 1974년 신진자동차(현 GM대우)와의 기술 이전 계약을 파기하고 철수한 지 34년만에 렉서스라는 이름을 떼고 ‘도요타’라는 본명으로 다시 한국에 진출하는 것이다.
캠리의 한국 진출이 뉴스가 되는 이유는 그 자체만으로 한국 시장의 판도를 뒤흔들 잠재력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최근 국내 수입차 시장의 통계를 보면 더욱 자명해진다. 한국수입차협회의 통계를 보면 수입 신차 시장에서 일본 차는 독일 차(41.7%)에 이어 2위(33.0%)를 기록했다. 일본 차 중 혼다가 40.3%, 렉서스가 42.6%로 사실상 양분하고 있다. 브랜드별 1, 2위 역시 혼다의 CR-V와 렉서스의 ES350이다. 일본 차가 한국 수입차 시장을 평정한 셈이다.
여기에 캠리가 참여하면 일본 차의 경쟁력은 더욱 강해진다. 미국 시장에서 자동차 본가인 GM이나 포드, 크라이슬러를 굴복시키고 도요타를 세계 넘버원의 자리에 올린 1등 공신이 바로 대중차 캠리다. 도요타는 캠리로 시장을 잡고 고급 브랜드인 렉서스로 브랜드 가치를 높이는 이중 전략을 취했다. 한국에 들어오기는 렉서스가 먼저였다. 지난 2000년 3월 도요타는 한국법인을 세운 뒤 2003년부터 렉서스 판매를 시작해 2005년부터 돌풍을 일으키더니 지난해에는 국내 시장 판매 1, 2위를 다루는 메이커로 급부상했다. 여기에 국산 신차 가격과 별 차이가 없는 캠리가 가세하면 국내 신차 시장에서 도요타의 위력은 다른 수입자동차 업체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커질 가능성이 있다.
수입차 업체의 양강 중 하나로 떠오른 혼다의 주력인 어코드나 CR-V는 한국 중형차와 엇비슷한 가격을 책정해 ‘수입차도 비싸지 않다’는 전략으로 성공한 경우다. 물론 탄탄한 내구성으로 정평이 난 품질도 뒷받침했다. 혼다 차의 인기 비결에 대해 한 수입업체 관계자는 “그랜저급의 국산차에 질린 강남 주부들에게 남편이 3천만원대의 차를 사준다고 하면 대안으로 CR-V를 고르는 경우가 많았다”라고 전했다.
혼다 어코드(2.4ℓ)의 기본 가격은 3천5백만원대이고, CR-V(2.4ℓ)는 3천만원에서 시작한다. 국산차 그랜저나 산타페 가격보다 결코 비싸다고 할 수 없다. 캠리의 명성은 어코드보다 더하면 더했지 결코 덜하지 않다. 내구력이 좋고 잔 고장이 없다는 평을 들으면서 이미 북미 지역을 평정한 전력이 있다.
지난 2006년 가을부터 캠리를 비공식적으로 수입해 판매한 선우모터스의 김영준 실장은 “북미 지역에서 캠리는 2천만원대 초반~3천만원대에서 팔린다”라고 전했다. 2천만원대 중반의 가격이면 국산 쏘나타와 비슷하다. 한국도요타가 가격 정책에 대해서는 아직 밝히지 않고 있지만 일본에서 북미 지역까지의 운송 거리를 생각하면 국내 판매가가 미국 판매가보다 더 비쌀 이유는 없다.
한국도요타가 예상보다 빨리 캠리의 국내 투입을 결정한 것은 혼다의 실적에 자극을 받았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자동차 업계의 정설이다. 실제로 도요타는 지난해 11월 조후지오 회장이 국내 기자들을 나고야 본사로 불러 기자간담회를 갖는 자리에서 ‘현대차 때문에 캠리의 한국 진출은 어렵다’는 요지의 발언을 했다. 하지만 불과 4개월 만에 이 말을 뒤집은 것이다. 한국도요타측은 캠리의 한국 진출이 결정된 때가 지난 3월 초였다고 밝히고 있다.

혼다의 실적에 자극 받아 서둘러 캠리 투입 결정

지난 2000년 3월 한국법인을 세운 뒤 3년여를 관찰하다가 2003년부터 렉서스로 시장 진입 가능성을 타진할 정도로 조심스럽게 접근하고 있는 도요타가 입장을 급박하게 바꾼 것은 그만큼 한국 시장이 우호적으로 변하고 있음을 감지한 때문이다.
미쓰비시나 닛산 등 일본 차 업체들의 한국 진출 본격화도 도요타를 자극한 듯하다. 현재 전시장 공사를 벌이고 있어 올 10월께 일반 소비자들에게 선보일 예정이다. 미쓰비시자동차는 대우자동차판매와 손잡고 ‘국산차와 별 차이가 없는 가격’에 판매할 것이라고 선언한 바 있다. 결국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일본 주요 자동차 메이커들이 모조리 한국 시장에 입장한 셈이다.
일본산 대중차들의 국내 시장 안착 여부는 가격 정책에 달려 있다. 일단 혼다의 가격 정책이 바로미터가 될 가능성이 크다. 혼다는 ‘수입차=고급차=비싼 값’이라는 럭셔리 마케팅을 포기하고 싼 가격으로 승부를 걸었고, 이 전략을 통해 단기간에 수입업체 1위가 되었다.
선우모터스의 김영준 실장은 “캠리가 3천만원대 중반의 가격표만 붙여도 많이 팔릴 것이다”라고 전망했다. 캠리는 비공식으로 수입되던 시절 국내에서 3.5ℓ급이 5천만원에, 2.4ℓ급이 4천만원에 팔렸다. 도요타가 직접 진출할 경우 이보다 훨씬 싸게 팔 것으로 보인다.
3천만원대라면 그랜저급의 가격에 해당한다. 하지만 캠리의 이미지는 쏘나타급이다. 지난 2000년 북미시장에서 현대차가 뉴EF쏘나타와 비교 시승을 한 것은 캠리였고 지난해 신형 그랜저(3.8ℓ)와 비교 시승을 한 상대는 렉서스의 ES350(3.5ℓ)이었다. 그랜저3.8은 4천만원대이고 렉서스 ES350은 6천만원대이다.
그랜저와 차체를 공유하는 모델이 쏘나타이고 ES350과 차체를 공유하는 모델이 캠리다. 결국 쏘나타와 캠리가 맞붙을 수밖에 없다.
ES350의 베이스 모델인 캠리가 3천만원대의 가격표를 달고 들어온다면 어떤 결과가 나타날까.
선우모터스 김실장은 “국산차 소비자들이 외제차를 구입하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는데 이런 추세가 더욱 강해질 것 같다. 특히 30~40대의 연령층에서 유학 등 미국 생활의 경험을 통해 캠리의 명성을 아는 사람이 많아 수요층이 의외로 탄탄할 수도 있다”라고 말했다. 본격적인 마케팅을 하지 않아도 기본적으로 찾는 사람이 있으리라는 얘기다. 페라리의 공식 수입업체인 FMK의 전우택 부사장은 “지금까지는 수입차들이 국내에 없던 시장을 만들어왔다. 렉서스나 혼다 시리즈도 마찬가지였다. 캠리의 경우 전체 수입차 시장의 볼륨을 키울 것은 분명하지만 얼마만큼 국산 신차 시장을 잠식할지는 아직 속단할 수 없다”라고 말했다.
한국도요타는 월 5백대 판매에서 시작해 월 1천대 정도로 그 양을 늘려나갈 계획이라고 밝히고 있다. 도요타 고위 임원 출신인 한 인사는 “단기에 너무 팔려 ‘반일 감정’을 일으키는 등 한국 시장에 불필요한 자극을 주는 것을 원치 않는다”라는 내부 기류를 전하기도 했다.
한국 시장에서 도요타의 간판은 하이브리드 차종이 될 것으로 보인다. ‘친환경’을 내세워 마케팅을 할 것이라는 사실은 한국도요타에서도 공식 인정했다.
현대차도 지난 3월 말 정몽구 회장이 내년에 아반떼 하이브리드 차종의 모델을 낼 것이라고 밝혀 도요타의 ‘친환경’ 공세에 맞설 준비가 되어 있음을 알렸다. 최근 몇 년 동안 현대차는 쏘나타나 그랜저, 베라크루즈 등의 신차 발표회를 할 때도 항상 렉서스 라인과 맞불을 놓았다.
도요타와 현대차의 진검 승부는 이제 피할 수 없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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