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배 중인 전경환 또다시 사기극?
  • 이석 기자 ls@sisapress.com ()
  • 승인 2008.04.07 1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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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조 CD 유통 과정에서 ‘일정 부분 역할’ 의혹 / 경찰, 잠적한 김 아무개씨 신병 확보에 수사 총력

 

전두환 전 대통령의 동생 전경환씨가 양도성예금증서(CD) 위조 사범들과 연루된 혐의로 경찰 조사를 받은 것으로 <시사저널> 취재 결과 확인되었다. 익명을 요구한 검찰의 한 관계자는 4월3일 “지난 1월 위조된 CD를 시중에 유통시키던 일당 중 한 명이 경찰에 검거되었다. 수사 과정에서 전경환씨가 그들과 연루된 사실을 밝혀내 현재 조사 중이다”라고 밝혔다.

전씨는 지난 2004년 11월 한 건설업자에게 1천억원대의 외자를 유치해주겠다며 7억원을 받아 가로챈 혐의로 검찰에 고소되었다. 그러나 이듬해인 2005년 2월 검찰 조사를 받던 와중에 돌연 자취를 감추었다. 이후 전씨는 3년째 사기 혐의로 수원지검 성남지청의 수배를 받아왔으며 최근에는 지병이 악화되어 입원 치료를 받고 있다. 그런 전씨가 또다시 경찰의 수사선상에 올랐다. 이와 관련해 전씨는 경찰에서 “평소 알고 지내던 지인으로부터 CD의 진위 여부를 확인해달라는 부탁을 받았다”라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전씨는 지난 2월 초 수배 중인 상태에서 신촌 세브란스병원에 입원했다. 전씨가 머무르고 있는 곳은 입원비만 80만~90만원에 달하는 VIP 병동이다. 사기 혐의로 3년간이나 잠적해 있다가 갑자기 나타나 병원에 드러누운 터라 그에 대한 조사는 정상적으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그러나 경찰이 전씨를 둘러싼 각종 스캔들을 차제에 모두 규명하겠다고 벼르고 있어 향후 수사에 세인들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

전씨 “지인에게 위조 확인 부탁받았다” 해명

전씨와 연루된 이번 사건의 시작은 지난 1월22일로 거슬러 올라간다. 한 아무개씨가 외환은행 오류동 지점에서 발행한 액면가 40억원 상당의 CD를 담보로 신한은행에서 대출을 신청한 것이 발단이 되었다. 한씨를 수상하게 여긴 은행 직원이 경찰에 신고를 한 것이다.

외환은행의 한 관계자는 “한씨가 담보로 제출한 CD는 책임자의 직인이 다르게 되어 있는 등 실물과 차이가 있었다. 은행 직원의 신고로 출동한 경찰이 현장에서 한씨를 검거한 것으로 알고 있다”라고 말했다.

한씨의 신병은 즉시 오류지구대를 거쳐 구로경찰서 지능수사팀에 인계되었다. 한씨는 처음에 혐의를 극구 부인하다 자신은 단순히 사주를 받았을 뿐이고 실제 몸통은 따로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몸통을 거론하다 “전경환씨가 유통 과정에서 일정 부분 역할을 했다”라고 진술했다.

경찰 조사에 따르면 위조 CD는 총 8단계를 거쳐 한씨에게 전달되었다. 전씨의 경우 신 아무개씨에게 건네받은 뒤, 다시 정 아무개씨에게 이 위조 CD를 전달했다. 정씨는 다시 한씨에게 이 CD를 건네 할인을 시도하다가 경찰에 적발된 것이다.

경찰은 현재 위조 CD가 전달된 경위 및 가담자 확인과 함께 최초 유통자인 김 아무개씨의 신병 확보에 수사를 집중하고 있다. 그러나 김씨가 자취를 감춰 수사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사건을 수사 중인 구로경찰서의 한 관계자는 “그동안 전경환씨를 포함한 사건 관련자들에 대한 조사를 벌였다. 그러나 유통 루트의 정점에 있는 김씨의 종적이 묘연해 수사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라고 귀띔했다.

기자는 지난 4월3일 전씨가 입원해 있다는 신촌 세브란스병원 20층 귀빈 병동을 찾았다. 병원측에 따르면 전씨의 병세는 현재 상당히 좋지 않은 상태다. 간암의 일종인 담관세포암 판정을 받아 장기간 치료를 요하고 있다. 전씨는 입원 직후인 지난 2월 말 검찰의 방문 조사를 받았다. 전씨의 수배령을 내린 수원지검 성남지청이 병원에 직접 수사관을 파견해 조사를 벌인 것이다. 병원측은 한사코 전씨와의 면담 요청을 거절했다. 사진 촬영도 허락하지 않았다. 병원 관계자는 “절대 안정이 필요할 정도로 환자의 상태가 좋지 않다. 당사자 허락 없이는 면회가 불가능하다”라고 설명했다.

기자는 이 직원을 통해 어렵게 전씨에게 이번 위조 CD 사건에 대한 해명을 요구했지만 “전씨와 가족들이 만나기를 원하지 않는다”라는 답변만 들었다.

전씨는 경찰 조사에서 “위조 CD 유통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평소 알고 지내던 신 아무개씨가 위조 여부를 확인해 달라는 부탁을 했다. 진위 확인 차원에서 정 아무개씨에게 부탁을 했던 것뿐이다”라고 밝혔다.

그러나 8단계를 거치는 세탁 과정에서 유독 전씨만 위조 CD를 몰랐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경찰은 현재 전씨 진술의 진위 여부를 가리는 데 수사력을 모으고 있다.

경찰 “검찰 지휘 아래 수사 중”

 

전씨가 비슷한 금융 사건에 연루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현재 그에게 발부된 체포영장만 3개 이상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지난 2007년 8월에 있었던 구권 화폐 사기극이 대표적인 사건이다. 당시 사기범들은 전두환 전 대통령의 구권 화폐 비자금 50억원을 액면가보다 싸게 살 수 있다고 속여 2억1천만원을 챙긴 혐의로 검찰에 검거되었다. 이들은 사기극을 벌이면서 피해자들이 보는 앞에서 전씨를 불러내 식사를 함께 하는 등 친분을 과시했다. 그러나 검찰은 전씨가 행방을 감추는 바람에 조사조차 하지 못했다.

같은 해 11월에는 9천억원 상당의 외자 유치와 함께 필리핀 정부로부터 50만t 규모의 납 채굴권을 받았다고 속여 수십억 원을 가로챈 사기 사건에 전씨가 연루되기도 했다. 당시 이 사기 사건으로 구속 기소된 김 아무개씨는 다름 아닌 전씨 동거녀의 딸이었다. 전씨는 김씨의 소개로 여러 차례 피해자들을 만난 것으로 경찰 조사결과 나타났다. 이 사건은 현재 재판이 진행 중이다.

이렇듯 전씨는 수배를 받고 있음에도 여러 차례 사기 사건에 연루되었다. 이번 위조 CD 사건 역시 전씨의 이런 행각에서 빚어진 것이 아니냐는 추측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경찰은 전씨의 혐의와 관련해 말을 아끼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수사 중인 사건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는 것이 원칙이다. 현재 검찰의 엄중한 지휘 아래 사건을 조사하고 있는 만큼 함부로 수사 내용을 말하기도 어렵다. 어쨌든 이번 수사가 끝나면 그동안 전씨 주변에서 벌어졌던 사기극들의 전모가 밝혀지게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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