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문만도 못한 여론조사, 왜 이래?
  • 안성모 기자 asm@sisapress.com ()
  • 승인 2008.04.07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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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사마다 지지율 순위 들쑥날쑥해 후보들 황당…“특정 후보 위한 편파 조사” 논란도

“어느 장단에 춤추어야 할지 모르겠다”. 여론조사가 총선 출마자들을 들었다 놓았다 하고 있다. 지지도 등락에 따라 후보들의 표정은 하루에도 몇 번씩 뒤바뀐다. ‘일희일비(一喜一悲) 말자’라는 생각은 압승이 예상되는 경우에나 가질 수 있는 여유다. 한치 앞을 내다보기 힘든 상황에서 후보들은 여론조사 결과 하나에 울고 웃을 수밖에 없다.

선거운동이 본격적으로 진행되면서 언론사마다 여론조사 결과를 경쟁적으로 쏟아냈다. 특히 경합이 예상되는 지역은 여론조사 결과를 근거로 한 판세 분석이 매일같이 보도되었다. 하지만 조사 기관에 따라 지지도는 물론 순위까지 다르게 나타나 후보들을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선거 전문가들도 고개를 갸웃하게 하는 예상 외의 결과가 적지 않다. 유권자의 표심을 왜곡시킬 수 있다고 우려하는 목소리도 높다. ‘조작설’까지 제기되는 등 여론조사의 신뢰성과 영향력을 둘러싼 논란은 선거 기간 내내 끊이지 않았다.

지난 4월3일 발표된 YTN·대구방송·영남일보 공동 여론조사에서 대구 서구의 경우 친박연대 홍사덕 후보가 34.9%, 한나라당 이종현 후보가 33.4%로 조사되었다. 1, 2위 간 격차가 1.5%포인트에 불과해 오차 범위 안에서 초접전을 펼치는 것으로 분석되었다. 반면 같은 날 보도된 KBS대구방송·대구일보 여론조사에서는 홍사덕 후보가 41.5%의 지지도를 기록해 25.7%를 얻은 이종현 후보를 15.8%포인트 차이로 크게 앞선 것으로 조사되었다.

종잡을 수 없는 여론조사 결과는 이곳뿐만이 아니다. 선두 후보가 뒤바뀌는 경우도 적지 않다. 3월25일 실시된 SBS·조선일보 여론조사 결과 강원 동해·삼척에서 무소속 최연희 후보가 35.4%, 한나라당 정인억 후보가 19.8%를 각각 기록한 것으로 조사되었다. 최후보가 15.6%포인트 차이로 정후보를 제치고 선두를 차지했다. 하지만 같은 날 실시된 강원 지역 5개 언론사 합동 여론조사에서는 정인억 후보가 31.4%의 지지도를 기록해 24.0%를 얻은 최연희 후보를 7.4%포인트 앞선 것으로 나타났다. 두 조사 결과가 23.0%포인트의 큰 격차를 보였다.

 

충남 천안 을 선거구 여론조사도 들쑥날쑥하기는 마찬가지였다. 3월30일 중도일보 여론조사에서 한나라당 김호연 후보가 30.1%, 자유선진당 박상돈 후보가 20.4%를 획득해 김후보가 9.7%포인트 앞서는 것으로 나왔지만, 다음날 충청투데이 여론조사에서는 박후보가 27.5%를 기록해 24.9%의 지지도를 얻은 김후보를 2.6%포인트 차이로 따돌린 것으로 조사되었다. 하루 사이에 12.3%포인트가 왔다갔다 한 셈이다.

조사 기관에 따라 정반대 결과 나오기도

조사 기관에 따라 정반대 결과가 나오는 이유는 무엇일까. 선거 전문가들은 여론조사에 오류가 있을 수도 있지만 실제 지역 여론이 요동을 치고 있다고 분석했다. 그 이유로는 각 당의 후보 공천이 전반적으로 늦어진 점이 우선 거론되었다. 후보가 확정된 이후 여론이 형성되기까지 시간이 부족했다는 것이다.
한길리서치 홍형식 소장은 “늦어도 한 달 전에는 공천이 되어야 예비후보로서 선거운동을 할 수 있고 여론을 형성해 나갈 수 있는데, 이번처럼 보름 전에 후보가 결정되면 지역 여론이 충분히 형성되기가 어려운 측면이 있다”라고 지적했다. 특히 인지도가 상대적으로 낮은 정치신인에게 불리할 수밖에 없는 구도라는 설명이다.

여론조사가 갖는 한계도 지적되었다. 설문 대상의 수와 질문 내용, 전화 시각, 조사원 능력 등 ‘조건’에 따라 결과가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선거 여론조사의 경우 응답률이 떨어지는 데다 적극적인 투표층에서는 ‘거짓 답변’을 하는 경향이 적지 않다. 또 연령층에 따라 설문 대상을 나누어 조사할 경우 오히려 정확도가 떨어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실제 투표에서는 젊은 층의 참여가 상대적으로 낮기 때문이다.

민기획 박성민 대표는 “투표율이 70%를 넘길 때에는 정확도가 있다고 보겠지만 50% 이하로 떨어지는 경우에는 여론조사로 선거 결과를 예측하기는 어렵다”라고 지적했다. 박대표는 “민심의 큰 흐름을 파악하는 수준에서 여론조사 결과를 해석해야 한다”라고 밝혔다.

정확도와는 무관하게 여론조사가 선거 판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측면에서 후보들은 그 결과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여론조사 결과에 따라 우세한 후보를 선택하는 ‘밴드웨건 효과’가 나타나거나, 반대로 약세에 있는 후보를 밀어주는 ‘언더독 효과’가 발생할 수 있다. 이에 따라 후보들은 자신에게 유리한 여론조사 결과를 전략적으로 취사선택해 선거운동에 활용하는 경우가 많다.

여론조사 발표를 놓고 ‘정치적 의혹’이 제기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진보신당은 서울 노원 병 선거구에서 한나라당 홍정욱 후보가 진보신당 노회찬 후보를 12%포인트 앞섰다는 헤럴드경제 3월27일자 여론조사 기사를 문제 삼았다. “다른 모든 언론사의 여론조사 결과에서 홍후보가 노후보에게 뒤지고 있는 상황에서 헤럴드경제만 ‘오류투성이 여론조사 결과’를 발표했다”라는 것이다. 진보신당은 “홍후보와 헤럴드경제가 ‘특수관계’인 점을 고려하지 않고서는 기본적인 데이터 처리도 되지 않은 결과를 왜 발표한 것인지 이해할 수 없다”라고 주장했다. 홍후보가 헤럴드미디어 회장을 역임한 점을 염두에 둔 의혹 제기이다.

서울 종로에 출마한 민주당 손학규 후보측은 4월2일 중앙일보가 보도한 총선 판세 분석 기사가 “형평성, 사실성, 신속성 등 언론의 기본 사명을 무시했다”라고 주장했다. 김주한 대변인은 “3월21일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를 그대로 보도했는데 당시는 후보가 확정되지도 않은 때다”라고 지적하면서 “결과적으로 특정 후보에게 매우 불공평한 조사 결과가 보도되었고 유권자에게도 심각한 혼란을 가중시킨 것이다”라고 비판했다.

경쟁적으로 펼쳐진 여론조사 발표로 인해 지역 개발을 위한 정책 공약이나 후보에 대한 인물 평가는 뒷전으로 밀렸다는 지적도 있다. 여론조사 결과가 선거 판세를 결정지어 버렸다는 불만도 적지 않다. 수도권에 출마한 민주당의 한 후보는 “여론조사에서 크게 뒤지는 것으로 나오면 선거운동은 해보나 마나 하게 된다. 정책이나 정치 이슈가 발생해도 별반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라고 밝혔다. 그는 “여론조사가 사실상 선거 결과를 미리 결정짓는 것이나 다름없다”라고 주장했다.

이번 총선부터 개정된 선거법에 따라 선거일 7일 전 여론조사까지 공표할 수 있도록 한 것도 재고해볼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홍형식 소장은 “선거운동원들마저 여론조사만 쳐다보고 있고, 그 결과를 가지고 승패를 판단하고는 움직이지 않는다. 후보 등록 이후의 여론조사 결과는 발표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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