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키울 ‘싹수 파란’ 돈 어디 없나
  • 김진령 기자 jy@sisapress.com ()
  • 승인 2008.04.14 15:14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교육보험 “도움 안 돼” 인기 시들…투자 개념의 펀드나 장기 보장성 금융 상품에 관심

 
한때 자녀를 낳으면 자녀 교육을 위해 집집마다 교육보험을 들던 시절이 있었다. 3대 생보사 중의 하나인 교보생명의 옛 이름이 ‘대한교육보험’이었을 정도로 교육보험의 인기는 대단했다. 하지만 대한교육보험은 지난 1995년 이름을 ‘교보생명’으로 바꿨다. 생명보험 상품이 다양하게 늘어나는데 교육보험이라는 이름만으로 시장 변화에 대처하기 어려웠기 때문이지만 교육보험의 인기가 시들해진 탓도 있었다.
보험개발원의 2007년 말 생명보험사 수입 보험료 통계를 보면 교육보험을 비롯한 어린이보험의 가입 2년째 보험료 수입 비중은 전체의 3.2%에 불과했다. 교육보험이 간판 상품이었던 교보생명에서도 지난 2월 기준으로 교육보험 비중이 전체 신규 계약 금액의 0.5%였다.
교육보험의 인기가 왜 이렇게 추락한 것일까. 1978년생과 1980년생 자녀를 둔 김숙희씨(서울 구로구)는 큰 아이가 네 살 때 교육보험을 들었고, 둘째아이 역시 교육보험을 들었다. 하지만 김씨는 큰 아이가 고등학교에 입학할 무렵 둘째아이의 교육보험을 해약했다. 교육보험에 들면 아이가 학교에 입학할 때 2백만원을 받는 것으로 알고 계약했지만 중학교입학 때 20만원을, 고등학교 입학 때 20만원을 각각 받고 나머지 1백60만원은 대학교 입학 때 받는 식이었다. 아이가 네 살 때 2백만원은 큰 금액이었지만 큰 아이가 대학에 입학할 무렵 2백만원은 등록금 내기에도 모자란 돈이었다. 김씨는 결국  ‘교육보험이 도움이 안 된다’는 결론을 내렸다.

한 가지 목적보다는 라이프 사이클에 맞춘 목돈 마련 상품 인기

1994년생과 1998년생 두 자녀를 둔 주부 이미현씨(서울 강남구)는 두 아이를 위한 교육보험을 들었다가 5년 전에 아파트를 넓혀 이사가면서 모두 해약했다. 대신 주요 질병을 보장해주는 어린이CI 보험을 아이들 앞으로 들었다. 매년 10% 가깝게 등록금이 오르는 현실에서 교육보험을 들어 받는 돈이 보잘것없이 보였기 때문이다.
김상윤 하나은행 목동지점장은 “보험은 일종의 보호 수단이지 투자 수단이 아니다. 미래의 교육비를 마련해놓는다는 관점에서 교육보험을 선택하는 것은 바람직스럽지 않다”라고 조언했다. 보통 보험료의 10% 정도가 보험사의 관리 비용으로 쓰인다는 점에서 투자 수단으로 적절하지 않고 사교육비가 증가하고 등록금이 인상되는 것을 보면 교육보험을 통해 얻을 수 있는 미래교육비 마련 효과는 미미하다는 것이다. 김지점장은 “투자 개념이라면 펀드나 연금 신탁, 장기주택마련 펀드, 장기주택마련 저축 등에 가입하는 것이 수익률이나 세제 측면에서 훨씬 효율적이다”라고 주장했다.
교보생명의 한 관계자는 “장기 보험 상품에 추가로 돈을 넣을 수도 있고, 중도 인출도 가능한 유니버설 기능을 넣으면 라이프 사이클에 맞춰 그때그때 필요한 목돈을 마련할 수 있기에 교육보험 같은 특화된 상품의 필요성이 작아지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보험사 쪽에서도 목돈 마련을 위한 상품보다는 장기 보장성 상품 판매 쪽으로 주력 상품을 바꾼지 오래다.
미래에셋생명보험의 판매사인 손미자씨도 자사 상품인 ‘우리아이사랑보험’의 예를 들며 “중도 인출을 통해 목돈 융통이 가능한 변액 상품이고 상속세나 증여세를 절감할 수 있어 계약자들에게 인기를 끌고 있다”라고 밝혔다.
교육비 마련이라는 한 가지 목적에 집중하는 상품보다는 전반적인 라이프 사이클에 맞춰 목돈을 마련할 수 있는 금융 상품이 더 인기를 끌고 있다는 것이다. 중대 질병을 보장하는 CI보험이 어린이용으로 나온 것도 그런 맥락에서다.
어린이CI 보험은 아이들이 중병에 걸렸을 경우 보험사에서 계약된 정액을 지급한다. 성인들이 주요 질병에 대비해 맺는 계약방식을 어린이에게도 적용시킨 것이다. 물론 어린이용인 만큼 평생 보장은 되지 않고 나이 제한이 있다.
요즘에는 보장 기간이 늘어난 상품도 나오고 있다. 대한생명에서 발매한 어린이 보험인 ‘주니어CI보험’의 보장 기간은 최대 27세까지였으나 최근에는 30세까지 늘린 상품이 나왔다. 만혼 풍조가 확산되며 실질적인 결혼 연령이 30세 이후로 늦춰짐에 따라 보장 기간을 30세까지 늘려달라는 고객들의 제안을 받아들인 것이다.
최근 펀드 바람을 타고 어린이 펀드에 관심을 갖는 학부모들도 늘어나고 있다.
어린이 펀드는 자녀 명의로 통장을 만들어 주어 어릴 때부터 경제관념을 심어줄 수 있다는 장점이 부각되고 있다. 또 펀드 운영사에서 주최하는 어린이 캠프나 교육 캠프에도 참가할 수 있는 기회를 주기도 한다. 하지만 어린이 펀드라고 해서 딱히 어떤 특혜가 있는 것은 아니다. 어린이 펀드가 장기 투자가 가능한 우량주에 투자한다고 하지만 펀드치고 우량주 편입을 마다하는 펀드는 없다. 제목만 어린이 펀드일 뿐 펀드 운용기준은 다른 펀드와 대동소이하다. 
물론 어린이 펀드를 통해 장기 투자했다 해서 별도의 세제 혜택도 받지 못한다. 어린이가 다른 일반 펀드에 들었을 때나 어린이 펀드에 가입했을 때나 받는 세제 혜택은 동일하다.

 

증여세 면제 등 세제 혜택, 선진국 수준으로 높여야

현행 상속·증여세법에서는 만 19세까지 10년 단위로 1천5백만원씩, 20세 이후에는 3천만원까지 증여세 공제 혜택이 주어진다. 세무 당국에 신고하면 이 액수만큼 자녀에게 증여해도 증여세를 내지 않아도 된다. 신고를 하지 않는 경우 원금은 물론 이자까지 모두 세금을 물어야 한다.
증여세 면제 혜택 역시 특별히 어린이 펀드에 가입한다고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적금 상품에 넣든 신탁 상품에 넣든 마찬가지 혜택이 주어진다. 하지만 외국의 경우는 다르다. 미국에서는 ‘529플랜’이라는 어린이 펀드용 세제 혜택 프로그램이 있다. 이 프로그램은 자녀 대학 학자금을 마련하려는 가정에 연간 1만1천 달러(우리 돈으로 1천100만원)까지 세제 혜택을 주고 있다. 영국에는 차일드트러스트 펀드(CTF)라는 프로그램이 있다. 출산율을 높이기 위해 아기가 태어나면 자동적으로 어린이 펀드에 가입시켜주고 정부에서 아이의 계좌에 2백50파운드(50만원 정도)를 넣어준다.
국내 자사운용업계에서도 이런 외국의 사례를 제시하며 어린이 펀드나 퇴직연금 등에 세제 혜택을 줄 것을 정부에 촉구하고 있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