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차도 이쯤 돼야 명함 내밀지
  • 심정택 (자동차산업 전문가) ()
  • 승인 2008.04.14 1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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틈새 겨냥한 외국 고급 브랜드, 국내 진출설 솔솔…전문 인력 확보 등 어려움 많아 소걸음

 

올 들어 수입차 시장이 확대되면서 국내에 정식으로 출시되지 않은 틈새 브랜드들의 한국 상륙설이 나돌고 있다. 해외 양산차 브랜드들은 올 하반기 시판될 예정인 닛산이나 내년에 진출하는 도요타, 최근 국내 모기업과 임포터(importer) 권리 부여를 위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한 것으로 알려진 피아트를 제외하고는 거의 국내 시장에 발을 들여놓았다. 수입차 시장이 커지면서 자연스럽게 형성된 틈새를 겨냥한 브랜드들의 국내 시장 진출설이 회자되고 있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지난 3월까지 전체 수입차 시장은 1만5천6백58대가 팔려 2007년 같은 기간 대비 26.8%의 신장률을 기록하고 있다. 그 내용을 들여다보면 지난해 1백1대가 팔린 벤틀리(BENTLEY)는 올해 들어 벌써 21대가 팔려 지난해 같은 기간 19대보다 앞서고 있다. 포르쉐는 1백15대로 지난해 같은 기간 62대보다 무려 100% 가까이 신장세를 나타내고 있다. 포르쉐의 라인 중 대중적인 모델인 복스터가 상당 비중을 차지하고 있기는 하지만, 벤틀리의 안정된 판매와 포르쉐의 비약적인 판매 신장은 앞으로 국내 수입차 틈새 시장이 무한하게 성장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징표들이다.

틈새 시장을 노리는 브랜드들의 상당수는 영국산 자동차다. 영국은 최초로 산업혁명이 일어난 곳이자, 현대적인 기계 공업의 발상지다. 당연히 오랜 자동차 산업 역사를 가지고 있다.

영국산 자동차로 국내에 소개되지 않은 차 중 첫 번째로 꼽히는 것은 애스틴 마틴(AUSTIN MARTIN)이다. 영국 현지에서는 오스틴 마틴으로, 국내에서는 아스톤 마틴, 애스턴 마틴으로 불리기도 한다. 007 영화에 자주 등장해 일명 007차로 더 잘 알려져 있다. 제임스 본드가 <다이 어나더 데이>에서는 뱅퀴시(Vanquish)를, <카지노 로얄>에서는 DBS를 운전한다. 애스틴 마틴은 벤틀리에 버금가는 럭셔리카, 슈퍼카로 평가받는다. 국내에 마니아들이 많으며, 국내 시판시 최하 대당 2억5천만원 이상의 가격이 예상된다. 국내에 들여온 차가 많지 않아, 중고차도 1억~2억원대를 유지한다.

007차로 유명한 애스턴 마틴, 대당 가격 최하 2억5천만원

1987년 포드 그룹에 편입되었으나 포드의 구조 조정으로 지난해 중동계 사모 펀드에 팔렸다. 포드 산하에 있을 때는 재규어, 랜드로버 등이 속한 PAG(프리미어 오토모티브 그룹)네트워크를 통해 한국 진출이 거론된 적이 있다. 애스턴 마틴은 BMW가 기술 제휴를 요청해오는 등 최근 주가가 상승하고 있다. 수입차 업계 관계자는 애스턴 마틴의 한국 진출과 관련해 “벤틀리의 판매 추이로 보아 연간 1백50대 이상 판매는 확실하다”라면서 긍정적인 전망을 내어놓고 있다. 또한 수익성과 관련해서도 “벤틀리의 경우 딜러 마진이 25% 이상으로 추정된다”라면서, 애스틴 마틴 역시 벤틀리 이상의 성과를 낼 것으로 보고 있다.

역시 영국 차로 클래식카인 몰간(또는 모간, MORGAN)은 디자인이 독특한 차로 평가받는다. 연간 6백대 이상을 생산하며 주로 자국 내보다는 미국, 유럽 등에 수출하는 (2인승)경스포츠카(로드스터)다. 몰간의 ‘에어로 8’은 BMW AG의 V8 엔진을 탑재, 길게 돌출된 펜더와 선 굵은 크롬 그릴 등으로 인해 클래식카 이미지를 갖고 있다. 쌍용차가 1990년대 초반 영국에서 이름만 유지하고 있던 ‘팬더’(Panther) 사가 보유한 ‘칼리스타’ 모델을 국내에 소개하면서 알려진 클래식 스포츠카의 이미지를 생각하면 된다. ‘에어로 8’은 기본형이 9만5천 달러부터 시작한다. 몰간은 한국 시장 진출에 적극적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유럽포드의 GT는 슈퍼카, 스포츠카로 명성이 있다. 가속력 등 파워 면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명차로 알려져 있다. GT 90은 1964년에 처음 선을 보였는데 1966~1969년까지 르망 24시간 레이스에서 4년 연속 우승한 GT 40의 명성을 이어받았다. 12기통 엔진 탑재, 7백20마력, 최고 시속 3백80km를 자랑한다.

부가티는 벤틀리와 같이 포르쉐가 최근 경영권을 장악한 폭스바겐 그룹 산하의 독립된 이그조스틱카(슈퍼카 이상의 자동차) 브랜드다. 포르쉐는 폭스바겐을 정점으로 아우디, 람보르기니, 벤틀리, 부가티, 스카니아 등의 자회사를 거느린 유럽 최대, 세계 4위의 자동차 그룹이다. 한때 부가티는 자동차 엔지니어링 및 스포츠카를 생산하는 로터스의 경영권을 가진 적도 있다. 부가티가 2005년 처음 출시한 시속 4백7km의 공식 기록을 가지고 있는 베이론(또는 바이론, Veyron)은 16기통, 1천1마력으로 시판가가 100만 달러를 넘는다. 베이론은 2005년 5대, 2006년 4대, 2007년 83대가 프랑스 몰스하임 공장에서 출시되었다. 부가티의 디자인사업부는 최고급 신사복 정장, 만년필, 여성용 핸드백 등 부가 사업도 수행한다.

이러한 브랜드들이 적극적으로 직접 한국 시장에 진출하는 데는 아직까지 제한 사항이 많다. 수입차 시장이 변화하고 있지만 중국처럼 단기간에 급성장한 시장과 달리, 연간 5만~6만대 시장에서 영업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전문 인력을 확보하는 등의 투자를 양산차 메이커들과 같은 페이스로 할 수는 없다. 시장을 잘 알고 사업성에 대한 확신을 가진 국내 파트너들을 만날 때 가능한 일이다.

포르쉐코리아, 본격 영업으로 공식 수입 물량 늘려

이런 점에서 올해 포르쉐의 약진은 눈여겨볼 만한 현상이다. 수입차 업계에서는 포르쉐코리아가 영업을 본격화하면서 비공식 수입원으로부터 수입되는 반입량이 줄어드는 대신 공식 수입원의 물량이 늘어난 것으로 보고 있다. 대당 가격이 억대를 호가하는 고가차 시장에서 그만큼 고객 관리와 수입원에 대한 신뢰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포르쉐는 대당 8천만~3억원대의 가격으로 슈퍼카 시장에서 엔트리카로 분류된다. 이보다 더 비싼 경우가 페라리다.

이탈리아산 슈퍼카인 페라리는 대당 2억~5억원대의 가격을 형성하고 있다. 하지만 페라리는 그동안 국내 시장에서 별반 호응을 얻지 못했다. 일본 로컬 딜러의 서브 딜러가 국내 판매를 담당하다 국내 딜러권을 따내는 단계에서 도산해버리는 등 신용 관리에 문제가 있었다. 그러나 지난해 한국제분에서 공식 판매권을 따내고 FMK를 세우면서 판매망 정비와 적극적인 고객 관리에 나서고 있다.

수입차 업계에서는 이전 페라리, 마제라티가 한국 시장에서 실패한 이유를 국내 사업 파트너의 부적절한 브랜드 도입 시점 선택, 마케팅 실패, 무리한 투자, 경영 능력 부족이 어우러진 결과라고 보고 있다. 슈퍼카 등 고가 차일수록 고객 관리 등 눈에 보이지 않는 90%가 판매를 좌우하기 때문이다.

한편 유럽 명품차들은 지난 1990년대 후반에 국내 시장에 선보일 뻔하기도 했었다. 유럽의 고급 자동차 엔지니어링 업계 및 주문자 부착 상표(OEM) 생산업체, 유럽 현지 판매 네트워크 간의 상호 제휴를 삼성그룹에서 추진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삼성은 SM5를 양산하기 전인 1997년 SM5의 기술 제휴선인 닛산이 수출을 제한하자, 영국 로터스의 엔지니어링 부문을 인수해서 연구 개발 센터로, 핀란드 벨멧(Valmet)을 인수해 유럽 현지 제조 센터로, 영국의 모 메가 딜러를 판매망으로 하는 유럽 진출 추진 전략을 세운 바 있다. 그러나 외환위기 이후 삼성그룹이 자동차 사업을 포기함으로써 이 전략은 실현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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